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첫쪽

방문자수 (2014.04~)

전체 : 786,291
오늘 : 308
어제 : 636

페이지뷰

전체 : 35,164,177
오늘 : 13,035
어제 : 34,698
2013.01.10 14:44

독서편지 - 제942호

조회 수 19886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독서편지】: 제942호











2013.1.10 (음11.29) / 발송인:



nowmaster@nate.com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문명이란 개인과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 다음에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 국민과 국민, 국가와 국가를 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즉 인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드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朋 그리고 北 - 정대구

나에겐 거짓말 같이 둘이면서 하나인 친구가 있네
여기서 쉴까/ 그래 여기서 쉬자
동으로 갈까/ 그래 동으로 가자
바다로 갈까/ 그래 바다로 가자
산으로 갈까/ 그래 산으로 가자

내가 목욕갈까 말하면/ 그도 목욕가자 하고
그가 탁구치러 가자하면/ 나도 탁구치고 싶어지고
내가 짜장면 먹자하면/ 그도 짜장면 먹고 싶다하고
그가 꽃다방 가자하면/ 나도 꽃다방 따라가고

朋 朋 朋 어깨동무한 어깨 기울기도 어슷비슷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폭도 나란히
왼발 오른발 발맞추어 하나둘 하나둘
하다못해 마누라 얘길 할 때도
그도 똑같이 당했다면서 맞장구를 쳐주는
그와 나는 손발이 잘 맞는 명콤비
나도 험처가/ 그도 험처가

그와 나의 숙원이요 공통희망사항인
朋친구 같은 아내는 없고
바가지로 늙어가는 마누라쟁이들은 北 北 北
북 북 북 우겨대기 고수
사사건건 돌아앉아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해
그래 나는 슬프다/ 그래 그도 슬프다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빈민가 소년의 꿈

 1957년에 캘리포니아에 사는 열 살의 소년이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무렵 미식 축구의 가장 뛰어난 러닝백 선수는 단연코 짐 브라운이었다. 키가 크고 홀쭉한 이 소년은 짐 브라운의 싸인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소년은 몇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만 했다. 소년은 빈민가에서 성장했으며,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 본 기억이 없었다. 소년은 오래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게다가 구루병까지 겹쳐 활처럼 휘어진 앙상한 다리를 쇠로 만든 부목으로 지탱해야만 했다. 게다가 소년은 경기장에 들어갈 티켓 살 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끈기있게 선수 대기실 근처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짐 브라운이 나타나자 소년은 공손하게 싸인을 부탁했다. 짐 브라운이 싸인을 해서 건네 주자, 소년이 말했다.
 "미스터 브라운, 전 제 방 벽에 당신의 사진을 걸어 놓았어요. 전 당신이 모든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은 제 우상이에요."
 짐 브라운은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년은 선언했다.
 "미스터 브라운, 언젠가는 제가 당신이 가진 모든 기록을 깨고야 말 거예요!"
  깊은 인상을 받은 짐 브라운이 물었다.
 "꼬마야, 네 이름이 뭐니?"
 소년이 대답했다.
 "오렌탈 제임스예요. 친구들은 오 제이라고 부르죠."
  그 후 부상으로 미식 축구를 그만 둘 때까지 오 제이 심슨은 짐 브라운이 갖고 있던 세 가지 기록을 모두 깼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목표를 세우라.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라.

 댄 클라크 

 












문학자료 → 과학



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5장 -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2/2

      지구전

  메이나드-스미스가 생각한 또 하나의 전쟁 게임은 '지구전'이다. 이것은 위험한 싸움을 결코 안하는 종과 다분히 부상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갑옷으로 덮인 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종에서의 다툼은 모두 형식적 자세에 의해 해결된다. 다툼은 항상 어느 편이든 물러섬으로써 끝난다.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등을 돌릴 때까지 자기 진지에 버티고 서서 적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위협하기 위하여 무한히 시간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동물은 없다. 달리 해야 할  큰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자원은 가치가 있을지 모르나 무한히 가치가 있을 리는 없다. 그것은 그래야 할 시간적 가치에 불과하다. 경매할 때와 같이 각 개체는 그 자원에는 그럴 만한 가격밖에 쓰지 않을 각오를 하고 있다. 시간은 이 두 경매인의 경매 통화인 것이다. 이들 개체는 모두 어떤 자원, 가령 암놈이 어느 정도의  시간에 가치가 있는가를 미리 정확히 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자. 조금만 길게 계속할 각오를 한 돌연변이 개체는 항상 이길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경매값을 지킨다는 전략은 불안정하다. 가령 자원의 가치가 아주 정확히 추정되어 전개체가 옳은 갑을 불렀다고 해도 이 전략은 불안정하다. 이 시간을 최대화하는 전략에 의해 경매를 하는 두 개체는 똑같은 순가에 포기하여 어느편도 자원을 입수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이 경우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권리를 포기하는 편이 개체에게는 상책이다. 지구전과 실제의 경합과의  커다란 차이는, 요컨대 지구전에서는 경쟁자가 모두 희생의 치름에 반해 이익을 얻는 자는 한쪽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대항하고 버티는 시간을 최대화하려고하는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 내에서는 처음부터 포기한다는 전략이 성공하여 개체군 내에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바로 포기하지 않고 몇 초 기다렸다가 포기하는 개체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전략은 현재 개체군 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즉시즉각파에 대하여 행동할 때  유리한 것이 틀림없다. 거기서 선택은 포기의 시간을 점점 연장하는 방향으로 돌려, 어쨌든 다투고 있는 자원의 참된경제 가치에 따라 허용되는 최대치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수식을 쓰지 않고 말로써 마치 개체군이 모든 전략을 두루 살펴보는 진동을 말하는 듯이 묘사해 왔다. 그러나 수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때도 역시 그 묘사는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어떤 전략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수학식으로 표시되는데 그것과 같은 것을 말로 하면 이렇게 된다. 각  개체가 지구전을 계속하는 시간은 예언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자원의 진가를 평균하는 것 외에는 예언을 못한다. 가령 자원이 실제로는 5분간의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자. ESS로 5분 이상 과시행동을 계속하는 개체가 있다면, 5분 이하밖에 계속 못하는 개체도 있고, 또 꼭 5분간만 계속하는 개체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시간을 계속할 작정인가를 상대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구전에서는 포기하려고 하는 눈치를 상대가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염을 조금 움직이든지 하여 패배를 드러내고 말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실수하여 그 눈치를 표출하게 되면 그 순간  불리하게 된다. 가령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 1분 후에 즉각  공격을 한다는 확실한 징조라면 극히 단순한 승리의 전략일 것이다.
"상대의 수염이 움직이면 처음의 계획이 무엇이었든 1분간 더 참는게 좋다. 상대의 수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게다가 자기가 포기하려고 했던 시간까지 이제 1분도 안 남았다고 생각될 깨는 즉각 손들고 그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편이 좋다. 자기의 수염은 결코 부동이다."
이런 이유로 자연 선택은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나 그 밖의 행동을 표출해 버리는 짓을 즉시 벌할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포커 페이스)이 진화해 갈 것임에 틀림없다.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편이 좋은 것은 왜 그럴까?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안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체가 지구전에서 정말로 장시간 버틸 각오가 있기 전에는 목의 털을 세우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의 반대되는 계략이 진화될 것이다. 즉, 상대가 목털을 세우면 즉시 굴복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여기서 거짓말이 진화되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장시간 버틸 각오가  없는 개체가 언제나 털을 세우고 용이하게 빨리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짓말쟁이의 유전자가 퍼져나갈 것이다. 드디어 거짓말쟁이가 대세를 차지하면 선택은 이제 그 허점을 깨닫고 도전하는 개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거짓말쟁이는 다시 수가 감소할 것이다. 지구전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진화적으로 안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표정한 얼굴은 진화적으로 안정적이다. 결국 항복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보호를 위한 싸움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 온 것은 메이나드-스미스가 '대칭적'다툼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즉, 경쟁자끼리의 싸움에 있어서 전략 이외의 모든 것은 똑같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는 같은 강도였고, 무기나 갑옷으로 동등하게 무장했고, 승리에 의해 얻은 것도 동등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모델을 이용하기에는  편리한 가정인데 별로 현실적은 아니다. 그래서 파커와 메이타드-스미스는 비대칭적인 투쟁을 생각해 보았다. 예컨대 만약 전투 능력과 몸의 크기가 개체에 따라 다르며 각 개체가 자기와 비교해서 상대가 어느 정도로 큰가를 잴 수 있다고 하면 이 일이 거기에 생기는 ESS에 영향을 미칠까? 아마도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비대칭적인 다툼에는 세 가지의 주된 것이 생각된다. 첫째는 지금 말한 대로 몸의 크기라든가 전투 능력이 개체에 EK라 틀리는 경우이다. 둘째는 승리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의 크기가 개체에 따라 틀릴 경우이다. 가령 아무리 참고 버텨도  여생이 짧은 노인은 앞으로 긴 생식 생활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와는 달라서, 비록 부상을 입었다 해도 질 수는 없는 입장일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설의 색다른 결론인데, 완전히 임의적이고 일견하여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비대칭이 ESS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비대칭의 덕택으로 다툼이 급속히 수습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쟁자의 한쪽이 더러는 다른 쪽보다 먼저 싸움터에 도착해 있을 경우 대개 이것에 해당된다. 그들을 각각 '거주자'와 '침입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논의의 편의상, 거주자나 침입자에게 일반적인 이익은 없다고 가정한다. 후술하거니와 이 가정이 실제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으나 이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가령 거주자가 침입자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유는 없어도 이 비대칭 그 자체에 의해 정해지는  어떤 ESS가 진화한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인간이 크게 떠들지 않고도 동전을 던져 분명하게 다툼의 결판을 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거주자와 침입자
  조건 전략, 즉 "자기가 거주자라면 공격하고, 침입자라면 퇴각하라."라는 것이 ESS일지도 모른다. 또 비대칭이 임의라고 하는 가정이 있으므로  "거주자라면 퇴각하고 침입자라면 공격하라."라는 역의 전략이 안정적일 가능성도 있다. 어떤 개체군에 있어서 이 두 개의 ESS 중 어떤 것이 채용될지는 어느 쪽이 먼저 대세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개체는 벌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에 의하면 그것이 ESS인 것이다. 이를테면 개체가 '거주자가 이기고  침입자가 도망'이라는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이것은 그들이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다치지 않고 시간도 허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다툼이 임의의 규정에 따라 즉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 새로운 돌연변이의 반역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항상 공격하며 결코 물나지 않는 순수한 매파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상대가 침입자일 경우에는 그가 이길 것이다. 상대가 거주자하면 부상이라는 큰 위험을 당하게 된다. 평균하면 그는 ESS의 임의의 규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개체보다 득점이 낮아진다. "거주자라면 도망하라. 침입자라면 공격하라." 라는 역의 규정을 시도하려고 하는 반역자는 더욱 나쁘다. 그는 때때로 부상을 당할 뿐만  아니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무언가 우연한 일로 인하여 이 역의 규정에 따르는 개체가 대세를 잡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때에 그들의 전략은 안정된 규범이 되어 이에서 벗어난 자는 벌을 받는다. 한 개체군을 여러 세대에 걸쳐 관찰하다 보면 때마침 한 안정 상태에서 다른 안정 상태로 돌변해 버리는 모습을 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생활에 있어서 정말 임의의 비대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거주자는 대개 침입자보다 실제로 유리한 입장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토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 또 거주자가 오래도록 거기에 있었음에 반해 침입자는 싸움터에 출전해 왔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계에서 두 개의 안정 상태 중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는 진다."라는 상태의 편이 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즉 "침입자가 이기고 거주자가 진다."라는 역의 전략은 자기 붕괴를 초래할 경향을 본래 가지고 있다. 메이나드-스미스는 이것을 '역설적 전략'이라고 했다.  이 역설적 ESS의 상태에 있는 개체군 내의 개체는 항상 거주자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즉, 어떤 다툼에 있어서도 항상 침입자인 양 애써 노력할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은 따로 하고라도 이 진화 경향은 '거주자'라는 범주를 자연히 소멸시키는 성이 된다.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는 진다."라는 또 한편의 안정 상태에 있는 개체군에서는 자연 선택이 거주자가 되려고 애쓰는 개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각 개체에게 있어 이것은 어떤 구역에 틀어박혀  가능한 한 그 곳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곳을 '지키자'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이와 같은 행동은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영역의 방위'라고 한다.

      가시고기의 영역 싸움
    이 형의 행동적 비대칭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실례는 우수한 행동학자인 틴버겐(Niko Tinbergen)이 스스로 터득한 천재적인 단순 명쾌한 실험에 의해 제시한 것이다. 그는 두 마리의 큰 가시고기 수놈이 들어 있는 수조를 갖고 있었다. 물고기는 각기 수조의 반대측의 구석에 집을 짓고 자기 집 둘레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틴버겐은 이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각각 큰 유리 시험관에 넣어 이 두 개의 시험관을 가지고 물고기들이 시험관을 통하여 싸우려고 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래서 매우 흥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두 개의  시험관을 수놈 A의 집에 가까이 접근할 경우에는 A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수놈 B는 퇴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험관을 수놈 B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니까 형세는 역전됐다. 틴버겐은 단순히 두 개의 시험관을 수조의 한 끝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수놈이 공격하고 어떤 수놈이 퇴각하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어느쪽 수놈도 분명히 단순한 조건 전략을,  즉 "거주자가 되면 공격하고 침입자가 되면 퇴각한다."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생물학자는 자주 영역 행동의 생물학적 '이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에는 여러 가지의 가능한 답이 있는데 그 중의 몇 가지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하겠다. 그런데 이제 이 질문 자체가 무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역 '바위'란 그저 두 개체와 토지 구확과의 관계를 정하는 도착 시간의 비대칭 때문에 생긴 ESS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임의가 아닌 비대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크기와 일반적인 전투 능력일 것이다. 체구가 크다는 것은 필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할 수 없으나 역시 그 하나이기는 하다. 싸움에 있어 큰 편이 항상 이긴다면, 그리고 각 개체가 자기가 상대보다 큰지 작은지를 화실히 알고 있다면 무언가의 의미 있는 전략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즉 "상대가 자기보다 크면 도망가라. 자기보다 작은 놈은 공격하라." 크기의 차이가 그다지 확실하지 못하게 되면 일은 다소 복잡해진다. 체구가 크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면 지금 말한 전략은 아직 안정하다. 그런데 부상의 위험이 크게 되면 제2의 '역설적 전략'도 생각된다. 즉, "자기보다 큰 놈에게 싸움을 걸고 작은 놈은 피하라!"이 전략이 역설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완전히 상식에 반한다고 생각된다. 이 전략이 안정하다는 이유는 이것이다. 모두가 역설적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에서는 누구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다툼에 있어서 관계자의 한쪽, 즉 몸이 큰 편이 항상 도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  상대를 괴롭힌다는 '상식적'전략을 취하는 평균적 크기의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그 개체는 맞부딪친 상대의 반수와 격한 다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보다 작은 상대에게 부딪치면 공격을 하고 그 작은 개체는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심하게 응전해 오기 때문이다. 상식적 전략파는 역설적 전략파보다 이길 확률은 높으나 한편 저서 크게 다칠 위험도 많이 있다. 개체군의 대부분이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상식적 전략자는 어느 역설적 전략자보다 다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회성 거미
  역설적 전략은 가령 안정하다고 해도 아마도  이것은 학문적으로 흥미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역설파가 상식파보다 높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수적으로 상식파보다 현저히 많을 때에 한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상태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생길 수 있는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가령 그것이 생겼다 해도 개체군 내의 역설파에 대한 상식파의 비율이 아주 조금 증가하는 것만으로 또 하나의 ESS, 즉 상식파의 ESS '유인 지역'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 경우 유인 지역이라는 것은 상식파가 유리하게 되는 개체군 비율의 집합으로 정의되는 영역이다. 즉, 한 개체군이 이 유인 지역에 도달하면 상식적 전략의 안정점을 향하여 피할 수 없이 말려드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역설적 ESS의 예를  발견하는 것은 흥분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나는 너무 빨랐던  것 같다). 이 글을 쓴 후에 나는 메이나드-스미스 교수로부터 버제스가 멕시코 산의 사회성 거미인 Oecobius civitas의 행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 것을 들었다. "이  거미는 어떤 방해물 때문에 숨었던 장소에서 쫓겨나면 바위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길 수 있는 빈틈을 찾지 못하면 같은 종의 다른 개체의 집으로 달려든다. 도망쳐 들어온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에 거기에 거주하던 거미는 침입자를 공격하지 않고 바로 나와 자기의 숨을 곳을 새로이 찾는다. 이 때문에 일단 최초의 거미가 쫓겨나면 잇따른 도주가 계속되어 이것이 수분 사이에 종종 그 집단의 개체가 자기의 살림집에서 옆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사회성  거미", Scientific American 1976년 3월호)

       순위제
 만약 동물이 과거의 싸움에 관해 무언가 기억하고 있다면 어떠할까? 그것은 그 기억이 개별적인 것인가 일반적인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귀뚜라미는 과거 싸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최근에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귀뚜라미는 매파적으로 된다. 최근 계속 지기만 한 귀뚜라미는 비둘기파적으로 된다. 이것은 알렉산더(R.D. Aleander)에 의해 자세히 제시됐다. 그는 모형 귀뚜라미를 사용하여 진짜귀뚜라미를 기습했다. 이 처리를 가한 후로 그 귀뚜라미는 다른 진짜 귀뚜라미와의 싸움에서 지기만 했다. 각각의 귀뚜라미는 자기의 개체군 내의 평균적 개체의 전투 능력과 비교한 자기의 전투 능력을 평가하기를 부단히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의 싸움을 기억하는 귀뚜라미와 같은 동물이 밀집된 집단을 이루고 지내면 모종의 순위제가 발달하는  것 같다. 관찰자는각 개체를 순번대로 나열할 수가 이TEk. 순위가 낮은 개체는 순위가  높은 개체에게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끼리 서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승리에 습관된 개체는 더욱더 이기게 되고 패배에 버릇이 된 개체는 정해 놓고 지기만  한다는 것이 형상의 모두이다. 처음에는 완전히 두서없이 이기고 지고 하다가도 자연히 어떤 순위에 따라 가는 경향이 있는 이것은 집단 내의 심한 다툼을 점차로 줄여 가는 효과가 있다.

      ESS와 순번제
  이상과 같은 현상은 일종의 '순위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순위제라는 말을 개체가 인지하고 있을 때에만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과거 싸움의 기억은 일반적이라기보다 개별적이다. 귀뚜라미는 서로 상대를 개체로서 인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닭이나 원숭이는 인지하고 있다. 어떤 원숭이에게 있어 과거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원숭이는 앞으로도 자기를 이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럴 때의 개체로서의 최선의 전략은 이전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개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둘기파적으로 행동한다. 이전에 맞부딪친 적이 없는 한 떼의 닭을 서로 맞세워 놓으면 보통은 마냥 싸움질을 한다. 그러나 때가 지나면 결국 싸움은 약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귀뚜라미의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다. 닭의 경우, 각 개체는 서로 다른 개체에  대한 '자기의 지위를 배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종 집단 전체에게 좋은 거이다. 그 증거로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순위가 확립되어 있어서 심한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닭의  집단에서는 끊임없이 구성원이 갈리고 있으므로 그 결과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집단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는 흔히 숭위제의 생물학적 이점, 또는 '기능'은 집단 내의 공개적인 공격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방법은 옳지 않다. 순위제 그 자체는 진화적 의미로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의 특성이지 개체의 특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 수준에서 볼 때 순위제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개체의 행동 패턴에는 기능이 있다고 할는지 모르나 '기능'이라는 말을 아주 버리고, 개체의 인지와 기억이라는 두 개의 조건을 가미한 비대칭적인 다툼의 ESS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하는 편이 훨씬 좋다. 지금까지 같은 종의 개체간의 다툼에 관해 고찰해 왔는데 종간의 다툼에 관해서는 어떨까? 처음에 말한 바대로 다른 종의 구성원은 같은 종의 구성원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종간에 자원을 가지고 다툼이 생기는 것은 적당 생각되며 그 예상에는 확증이 있다. 가령 울새가 다른 울새에 대해서는 영역을 지키나 박새에 의 영역 지도를 중복해서 그릴 수가 있다. 이 두 종의 영역은 완전히 불규칙하게 겹쳐저 있다. 그들은 따로따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SS와 동종 사냥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다른 종의 개체들도 매우 심하게 충돌한다. 가령 사자는 영양을 잡아먹고 싶어하나 영양은 자기 몸에 관해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자원을 걸고 다툰다고 볼 수 없으나 이론적으로 말하면 왜 인정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고기를 '좋아하고 있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두가지 고기의 용도는 서로 양보할 수 없으므로 이권의 충돌이 생긴다. 자기 종의 구성원도 역시 고기로 되어 있다. 그러면 왜  서로 잡아먹는 것이 비교적 드문가? 검은 머리갈매기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성숙한 것이 때때로 자기 종의 새끼를 먹는다. 성숙한 육식 동물이 가지 종의 다른 성숙한 개체를 먹으려고 의도하고 적극적으로 추격하는 일은 결코 없다. 왜 없을까? 우리는 여전히 진화에 대한 '종의이익'이라는 견해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사자는 왜 다른 사자를 사냥 않는가?"라고 하는 등의 아주 타당한 질문을 잊어버리기가 쉰다. 또 하나 절대로 들을 수 없는 타입의 우수한 질문에 "영양은 왜 반격하지 않고 사자로부터 도망하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자가 사자를 잡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겐 ESS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먹기 전략은 앞의 예에서 매파형 전략과 같은 이유로 불안정하다. 보복의 위험이 너무도 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다른 종간의 다툼에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표적의 동물이 보복을 않고 도망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다분히 다른 종의 두 개체간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같은 종의 구성원간의 경우보다  큰 비대칭이 조립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서로간의 다툼에서 큰 비대칭이 있을 때 ESS는 항상 그 비대칭에 의존하는 조건 전략으로 되는 것  같다. 다른 종간의 다툼에서는 이용되는 비대칭이  많이 있으므로 "작으면 도망하라, 크거든 공격하라."라는 식의 전략이 매우 진화되기 쉽다. 사자와 영양은 다툼에 본래 존재하는 비대칭이 부단히 증대하도록 강조해 온 진화적 방식에 의해  일종의 안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들은 각각 추격의 수완과 도주의 술책에 고도로 숙련되어 있다. 사자에게 '맞서는' 전략을 취하는 돌연변이의 영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는 영양보다 잘 될 것이 없을 것이다.

      ESS 개념
  우리는 다윈 이래의 진화론에 있어서 ESS 개념의 발명을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로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개념은 이권 충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해당된다. 즉, 그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 통용된다. 동물 행동의 연구자는 '사회 조직'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 말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 사회 조직은 스스로의 생물학적 '이점'을 갖춘 독자적 실체로서 취급되는 수가 너무도 많다. 지금까지 든 예로 말하면 '순위제'가 그것이다. 생물학자가 사회조직에 관해 말한 여러 설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룹 선택주의자의 가설이 숨어 있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메이나드-스미스의 ESS 개념이야말로 독립된 이기적인 단위의 집합이 어떻게 해서 단일의 조직하된 전채를 닮게 되는가를 비로소 분명히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종 내의 사회 조직뿐만 아니라 많은 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나 '군집'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여하튼 나는 ESS 개념이  생태학에 혁명을 가져오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개념은 제 3장에서 기술했다. 좋은 팀워크를  필요로 하는 조정 선수(체내의 유전자에 해당)의 예에서 생긴 문제에도 적용된다. 유전자는 그것 단독으로 '우수한 것'으로서가 아니고 유전자 풀 내의 다른 유전자를 배경으로 해서 일할 때 우수한 것으로 되면 선택되어 남는다. 우수한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양립하여 서로 도와 몇 세대에  걸쳐서 몸의 공유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식물을 씹는 이빨의 유전자는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 내에서는 우수한 유전자이나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나쁜 유전자인 것이다.

  양립할 수 있는 한 세트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위로서 정리하고 선택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제 3장에서 본 의태하는  나비의 경우에는 정말로 그랬었던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ESS 개념의 훌륭한 정도는 독립적인 유전자의 수준에서 선택에 의해 같은  결과가 쉽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는 점이다. 유전자끼리는 같은 염색체상에서 연관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 점을 설명할 때 조정 선수의 예는 부적합하다. 이 점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다음과 같은 예이다. 실제로 레이스에 이기기 위해 보트 팀의 선수끼리가 말로서 자기의 활동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또한 코치가 마음대로 하는 선수 풀에서 어떤 선수는 영어밖에 못하고 어떤 선수는 독일어밖에 못한다도 하자. 영국인이 항상 독일인보다 배젓기가 낫든지 서툴든지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므로 혼합의 보트 팀은 영국인만의 보트 팀이나 독일인만의 보트 팀에 비하면 이기게 되는 횟수가 적게 되기가 쉽다. 코치는 이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선수를 마구 섞어서 이긴 보트에 탔던 선수에게 점수를 주고 진 보트에 탔던 선수는 점수를 뺀다. 이기는 선수 풀에 종종 영국 선수가 많으면 보트에 타는 독일인은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함으로써 그 보트가 지는 원인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수 풀에 종종 독일인 쪽이 많을  때에는 영국인이 레이스에 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종합적으로 최상의 보트팀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개의 안정 상태가 하나가 될 때, 즉 전원이 영국인이든지 전원이 독일인이든지 하는 상태이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코치가 언어별로 나눈 그룹을 단위로 하여 선택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는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레이스에 이기는 외견상의 능력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선수를 선발하는 데 불과하다. 한 선수가 레이스에 이기는 경향은  종종 후부자의 풀에 어떤 다른 선수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소수파의 후보는 자동적으로 벌을 받으나 그것은 젓는 것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소수파이기 때문일 뿐이다.

이처럼 유전자가 서로 양립되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나비의 예에서  본 것같이- 유전자의 집단이 단위로 되어 선택된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 유전자라고 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높은 수준에서의 선택이라는 인상을 주는 수도 있다. 이 예에서 선택은 단지 적합성만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서로 보완해 주는 유전자가 선택되는 경우이다. 유추해서 말하면 이상적으로 균형잡힌 보트 팀은 오른손잡이 네 사람과 왼손잡이 네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이때에도 또한 코치는 이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선수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여 선발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그런데 선수 풀에는 종종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왼손잡이의 선수는 모두 유리한 상태에 있다. 즉,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보트를 이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수한 선수인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왼손잡이가 많은 풀에서는 오른손잡이가 유리함에 틀림없다. 이 것은 비둘기파의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매파의 개체나 매파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비둘기파 개체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은 비둘기파와 매파의 예는 개체 간의, 즉 이기적인 기계 간의 상호 작용임에 비해 이때에는 체내의 유전자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점이다. 코치가 맹목적으로 '좋은' 선수를 뽑아도, 결국은 왼손잡이 네 사람과 오른손 잡이 네 사람으로 되는 이상적인 보트 팀이 된다. 그것은 마치 그가 균형잡힌  한 벌의 단위로서 그들을 몽땅 뽑은 양  보인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 그는 한 수 아래의 수준이고, 즉 개개의 후보 수준으로 선택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명쾌하고 분명하다. 왼손잡이 네 사람, 오른손잡이 네 사람이라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여기서 '전략'이라는 말은 오해를 갖기 쉽다)는 단순히 외견상의 성적에 기초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결과로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 풀은 유전자의 장기적인 환경이다. 유전자 풀에서 살아 남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이 '우수한 '유전자인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관찰됐다는 사실조차 없다. 그것은 동어 반복이다. 흥미를 끄는 문제는 유전자가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첫 접근으로서 유전자가 좋다는 것은 유능한 생존 기계, 즉 몸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제는 이 견해에 단서를 붙여 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의 세트, 즉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도 침입받지 않는 유전자 풀로 정의되는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돌연변이나 재조합이나  이입에 의해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벌을 받아 즉시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진화저긍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때마침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하여  유전자 풀 내에 퍼져나가는 데 성공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드디어 진화적으로 새롭고 안정한 조합을 이룬다. 매우 적게  진화가 된 것이다. 공격전략의 예에서 말한  것처럼 개체군에는 둘 이상의 대체 가능한 안정점이 있어 때때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연  비약이 일어나는 수도 있다. 진화란 부단한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수준에서 안정된 수준으로의 불연속인 전진의 반복인 것 같다.  마치 그 개체군 전체는 한 개의  자동 조절 단위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그것은 단일 유전자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에 의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는 '성적'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성적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이라는 배경 중에서의 행동에 기초하여 판정되는 것이다.

  메이나드-스미스는 모든 개체에서 볼 수 있는 공격적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사태를 극히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을 생각하는 것은  쉽다. 몸은 큰 물체이므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의 몸에 있는 유전자간의 이와 같은 상호 작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 중의, 즉 유전자  풀 내에서의 유전자의 중요한 상호 작용의 대부분은 개개의 몸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들의 항소 작용을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세포 내에서 특별히  발생 중인 배의 세포 내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잘 통합된 모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테마인 동물 개체간의 상호  작용의 수준으로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공격을 이해하려면 개개의 동물을 독립된 이기적인 기계로 보은  것이 적절하다. 이 모델은 관계하는 개체끼리가 형제자매, 사촌끼리, 친자와 같은 근친자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근친끼리는 그들의 유전자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충성심은 다른 몸 사이에 분배되어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도록 하자.
 












문학나눔 → 고사성어



  守株待兎 (수주대토)
  守(지킬 수) 株(그루 주) 待(기다릴 대)  (토끼 토)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송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급히 달려 오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는게 아닌가. 이 농부는 토끼를 거저 줍게 되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날 이후, 농부는 쟁기를 풀어 놓고 하루종일 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다시 토끼가 달려와 나무에 부딪혀 죽기만을 기다렸다(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 하지만 몇날이 지나도록 나무에 부딪혀 죽는 토끼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가 농사를 지었던 땅은 황폐해졌고, 나라 안의 사람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株란 본시 나무의 그루터기 를 뜻하지만, 지금은 증권시장의 핵심이 되었다. 홍콩, 동경, 뉴욕 할 것 없이 전세계의 주가(株價)가 폭락하고 있다. 나무와 기업의 밑둥인  株(?)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횡재를 꿈꾸었던 일부 투자가들은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그저  수주(守株)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守株待 (trust to chance and windfalls) 란  변통을 모르거나 노력없이 요행만을 기대함 을 비유한 말이다.


…………………………………………………………………………………………………………………………………

   한비자(韓非子)는 요순(堯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王道)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복고주의(復古主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상 또는 사람에게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
 












문학자료 → 수필



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8. 프리토리아로 가는 길

  나는 곧 더반에 사는 그리스도교 인도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법정 통역관 폴은 로마 카톨릭 신자였는데, 그와 알게 되었고, 또 그때 프로테스탄트미션 안에서 교사로 있었고, 1924년 남아프리카 대표단의 일원으로 인도를 방문했던 제임스 고드프리 씨의 부친이었던 고 수반 고드프리씨와도 알게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고 파르시 루스톰지와 고 아담지 미야칸과도 같은 시기에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다 그때까지는 사업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만날 일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게 될 것이지만 다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 그와 같이 내가 사교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 동안 상사는 변호인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압둘라 셰드 자신이나 그렇지 않으면 대리인이 프리토리아로 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압둘라 셰드는 나에게 그 편지를 읽으라고 하고는 프리토리아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하기를, "당신께 듣고 사건을 잘 알아본 후에야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할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서기를 불러 내게 설명해 주라고 했다. 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사건을 A, B, C 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잔지바르에 며칠 있을 때 거기서 하는 일을 보려고 그곳 재판소에 갔던 일이 있다. 한 파르시 변호사가 증인 심문을 하면서 장부의 차변기입과 대변기입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나로선 그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부기법은 학교에서도, 영국에 있는 동안에도 배운일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남아프리카에서 처리해야 하는 그 사건은 주로 회계에 관한 것이었다. 회계를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서기는 차변의 이것, 대번에 저것 하면서 말을 계속해 나가는데 나는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나는 P어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전을 찾아도 없었다. 나는 내 무식을 서기한테 털어 놓았더니 그는 P어음이란 약속어음이란 뜻이라고 했다. 나는 부기책을 하나 사서 공부를 했더니 다소 자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건을 이해했다. 압둘라 셰드는 부기를 할 줄 모르는 데도 실제 지식이 있기 때문에 곧 부기의 어려운 계산을 재빨리 풀어냈다. 나는 이제 프리토리아에 갈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어디가서 묵으시겠소?"  셰드는 물었다.
   "어디 당신이 좋으신 대로 하지요."  나는 대답했다.
   "그럼 내가 우리 변호인에게 편지를 쓰지요. 그가 당신 묵을 곳을 정할거요. 내가 또 거기 있는 나의 메만 친구들에게도 편지하겠지만 거기 묵으시라고 하고 싶지는 않소. 저쪽은 프리토리아에서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소. 그 중의 누구라도 우리의 사신을 어떻게 해서 보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막대한 손해가 올 거요. 그들을 멀리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이익이 될거요."
   "나는 상사 변호인이 지정해 주는 곳에 묵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따로 떨어진 하숙을 구하겠습니다.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이의 비밀적인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친교는 맺을 생각입니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될 수 있다면 사건을 법정 밖에서 해결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아무려나, 테브셰드는 당신 친척 아닙니까?"
  셰드 테브 하지 칸 무하마드는 압둘라 셰드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해결을 성립시킬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것이 셰드를 얼마쯤 놀라게 한 듯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더반에 있은지 6,7일이 됐고, 우리는 이제 서로 이해할 수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는  흰 코끼리 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에, 알겠소. 법정 밖에서 해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 친척간이고 사실 서로 잘 알지요. 테브 셰드는 화해를 쉽게 승낙할 사람이 아니오. 우리 편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다가는 그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짜내어 결국은 우리를 거꾸러뜨리고야 말려고 할 것이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려거든 거듭 생각해서 하시요."
  "그 때문에 너무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테브 셰드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또 그 문제를 다른 누구에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다만 서로 이해하여 불필요한 소용 비용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을 제의하려는 것 뿐입니다."
 내가 도착한지 7일인가 8일후에 나는 더반을 떠났다. 1등 좌석표 한 장을 사주어서 받았다. 침대를 사용하는 경우는 보통 5실링을 더 내야 했다. 압둘라 셰드는 나더러 침대칸을 하나 사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고집 때문에, 또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또 돈을 아끼고 싶은 생각에 듣지 않았다. 압둘라 셰드는 나에게 경고하기를,  "그런데, 이보세요, 여기는 인도와는 다른 곳입니다. 다행히 돈은 넉넉히 있으니 무엇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너무 아끼지 마시오." 라고했다.
  나는 그를 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 너무 걱저하지 말라고 했다. 기차가 나탈의 수도 마리츠버그에 도착한 것이 오후 9시쯤이었다. 보통 여기서 침대를 준비하게 된다. 역부 한 사람이 와서 침대를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오, 나는 하나 가지고 있소 라고 했다. 그러나 한 승객이 들어오더니 나를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그는 내가  유색인종 인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를 불쾌하게 했다. 쑥 나가더니 관리 한두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데, 다른 관리 한사람이 들어오더니, 나보고 "이리와요, 당신은 저 짐칸으로 가야해요." 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1등표를 가지고 있는데 왜그래요."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다른 한사람이 합세를 했다.  "내가 저 짐칸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더반에서 이 칸에 타도록 허락을 받았으니까, 이대로 갈거요."  "아니 안돼!"  그 관리는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 칸에서 나가란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서 밀어낼 것이니까." "그래 그러시오. 나는 내발로 안나갈 것입니다." 경찰이 왔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끌어냈다. 내 짐도 내던졌다. 나는 다른 칸으로 가기를 거절했고 기차는 떠났다. 나는 대합실로 가 앉았다. 손가방은 들고 있었고 다른 짐은 내던져졌다. 그대로 버려 두었다. 철도원들이 그것을 보관해 주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남아프리카 높은 지대의 겨울은 매우 춥다. 마리츠버그는 지대가 높아서 지독히 추웠다. 외투는 짐속에 있었는데, 또다시 모욕을 당할까봐 달란 말도 하기 싫고, 나는 그냥 앉아 떨었다. 실내에는 등불도 켜 있지 않았다. 자정쯤 해서 승객 하나가 들어와,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나는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의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냐, 인도로 돌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모욕은 생각말고 그냥 프리토리아로 가서 사건을 끝낸 다음 인도로 갈 것인가? 내가 할일을 하지 않고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비겁이다. 내가 당한 고통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깊은 병의 표적에 지나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라도 그 병의 뿌리를 뽑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받은 명예훼손에 대한 보상은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만 바라기로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오는 차를 타고 프리토리아로 가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철도 총지배인에게 긴 전보를 치고, 압둘라 셰드에게도 그것을 알렸더니, 그는 즉시 총지배인을 만났다. 그 지배인은 철도 당국이 취한 행위를 당연한 것이라고는 했으나, 셰드에게 자기가 이미 역장에게 지시하여서 내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하라고 했노라고 했다. 압둘라 셰드는 마리츠버그에 있는 인도 상인들과 또 다른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보를 쳐서 나를 만나 보살펴 주라고 했다. 상인들은 역으로 나와, 나를 만나서 자기네가 당한 갖가지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나를 위로해 주면서, 내가 당한 그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들은 또 1등이나 2등 차로 여행하는 인도인은 역원과 백인 승객들로부터 천대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날은 그렇게 하여서 그런 불행한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보냈다. 저녁 차가 도착했다. 나를 위해 남겨놓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나는 더반에서 거절했던 침대표를 마리츠버그에서 샀다. 기차가 찰스타운에 도착했다.
 












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9장 도래종교

    1.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Orpheus)는 그리스에서 독자적인 신앙 오르페우스교를 정립하고 교리교본을 낸 최초의 교주이다. 또한 그리스 신하에 등장하는 최고의 음악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오르페우스에 관한 신화는 매우 모호하고 윤색이 심하여 상징화되어 있으며, 먼 옛적부터 내려오던 전승이 큰 규모의 신화로 확대되고 문학적으로 대중화되었다. 오르페우스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그리스도교의 초상화에도 그 양식이 도입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그러나 모친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어 폴류흄니아 혹은 드물게는 타뮤리스의 딸 메니페라는 설도 있다. 오르페우스 자신도 아폴론의 아들 또는 제자라는 설이 있는데, 수금을 아폴론이 주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원래 트라키아인으로, 뮤즈와 마찬가지로 올림포스 접경에 살며 트라키아인 옷차림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림과 조상에 나타난다. 신화작가는 오르페우스를 비스토니아, 오아류세스, 마케도니아의 왕이라고 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노래와 음악의 거장이자 시인이다. 수금 류레와 옛 하프인 키타라를 잘 켰는데 특히 키타라는 오르페우스의 창작품이라고 전한다. 혹 창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기의 현을 7본에서 9본으로 확장하였으며 이는 9명의 뮤즈에 현 수를 맞추었다고도 전한다. 진부야 어떻든 간에 오르페우스의 노래 솜씨는 신묘하고 매우 부드러우면서 향기를 느끼게 하여 야생의 금수들이 모여들고 산천초목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격류는 흐름을 멈추었다. 포악한 인간조차도 온순해졌다.

  오르페우스는 아르고 호의 원정대원으로 가담하여 타 대원보다는 힘이 약해 노를 젓는 대신 키잡이 역할을 하며 폭풍을 만나면 노래로 선원을 안정시키고 파도를 잠재웠다. 신앙심이 두터워 독자적으로 사모트라케 섬에서 비의를 시작하고 대원들을 위하여 카바리(곡물의 여신으로 데메테르의 별칭)에게 제사를 올렸다. 후에는 먼 항해에 황망하고 거칠어진 동료들도 비의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 신앙이 발전하여 오르페우스교의 효시가 되었다. 콜키스로 항해하는 도중 죽음을 부르는 세이렌의 달콤한 노래를 능가하는 감동적인 노래로 위험한 유혹을 차단하고 선원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트라키아에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에우류디케와 결혼하여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나 얼마 후 아내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지하세계까지 내려가 다시 아내를 데려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오르페우스 신화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이다.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문학적으로 윤색되어 전재된 것 같다. 특히 베르길리우스가 지은 '농경가' 속에 가장 풍부히 수식되어 완전한 이야기로 시렸다.

  에우퓨디케는 물의 요정 나이아스 또는 숲의 요정 드류아스라 하고 때로는 아폴론의 딸이라고도 한다. 하루는 트라키아의 개울 근처를 거닐던 중 그녀에게 반한 아리스타이오스(아폴론과 요정 큐레네의 아들)의 추적을 받았다. 그를 피해 도망치던 에우류디케는 풀밭에 도사린 뱀을 밟아, 발 뒤꿈치를 물리고 결국 그 독으로 생명을 잃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어찌할 바 몰라하던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다시 찾을 일념으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수그모가 노래로 하데스 나라의 사공 카론과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괴물 개 케르베로스는 물론 명계의 모든 신들까지 매혹시켰다. 그뿐 아니라 이 황홀한 음악과 노랫소리에 모든 사물이 그만 시적 환상의 절정에 잠겨 버렸다. 익시온의 수레바퀴(헤라를 범하려다 영구히 회전하는 불의 수레바퀴에 묶임)가 회전을 멈추었으며 사슈포스의 바윗돌도 굴러 내리다 멈추었다. 탄탈로스는 갈증과 허기를 잊었으며, 다나이데스(신랑을 죽인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노역을 함)는 물긷기를 잊어버렸다. 복수의 여신조차 마음이 누그러지니 명계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아내 사랑에 감동되어 에우류디케를 남편에게 보내기로 승인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단 대신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지하세계를 다 지날 때까지 오르페우스는 뒤를 쫓아오는 처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여기에 순종하기로 약속하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거의 해가 있는 지상에 다가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 한 약속을 잊고, 또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혹 페르세포네가 속임수를 쓴 것이 아닐까? 정말로 에우류디케가 쫓아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만 돌아보고 말았고, 이에 뒤따라오던 에우류디케는 기절하여 쓰러지고 영혼은 안개같이 명계로 사라져 결국 다시 죽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다시 살리려고 애쓰나 사공 카론은 막무가내로 명계의 강을 건네주지 않았다. 비통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홀로 인간세계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르페우스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도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가장 보편적인 설은 트라키아의 여인들에게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유는 많고 복잡하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세상을 등진 채 오직 죽은 에우류디케의 추억에만 골몰하며 트라키아 여인들을 멀리하자 이에 여자들이 모욕당한 것으로 느끼고 분개하였다. 게다가 오르페우스는 여자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젊은 남자와 같이 다녔는데, 심지어 동성연애에 빠져 남색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하며 상대는 미소년인 칼라이스(보레아스의 아들)였다고 한다. 더 믿을 만한 설은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를 다녀와 그 곳의 경험을 토대로 비의를 올리는데 여자의 참여를 금하였다 한다. 젊은이들은 무기를 밖에 풀어놓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건 다음 의식에 참여하였는데, 어느 날 밤 여자들이 몰려와 그 무기를 집어들고 남자들이 나타나자 오르페우스와 함께 죽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디오뉴소스를 신봉하는 젊은 여자들과 마주쳐 박살당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설에는 아프로디테의 저주에 연유한다고 한다. 즉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 때문에 페르세포네와 다툴 때 제우스의 지시로 칼리오페(오르페우스의 모친)의 중재를 받아야 했다. 이 때 칼리오페는 두 여신에게 아도니스를 계절에 따라 교대로 데리고 있으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도니스를 독차지하고 싶어했던 아프로디테는 이 결정에 화가 났으나 칼리오페에게는 직접 복수할 수 없어 그 아들 오르페우스를 괴롭혔다. 즉 트라키아 여인들로 하여금 오르페우스와 사랑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연정을 갖지 않고 또 가까이 하지도 않자 자존심이 상한 여인들은 무시당한 원한으로 오르페우스를 박살내었는데 이 때 떨어진 머리에서는 계속 에우류디케를 부르고 있었다 한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오르페우스가 제우스의 벼락으로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즉 오르페우스가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되자 이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때로는 디오뉴소스와 같이 엘레우시스의 비교를 창설하였다고도 한다.  오르페우스 죽음에 대한 정설에 따르면, 트라키아 여인들에게 박살을 당한 후 그 시체는 개울에 던져져 바다로 떠내려 갔다고 한다. 머리와 수금이 레스보스에 와 닿자 주민들은 정중히 장례를 치르고 묘소를 만들어 주었다. 이로 인하여 레스보스 사람들은 그 보상으로 음악과 시적 재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 예를 들면 중동지방의 멜레스 강구에도 오르페우스의 묘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오르페우스의 신체 조각은 뮤즈가 모아 피에리아에 매장하였다.

  오르페우스 살해 후 트라키아 전역에는 역병이 번져 나갔다. 신탁을 받아 보니 음악의 장인을 죽인 벌이니 역병에서 벗어나려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찾아 응분의 제사를 올려 영예롭게 추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먼 곳까지 널리 찾은 바 멜레스 강구의 모래 밑에 매장된 머리를 어부들이 발견하였다. 피가 묻어 있는 머리에서는 그 때까지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테살리아에는 그 무덤에 대해 또 다른 괴이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즉 레이베트라 지방에 있었던 일인데 트라키아의 디오뉴소스의 신탁에 의하면, 오르페우스의 재(유골)에 햇빛이 닿으면 그 도시는 한 마리의 돼지 때문에 패망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돼지 때문에 도시가 파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그 예언을 비웃었다. 그런데 여름철 어느 날 한 목동이 오르페우스 무덤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오르페우스의 혼이 깊이 스며들어 아름다운 음성으로 오르페우스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이 노래를 듣자 일을 멈추고 소리 나는 무덤 주위에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 때문에 묘소와 기념비가 무너지고 위인의 석관을 덮쳐 유골이 햇빛에 노출되었다. 다음 날 밤 격렬한 폭풍우가 일어 슈스(그리스어로 돼지라는 의미) 강물이 넘치고 다시 둑을 넘어 도시를 덮쳐 버렸다. 설명할 수 없던 기이한 신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죽은 다음 천상에서도 인정되어 수금은 별자리에 올랐다. 오르페우스의 영혼은 지하세계의 낙원에서 지내며 원삼을 두르고 축복받는 영혼들을 위하여 계속 노래를 불렀다. 오르페우스 신학의 형성과 정립의 배경에는,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에 다녀왔기 때문에 축복받은 영혼이 지내는 낙원에 갈 수 있는 방법과 죽은 다음에 영혼을 위협하는 어려운 과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믿는 데 있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과 같이 여러 시문 특히 송사, 신통기나 아르고 원정 서정시의 구절을 색인한 명지를 묻는 습관은 오르페우스의 그러한 속성 때문이다. 초기 오르페우스 시문은 유실되고 후기에 가서 오르페우스 종파의 재료를 토대로 아리스토텔레서는 '오르페우스 서사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또한 피시스트라토스 왕실에서 지낸 오노마크리토스는 '오르페우스 시'를 썼는데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많은 후기 작가들은 오르페우스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선조라는 설을 전하고 있다.

 












문학자료 → 수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미스터 씽

  남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북인도 고락푸르로 가는 3등석 기차안에서의 일이다. 나는 옆좌석에 앉은 시크교인과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검은 터번을 머리에 두른 중년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인데르짓 씽이었다. 나는 그를 미스터 씽이라고 불렀다.
  "미스터 씽,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스터 씽이 대답했다.
  "신은 내 옆에 계십니다."
  깜짝 놀라는 척하며 내가 말했다.
  "당신 옆에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데요. 내가 신이란 말인가요?"
  그랬더니 미스터 씽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물론 신은 당신 속에도 계시고, 이 기차 안에도 계시고, 우리 집에도 계십니다."
  "그럼 내가 당신 집에 가봐도 되겠습니까?"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섭니까?"
  "아닙니다. 미스터 씽, 난 다만 당신이 사는 집에 가보고 싶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당신과 친구가 됐으니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원래 고락푸르에서 내릴 예정이었던 나는 미스터 씨의 집에 초대받아 도중의 럭나우에서 기차를 내렸다. 하이데라바드에서 럭나우까지의 기차 여행은 38시간이 걸렸다. 미스터 씽의 집은 럭나우 시내에서 10분 거리인 알람바그 가에 있었다. 집의 이름은 반다리 빌라였지만, 단층에다 원룸 형태의 집이었다. 방이 곧 거실이고, 거실이 곧 방이었다.
  "미스터 씽, 당신의 성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시크교인의 집에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밀실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스터 씽은 두 손을 벌려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소라니요? 나에겐 성소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 집 전체가 내 성소입니다."
  미스터 씽에게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고, 부인은 전형적인 인도 여인이었다. 미스터 씽은 전기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집 안에서 사용하는 전기료는 면제 혜택을 받았다. 월급은 한 달에 4천 루피(12 만원). 결코 적은 월급이 아니다. 미스터 씽은 휴가를 맞아 가족을 데리고 남인도 하리데라바드에 있는 시크교 성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두 아이는 외국인의 방문에 무척 들떠서 걸상을 들고 온다. 바나나를 가져온다 하며 야단이었다. 저녁을 기다리는 사이에 내가 물었다.
  "미스터 씽, 당신은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지 않습니까? 인도인들은 흔히들 갠지스 강을 강이 아니라 어머니이자 생명의 여신이라고 하던데요."
  이웃집에서 빌려온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미스터 씽이 말했다.
  "우리 시크교인들은 신분 차별 제도나 갠지스 강 순례에 반대합니다.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그 물을 마신다고 해서 불결한 마음이 씻어지는 건 아닙니다."
  내가 또 물었다.
  "당신의 신은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인내심을 갖고 생을 살아갈 것과,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세속적인 것에 뜻을 두지 말고 영적인 길을 걸어가라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성실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저녁은 성찬이었다. 온갖 인도 음식과 과일이 좁은 테이블에 가득 올라왔다. 냉장고는 없었다. 다른 인도 가정처럼 음식은 모두 손으로 먹었다.  미스터 씽의 집에 전화나 전축은 없었다. 구닥다리 텔레비전이 유일한 전자제품이었다. 구식 카메라가 하나 있긴 했다. 50 밀리 표준렌즈가 달린, 일회용 카메라처럼 생긴 인도제 카메라였다. 미스터 씽은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말씨는 부드러웠고, 가식이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번도 허풍을 떨거나 경박하게 웃지 않았다. 그의 부인 역시 기품이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미소짓는 게 전부였으며, 함부로 대화에 끼여들지 않았다. 원룸뿐인 집에서 전부 다 함께 잘 수는 없었다. 외국 손님을 위해 미스터 씽은 급히 잠자리를 마련했다. 집 근처에 있는 친구 소유의 건물 2층이 마침 비어 있었다. 미스터 씽은 매트리스와 담요를 끌어안고 가서 그곳에다 편안하게 자리를 깔아주었다. 어디서 모기향까지 구해 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미스터 씽의 가족과 함께 럭나우 박물관을 구경했다. 우리는 박물관 앞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나 때문에 미스터 씽은 그날 아침 사원 예배에 불참했고, 회사도 결근했다.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는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신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신께서도 우리의 만남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붙였다.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

  그날 밤 열 시 30분에 나는 럭나우 역에서 바라나시 행 기차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미스터 씽은 직장 출퇴근을 위해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었다. 그는 뒷자리에 아내를 태우고 기차역까지 환송을 나왔다. 어두운 럭나우의 밤거리를 내가 탄 릭샤가 앞서 달리고, 뒤에서 미스터 씽의 스쿠터가 붕붕거리며 따라왔다.  럭나우 기차역은 인도의 기차역답게 인파로 가득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야반도주를 하듯 기차역 바닥에 세간살이를 늘어놓고 잠들어 있었다. 기차 또한 인도의 기차답게 몇 시간이나 연착했다. 떠나는 걸 보겠다며 밤 한 시가 넘도록 기차를 기다리다가, 미스터 씽과 아내는 마침내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역 앞까지 나가서, 스쿠터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스쿠터 뒤에 매달린 빨간 등이 가물거리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자기 집에 찾아온 이방인 친구를 위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도 취소하고 회사까지 결근하는 미스터 씽이 있었기에, 기차역에서 몇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새벽 네 시경에 기차가 꽈앙 하고 경적을 올리며 미안한 기색도 없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인파를 헤치고 바라나시행 기차에 뛰어올랐다. 그때가 12월 31일,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바탕화면






『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958 독서편지 - 제958호 2014.12.30
957 독서편지 - 제957호 2014.12.29
956 독서편지 - 제956호 2014.12.05
955 독서편지 - 제955호 2013.05.13
954 독서편지 - 제954호 2013.04.19
953 독서편지 - 제953호 2013.04.03
952 독서편지 - 제952호 2013.03.28
951 독서편지 - 제951호 2013.03.27
950 독서편지 - 제950호 2013.03.18
949 독서편지 - 제949호 2013.01.31
948 독서편지 - 제948호 2013.01.25
947 독서편지 - 제947호 2013.01.24
946 독서편지 - 제946호 2013.01.24
945 독서편지 - 제945호 2013.01.23
944 독서편지 - 제944호 2013.01.21
943 독서편지 - 제943호 2013.01.16
» 독서편지 - 제942호 2013.01.10
941 독서편지 - 제941호 2013.01.08
940 독서편지 - 제940호 2013.01.07
939 독서편지 - 제939호 2013.01.0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8 Next
/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