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짓을 잘하는 자는 무력쓰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워 하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맞서지 않는다. 사람을 잘 쓰는 자는 그 아래에서 행한다. 이것을 일컬어 싸우지 않는 덕이라 한다. 이것을 일컬어 사람을 쓰는 힘이라 한다. 이것을 일컬어 하늘에 필적한다고 한다. 옛부터 지극함이다.
해석
제갈공명은 칼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한 칼에 쓰러질 약졸이다. 그러나 조조의 대군도 그의 머리에 자주 패했다. 장수는 칼을 믿고 싸우는 자가 아니다. 칼을 믿고 싸우는 자는 병사들이 주로 할 일이다. 장수는 머리로 싸운다. 그리고 포카나 고스톱을 처본적이 있는가. 그때 조금 잃었다고 열받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열받고 이성을 잃을 수록 돈을 많이 잃는다. 고수는 자신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과 주먹질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어쨌든 자신이 한대를 맞아도 손해이다. 외교술과 협상으로 적을 승복시킨다. 무력은 맨 마지막에 억지로 쓸 일이다. 사람이 일을 할때는 그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야 일을 잘한다. 그래서 사람을 쓸려거든 그 사람들에게 그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불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자신이 일하는 사람들의 아래에 처하는 것이다. 이런걸 보면 노자는 잔대가도 잘 굴리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68.
탁월한 전사는 무용을 떨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이는 노여움을 보이지 않으며, 가장 잘 이기는 이는 적과 함부로 다투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이는 상대방에게 내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남의 힘을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하늘의 지극한 높은 이법과 일치하는 일이라고 한다.
주
사: 무사, 전사 무: 무용을 발휘하다, 용맹을 과시하다. 무란 남보다 먼저 나아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의미함. 불여: 정면으로 맞상대하여 싸우지 않는다는 뜻임. 배천지극: 하늘의 지극히 높은 이법과 일치하는 것. 배천고지극의 고자는 후세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하늘의 이법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이상일 것이다. 이것은 도가와 유가의 공통된 이념이요 이상이기도 하다. 역경에는 '역도의 광대함은 천지와 일치하고, 변통은 춘하추동의 교체와 일치하며, 음양의 변화는 해와 달의 교체와 일치하고, 쉽고 간편한 선성은 인간의 지덕과 일치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송대 성리학의 개척자의 한 사람인 주림 계의 태극도설에는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합일하고, 귀신과 그 좋은 일 궂은 일을 합일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천도와 인도를 동일한 성격으로 간주하며 그것의 합치를 이상으로 하는 것은 동양 철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해
싸움을 잘하는 용사는 자신의 용맹을 함부로 과시하지 않는다. 그는 정면에서 적과 맞상대하며 싸우려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가 진정으로 싸움 자체를 즐길 생각도 없을 뿐더러 전술상으로도 현명한 방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몸을 낮추어 겸양한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결코 남의 힘을 이용해 보겠다는 약삭빠른 처세술에서 나온 태도는 아닌 것이다. 그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은 남의 재능을 아끼고 그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주의 문왕은 위수에서 낚시로 소일하던 태공망 여상을 예를 갖추어 모셔 와 주나라를 흥왕케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 바 있다. 또한 촉한의 소열제는 비육 지탄을 삼키고 있을 때 젊은 서생인 제갈양의 초려를 세 번씩이나 방문한 바 있었다. 이에 크게 감격한 공명은 일개 객장으로 늙어 가던 유비를 그의 천하삼분책으로 제왕의 자리에까지 인도한 바 있다. 이것은 그릇이 큰 인물이 인재를 쓰는 참된 의미의 용인술인 것이다. 원래 중국인들의 기략에는 적의 성채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을 하책으로 보고 그 마음을 공략하여 감복케 하는 것을 상책이라고 한다. 남과 다투지 않고 너그러움과 겸손과 자애로써 처신하는 것은 하늘의 지극히 높은 이법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