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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6:42

도덕경 11장

조회 수 30113 추천 수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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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채움을 지향하고, 실질을 추구해 왔다. 자신의 사상이 빈껍데기가 아니라 잘 여문 알곡처럼 세상을 위해 귀한 쓰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먼 이상보다 현실과 실용을 이야기하려 했다. 때문에 유학은 제 자신의 학문을 실학(實學)이라 표방하며, 노장(老莊)을 허학(虛學)으로 규정해 거세게 몰아세웠다. 실질 없고 현실에 도움 되는 것 없는 허무한 사상이란 것이다.

하지만 실용과 실질만으로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빈틈없이 꽉꽉 채우기만 하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노자는 유학이 그토록 주장하는 ‘실질적 쓰임’이란 오히려 채움이 아니라 비움과 없음에 있다고 말한다. 위 구절은 비움과 없음에 대한 노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수레바퀴는 바퀴살로 지탱되고, 바퀴살은 중앙으로 모여들어 한 굴통을 공유한다. 이 굴통은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굴대를 끼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그릇도, 건물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비로소 실질적인 쓰임이 생긴다. 비움과 없음을 쓸모없고 허탄한 것으로 몰아붙이던 유학을 향해 비움과 없음이야말로 참으로 큰 쓸모임을 역설한 것이다. 실(實)이란 명분을 내세워 근시안적인 실용과 탐욕적인 채움으로만 치달리는 현실에 던지는 회의와 반성이다.

유학의 실과 노장의 허무는 일견 대립항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움과 없음이 그 자체로 마냥 귀한 것은 아니다. 본래의 쓰임을 위해서는 채움을 기다려야 한다. 교실이란 공간이 학생들로 차 있어야 의미를 지니듯이. 그러나 채움은 다시 비움으로 이어져 새로운 채움을 기다린다. 잘 비울 때 더욱 큰 채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립항처럼 보이는 비움과 채움은 순환의 길을 따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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