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친구가 적이 되면 더 무섭다 - 한비자
한비자가 진나라의 사신으로 오자 정작 겁을 먹은 것은 동문수학한 그의 친구였다. 진나라 승상 이사는 만약 한비자가 중용될 경우 자신의 자리조차 위태롭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었다. 한비자는 한나라 여러 공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말더듬이여서 말하기보다는 글짓기를 주로 익혔다. 그의 스승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였다. 진나라 왕(후에 '시황제'가 됨)은 한비자의 저서 "고분", "오두"등을 읽고 그의 학문에 반하였다. 진나라 왕이 승상 이사에게 물었다.
"한비자를 아시오?"
"네, 한비자는 저와 한 스승 밑에서 배웠습니다."
"그러하오? 아, 그 사람을 만나 사귀어 보았으면 한이 없겠소."
"한비자는 말더듬이라 같이 대화를 주고받기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나라 공자입니다."
이사는 한비자가 큰 인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 왕이 가까이하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왕은 이사에게 부탁하여 한비자의 저서를 구해 열심히 읽었다. 좋은 글귀를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대단한 인물이로다. 승상! 한비자를 불러올 수 있는 계책을 말해보시오."
진나라 왕의 말에 이사가 대답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한비자를 그리워하여 한나라를 친다고 소문을 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한나라에서 한비자를 사자로 보낼 것입니다."
"묘책이로군!"
진나라 왕은 이사의 말대로 하였다. 이때 진나라는 소문만 낸 것이 아니라 군사들을 한나라 국경까지 보내어 위협을 하였다. 진나라보다 약한 한나라는 당장에 한비자를 사자로 보냈다. 한나라에서도 한비자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국경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사자로 파견되면서 진나라 왕이 자신을 등용시켜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짐작대로 진나라 왕은 한비자를 중용할 계획을 세우고, 극진하게 대접하여 연일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정작 겁을 먹은 것은 승상 이사였다. 만약 한비자가 중용될 경우 자신의 자리조차 위태롭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것은 이사뿐만이 아니었다. 높은 벼슬 자리에 있는 요가 역시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초조하였다. 어느 날 요가는 이사를 찾아가 상의하였다.
"승상은 대왕이 한비자를 아끼면서 아직까지 중용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한비자가 한나라 사람이라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한비자가 처음 사자로 왔을 때, 그는 한나라가 침략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진나라를 약화시키는 꾀를 여러 개 내놓았습니다. 특히 그는 '진나라의 강대함에 비하여 제후들의 군현은 약소하다. 그러나 만약에 제후들이 힘을 합하여 불시에 치면 진나라도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약간의 재물을 헐어 제후들을 다독거리면, 곧 그들은 진나라의 지배하에 들어올 것이다'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랬지요. 그것은 나도 전에 대왕께 주청드린 바 있는 계략의 하나였소."
"한비자의 주장이 진나라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반대로 생각하면 결국 한나라를 살리기 위한 계책이 되지요. 역시 손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대왕께 한비자가 한나라를 위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주청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비자가 뒤에서 대왕을 비방하고 다닌다고 소문을 내도록 하십시오. 예를 들면 '대왕의 콧마루는 높고 눈꼬리는 길게 찢어져 언뜻 영웅의 기상처럼 보이나, 가슴이 독수리처럼 튀어나오고 목소리는 승냥이 같아 남에게 은덕을 베풀 관상이 못된다'고 한비자가 떠들고 다닌다고 말입니다."
요가의 말에 이사는 찬동하였다. 그후 요가와 이사는 사람들을 시켜 한비자가 진나라 왕을 비방한다는 소문이 궁궐 내에 파다하게 퍼지도록 하였다. 왕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갔다. 이때를 기다려 이사가 진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한비자는 한나라의 여러 공자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한비자의 말을 듣고 제후들을 규합하려 하시는데, 그러나 한비자는 결국 한나라를 위할 뿐이지 진나라를 위해 그런 계책을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정입니다. 대왕께서 그를 등용치 않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하였다가 그냥 한나라로 돌려보낸다면, 이것은 스스로 후환을 남겨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한비자를 죽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한비자가 과인을 비방하고 다닌다는 것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소. 그러나 우선은 그의 죄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조사해본 후에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오."
진나라 왕은 아까운 인물이라 생각하면서도, 신하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와 분위기에 휩쓸려 일단 한비자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 이사는 사람을 시켜 감옥에 있는 한비자에게 독약을 보냈다. 한비자는 그 독약을 마시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한편 그 무렵 진나라 왕은 한비자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급히 감옥으로 사람을 보냈다.
"한비자를 당장 석방하라!"
그러나 진나라 왕이 보낸 사람이 감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비자는 싸늘한 시체로 변한 뒤였다.
항변 : 큰 인물이 되면 시기하는 자가 많이 생긴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한 항변과 계략은 오히려 정당하다.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