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물고 초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하고 한숨도 내쉬는 불안한 좌태. 위 내시경검사를 앞둔 나였다. 목 마취 후 시커먼 뱀 한 마리가 목구멍을 통해 몸으로 들어갔다. 그걸 ‘환장한다.’고 하던가.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부턴 돈 아끼지 말고 수면내시경으로 하자.’
나의 생쇼는 주변 의료진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역시 나는 덩칫값도 못했다. 열 달 전쯤 내시경을 한번 했었는데 그때보다는 견디기 좀 나은 듯하다. 의사는 젊지만 차분하다. 농도 잘하고 친절하다. 늘 그렇듯이 다시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
그건 그렇고,
집에 와 약국에서 건넨 봉투를 보는데 뒷면에 건강을 지켜줄 10가지 수칙이 인쇄되어있다.
1.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2.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3. 반가운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한다.
4. 하루 세끼, 맛있게 천천히 먹는다.
5.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6. 누구라도 칭찬한다.
7. 약속시간엔 여유 있게 가서 기다린다.
8.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9. 원칙대로 정직하게 산다.
10.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잘 지켜지지 않는 게 있는데 6번과 8번이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 받는 것도 부담 가고 하는 것도 부담이다. 8번이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지으라는 건데 열 받는데 어떻게 웃나? 아마 열 받는 일이 없도록 잘 살라는 말 같다.
그건 그렇고,
저녁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날 때 대부분 인상을 찌푸린다. 피곤하고, 뻐근하고, 속 쓰리고, 더 자고 싶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침에 눈을 떠 웃는 사람 거의 없다. 그런데 어떤 논문인지 책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갓난아기 때부터 걷기 전 까지 아가들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뜰 때 웃는다는 것이다. 뭐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장땡이지 지가 뭔 걱정이 있겠는가.
불경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동학엔 어린이가 하늘님이라 하고 성경엔 어린아이와 같으면 천국행이라고 쓰여 있다.(물론 그 의미는 생각할만한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조직 안에 들어가며 국가에 소속 되어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사회 속 일원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고, 듣고 경험하며 산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침 미소를 결정짓는다.
유교문화가 있어서 실실 웃고 있으면 또라이로 본다. 나도 길을 걷다가 혼자 웃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나 역시도 ‘저 사람 제정신인가?’하는 마음이 든다. 나야 뭐 무표정이든 인상을 쓰든 웃든 어차피 또라이 소리를 듣는데 그럴 바엔 웃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웃을 일이 없는 건지 웃음이 습관 되지 않아서인지 어색한 건지 잘 웃지 않는다. 깨어 있는 시간 중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그다지 웃을 일이 없다. 그러다가 내 인생이 뒤바뀌는 웃을 일이 생겼다. 웃고 산다. 앞으로도 쭈~욱~ 평생 웃고 살지 않겠나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건 그렇고,
부천에서 살던 때와 같이 이곳도 폐지나 재활용품을 찾아 돌아다니시는 어르신들이 있다. 그런데 그 수가 많아져 경쟁이 심하다. 할머니들만 보였는데 근래 할아버지들이 활동하면서 골목이고 길거리고 종이 한장 떨어져 있지 않다. 얼마 전 포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양이 많아 몇 송이를 들고 마침 폐지를 정리중이시던 할머니께 드렸다. 병이나 폐지는 모아서 그 할머니가 지나는 때나 만나서 전해드린다. 유독 그 할머니께 마음이 쓰인다. 종종 짐이 많아 애쓰시고 있을 때 리어카 끈을 폐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드리기도 한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있어서 허리를 펴고 계시는 모습을 본적도 없고 따뜻한 옷을 입은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옷도 없지만 보통 사람들도 내 옷을 입으면 이불에 가깝기 때문에 드릴만한 옷이 없다. 올 겨울 지켜 볼 일이지만 조금 더 돕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늘 있다. 동 지원센터에 복지과 면담은 해보셨는지 여쭤볼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말해주면 오해가 풀리는데 그 말은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는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고, 간단히 짧게 말해주면 되는데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말을 못할 때 참으로 답답하다. 미안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한 사람 오해를 풀자고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폭풍을 몰고 올 필요는 없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같은 경우를 역으로 당한 적도 있었는데 ‘말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하고 말았다. 때가 되면 알 수 있는 것이고 행여 모르고 지난다 해도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낫다면 모르는 것이 낫다. 마음으로 품을 수 밖에......
그건 그렇고,
걱정은 했지만 상추씨를 좀 심었다. 날이 추워 싹이 트자마자 곧 말라 죽었다. 그렇다고 거실에 비닐하우스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년에 잘 키워 볼 생각이다. 며칠 전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며 꽃가게 옆에 버려진 채송화들을 봤다. 대여섯 개 정도 화분이 버려졌는데 두 개를 들고 왔다. 넓은 곳으로 옮겨 흙을 골라 심었더니 바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날마다 이곳저곳에서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꽃잎 색깔도 피는 꽃마다 다르다. 꽃봉오리만 바라보다가 어느 날 활짝 핀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직접 씨를 심어 싹이 트고 한 달 가까이 지나 하얀 꽃을 피운 녀석이 하나있는데 꽃집에서 다 큰 꽃을 사오는 것보다는 더 기분이 좋다.
동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한다. 가로수 밑단에 국화를 수북이 심어 놓아서 가로수 마다 여러 색의 국화가 작은 숲들을 이루고 있다. 보통 차가 다니는 조금 넓은 곳에 가로수가 있는데 이곳은 골목길처럼 작은 길에도 가로수가 있다. 집집마다 화분이 많고 마당이 있는 집은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하다.
그건 그렇고,
엄니께 겨울에 필요한 물품들을 좀 마련해서 보내드릴 생각으로 메모를 하고 있는데 마침 엄니한테 전화가 왔다. 그 작은 시골동네 그것도 엄니가 사는 단칸방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훔쳐간 품목이 참 거시기 하다. 고춧가루와 약재다.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약을 왜 가져갔는지...... 벼룩의 간을 빼먹지 도둑질할 집이 그리도 없던가? 도둑놈을 어쩌면 좋냐고 여쭈니 “잘 살것지 뭐.”하신다. 다치지 않으셨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같이 살 때 부엌으로 들어온 강도를 때려잡던 생각이 난다.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