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사방 6백 리의 땅과 사방 6리의 땅 - 장의
'전에 그대의 식객으로 있을 때 그대의 구슬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고문하였다. 그대는 부디 그대의 나라를 잘 지키도록 하라. 내가 반드시 그대의 나라를 쳐서 성을 훔치려 한다.'
소진의 합종책에 맞서 '연횡책'을 들고 나온 사람은 장의이다. 두 사람 모두 귀곡 선생 문하생인데, 혀끝 하나로 천하를 들었다 놓았다. 한 궤변가들이다. 장의 역시 공부를 다 배우고 나서 이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며 벼슬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가 초나라에 들어가 재상의 식객으로 머물고 있을 때였다. 초나라 재상은 연회석상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슬을 자랑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곧 잃어버렸다. 그 범인으로 억울하게도 장의가 지목되었다. 장의는 곧 초나라 재상 앞에 불려나가 구슬을 도둑질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는 모르는 일이라고 끝까지 주장해 겨우 풀려났으나, 몸은 이미 상처와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모욕을 당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장의는 아내에게 그 구슬 도난 사건의 전후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말로 사람을 설득하여 벼슬자리나 얻으려 하니 그렇지요. 이제 벼슬하겠다고 이나라 저나라 떠돌아다니는 짓 좀 제발 그만두세요."
그러나 장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말했다.
"자, 잘봐요. 혀는 아직 달려 있는 거지?"
"어이쿠! 그 말 잘하는 혀가 그럼 그 구슬처럼 어디로 도망이라도 친단 말입니까?"
아내는 입을 씰룩이며 비웃었다.
"그럼 됐어. 이 혀끝만 살아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거든."
그후 장의는 진나라로 가서 달변의 혓바닥으로 혜왕을 설득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진나라 재상이 되자마자 초나라 재상에게 다음과 같은 도전장을 보냈다. '전에 그대의 식객으로 있을 때 그대의 구슬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고문하였다. 그대는 부디 그대의 나라를 잘 지키도록 하라. 내가 반드시 그대의 나라를 쳐서 성을 훔치려 한다.' 그후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고 할 때였다. 당시 제나라는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두 나라를 이간시키기 위하여 장의는 초나라로 갔다.
"대왕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제나라와의 국교를 끊어주십시오. 그 대신에 진나라의 땅 상과 어 사방 6백 리를 드리고, 또 진나라 공주를 대왕의 측실로 봉사케 하겠습니다. 초나라도 역시 공주를 우리 진나라에 보내면, 두 나라는 형제의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는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와 친교를 하고, 북쪽의 강국인 제나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이상의 묘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나라의 회왕은 귀가 솔깃하였다. 그때 초나라의 신하 중 단 한 사람이 반대하였다. 그는 장의의 정적인 진진이었다.
"장의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과 어의 땅이 우리 손에 들어올 리가 없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초나라가 제나라와 국교를 끊으면, 제나라와 진나라의 연합이 성립됩니다. 결국 초나라는 궁지에 몰리고 맙니다."
그러나 회왕은 진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상과 어의 땅 6백 리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데 다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초나라 회왕은 제나라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진나라로 돌아가는 장의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의 장군을 사신으로 함께 보냈다. 그런데 장의는 진나라로 귀국하자마자 말고삐를 잘못 잡은척하며 마차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이를 핑계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사신으로부터 이와 같은 소식을 접한 초나라 회왕은 자신이 장의에게 불충분한 대접을 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곧 용사를 파견하여 제나라 왕에게 일부러 무례한 짓을 저지르게 하여 진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
제나라 왕은 분노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초나라에서 일방적으로 국교를 단절한 것이 분한데다 신하를 시켜 모욕까지 주자, 제나라 왕은 즉시 보복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는 화가난 김에 아예 진나라에 머리를 숙이고 자청하여 국교 수립을 제의하였다. 이렇게 하여 진나라와 제나라는 연합을 하게 되었다. 장의의 계락대로 된 것이었다. 그때서야 장의는 조정에 나갔다. 그리고 그는 초나라에서 함께 온 사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사방 6리의 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영토를 초나라에 드리겠습니다."
장의가 초나라 회왕과 약속한 '6백 리'에서 어느 결에 '백'이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나는 진나라가 우리 초나라에게 상과 어의 6백 리 땅을 주기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방 6리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초나라 사자가 항의하였다.
"아마 잘못 들으셨겠지요."
장의는 짐짓 딴청을 하였다. 결국 초나라 사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 회왕에게 장의가 거짓말한 사실을 보고하였다. 초나라 회왕은 노발대발하여 진나라를 치기 위해 당장 전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그때 진진이 급히 말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진나라를 치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진나라에 적당한 땅을 떼어주고 비위를 맞춘 뒤, 진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진나라에 준 땅 대신 제나라 땅을 흡수하여, 우리 초나라는 한 치의 땅도 잃지 않고 더욱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의에게 속은 것이 분한 초나라 회왕은 진진의 말을 끝내 듣지 않았다.
"굴흉을 대장군으로 삼아 진나라를 치도록 하라!"
그러나 진나라는 제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 군대와 맞섰다. 초나라 군대는 이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군사 8만을 잃었으며, 대장군 굴흉도 전사하였다. 결국 초나라는 진나라에 두읍을 떼어주고, 억울한 강화를 맺었다.
결과적으로 장의는 구슬 도둑 누명을 쓰고 매질당한 분풀이로 초나라의 두 성을 훔친 셈이었다.
원한 : 사사로이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마라. 남에게 원한을 사면 보복을 당할 때 그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른다. 반대로 작은 온정을 베풀면 반드시 큰 보은이 뒤따른다. 남을 해하는 일은 보복의 씨앗이고, 온정은 보은의 씨앗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