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들을 이곳저곳 뒤져가며 모아보니 소주 두 병은 살만하다. 간만에 밖을 나가보니 밤새 눈이 내려 복사뼈를 덮을 만큼 수북이 쌓였다. 주춤, 뒤뚱 대며 가게로 간다.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면 어떻게 해요? 몸도 좋지 않으신 분이.”
가게 아주머니가 속 타는 말투로 한마디 건넨다.
“주(酒)님의 은총으로 사니까요.”
귤 몇 개를 집어 봉지에 넣어 준다.
“매번 미안합니다.”
“껍질이 쭈글쭈글해서 팔지도 못하는 것들이에요.”
쪽방으로 돌아와 소주 뚜껑을 딴다. 경쾌한 금속의 마찰음이 감금 중이던 소주를 밖으로 인도한다. 온 세상을 눈이 덮어버린 이른 아침, 공복에 소주는 짜릿하다. 점액질 위장약보다 장기를 발라 내려가는 것이 빠르다. 빠른 소독과정 후 장기들을 갉아 먹겠지.
집 뒤에 가게를 가지 않고 굳이 네거리로 내려가 작은 구멍가게를 찾는다. 새벽 2시까지 가게를 연다는 이유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오전 10시쯤 이었던가? 담배를 사러 갔는데 주인이 없다. 그런데 계산대 위에 쪽지가 하나 있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원하시는 물건 가져가시고 돈은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세요. 잔돈은 돈통에서 거슬러 가시고요.”
우수리를 위해 남의 가게 돈통을 만진다는 건 꺼림직 해서 기다렸다. 잠시 후 자전거 한 대가 도착하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돌아왔다.
“대체 가게를 이렇게 비워두고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요.”
“우리 가게는 도둑맞은 적 없어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가게로 못 오시니까 전화하시면 배달해드리지요.”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며, 보기 좋은 모습인가. 또 어느 날이었던가. 미사 드리는 시간이 끝나고 잠시 성당에서 명상 중이었는데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바로 가게 아주머니였다. 사실 내가 다니는 성당을 알려준 것은 가게 아저씨였다. 늦은 밤 시간에는 아저씨가 가게를 본다. 여러 가지 연으로 나는 조금 걸어도 그 가게만 간다. 그 두 분은 늘 웃고 있으며 물건이 파손되거나 잃어버려도 그러려니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가게를 갈 때마다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느긋함과 느림의 아름다움. 서두르지도 욕심도 없는 가게. 며칠 전 공구를 이웃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아저씨의 말이 생각난다.
“그 사람한테 도움이 됐다면 그만이죠.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되니까요.”
그건 그렇고...
몇 해째 햄스터를 키워 왔다. 그런데 지난 해 가을부터 햄스터가 한 마리씩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애비 어미도 못 넘는 우리를 젖도 못 뗀 어린 것들이 넘을 리는 없고, 나는 이 쳐 죽일 놈 색출에 나섰다. 3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여름날 나는 비닐봉지를 뒤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가 흰색 도둑고양이와 침대 위에서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조용히 “가라 가! 잠 좀 자자.”했더니 가버렸다. 그 고양이 후로 다른 고양이들도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을 저지른 잡놈은 시궁쥐뿐이다. 나는 그 쥐들에게 먹을거리도 주며 겨울을 나도록 해줬었다. 밖은 너무 추우니까 부엌 구석에 살도록 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그 쥐를 봤는데 입에 내가 키우던 햄스터를 물고 집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저런 배은망덕 한 놈을 봤나!” 소리치고는 약국으로가 쥐 잡는 끈끈이를 사다가 방과 부엌에 깔았다. 곧 잡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한 놈이 아니라 두 놈이 잡힌 것이다. 짝꿍이었다. 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복수극의 난리를 친 며칠 뒤 나는 부엌문밖에서 새끼 쥐를 봤다. 아찔했다. 순간,
“내가 저 녀석의 부모를 죽였구나. 그래서 홀로 떠도는 구나. 인과응보로 가는가.”
날은 춥지만 부엌문 밖에다 먹이를 줄 수밖에 없었다. 먹이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더 이상 미물이라도 심장을 가진 것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학문을 탐구하면서 바뀐 것은 비만 오면 개수대에 나타나는 민달팽이나 가을이면 찾아오는 귀뚜라미처럼 생명을 가진 것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유일하게 죽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모기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오면 집 앞 개망초(국화과의 두 해살이 식물)는 묶어 보호하지만 모기는 박멸을 목표로 한다. 다른 생물과 달리 사람을 해하며 고통을 주거나 죽음을 부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맹수에 죽는 사람의 통계를 비웃는 것이 모기에 의한 죽음의 통계다. 결국 생명을 죽이는 것은 같으니 모기를 죽이겠다는 내 말은 자기 합리화다.
그건 그렇고...
밀린 책들을 모두 읽었다. 상쾌하다. 책은 숨이다. 내가 숨 쉬는 이유다. 탈고가 끝나지 않는 시들을 살펴볼 때다. 단편 소설들의 초고도 꺼내 놓았다. 종잇조각에 남긴 작은 문장들과 스친 생각들을 적은 담뱃갑 크기 스프링노트도 꺼냈다. 탈고는 창작의 시작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누리고 있는 문학을 포기해야 할지 기로에 서있다. 방세와 세금은 누적되고 내달이면 이 쪽방도 비워야 한다. 곧 철거가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7월까지는 버텼으면 한다. 그 때는 탈고가 끝나니까. 하기야 탈고가 끝난 들 방도는 없다. 그저 이곳에서 쓴 것들을 이곳에서 탈고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나는 여름 초입까지 이곳에 머물 것이라 믿는다.
그건 그렇고...
근래 자신이 낸 시집과 책을 소포로 보내주는 일이 잦다. 받을 때마다 미안하다. 드릴 것이 없기에. 이 탁한 세상 끝없이 정화하는 문인들이 없다면 인류는 멸종이다. 보내 주신 작품집들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