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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0:53

국화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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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바라보며







인정이 어찌하여 무정한 물건과 같은지
요즘엔 닥치는 일마다 불평이 늘어간다
우연히 동쪽 울 바라보니 부끄럽기만 하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마주하고 있으니


人情那似物無情
觸境年來漸不平
偶向東籬羞滿面
眞黃花對僞淵明









- 목은 이색 (李穡 : 1328~1396)
〈대국유감(對菊有感)〉
《목은집(牧隱集)》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君子之交淡如水]”라는 말이 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다.[小人之交甘若醴]”라는 말이 뒤에 이어져 대조를 이룬다. 이와 유사한 말이 《장자》에도 나오고 《예기》에도 나오는 걸 보면, 널리 알려져 있을 법하고 또 이런 사고는 직접 체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임에 분명하다. 《예기》와 《장자》에서 각각 표현은 달라도 담담하게 사귄 경우에는 교우를 오랫동안 잘 이어가지만 달콤하게 사귄 경우에는 얼마 못가 무너진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런 담담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꽃이 여럿 있을 수 있겠는데 전통적으로는 국화를 꼽았다. 국화하면 ‘오상고절(傲霜孤節)’이 떠오른다. 이는 소동파의 〈겨울 풍경[冬景]〉이라는 시에 “연꽃은 지고 나면 비를 받칠 덮개가 없지만,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를 이겨내는 가지가 있다.[荷盡已無擎雨蓋, 菊殘猶有傲霜枝.]”라는 대목에서 유래한 듯하다. 우리나라 시에 보면 ‘서리에 굴하지 않는다’는 ‘오상(傲霜)’이란 표현이 국화를 노래할 때 자주 언급된다. 개인적으로도 국화를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할 말을 다 하지 않고 참고 있는 듯하며, 여러 역경을 견디어 낸 후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은은한 미소와 기품 같은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향기마저도 그윽한 데가 있어서 경박하거나 속되지 않고 진중하며 전아한 풍도가 있어 보인다.
  목은은 이 시의 뒤 두 구에서 왜 국화꽃을 보며 얼굴 가득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자신을 가짜 도연명이라고 자조하는 것일까? 도연명은 남북조 시대에 동진에서 송(宋)으로 바뀌는 시대를 살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절개를 지켰다 하여 정절(靖節)이라는 사시(私諡)를 수여한 인물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는 대목이 있고 〈음주(飮酒)〉 시에도 ‘가을 국화 자태도 아름다운데, 이슬 젖은 꽃을 따네.[秋菊有佳色, 裛露撤其英.]’ 라는 등의 구절이 있다. 그러나 도연명과 국화를 연결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북송의 주돈이(周惇頤)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진나라 도연명은 국화를 사랑하였다’고 하면서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인데 ‘도연명 이후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다’고 말한 때문일 것이다. 일제 때 문필로 이름을 날렸던 문일평(文一平)이나 그 이후 한문학적 교양이 풍부했던 미술사학자 김용준(金瑢俊), 수필가 윤오영(尹五榮) 선생 등의 글을 보면 도연명의 영향을 실감하는데, 가장 애송하는 시가 〈음주〉 시의 제5수이다. 그 시의 가운데 부분이 이렇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采菊東籬下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                  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저녁 무렵에 아름답고          山氣日夕佳
    나는 새는 서로 더불어 돌아온다          飛鳥相與還

  이 중에서도 특히 앞 두 구가 도연명 하면 떠오르는 시구가 되었는데, 지금 목은도 국화를 보고 이 시를 전제로 뒤 두 구를 말하고 있다. 이기(李墍 : 1522~1600)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이 시에 대한 배경 설명이 풍부하다. 고려 말에 우왕(禑王)이 폐위되어 강화(江華)에 있을 때에 목은이 미복(微服)으로 가서 뵌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국화(菊花)를 보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또 윤근수(尹根壽)의《월정만필(月汀漫筆)》에는 길재(吉再)가 목은에게 거취에 대한 의리를 물었을 때, “나는 대신이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해야 하니 떠나갈 수 없지만 그대는 떠나가도 좋다.” 하였다. 목은이 그때 장단의 별장에 있다가 그에게 “기러기 한 마리 하늘 높이 떠 있다.[飛鴻一箇在冥冥]”라는 시를 지어 주었는데 당시 목은의 심사가 잘 녹아 있다. 서애 유성룡도 이 시를 두고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마주하고 있다.[眞黃花對僞淵明]’에 목은의 마음이 다 담겨 있다고 논평하고는 슬프다고 하였다.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애초 부끄러움이 없을 터인데, 절개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 부끄럽다고 하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정몽주도 국화를 아주 좋아하였는데 24살에 쓴 <국화탄(菊花嘆)>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으나              人雖可與語
    미친 그 마음 나는 미워하고              吾惡其心狂
    꽃은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花雖不解語
    꽃다운 그 마음 나는 사랑한다           我愛其心芳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지만               平生不飮酒
    너를 위해 한 잔 술을 들고                爲汝擧一觴
    평소에 웃지 않지만                         平生不啓齒
    너를 위해 한 바탕 웃어보리라           爲汝笑一場

  국화를 좋아하는 마음에 평소 술을 들지 않고 웃지 않는 사람도 술을 한 잔 하고 싶고 절로 마음이 밝아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포은 역시 고려 말엽에 어떤 승려가 “강남 만 리에 들꽃이 만발하였으니, 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좋은 산 아니겠는가.[江南萬里野花發, 何處春風不好山.]”라고 하여 몸을 피할 것을 암유하자, 포은은 눈물을 흘리며, “아, 이제 늦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는 이야기가 여러 문헌에 전한다. 목은과 포은의 행적과 일화에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일찍이 문일평 선생이 정몽주의 이 시를 소개하면서 “국화가 충신에게 사랑을 받고, 충신이 국화를 사랑한 것은 그럴 듯한 일이다.” 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 듯하다.

  매천 황현도 국화를 노래한 시가 여럿 있는데 함벽정(涵碧亭)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두 줄 가을 버들 물굽이 백사장에        兩行秋柳一灣沙
    옷소매 떨치고 우뚝 선 들국화            拂袖亭亭野菊花

  국화의 꼿꼿한 정취를 개결한 은사(隱士)의 지조에 비유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시에 사람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듯하다.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 사공도(司空圖)는 전아(典雅)한 시의 풍격을 비유적인 언어로 노래하였는데, 흉중에 조금도 세속의 잡된 기미가 없는 이 ‘담(談)’이라는 글자로 전아한 선비와 국화의 이미지를 연결한 것이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떨어지는 꽃잎은 말이 없고                花落無言
    사람의 마음 국화처럼 담박하여라       人淡如菊

  봄이 사람 마음을 가볍게 뜨게 하고 희망에 부풀게 한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하다못해 들판 한 귀퉁이에 긴 목을 빼서 푹 숙이고 있는 수숫대는 깊은 명상이라도 하는 듯하며, 개울가의 갈대나 밭둑의 억새는 바람에 서걱거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철리라도 설법하려는 양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또 담담하고 은은한 자태로 옛 문인들의 사랑을 받은 국화가 서리를 오시(傲視)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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