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본디 정이 없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혜자가 물었다. "사람이 정이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라 하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모양을 주고 하늘이 형체를 주었는데, 어찌 사람이라 하지 않겠나?" 혜자가 물었다. "이미 사람이라 부르는 이상 어찌 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내가 말하려는 정이 아닐세.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호오로써 안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항상 자연에 맡겨둘 뿐, 삶에 더 보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네." 혜자가 물었다. "삶에 보탬이 없다면 어찌 그 몸이 있을 수 있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도가 모양을 주고 하늘은 형체를 주었으니, 좋고 싫음으로써 안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지 말게. 자네는 지금 마음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정신을 괴롭히고 있네. 나무에 기대어 울고, 오동나무 책상에 의지하여 명상에 잠기네, 모처럼 하늘이 점지한 형체를 가지고 견백의 궤변*만 지껄이고 있네."
* 견백의 궤변: 견백 동이. 중국 전국 시대의 문인 공손용이 내건 궤변.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면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줄 알 수 있으나 색깔은 알 수 없으므로, 단단한 돌과 흰 돌은 같은 물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견석 백마 역시 같은 의미이다.
"성인은 정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람이 정을 갖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지." "정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람이라 하겠는가?" "하늘이 사람의 형체를 부여했으니 사람이라 하지 않고 뭐라 하겠는가?" "사람이면서 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일세. 좋고 싫음에 사로잡혀 몸을 해치는 일없이 일체를 자연에 내맡겨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네." "그러나 인위를 부정하면 자기의 몸도 보존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이미 주어진 존재네. 따라서 좋아하고 싫어함으로써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여 의논으로 날을 보내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네. 하늘이 모처럼 자네를 낳아주었는데, 자네는 아무 쓸모 없는 의논에 힘을 쏟으며 자신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