사위성에 지식이 아주 높은 한 바라문이 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수제자 앙굴마는 성품이 어질고 지혜가 뛰어난 자였는데, 특히 외모가 무척 수려하여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바라문의 아내는 평소 수제자 앙굴마를 연모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라문이 외출하자 살며시 앙굴마에게 다가가 유혹했다. 그러자 앙굴마는 무릎을 꿇고 바라문의 아내에게 말했다.
"스승이 아버지면 그 부인은 바로 제 어머니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바라문의 아내가 말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것이 왜 도가 아니라고 하는가?"
"스승의 부인과 정을 통하는 것은 마치 독사를 몸에 두르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의 아내가 앙굴마가 끝까지 말을 들어주지 않자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바라문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오늘 당신의 수제자 앙굴마가 당신이 외출한 틈을 타서 저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바라문은 앙굴마에게 복수하고자 마음먹었다.
'저 녀석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내려 살인을 저지르게 해서 이승에서는 국법에 따라 처형을 받고 내생에서는 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라.'
생각을 마친 바라문은 앙굴마를 불러 말했다.
"너의 지혜는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나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이 칼을 네게 주리니 사거리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죽이거라. 그리고 손가락 하나씩을 베어 백 개의 손가락으로 된 목걸이를 만들면 마침내 도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앙굴마는 스승의 말에 당황했다.
'아, 스승님은 왜 그렇게 어렵고도 무서운 가르침을 내리신 것일까? 그렇다고 스승의 가름침을 어기는 것 역시 제자의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앙굴마는 괴로워하면서 길을 걷다가 어느새 사거리에 이르렀다. 그때 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마치 저승사자처럼 닥치는 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서는 손가락을 베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사거리에는 곧 시체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으며 온 시내에 비명과 통곡 소리가 가득했다. 그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직접 앙굴마를 제도하기 위해 사거리 쪽으로 갔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이 부처님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이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에는 살인마가 있어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내게 덤빈다 해도 두렵지 않거늘, 일개 범부 때문에 발걸음을 돌릴 수 는 없느니라."
앙굴마는 아흔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고는 마지막 한 개를 채우려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앙굴마의 어머니가 저쪽에서 점심을 가지고 사거리로 오고 있었다. 실성한 앙굴마는 자기 어머니마저 몰라보고 어머니를 죽여 손가락 백 개를 채우려고 했다. 때마침 사거리에 도착한 부처님이 앙굴마를 제지하자 그는 부처님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부처님의 그림자에도 미치지못했다. 앙굴마는 소리쳤다.
"출가자여, 거기 서라."
"나는 이미 여기 멈춰선 지 오래인데,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은 도리어 그대가 아닌가?"
부처님의 이 말씀에 앙굴마는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앙굴마는 곧 칼을 버리고 털썩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미혹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저를 제도해주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굴마를 데리고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셨다. 부처님께 제도받은 앙굴마는 얼마 안 있어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그때쯤 살인마가 사거리에 나타나 백성을 마구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파사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앙굴마를 잡으러 왔다. 그러나 이미 불문에 귀의해 스님이 된 앙굴마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런 극악무도한 자마저 당장 교화할 수 있는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크고도 높은 것이로구나.'
파사닉왕은 도리어 앙굴마에게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한편 스님이 된 앙굴마는 시내에 걸식을 하러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앙굴마를 그냥 두지 않았다. 부모형제와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앙굴마를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러나 앙굴마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조금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과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