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끼고 사는 터라 두세 평 정도되는 방 이곳저곳에 꽉찬 책꽂이에 들어갈 수 없는 피난書들이 있습니다. 커피를 타오다가 발길에 채이기라도 하면 무생인 책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책꽂이에 오래 방치되어 있거나 다락방에 처박혀 이사 갈 때나 만날 책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발에 걸린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짝궁인양 해설집도 있더군요. 드르륵 책을 둘러보는데 책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보지 않았다면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지 말라'
새삼 기억 나는 구절이었습니다. 커피잔을 집어 한모금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다니며 성장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책으로부터 받는 것보다는 선생님들이나 친구, 선배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그 지식은 입시위주의 암기나 수단으로서 오기도 하지만 학창시절 유난히 기억에 남는(입시와 관계없는) 가르침도 있을 것입니다. 성인이 되면 사회생활을 하며 조직의 성격도 배우고 장사의 수단도 배우고 삶의 현장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노하우가 생기고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상대가 이런 말을 하면 이렇게 되받아 치면 되겠다 하는 자신만의 Rule 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Rule을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 이렇게 해주고 계속 이것만을 해줄 것이고,
나는 취업이 되면 회사를 열심히 다니며 이렇게 해서 저렇게 성공할 것이고,
내가 십년 후에는 이렇게 되어야하고 어느정도 위치까지 가야하고,
이것은 진리니까 나는 따라야하고 지켜야하며 그말을 전파해야하고...
살아보세요. 저런 결심들은 당면하면 사라집니다.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 탈없이 걱정거리 없이 편하게 사는 중이라면 실행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생각대로 풀리는 인생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만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마치 선지자처럼 나불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더러 맞아봐야 아픈 것을 아느냐고 반문합니다. 나는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놀다가 넘어지고 친구들이랑 다툼도 하고 선생님한테 회초리도 맞아보지 않았나요. 맞아봤으니 아픈걸 알지 평생 넘어져보지도 맞아보지도 않았다면 어떻게 압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궁금증에 못이겨 자기 종아리를 때려보기라도 할 것입니다. 안그런가요?
1+1 이 2라는 지식은 받아 들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는 구절은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 책이 있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 속에 떠올려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잘 골라야 하고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경험을 토대로 쓴 책만 책의 값어치가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화두로서 당신의 마음에 늘 두어야 합니다. 스스로 말꼬리 잡아가면 득이 아니라 실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책이 좋냐는 질문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답변할 수 있을까요?
예언자가 아닌 이상 원수를 사랑하게 될지 원수에게 복수를 할지는 만나봐야 압니다. 책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 봐야 압니다. 사업적인 만남이 아니라면 계획하지 마세요. 계획하면 실망은 당신만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 드리자면 늘 곁에 있는 책이나 사람들 보다는 태어나 처음 보는 책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 더 중요하고 더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경험해봤을 까요?
늦더위가 여전합니다. 엘니뇨에 대한 겨울 비상대책들이 나오고 있는 묘한 지구촌입니다. 건강 챙기세요. 그래야 책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