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예전에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완장이나 배지는 어깨에 힘 들어가게 만든다.
예쁘고 좋다.
그건 그렇고
편의점에 들러 몇 가지를 사러 갔는데 허리에도 안 오는 작은 남자 녀석이 만 원을 나한테 준다. 주머니에서 떨어졌다고 하니 헐~ 했다. 겁먹은 표정이길래 볼을 만지며 “감사합니다.”라고 해줬더니 그때야 웃는다. 덩치가 크고 키가 크면 애들이고 어른이고 먼저 경계한다.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본능이다. 난 연약하거늘….
어쨌든 기분이 좋아 감자 칩 하나 쥐여 주고 계산대에 왔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편의점 아주머니가 말싸움 중이다. 들어보니 아이들이 담배를 요구한다. 그러고 보니 집 앞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다. 중학생도 안 돼 보인다. 확 쓸어버리려다 후회막심했던 경험이 풍부해 참았다. 되려 아주머니가 호통을 치는데 속이 뻥~ 뚫린다. 역시 사이다.
그건 그렇고
근래 학교 선생님들이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다는 말을 듣는다. 아이들이 귀족 짓거리를 하라고 부모가 부추긴다. 각종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으로 교사를 억누르고 있다. 교사는 운동하던 사람이 아니다. 교대생은 오로지 공부만 하는 사람들만 모인다. 이런 내공으로 저런 학부모를 버티기는 힘들다. 사회학은 가장 먼저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가르친다. 사회계층 안에 어느 단계에 내가 서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일러준다. 대통령 밑에 장관들이 있는 건 각 장관의 위치와 역할이 분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게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혼자 산다면 쓸데없는 일이지만 같이 산다면 필요하기도 하다. 우린 뭔 모임이 결성되면 총무부터 뽑잖는가. 그런데 이 지위와 역할이 뒤바뀌는 요즘이다. 자식이 그리 귀하면 학교를 보내지 말고 끼고 살면 되지 않나 싶다.
그건 그렇고
주차하고 내리는데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갈비탕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게 초여름이었나? 갈비탕 하나 포장해서 갖다 드린 일이 있다. 그런데 그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다니 참 고마울 따름이다. 상대는 잊었는데 우린 가끔 특이하게도 그날 그 시각을 기억하고 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전하고 싶어 마음에 담고 산다. 반면에 상대보다 먼저 잊는 일도 있다.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고마운 줄 모르고 사는 인간이 많다는 점이다. 혹 주변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방금 카톡을 두통 보냈는데 그분들께는 고맙다는 말을 잃고 산듯하다.
그건 그렇고
아파트 방송이 수정됐다. 잘못된 어법은 아이들이 듣고 배운다. 세 번 찾아가 따졌다. 수정하라고 요청한 지 1년이 지났다. 관리소장이 교체됐나? 잘된 일이다.
이런 오지랖을 떨기 싫다면 국문과 지원을 심사숙고하라.
그건 그렇고
자의든 타의든 짓눌리고 눈치 보고 민생고에 시달리다가 선술집 들어가 취기가 돌면 흔히들 뱉는 말 중 삶에 찌들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찌들어 눌린 눅눅한 솜을 새로 산 솜처럼 바꿔주는 솜틀집처럼, 마음을 솎아내고 털어내고 뽀송뽀송하게 해줄 ‘마음틀집’도 없고, 홀로 버티기엔 힘든 어깨들을 본다. 몸이 쳐지도록 땀 빼고 일해 손에 쥔 몇만 원을 소주병에 털고 나서 뽀드득거리며 눈 덮인 골목을 걷다가 멈춰서 하늘 한 번 본다. 얼굴로 떨어지는 함박눈을 향해 후욱~ 한숨 뱉으면 입김에 별들은 지워지고…. 그렇게 가로등 지나 집 앞까지 오면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갈 곳도 없으면서 내면에선 인생을 뒤틀만한 그 지점으로 가고 싶다. 서 있는 곳 어딘지도 모르겠다 한다. 취기에 비틀거리며 현관문 앞에서 마누라 얼굴 새끼들 얼굴 떠오르면 “술값으로 돼지고기나 사 올 걸.” 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지는 하루살이 쳇바퀴도 하수구에서 도는 것과 꽃밭에서 도는 것은 다르다. 쳇바퀴를 부수고 롤러코스터 만들든가, 오늘 태어났다고 잘근잘근 씹어 대든가, 해가 지면 죽는다고 믿든가…. 답답하게도 살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하루하루 발버둥이다.
그건 그렇고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 삶이 지겹고 집이 구치소 같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불도 켜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피곤하고 쳐진다. 광부가 막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길을 더 내기도 싫고 그냥 앉아 쉬고 싶다. 그저 산속으로 가고 싶다. 신라의 한 공주가 ‘속세와 이별’하고자 간 곳이 속리산이라 했던가. 누가 쫓아 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답답하고 큐브 속에 갇힌 느낌이다. 인간은 역시 혼자 살지 못하는 존재인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 안산에서 살 때는 요양병원에 계신 모습을 못 참아 나 살던 아래층에 어머니를 모셨다. 툭하면 내려가 6시 내 고향도 보고 전국노래자랑도 보며 맛난 것도 먹고 마시고 놀았다. 하도 안 와서 아내가 따라 내려와 멀쩡한 집 놔두고 어머니랑 자는 날이 많았다. 나도 모자라 며느리 응석까지 다 받아주셨다. 성당에 가려 양복을 입는데 아내가 “안젤로 엄마가 이상해!”하는 소리에 나는 직감했다. 며칠 전부터 쌀이고 반찬이고 모조리 우리 집에 가져다주시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었다. 화장터로 가며 다짐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이제 끝났구나.’
그건 그렇고
요즘 연이어 날이 흐리다. 나는 비가 올 듯한데 오지 않는 날씨가 좋다. (흡혈귄가?)
낮에 떠 있는 달은 태양 때문에 우린 보지 못한다. 있으나 없는 듯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도 안다. 경계에 서 있다. 지구로 떨어질 운석을 24시간 빨아들이고 있는 목성이 잠깐 한눈팔면 지구는 끝장이다. 그 한순간을 나는 기다린다. 예언자처럼 긴장하지 않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며칠을 쉬었다. 내일부터는 업무에 복귀하려 한다. 나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봉사는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면 즐겁다. 며칠 전 매송에 사시는 100세가 다 되어가는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조현병인 딸이 돌보고 있었는데 아들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에 나는 가슴을 쳤다. 가신지 한 달 만에 떠나셨다. 노래도 곧잘 하시는 예쁜 할머니였다. 왜 우리는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가. 주삿바늘 꼽아대지 말고 가망이 없으면 집으로 모시라. ‘집’이라는 한 글자는 무한한 평화를 준다.
그건 그렇고
소주가 달지도 쓰지도 않다. 기본이 다섯 병이니 두 병 남았다. 내일 병원 가는 날인데 벌써 원장님 잔소리가 들린다. 쏘리. 짱 쏘리. 수간호사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사나이 윤영환! 마저 퍼마시자.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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