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11.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는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후기 로마인이 이탈리아의 여신 비너스와 동일신으로 융화하여 숭배하였다. 아프로디테의 출생을 둘러싸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가 우라노스의 딸이라는 설로, 크로노스에게 참패하여 거세된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던져지자 거품에 싸인 우라노스의 씨들에서 탄생하였다 한다. 또 하나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설이다. 아프로디테가 바다에서 나오자 곧 바람의 신 제퓨로스가 큐테라를 거쳐 동쪽 키포로스 섬 해안으로 데려갔고, 이 곳에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환대하여 옷을 입히고 치장시켜 영생하는 신족의 거처로 인도하였다. 루키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를 처음 데려온 것은 네레우스였다고 한다. 후에 플라톤은 아트로디테를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여신으로 규정하였는데, 즉 우라노스의 딸인 아프로디테는 천상의 사랑의 여신, 디오네의 딸 아프로디테 판데미아는 일반 서민의 여신으로 구분하였다. 신화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는 철학적 견해다.
아프로디테에 관한 일화는 상당히 많은데, 서로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고 여신의 성격상 개별적으로 색다른 역할들이 추가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렘노스 섬의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하였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정을 통하였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태양신 헬리오스가 어느 날 아침 두 연인의 뜨거운 관계를 목격하고 이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 바쳤다고 한다. 이에 헤파이스토스는 마법의 망을 쳐 둔 후 출타할 일이 있다며 집을 떠났다. 아프로디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레스를 불러들여 동침하는데 이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부정을 저지른 두 신을 망으로 씌워 놓고 올림포스의 신들을 불러들이니 모두 이 흥미진진한 모습에 야유를 보내고 재미있어 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서야 망을 걷었고 아프로디테는 창피하여 키프로스로 도망갔다.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의 사이에 에로스, 안테로스, 데이모스(공포), 포보스(두려움) 및 하르모니아를 낳았다.
아프로디테의 연애행각은 아레스에 한하지 않았다. 디오뉴소스와 관계하여 프리아푸스를 낳았으며, 헤르메스의 사랑고백을 듣고 하룻밤을 지낸 후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 또한 색다른 일화도 있다. 파포스 왕 키뉴라에게는 뮤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자신의 아비를 사랑한 나머지 아비가 만취한 틈을 타 동침하고 대단히 귀여운 아도니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아비가 딸을 죽이려 하자 아라비아로 달아나 뮤르나무가 되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페르세포네에게 돌보게 하였는데 페르세포네가 아이를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호소를 하니, 1년을 3계절로 나누어 한 계절은 페르세포네, 또 한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내고 나머지 계절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내도록 해 주었다. 아도니스는 이 결정에 따라 페르세포네와 한 계절을 지내고는 나머지 두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냈다. 그런데 사냥을 좋아했던 아도니스는 결국 멧돼지에 받혀 죽고 말았고,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아네모네 꽃으로 화신시켰다. 일설에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를 너무 사랑하는 데 질투를 느낀 아레스가 죽였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페르세포네가 상처입은 아도니스를 다시 살려내어 반년은 자기와, 나머지 반년은 아프로디테와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이밖에 트로아스(수도는 트로이)의 이다 산에서 안키세스와 사랑을 나누고 두 아들 아이네아스와 류르노스를 두었다.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아프로디테는 분노를 폭발시켜 저주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 중 자신의 연인 아레스와 사랑에 빠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벌주기 위해 에오스의 연인 오리온에게 격정을 갖도록 사랑의 열기를 불어넣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렘노스 섬 여인들이 사랑의 신인 자신을 숭배하지 않은 데 분노하여 이들에게서 고약한 악취가 나게 함으로써 남편들이 이 여성들을 버리고 트라키아의 노예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맹랑한 렘노스 여인들은 섬에 있는 남성을 모조리 죽이고 여인천하를 만들었고 후에 아르고 호 대원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아들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아름답고 친절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프로디테에게는 잘 어울릴 성싶지 않는 다른 이름들도 있다. 예컨대 그녀를 '삶 속의 죽음'의 여신이라고도 하며, 아테네에서는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의 가장 맏언니 또는 복수의 여신 에리뉴에스의 자매라고도 한다. 다른 곳에서는 검은 여신이라는 뜻의 멜라이니스 혹은 암흑 속의 여신이라는 뜻의 스크티아라고도 불렀는데, 파우사니아스의 풀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랑의 교제가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루타르크는 심지어 무덤의 여신이라는 뜻의 에피튬브리아라고 불렀는데 사랑의 종말이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프로디테 여신의 친절도 여신의 분노나 다를 바 없이 위험하였다. 불화의 여신 아레스는 황금사과를 내놓고 헤라, 아테나 및 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겠다고 충동질하여 갈등의 씨를 뿌렸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세 여신을 트로아스의 이다 산에 모이게 한 후 양치기로 있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판가름을 내게 하였다. 세 여신은 각기 어마어마한 선물을 약속하며 파리스의 환심을 사고자 했는데, 천하의 아름다운 처녀 헬레나를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넘겨받았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될 줄이야! 전쟁중 아프로디테는 트로이를 지원하고 특히 파리스를 도와주었다. 메넬라오스와 단둘이 붙어 싸우다 패하게 될 찰나 위기에서 파리스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아프로디테이며 그 결과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마찬가지로 트로이 쪽의 아이네아스도 돕는데, 디오메네스에게 죽음을 당하는 순간 아이네아스를 구하고 자기 스스로 상처를 입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호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시의 함락과 파리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트로이 민족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데는 성공하여 아이네아스와 그 부친 및 아들이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여 신천지에 가서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은 모두 아프로디테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로마인은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보호신으로서 각별히 모시게 되었다.
원초적으로 아프로디테는 생식과 풍요의 여신인데 시문에서 성의 본능과 사랑의 위력으로 화신시켜 표현하였다. 결혼 예식도 주관하였는데 이때 키프로스의 아프로디테는 수염을 가진 남성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헤라 여신의 영역이다. 코린트에서는 매음의 보호 여신으로도 숭배하였고, 키프로스의 도시 파포스에 있는 여신의 신전은 찬란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예배날에는 수천 군중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또한 우라노스 혹은 아레스와 합동으로 숭배하는 곳도 있고 항해 또는 전쟁의 여신으로 모시는 스파르타, 아르고 및 코린트의 신전 경내에는 무장한 여신상이 서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자신의 가문 율리우스의 선조신으로 비너스 여신을 모시기 위하여 장대한 신전을 봉헌하였다. 비너스는 원래 전원 혹은 뜰의 여신인데 아프로디테도 같은 성질의 여신으로 모신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아주 드물게 자신의 마법 허리띠를 딴 여신에게 빌려주는데 이 허리띠를 차고 있으면 상대가 마력에 걸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좋아하는 새로는 비둘기, 백조, 제비 등이 있고 여신이 탄 이륜차는 비둘기 무리가 끌었다. 꽃 중에서는 장미과 도금양(MYrtaceae)꽃을 좋아했고 여신에게는 비둘기를 공양하고 향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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