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7장 아르고 호 선원
1.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Apollonius Rhodius : 기원전 295~215년경)는 헬레니즘기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시인이며 후에는 로도스에 가서 살았기 때문에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라 하였다. 젊을 때 칼리마코스와 파나이티우스에 사사하였고 장년이 되어서는 왕자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왕자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름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세 번째 높은 사서관 직위에, 아레토스테네스(당대의 으뜸가는 학자) 후임으로 올랐다.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긴 스승 칼리마코스가 감정적인 시문을 써서 그를 따오기 같다고 비꼬았는데, 따오기는 딴 사람이 먹다 남긴 썩은 고기를 먹는 날짐승을 말한다.또한 아폴로니오스가 대표적인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를 발표하자 칼리마코스는 크게 힐난하며 분량만 많은 엉터리 시문이라고 비난하였다. 두 사람의 이 격렬한 갈등은 칼리마코스의 승리로 끝난 것 같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폴로니오스는 로도스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이 서사시는 옛적에는 물론이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이전 단 하나의 서사시로 찬양받고 있으며 서구 중세의 문집에도 드물게 남아 있는 헬레니즘 작품이다. '아르고나우티카'는 네 권으로 엮은 긴 서사시로 황금양모를 찾아 탐험에 나선 해적 성향의 원정대 아르고 호 선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로폰티스해와 흑해를 넘어 콜키스 나라에 가서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모를 약탈하고 다누베, 포 및 로네 강과 지중해, 북아프리카를 거쳐 테살리아의 이올코스로 귀한한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다. 청중들도 토막토막의 이야기는 이야기꾼으로부터 자주 들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맺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사랑장면도 아폴로니오스 이전에 아이스큘로스, 소포클레스 및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시에 주요 소재로 빈번히 상연되었다. 이 중에서 대본으로는 에우리피데스 시만 현존한다. 아폴로니오스의 시문 및 오비디우스의 '헤로이데스'나 '변신 이야기' 에서는 일층 낭만적으로 각색되었다. 로마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연대담은 아폴로니오스의 메데이아에 큰 폭으로 의존한 소재이다. 아폴로니오스보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아르고나우티카'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다른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으며 특히 끝맺음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는 시문의 좋은 소재였다. 호메로스의 '오듀세이아'에도 이아손과 아르고 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가 낭독회에서 관중의 폭풍적 갈채를 받고 왕립도서관의 고위직에 제수된 것이 칼리마코스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고, 이는 결국 아폴로니오스로 하여금 로도스로 추방 혹은 자의망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은거지에서 작품의 퇴고를 거듭하며 생애를 보냈으나 이것저것 이야기의 군더더기만 보태져 더 좋아지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2. 아르고나오테스 아르고 호의 선원이라는 의미의 아르고나우테스(Argonauts)의 이야기는 트로이가 함락되기 대략 80년 전에 있었던 일로, 모험을 좋아하고 패기에 넘친 젊은이들의 해적 성향을 띤 원정대의 이야기이다. 테살리아 왕 아타마스는 왕비에게 싫증이 나자, 후처 이노를 얻었다. 이노는 테베의 이름난 왕 카드모스의 딸로 그녀를 제외한 자매 세 사람은 흠잡을 데 없는 삶을 보냈다. 그런데 이노가 후처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본부인 네펠레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기 때문에 계모 이노의 학대를 염려하였는데 과연 그 걱정이 맞아 떨어졌다. 이노는 네펠레에게서 태어난 왕자 프릭소스를 없애기로 마음먹고 농부에게 나누어 줄 씨앗을 살짝 볶아 놓았다. 이듬해 파종을 하니 싹이 나지 않고 수확도 없었다. 이에 왕이 사람을 보내 이 참사에 대한 신탁을 받아오게 하였는데 이노에게 매수된 사신은 왕자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허위신탁을 받아왔다. 기아의 위협에 마주친 군중은 왕자를 희생공양하라고 아우성쳤다. 마침내 왕자가 제단에 섰는데 이 때 갑자기 황금털을 가진 큰 양이 나타나 왕자 프릭소스의 여동생 헬라를 태우고 달아나 버렸다. 이 양은 어미 네펠레의 간절한 기원으로 헤르메스가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헬라는 양을 타고 유럽-아시아 간의 해협을 지나다가 그만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고, 이후 이 바다를 헬라의 해협, 즉 헤레스폰트라 부르게 되었다. 결국 왕자 프릭소스 혼자만 흑해를 넘어 콜키스 나라에 도착하였다.
콜키스 나라 사람들은 성깔이 매우 사나웠으나, 왕인 아이에테스는 프릭소스를 후대하고 성인이 되자 자기 딸 칼키오페와 결혼시켰다. 그를 태우고 온 양은 잡아 제우스에게 바치고 황금양모는 왕 아이에테스에게 주니 왕은 이것을 아레스 신전의 나무에 걸어두고 뱀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프릭소스에게는 이올코스의 왕인 아이손이라는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이복동생인 펠리아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펠리아스는 살모네우스의 딸 튜로가 낳은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이다. 튜로는 한밤중에 변장을 하고 나타난 포세이돈을 연인 에니페오스로 잘못 알고 관계하여 넬레우스와 펠리아스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불륜을 감추기 위해 튜로는 갓난 아이를 산에다 내다 버렸는데, 마침 지나가던 망아지에게 펠리아스가 발로 차이는 바람에 얼굴에 멍이 들어 회색반점으로 남게 되었다. '회색'이라는 뜻의 펠리아스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어쨌든 산에 버려진 이 쌍둥이는 얼마 후 말을 몰던 목동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였다. 장성한 펠리아스는 수많은 왕족을 죽인 후 스스로 왕권을 장악하고 아이손까지 없애고자 하였으나 모친의 만류로 감옥에 가두었다.
당시 아이손에게는 왕국의 정통을 이어받을 어린 왕자 이아손이 있었다. 왕비 알키메데는 어린 아들 이아손을 멀리 켄타우로스 나라의 케이론에게로 도피시켜 키우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늠름한 젊은이가 된 이아손은 용감하게 펠리아스를 찾아 떠났는데 마침 에우에노스(혹은 에니페오스)강의 범람으로 여행이 지체되었다. 이아손은 여기에서 한 노파가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다가 급류 때문에 한쪽 신을 잃게 되는데 노파는 바로 헤라 여신이었다. 참주자 펠리아스는 일찍이 친척의 손에 죽을 것이며 특히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은 사람을 각별히 주의하라는 신탁을 받은 바 있었다. 마침 한 나그네가 나타났는데 한쪽만 신을 신고, 다른 쪽은 맨발인 채였다. 그러나 그 밖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젊은이였다. 거침없이 시내로 들어선 이아손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인 펠리아스만은 한쪽만 신을 신고 있는 것을 보며 겁을 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나그네에게 고향이 어디이며, 왜 왔느냐고 물었다. 이아손은 집안의 영예를 되찾고 제우스 신이 부친에게 맡긴 이 나라의 통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당신의 조카이며, 무력이 아닌 정의의 법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펠리아스에게 재산과 가축은 모두 소유해도 상관없고 그저 통치권과 왕관만 내 놓으면 아귀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펠리아스는 꾀를 내어 고인이 된 프릭소스가 황금양모를 찾아와 나라의 상징으로 삼으라 하였으며 또한 신탁도 있고 하니 한참 젊은 그대가 이 일을 완수하면 왕국을 곧 넘기겠다는 조건을 내놓았다. 그 탐색길에 오른 사람은 아무도 살아온 예가 없음을 알고 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이아손은 곧 승낙하고 차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듣고 그리스의 명문 집안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니 장사 헤라클레스, 악장 오르페우스, 예언자 몹소스, 에키온, 텔라몬과 펠레우스, 휼라스, 나우플리오스, 폴룩스와 카스토르, 의사 아스클레피오스, 그 외 남장 처녀 아탈란테 등을 합쳐 50명이나 되었다. 헤라 여신은 이아손을 충동질하고 후원하였다. 이아손은 황금잔에 포도주를 따라 제우스 신의 이름으로 원정을 맹서하고, 바다에 헌주하고 죽음도 불사한 모험을 다짐하며 아르고 호로 대망의 모험길에 올랐다. 출항 후 처음으로 닻을 내린 곳은 렘노스 섬으로 여자만 사는 기이한 나라인데 사유인즉 아프로디테 숭배를 태만히 한 죄로 몸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하자 남자들이 그 곳 여자들을 기피하고 트라키아 노예여인들과 사랑에 빠지니 이에 격분한 여자들이 남자를 모조리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명 늙은 왕만은 우두머리로서 이 곳의 통치자인 공주 흄시퓰레의 도움으로 큰 궤에 들어가 바다에 띄워 보내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여성들은 남성이 아쉬웠던 터라 아르고 호 대원들을 환대하였으며 출범할 때는 식량, 포도주와 의복까지 공급해 주었다. 다시 출범한 아르고 호는 사모트라케에서 오르페우스 비의를 지나고 헬레스폰트를 지나 한 섬에 닿아 그곳 왕 큐지코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섬을 떠난 후 바람이 강해지고 방향이 바뀌어서 다시 그 나라의 돌리오네스 지역으로 돌아와 잠시 대피하였다. 바로 그 날 밤 큐지코스 왕은 괴선 침입의 급보를 받고 대피해 있던 아르고 호 대원을 공격하였다가 원정대원에게 전멸당하고 왕 또한 살해되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살육으로 은혜를 피로 갚은 셈이 되었다. 이아손 일행은 크게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느라고 12일을 보냈다. 당시 큐지코스의 젊은 왕비 클레테는 남편의 죽음을 너무나 비통해한 나머지 목을 매었다. 이에 요정들이 애통해하고 슬퍼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니 마침내 이것이 샘으로 솟구쳤다. 사람들은 이 샘을 클레테 샘이라고 불렀다.
한편 몹소스는 물총새의 징조를 보고 제우스의 모친 레아 신에게 공양할 것을 권하고 일행은 큐벨레 혹은 레아 신의 영산이 딘듀모스에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산의 유일한 샘에서 맑은 물이 뿜어나오는 징험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를 이아손 샘이라고 불렀다. 이후 순풍이 불자 출범을 하였는데, 얼마 후 일행 중에서 헤라클레스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사정은 이러하였다. 같은 일행 중에 휼라스라는 젊은이가 샘에 물을 뜨러갔다가 샘물이 흐르는 못에서 그에게 반한 샘의 요정에 목이 감겨 물 속으로 끌려가 버렸다. 마침 부러진 노를 새로 만들기 위하여 참나무를 고르러 숲으로 들어간 헤라클레스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젊은이의 이름을 부르며 숲속 깊이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출범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일행은 헤라클레스가 빠진 채 다음 섬으로 갔다. 이 섬에는 괴력을 갖고 악취를 남겨 놓는 하르피아이라는 날짐승과 한 노인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아폴론에게서 예언술을 전수받은 노인인데, 신들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한다고 소경으로 만들어 이 곳으로 유배당한 것이었다. 하르피아이는 바로 '제우스의 사냥개'라 불리며, 음식물마다 와락 덤벼들어 먹어 치우고는 악취만을 남겼으므로 이 곳에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노인을 발견한 일행은 가죽만 남은 가엾은 노인을 위하여 하르피아이를 퇴치하려 하였으나 이리스가 내려와 신의 사냥개를 죽이지 말라 하므로 하르피아이를 혼만 내주고 멀리 쫓아버렸다. 노인은 젊은 장사들과 같이 만찬을 들면서 원정대에게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피하는 지혜를 알려주었다. 즉 슘플레그라데스(충돌하는 섬)는 물에 떠 있어 서로 부딪치게 되어 있으니 비둘기가 바위사이로 날아가는 시각을 측정해서 그 시간 안에 재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과 헤어져 떠 있는 바위에 다다랐을 때 일행은 비둘기를 바위 사이로 날아가게 하였다. 섬이 무서운 힘으로 움직여서 부딪쳤으나 비둘기는 꼬리 깃털만 걸렸을 뿐 무사히 빠져 나갔다. 이 요령으로 힘껏 노를 저어 빠져 나오니 배의 뒷장식만 떨어져 나갔을 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 후 이 섬은 아테나 여신의 힘으로 뿌리를 내려 고정되고 다시는 뱃사람을 괴롭히지 않았다.
항해는 계속되었다. 약자를 못살게 구는 아뮤코스라는 왕을 죽이고, 마리안듀니 섬에 가니 그간 아뮤코스에게 괴롭힘을 당한 왕 류코스가 크게 환대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 대원이 수퇘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또한 가장 우수한 키잡이 티퓨스가 병사하였다. 다시 길을 떠난 일행은 아레스 섬에 닿아 전쟁의 신인 아레스의 새를 쫓고 상륙하였다. 이 때 막 지나간 태풍에 난파당한 4명을 구해 식량과 의복을 주고 배에 동승시켰다. 이 일행은 바로 프릭소스의 아들이자 콜키스 왕의 외손자들이었다. 근처에는 여전사의 나라 아마존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레스신을 닮아 매우 호전적이라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었느나 풍향이 좋아 충돌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또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찍히며 매여 있는 카우카소스 산정이 멀리 바라다 보였으나 별 도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마침내 황금양모의 나라 콜키스에 도착하였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용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올림포스의 헤라 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이들 일행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사랑의 여신은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헤라의 청에 놀랐지만 응낙하여 에로스를 시켜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가 사랑에 빠지게 하였다. 마술사라는 뜻을 가진 메데이아는 기막힌 요술을 부릴 줄 알아 선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왕궁으로 들어가 환대를 받았다. 호기심으로 문에서 엿보던 메데이아가 대장 이아손을 쳐다보는 순간 에로스는 그녀의 가슴 깊이 사랑의 금화살을 쏘았고 이에 메데이아는 달콤한 사랑의 고통으로 안절부절 못하였다. 만찬이 끝날 때, 왕 아이에테스는 그들의 일행이 누구이며 이 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아손은 자기들은 신의 아들 또는 손자로 그리스에서 출범하였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황금양모를 찾아가려고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말을 듣고 분노에 찬 왕은 이들을 국외로 내쫓아 버릴까 하다가 혼내주기로 작정하고 젊은이들에게, 적의는 없으니 용감성이 입증되면 황금양모를 양도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불을 뿜는 2마리의 놋쇠발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카드모스 왕이 퇴치한 용의 이빨을 뿌려 주는 일을 하도록 제의하였다. 이 이빨은 뿌리면 거기에서 무사들이 솟아나와 뿌린 자에게 무기를 들고 돌진하는 신기한 이빨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이아손은 그 조건을 승낙하였다.
온밤을 늠름하고 우아한 이아손에게 마음을 빼앗겨 조이던 메데이아는 아비의 의도와 궁지에 물린 이아손을 도울 방도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배로 돌아간 일행이 오랫동안 회의를 계속하는데, 이 때 전에 폭풍우에서 구해준 왕의 외손자가 나타나 메데이아의 마술을 귀띔해 주고 메데이아가 마음만 먹으면 이아손을 승리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결국 다른 도리가 없었던 차라 그 방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메데이아는 사련으로 부친을 배반하고 이방인을 도와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휩싸여 죽음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에 없이 생의 환희에 매혹을 느낀 메데이아는 자신의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기로 하였다. 마침내 메데이아는 조카를 통하여 이아손을 숲 속에서 만나 서로 사랑에 빠져 아무말도 나누지 못했다. 한참 있다가 메데이아는 몸에 바르면 하룻동안 절대 패하지 않는 신통력을 가진 고약을 이아손에게 건네주고 이아손은 그녀와 결혼을 굳게 약속하였다. 날이 밝자 숲을 낀 산허리는 왕과 구경차 모여든 군중들로 가득하였다. 놋쇠발의 황소가 콧구멍으로 불을 뿜으며 달려오자 일행은 경악하였다. 그러나 이아손은 두려움 없이 두 마리 황소 앞을 가로막고 목을 어루만지다 멍에를 매어 쟁기를 끌도록 하니 모여든 군중은 하나같이 그 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다음으로 용의 이빨을 밭고랑에 뿌리고 흙을 덮자 거기에서 무기를 든 무사들이 솟아나와 이아손에게 덤벼들었다. 이 때 메데이아가 일러준 대로 큰 돌을 무리 속에 던지자 무사들은 자기들끼리 창을 휘두르며 싸우니 밭고랑을 피바다로 만들며 모두 죽어 버렸다. 마침내 이아손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왕 아이에테스는 약속한 황금양모를 건네주지 않았다. 이 양모는 아레스 신전이 있는 숲에 걸어 놓고, 거대한 뱀이 지키고 있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함께 숲으로 가서 마법의 약으로 공룡같은 이 뱀을 잠재우고 황금양모를 걷어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배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전력으로 노를 저어 바다로 빠져 나갔다. 뒤늦게 이를 안 왕이 왕자 압슈르토스(메데이아의 이복동생)에게 추격을 명하니 일행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되나 다시 메데이아의 계략으로 양모를 돌려준다고 속인 후 왕자를 죽여버렸다. 왕자가 죽자 추격군은 흩어지고 일행은 무사히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괴물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험악한 스큘라족과 무서운 카퓨브디스 소용돌이도 무사히 통과한 일행은 이오니아해를 지나 드레파네(코르푸) 섬에 닿았다. 이 섬에서 왕 알키누스의 환대를 받고 있는데, 콜키스 군이 밀려와서 메데이아를 내놓지 않으면 섬을 파멸시키겠다고 위협하였다. 이 섬의 왕은 평화를 바랐고 왕비 아레테 또한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배우자가 아니면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왕비는 몰래 이아손을 만나 빨리 결혼을 하도록 일러주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잔치는 이올코스에서 하기로 하였다. 콜키스인은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처임을 인정하고 이해를 하였으나 이제는 자기네도 이 나라에 남겠다고 말하였다. 메데이아 없이 귀국하면 처형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원만히 해결된 후 알키누스 왕과 작별을 고하고 방향을 크레타로 잡아 항해를 하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닥쳐 일행은 리비아 해변의 거대한 모래구릉 슈르테스까지 떠밀려 오게 되었다. 대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무거운 배를 어깨에 메고 트리토니스 호로 가서 배를 호수에 띄우고 바다로 향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모연하여 수로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던 차에 마침 호수의 신 트리톤의 은총으로 수로를 찾아 바다로 나오는 데 성공하였다. 일행은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크레타에 상륙할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이 곳에 옛 청동족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탈로스가 살고 있으며 이 괴물은 한 쪽 발목 이외에는 완전히 청동으로 되어 있다고 일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괴물이 나타나 배를 부수려 하니 메데이아는 하데스의 사냥개를 불러 청동인은 파멸시켜 주기를 기원하였다. 이 기원은 영험을 발휘하여 청동인은 큰 바위를 아르고 호로 던질 찰나 괴물은 발목에서 피를 쏟으면서 가라앉아 죽고 말았다. 드디어 그리스로 돌아온 젊은이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아손은 항금양모를 펠리아스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동안 경악할 일이 일어나 있었으니, 펠리아스가 이아손의 부친을 자살하게 만들고 모친 또한 그 비통함으로 인해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이아손은 이 사악한 펠리아스의 행위에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메데이아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메데이아가 펠리아스의 딸들을 불러 아버지의 젊음을 되찾게 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늙은 양을 토막내어 약초를 잠은 끓는 물에 놓고 주문을 외워 그 물 속에서 어린 양이 튀어나와 껑충껑충 뛰어가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마침내 펠리아스에게 독한 수면제를 주어 재우고, 딸들을 불러 아버지를 토막내라고 하니 오랜 주저 끝에 딸들은 아버지를 토막내어 솥에 넣고 메데이아의 기적적인 주문을 기다렸다. 그 사이 메데이아는 궁을 빠져 나와 그 도시를 떠나버렸다. 결국 이아손은 펠리아스의 딸들을 통해 원수를 갚은 것이다. 일설에는 이아손의 부친을 소생시켜 젊음을 다시 찾게 하였다고도 한다. 어떻든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위하여 악마 같은 일과 선량한 일을 성심껏 하였으나 끝내 이아손은 그녀를 배반해 버렸다. 즉 펠리아스가 죽은 후 메데이아와 함께 코린트로 가서 두 아들까지 낳고 잘 살던 이아손은 신의를 저버리고 코린트 공주와 결혼하기로 한 것이다.
코린트 왕은 메데이아가 불원간 자기의 딸을 해칠 것으로 짐작, 메데이아와 그 두 아들을 곧 국외로 추방시켜려 하였다. 이아손이 주는 황금도 마다하고 비통한 심정에 죽음까지 생각한 메데이아는 마침내 신부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옷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꺼내 죽음의 독을 바른 뒤 상자에 넣어 아들을 시켜 신부에게 보냈다. 신부는 희색만면하여 이 옷을 받아들고 걸쳐 보았는데, 과연 바로 전신에 극도의 열기가 뻗치면서 쓰러지더니 시신까지 녹아 없어져 버렸다. 메데이아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귀여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과연 새 신부의 죽음을 안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먼저 두 아이들을 죽였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용이 끄는 2륜차를 타고 지붕을 넘어 날아서 그 곳을 떠나 버렸다. 이아손의 생애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기의 과오를 깨닫고 자책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새상을 헤매다 지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르고 호의 그늘 아래서 쉬고 있을 때 그를 영웅적인 삶으로 인도했던 바로 그 배의 들보가 떨어져 이에 맞아 죽었다고도 한다.
메데이아 메데이아(Madea)는 콜키스와 왕 아이에테스(헬리오스의 아들)와 이듀이아(오케아노스의 딸로 아이에테스의 둘째부인) 사이의 딸이다. 메데이아나 이듀이아라는 말은 모두 '간교한' 또는 '빈틈없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메데이아는 숙모 키르케(오듀세이아 서사시에서 오듀세우스와 1년간 같이 산 요정)와 마찬가지로 마술에 능하고 헤카테를 숭배하였다. 아르고 호 선원의 대장 이아손과 사랑에 빠져 황금양모의 탈취에 협조하고 같이 콜키스를 탈출하였다. 아비 아이에테스는 아르고 호 선원을 토벌하기 위해 메데이아의 이복동생 압슈르토스를 지휘자로 추격함선을 보냈으나 메데이아가 황금모피를 돌려주겠다고 꾀어 동생을 죽이고 추격을 모면하였다. 그 후 아르고 호와 그 일행은 그녀의 비상한 꾀에 도움을 받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그리스로 돌아왔다. 아르고 호 대원들과 같이 이올코스에 귀착한 다음 메데이아는 빈사상태에 빠진 이아손의 아비 아이손을 마술로 살려내고, 솥에 약초를 다려 아이손에게 주입하여 혹은 그 솥에 넣어 젊음을 되찾아 주었다. 메데이아는 왕위를 찬탈한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에게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제의하였는데, 우선 늙은 양으로 시범을 보인 후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아비를 솥에 넣기 위해 마취시켜 토막을 내라고 하였다. 주저하던 딸들이 마침내 그녀의 말에 속아 아비를 죽였다. 이 범죄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헤라여신의 버림을 받아 이올코스를 떠나 코린트로 향하였다. 그런데 메데이아와의 사이에 이미 많은 아들까지 둔 이아손은 코린트의 왕 크레온에게 잘 보여 공주 글라우케와 혼인을 하게 되어 메데이아에게 이혼을 요구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메데이아는 독을 바른 값진 의상을 신부에게 보냈고, 이것을 입은 신부는 그대로 타 죽고 말았다.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왕 크레온이 급히 공주를 구하려 와서 딸의 옷을 잡았지만, 오히려 같이 불에 휘말려 죽게 되고, 메데이아는 조부 헬리오스의 날개달린 용이 끄는 이륜마차로 도망쳐 코린트를 빠져 나왔다.
메데이아는 아테네로 와서 후사가 없는 왕 아이게우스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장담하여 혼인을 하고 그 왕비가 되어 메도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 아테네에 나타난 테세우스를 보고 단번에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눈치챘다. 메데이아는 왕을 설득하여 테세우스를 마라톤 평야를 황폐케 하는 사나운 미노스의 수소와 겨루도록 하였다. 테세우스가 무난히 이 황소를 퇴치하자 이번에는 왕위를 찬탈할 위험인물이라고 왕에게 귀띔하여 연회석상에서 독배를 주어 죽이려 하였다. 이 때 테세우스의 대검을 본 아이게우스가 자기 아들임을 알아차리고 술잔을 쳐서 떨어뜨렸다. 자신의 음모가 들통나자 메데이아는 도망 혹은 추방되어 아들 메도스와 함께 콜키스로 귀향하기로 하고 먼저 아들을 콜키스로 보냈다. 그런데 메데이아의 아비 아이에테스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페르세이스(아이에테스의 이복형제)가 메도스를 감옥에 감금하고, 메도스가 자신을 코린트 크레온의 아들 히포테스라고 이름을 댔는데도 없애려 하였다. 그러자 이미 선왕의 시살로 민심이 뒤숭숭했던 콜키스는 한발이 닥쳐 농작물의 불황이 겹쳤다. 아르테미스의 여사제로 변장하고 콜키스로 온 메데이아는 페르세이스에게 희생공양 의례를 자신에게 맡기면 한발을 끝내게 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다. 메데이아는 소년을 보기 전까지는 희생제물이 크레온의 아들이라 한 페르세이스의 말만 믿고 소년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크레온의 가족에 대한 원한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엄숙한 희생제의를 계획하고 의식을 진행하려던 차에 메데이아는 희생제물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 메도스라는 것을 알게되자 곧 아들에게 칼을 넘겨주었다. 메도스는 뒤돌아서 지체없이 페르세이스를 찔러 죽여 조부 아이에테스의 복수를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메도스는 주변나라를 정복하여 콜키스를 대국으로 만들고 어미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메디아라 하였다. 메데이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에우페모스 에우페모스(Euphemus)는 티튜오스의 딸 에우로파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르고 호 대원으로 모험에 참가하였다. 뛰어난 준족으로 발을 적시지 않고도 물 위를 걸었다고 한다. 고향은 펠로폰네소스 최남단 타이나룸 곶으로, 거기에는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에우페모스는 아르고 호 탐험에서 민첩한 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아르고 호가 충돌하는 바위섬에 접근했을 때는 그 곳을 빠져 나갈 때를 알기 위해 비둘기를 날렸고 자신도 가보고 돌아와 동료들에게 더 빨리 노를 젓도록 재촉하였다. 아마 배를 앞질러 뛰어갔거나 또는 바위와 배 사이를 왕래하며 배를 끌었을 가능성도 있다. 마치 네레이데스와 테티스가 남편 펠레우스를 태운 아르고 호가 떠 있는 바위에 도달했을 때 그랬듯이! 에우페모스는 북아프리카 큐레네 항구도시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선조신으로 존숭되는데 내려오는 전승은 다음과 같다 리비아 해안에서 큰 폭풍을 만난 아르고 호는 내륙 멀리까지 밀려 올라갔고 대원들은 12일 동안이나 배를 메고 끌며 겨우 트리토니스 호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는 수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데 그때 해신 트리톤이 큐레네의 젊은 왕 에우류퓰로스로 변신해서 나타나 바다로 나가는 수로를 알려주고 환영의 뜻으로 흙덩이를 주었다. 이것을 에우페모스가 받아서 보관하였는데 꿈에 흙덩이가 여아로 변하여 자기 젖을 빨게 하였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데리고 동침하였다. 자신의 행위에 가책을 느끼는 에우페모스에게 그녀는 자신이 해신 트리톤의 딸이며 아나페 섬(크레타 바다 풍랑 속에서 갑자기 솟아난 초승달 섬을 발견한 대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근방의 바다에 집을 지어 주면 후에 바다에서 다시 나와 자신을 돌보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에우페모스의 후손을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에우페모스가 이아손에게 이 꿈이야기를 해주니 이아손은 그 흙덩이를 바다에 던지면 섬이 생겨날 것이라고 해몽하였다. 몇 해가 지나자 이아손이 해몽한 바와 같이 그 흙덩이가 가라앉은 곳에서 칼리스테 섬이 생겨났다. 핀다로스에 의하면 아르고 호에서 바다에 던진 흙덩이는 칼리스테 해변으로 쓸려갔으며, 만일 에우페모스가 타이나룸의 하데스 나라 입구인 고향바다로 가져갔다면 그리스인은 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하였을 것이라고 윤식하였다. 이 전설의 원천에 관한 언급은 없느나 이야기를 전한 큐레네(칼리스테)인들의 구미에 맞추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섬은 커졌으며 에우페모스 자손들은 아르고 호가 기항하였던 렘노스 섬(에우페모스 처의 출생지)에서 번성하였다. 그 후 튜레니아인들에게 쫓겨나자 그들은 스파르타로 갔다. 에우페모스 사후 여러 대가 지나 후손 테라스는 칼리스테 섬으로 가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테라(현 산토리니)라고 이름붙였다. 더 후대에 와서 테라 섬의 그리스인은 에우페모스 후손인 바토스를 따라 리비아로 가서 새로운 도시 큐레네를 건설하였는데 이 곳은 바로 에우페모스가 흙덩이를 받은 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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