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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7:20

독서편지 - 제9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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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41호











2013.1.8 (음11.27) / 발송인:



nowmaster@nate.com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 휴 프래더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엄마의 집 - 이서린

엄마의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차마 바로보기 민망한 순간
한 호흡 쉬고 바라보는데
문득 마주친 엄마의 눈빛

그 무성한 숲은 어디로 갔을까
지아비 받들고 새끼들 쏟아내던
깊은 우물과 숲을 거느린
엄마의 집은 언제부터 비었을까

할머니 이쪽 다리 들어보세요
예, 됐어요 이젠 반대쪽 다리
간병인과 함께 기저귀 갈다
처음 본 엄마의 오래된 집

수줍고 부끄럽던 한 시절 지나
햇빛 한 장에 드러난 해묵은 집 한 채
전설처럼 농담처럼 구구절절 사연 품고
엄마는 시원한 듯 아기처럼 웃었다

병실 밖 언덕에는 구절초가 지천인데
해는 저만치 산을 넘어가는데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
손을 잡고 노을만 바라보았다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대가를 지불할 준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그린스 포인트 쇼핑 센터에서 내가 아내 마리안느와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날마다 한 베트남인이 우리에게 찹쌀 도너츠를 팔러 왔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미소 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짓과 미소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 반 부였다. 레 반 부는 낮엔 제과점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회화테이프를 들으며 영어를 배웠다. 나중에 나는 그들 부부가 제과점 뒷방에서 톱밥이 가득 든 자루들을 바닥에 깔아 놓고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 살 때 반 부 가문은 동남아시아에서 손꼽힐 정도의 부자였다. 그들은 북부 베트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공장들과 부동산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이 월맹군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된 다음에는 레 반 부는 모친과 함께 남부 베트 남으로 이주해서 학교를 다녔으며, 마침내 변호사가 되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레 반 부 역시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남부 베트남에 미국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고는 그들의 위한 주택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는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그러나 레 반 부는 북부 지역을 여행하던 도중에 월맹군에게 체포되어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그 후 그는 다섯 명의 군인을 죽이고 탈출해 남부 베트남으로 왔으나 그 곳 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월남 정부가 그를 월맹군의 첩자로 간주했던 것이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나온 레 반 부는 어업 회사를 시작했다. 몇 년 뒤에 그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통조림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미군과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들은 레 반 부는 인생을 바꾸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숨겨 갖고 있던 금을 꺼내 작은 어선에 싣고 아내와 함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미국 함정으로 다가갔다. 그는 자기의 전재산을 내주고 필리핀까지 안전하게 수송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필리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필리핀 대통령과 만나는 행운을 얻은 레 반 부는 대통령을 설득해 어선 한 척을 얻었다. 그는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2년 뒤 필리핀을 떠나 미국으로 갈 때까지 레 반 부는 필리핀 전역에서 성공적인 수산 공장을 건설했다. 미국으로 간 것은 그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던 도중에 레 반 부는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실의와 좌절에 빠졌다. 그가 모든 걸 포기하고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의 아내가 그를 발견했다.
 "레!"
 아내가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바다로 뛰어내리면 난 어떻게 되죠? 우린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많은 일을 함께 겪었어요. 그러니 죽는 것도 함께 죽는 것도 함께 죽어요."
그 말이 레 반 부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72년에 레 반 부가 아내와 함께 미국 휴스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주머니에 한푼도 없었고, 영어도 할 줄 몰랐다.동양인들은 친척끼리 돕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레 반 부와 아내는 사촌이 경영하는 그린스 포인트 쇼핑센터의 제과점 뒷방에서 미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우리 부부의 미용실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이 말하듯이,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이다.

 레 반 부의 사촌은 두 사람에게 제과점의 일자리를 주었다. 레 반 부는 일주일에 175달러, 아내는 125달러를 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한 해 수입은 모두 합해 15,600달러였다. 나아가 그의 사촌은 그들이 3만 달러의 계약금만 지불할 수 있다면 제과점을 그들에게 팔겠다고 제의했다. 나머 지 9만달러는 사촌이 빌려 주기로 했다. 레 반 부와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했다. 두 사람의 수입이 일주일에 3백 달러였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제과점 뒷방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두 해 동안 쇼핑센터의 화장실에서 스폰지로 목욕을 했다. 그 두 해 동안 그들은 제과점의 빵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두 해 동안 그들은 전부 합해 일 년에 6백 달러(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썼으며, 마침내 계약금으로 낼 3만 달러를 저축했다. 레 반 부는 말했다.
 "우리가 일주일에 3백 달러를 번다고 해도 아파트에서 생활하려면 월세를 내야만 했다. 그리고 물론 가구도 있어야 했다. 그 다음엔 아파트에서 직장까지 오갈 교통수단이 필요했는데, 물론 차를 한 대 사야 했을 것이다. 자동차에 따른 보험금뿐만 아니라 기름값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린 자동차를 끌고 여기저기 놀러 가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려면 옷과 화장품도 필요했 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아파트에서 살면서 결코 3만 달러를 모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 다."
 이제 당신은 레 반 부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더 남아 있다. 두 사람이 3만 달러를 저축해서 제과점을 산 뒤에 레 반 부는 다시금 아내와 마주 앉아 진지한 토론을 했다. 그들은 아직 사촌에게 9만 달러의 빚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두 해 동안 힘들긴 했지만 다시 한 해 더 제과점의 뒷방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인 레 반 부는 제과점에서 나온 이익금을 그야말로 땡전 한푼까지 모은 끝에 일 년 만에 사촌에게 진 빚 9만 달러를 갚았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매우 수익성 높은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때가 되어서야, 레 반 부 부부는 첫 아파트를 얻었다. 오늘까지도 그 들은 수입의 극히 적은 액수로만 생활하면서 저축을 계속하고 있으며, 물건을 살 때는 항상 현금으로만 산다. 그래서 당신은 레 반 부가 오늘날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백만장자보다 수십 배가 넘는 부자가 되었다.

 - 존맥코막

 












문학자료 → 과학



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5장 -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1/2

        개체는 이기적 기계이다
  이 장에서는 오해가 많은 공격에 대한 화제에 대부분을 맞추기로 하자. 이어서 개체를 자기의 유전자 전체에 적합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행하도록 프로그램된 이기적 기계라고 보기로 하자. 이것은 편의상의 말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또다시 개개의 유전자의 말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인연의 개체가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이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자칫 반격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 기계도 또한 미래를 위해 자기의  불사신의 유전자를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선택되는 것은 환경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이다. 이것에는 다른 종과 같은 종을 불문하고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두더지와 지빠귀
  어떤 경우에 생존 기계는 서로의 생활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예컨대 두더지와 지빠귀는 먹거나 먹히거나 하지도 않고 교미를 할 필요도 없고 생활 장소를 가지고 싸울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아주 독립된 존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한 예로 지렁이를 가지고-다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두더지와 지빠귀가 지렁이를 가지고 줄다리기라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빠귀는 일생 동안 두더지를 보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더지의 개체군을 근절 또는 죽였다고 하면 지빠귀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상세한 것이 어떻고 어떠한 우여곡절을 겪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까지 마구잡이로 말하는 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다. 종이 다른 생존 기계끼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포식자이기도 하고, 먹이가 되기도 하고, 기생자이기도 하고, 숙주이기도 하고, 어떤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싸우는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또 벌이 화분 운반자로서 꽃에게 이용당할 때와 같이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수도 있다.

      동종끼리의 경쟁
  같은 종의 생존 기계끼리는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종에  속하는 개체군의 반수는 짝짓기 상대가 될 수 있는 개체이고, 또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고, 또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같은 종의 구성원이 서로 잘 닮아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 수단을 가지고 유전자를 지키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둘러싼 직접적인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한 마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가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한 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가 경쟁 상대이기도 하나 다른 지빠귀만큼 중요한 경쟁 상대는 아니다. 두더지와 지빠귀는 지렁이를 가지고 다니나, 지빠귀끼리는 지렁이 및 그 밖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그들이 동성이라면 교미 상대를 가지고도 다투게 될 것이다. 보통 수놈은 암놈을 가지고 싸운다. 이것은 한 수놈이 경쟁 상대의 수놈에게 해로운 짓을 하면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신사적인 동물
  그렇다면 생존 기계에게 논리적으로 바른 방침은 자기의 경쟁자를 죽여서 가능하면 먹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같은 종을 서로 잡아먹는 좋을 실제로 자연계에서 졸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의 소박한 해석에서 예측되는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실 로렌츠는 동물의 싸움, 즉 '공격'은 억제 가능한 신사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동물의 싸움이 복싱이나 펜싱의 규칙처럼 규칙에 따라 싸우는 형식적인 시합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글러브를 낀  주먹과 끝을 둥그렇게 만든 검으로 싸운다. 위협과 겁주기가 목숨을 건 결투를 대신한다. 승자는 항복의 몸짓을 인정하고 때려 죽이거나 물어 죽이거나 하는, 우리의 소박한 생각에서 예견되기 쉬운 행동을 삼간다.

        인간만이 카인의 후예이다
  동물의 공격은 억제가 가능한 형식적이라는 이 해석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특히 불쌍한 호모 사피엔스만이 자기의 종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고 카인의 후예이며, 이 같은 멜로드라마적인 죄를 품은 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자연주의자가 동물의 공격의 광포도를 강조하든가 억제를 강조하든가 하는 것은, 하나는 그 사람이 관찰하여 온 동물의 종류에 따라,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진화론상의 선입관에  따라 좌우된다. 로렌츠는 요컨대 '종의 이익'을 주장한다. 동물의 싸움을 글러브를 낀 주먹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일종의 이타주의처럼 보인다.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이것을 설명한다는 어려운 일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물들이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기 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철저한 호전자에게는 이익(이득)과 동시에 손실도 있고, 더욱이 그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B와 C는 모두 나의 경쟁자이고, 내가 마침 B를 만났다고 하자. 이기적 개체인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나, 한편으로는 C도 또한 나의 경쟁자이고 동시에 C와 B도 서로 경쟁자이기도 하다. 내가 B를 죽이면 친절하게도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해 주는 것이 되지 않는가. B를 살려 두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하면 그는 C와 다투거나 싸우거나 할 것이고 결국 나에게는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이 단순한 가정의 예에서  보여 주는 교훈은 그저 함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뚜렷한 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 앞의 경쟁자를 없앤다고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만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한 경쟁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충 방제 관계자들로부터 배운 쓰라린 교훈이기도 하다. 농작물에 심한 피해를 입히는 해충이 있어 좋은 근절법을 발견하여 기꺼이 이 방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그저 이 해충의 절멸에 의해 작물보다는 다른 해충이 득세하여 전보다 더욱 심한 상태로 될 뿐이다.

      바다표범과 하렘
  한편 어떤 특정한 경쟁자를 잘 계획하여 죽이거나 또는 적어도 싸운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B가 암놈이 많이 있는 큰 하렘(harem ; 한 마리의 수컷을 둘러싼 여러 암컷)을 가진 바다표범이고, 다른 바다표범인 나는 그를 죽임으로써 그의 하렘을 입수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이다. 대개 상대를 선택하여 싸움을 걸어 봤자 손실과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B가 반격해서 가치 있는 재산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이익에 연관된다. 만약 싸움이 벌어졌을 경우 내가 죽을 확률을 상대와 같다. 아니 아마도 내가 죽을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내가 싸움을 거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전승으로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도전하여 다른 개체를 수없이 격퇴하여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전사임에 틀림없다. 비록 전승으로 하렘을 차지하더라도 나는 이 싸움에서 상처 투성이가 되어 이익을 즐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싸움은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한다. 이 시간과 에너지는 당장에는 축적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당분간 싸움보다는 먹는 것에 전념하고 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장차에는 강대해질 것이다. 언제가는 하렘을 가지고 그와 싸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두르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결국 승률이 높을 것 같다.

      유전자의 손익 계산
  이 독백의 예는 이론적으로 말하면 싸울 것인가 아닌가의 결단에 앞서 무의식적으로라도 복잡한 '손익 계산'이 이상적으로 앞서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확실히 싸워서 이득을 볼 때도 있지만 항상 싸울 때마다 그만큼의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싸우는 동안 그 싸움을 확대시키느냐 하는 전술적 결단에는 각각 손실과 이득이 있어 그것은 원칙적으로는 분석 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은 오랫동안 행동학자들에게 막연히 인식되어 왔으나, 자신을 가지고 이 발상을 분명히 표현하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는 행동학자로 인정되지 않는 메이나드-스미스(J.Maynard Smith)의 힘이 필요했었다. 그는 프라이스(G.R. Price)와 파커(G.A. Parker)와의 공동 연구로 게임 이론이라고 하는 수학의 한 분야를 이용했다. 그들의 훌륭한 이론은 수학 기호를 쓰지 않고도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단, 엄밀도에서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만 된다.

  메이나드-스미스가 제창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원래는 해밀턴(W.D.  Hamilton)과 맥아서(R.H. MacAthur)의 착상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는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보자.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라. 응수해 오면 도망쳐라."이해를 바라는 것은 이 전략을 개체가 의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물을 근육의 제어에 관해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를 갖는 로봇 생존 기계라고 생각해 온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 전략을 한 세트의 단순한  명령으로 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것에 관해 생각해 나가는 데는 편리한 방법이다. 확실히 모르는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동물은 마치 이들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즉 ESS는 개체군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개체군의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개체군의 나머지 부분은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로 하려고 하는 개체로 성립되어 있으므로 살아 남은 것은 어떤 이상 개체에 의해서도 개선될 수 없는 전략뿐이다. 환경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면 짧기는 하나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생기고 아마도 개체군 내에 변동이 보이는 일까지도 있다. 그러나 일단 ESS에 도달하면 그것은 그대로 남는다. 선택은 이 전략에서 이탈되는 것을 벌할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
  이 개념을 공격에 맞추기 위해 메이나드-스미스의 제일 단순한 가정적인 예 하나를 고찰하여 보자. 어떤 종의 개체군에는 매파형과 비둘기파형이라고 하는 두 종류의 전략밖에 없는 것으로 하자(이 이름은 세간의 관례적 용어에  따랐을 뿐이고, 이 이름을 제공하고 있는 새의 습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실제로 비둘기는 어느 정도 공격적인 새이다.)우리의 가정적 개체군의 개체는 모두 매파든 비둘기파든 어느 한편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매파의 개체는 가급적 항상 맹렬히 힘차게 싸우고 심하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 굴복하지 않는다. 비둘기파의 개체는 그저 무게 있고 규정대로 행하며 위협을 줄 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매파의 개체와 비둘기파의 개체가 싸우면 비둘기파는 그냥 도망치므로 다치는 일이 없다. 매파의 개체끼리 싸우면 그들은 한편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때까지 싸운다. 비둘기파끼리 부딪힐 때에는 어느 편이든 다치는 경우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 자세를 취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실증이 나거나 그 이상 버틸 필요가 없다고 결심하면 중지하게 된다. 또 특정의 경쟁자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해 놓자. 그는 경쟁자와 싸워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 뿐 그를 유도하는 특정의 개체와의 과거의 싸움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싸우는 양자에게 '득점'을 주기로 한다. 예컨대  승자에게는 50점, 패자에게는 0점, 중상자에게는 -100점, 장기전에 의한  시간 낭비에는 -10점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들 '득점'은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통화에 직접 환산되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 높은 득점을 얻은 개체, 즉 높은 평균 '득점'을 받고 있는 개체는 유전자 풀 속에 다수의 유전자를 남기는 개체이다. 이  실제의 수치는 제법 넒은 범위  내로 어떻게 취해도 분석에 지장이 없는 성질의 것인데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요긴하다.

  중요한 것은 매파가 비둘기파와 싸울 때 상대를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매파가 이기는 것은 뻔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매파형과 비둘기파형 중 어느 쪽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한쪽이 ESS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면 ESS인 쪽이 진화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두 개의 ESS가 있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만약 개체군의 대세를 공격하는 전략이 종종 매파형이든 비둘기파형이든 간에 어떤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었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가 있다. 이때에 개체군은 두 개의 안정 상태의 어느 것이든 좋으니까 종종 먼저 도달한 쪽으로 고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말하듯이, 실은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두 개의 전략은 어느 것이나 그 자체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진화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표시하려면 평균 득점을 계산하여야만 한다. 전원 비둘기파로 된 개체군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싸워도 다치지 않는다. 다툼은  아마도 긴 의식적인 시합, 더러는 노려보기만 하는 싸움이어서 어느쪽이든  기가 죽으면 결판이 난다. 이때에 승자는 싸워서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50점을 따나, 노려보기에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10점의 벌금도 내야 하므로 결국 40점이 되나. 패자도 역시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10점 깎인다. 평균하면 비둘기파의 개체는 모두 다툼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싸움당 그의 득점은 +40과 -10을 평균하여 +15점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비둘기파의 개체군 중의 비둘기파 개체는 모두 매우 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이 개체군에 매파형의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여기서 유일의 매파이므로 그는 모든 싸움에서 +50점을 기록하게 되며, 이것은 그의 평균 득점이 된다. 그는 순득점이 15점밖에 없는 비둘기파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누린다. 그것과 매파의 유전자는 그 개체군 내에 급속히 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매파의 각 개체는 이미 부팆핀 경쟁자가 모두 비둘기파라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매차의 유전자가 순조롭게 퍼져서 개체군 전체가 매파로 됐을 때 이번에는 모든 싸움이 매파끼리의 싸움이 되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매파끼리 부딪치면 한쪽이 다치기 때문에 -100점이 되는 반면, 승자는 50점을 딴다. 매파 개체군의 각 개체는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싸움당 평균 득점은 +50과 -100의 평균, 즉  -25점이다. 여기서 매파의 개체군 내에 비둘기파가 한 개체 있다고 하자. 확실히 그는 모든 싸움에서 패하는데, 그러나 한편 결코 부상하는 일이 없다.  매파 개체군 내의 평균 득점이  -25점인 데 비해서 그의 평균 득점은 매파 개체군 내에서 0이다. 따라서  비둘기파의 유전자는 그 개체군 내에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의 말투로 보면 마치 개체군 내에 부단히 진동이 있는 양 생각될지도 모른다. 매파의 유전자는 압승하여 우세를 점한다. 그러면 대다수가 매파로 되는 결과로 인해 비둘기파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 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의 유전자가 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나 이와 같은 진동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어디에나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임의의 득점 시스템으로 계산해 보면 안정된 비율은 비둘기파가 5/12, 매파가 7/12인 것을 알게 된다. 이 안정된 비율에 달하면 매파의 평균 득점과 비둘기파의 평균 득점은 꼭 같아진다. 이 때문에 선택이 이쪽보다 다른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만약 개체군 내의 매파의 수가 점점 늘기 시작하여 그 비가 7/12 이상으로 되면 비둘기파가 나머지 이익을 받기 시작하여 그 비율이 원래대로 되고 안정 상태가 된다. 안정된 성비는 50대  50인 것과 같이 이 가정적 예로는 매파 대 비둘기파의  비는 7대 5이다. 어떤 경우에도  안정점 부근에서 진동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히 큰 것이 될 수는 없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그룹 선택설에 약간 유사한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그룹 선택설에 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이  설명이 개체군에도 안정된 평형 상태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흐트러뜨리며 또다시 그 점까지 되돌아오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ESS는 그룹 선택보다는 훨씬 미묘한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성공하느냐 어떠냐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은 우리의 가설적 예의 임의 득점 시스템을 사용하면 잘 설면된다. 매파  7/12, 비둘기파 5/12로 된 안정된 개페군 내의 한 개체의 평균 득점은 6과 1/4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개체가 매파이든 비둘기파이든 같다. 그런데 이 6과 1/4이라는  것은 비둘기파 개체군 내의 비둘기파 개체의 평균 득점(15)보다 훨씬 낮다.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만 한다면 어느 개체도 유리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그룹 선택설에 의하면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한 집단은 어느 것이나 ESS 비에  머물러 있는 경쟁자 집단보다 성공할 것이다(실은 전원 비둘기파로 되려고 하는 합의된 집단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은 아니다. 매파 1/6과 비둘기파 5/6로 되는 집단에서는  싸움당 평균 득점이 16과  2/3이다. 이것이 생각한 것 중에서 가장 잘 된 합의인데  당장의 목적에서 하면 무시된다. 전원  비둘기파로 각 개체가 15점의 평균 득점을 갖는 집단이 ESS 집단보다 모든 단일 개체에게 훨씬 좋다). 따라서 그룹 선택설은 전원 비둘기파의 합의로 향해 진화할 것으로  예언함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매파가 7/12의 비율로 포함되어 있는 무리는 그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의 부수 조건의 난점은 장기간에 걸쳐 전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합의마저 배신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확실히 어떤 개체도 ESS 집단에 있는 것보다 전원 비둘기파의 집단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안됐지만 합의를 한 비둘기파의 집단에 태어난 한 개체의 매파는 너무도 팔자가 좋아서 아무도 매파의 진화를 막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합의된 집단은 불신 행위에 의해 내부로부터  붕괴되어 가는 운명에 매여 있다. 여기에 이르면 ESS는 안정하다. 그것은 ESS가 그것에 가세하고 있는 개체 입장에서 특히 유리해서가 아니고 단지 내부로부터의 불신 행위를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
  인간에게 있어 각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합의를 하거나 협정을 맺거나 하는 것은 가령 그것이 ESS라는 의미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이것이 되는 이유는 개인이 전원 의식적으로 장래를 예견하고, 그 협정의 규약에 따르는 것이 자기의 장기적 이익에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협정마저도 그 협정을 깨면 단기간에 큰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러게 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우세하게 될 위험을 갖고  있다. 이 가장 좋은 예는 아마도 가격 협정일 것이다. 가솔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고가로 정하면 가솔린 업자 전원은 장기간 이익을 차지한다. 장기간 높은 이익을 의식적으로 예상하고 결탁한 가격 협정 집단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에 자기만 가격을 인하하여 빨리 많이 벌고 싶다는 유혹에 말려드는 업자가 생겨난다. 그러면 당장에 그의 인근 업자도 가격을 내리게 되며 순식간에 인하 파동이 전국으로 퍼진다. 그래서  가솔린 업자 이외의 우리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의식적 배려가 재차 머리를 들고 새로운 가격 협정이 결성된다. 이와 같이 의식적으로 예견을 하는 재능을 갖춘 인간에게마저 장기적 이익에 기초하는 협정 또는 합의는 내부로부터의 붕괴의 위험선에서 동요를 계속하고  있다. 하물며 다투고 있는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야생 동물에서는 집단의 이익이나 합의의 전략이 진화한다고는 거의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방식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가설적 예에서는, 어느 한 개체는 매파나 비둘기파 중의 어느 한쪽이 된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을 했다. 그리고 결국 매파와 비둘기파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비율로 됐다.  이래서 매파의 유전자와 비둘기파의 유전자의 안정된 비율이 유전자  풀 내에 확립되는 것이다. 유전학 용어로는 이 상태를 안정 다형(stable polymorph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다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이 하여 똑같이 ESS가  달성될 수 있다. 어느 개체라도 각각의 다툼에 있어서 매파처럼 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고 하면 전 개체가 같은 확률로, 즉 우리의 예대로 말하면 7/12의 비율로 매파처럼 행동하는 ESS가 달성된다. 실제로 이것은 각 개체가 이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할 것인가 비둘기파처럼 행동할 것인가를(대충이기는 하나 7대 5의 비율로  매파편에 많이) 결단하여 각각의  다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매파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하나 어떤 다툼에도 경쟁자는 자기의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를 추정하는  수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회의 다툼에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다음 계속해서 5회의 다툼에 비둘기파로 행동하는 등등의 방식은 안 된다. 만약 어떤 개체가  이처럼 단순한 순서를 택했다고 함면 그의 경쟁자는 얼른 이 순서를 깨닫고 이용할 것이다. 단순한 순서의 전략을 취하는 상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가 비둘기파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그에게  대해 매파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 게임
  물론 매파와 비둘기파의 이야기너무도 단순하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나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모델'이다.  모델에는 이 모델처럼 극히 단순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을 이해하기에 또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 단순한 모델은 보다 정교하게 할 수도 있고 점점 복잡해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잘 되면 모델은 복잡해질수록 현실 세계에 닮아 온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시초는 다시 몊 개의 전략을 추가하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만이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메이나드-스미스와 프라이스가 도입한 보다 복잡한 전략은 '보복파(Retaliator)'라고 불린다.

      보복파형과 허풍파형
  보복파는 모든 싸움에서 처음에는 비둘기파와 같이 행동한다. 즉, 매파처럼 철저하게 심한 공격을 하지 않고 규정대로의 위협 시합을 한다. 그러나 상대가 공격을 걸어 올 때면 보복한다. 바꿔 말하면 보복하는 매파에게 공격당했을 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하고 비둘기파를 만났을 때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보복파는 조건 전략자이다. 이러한 행동은 상대의 행동에 따라 정해진다. 또 하나의 조건 전략자는 '허풍파'이다. 허풍파는 누군가가 반격해 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나 매파처럼 행동한다. 반격을 당하면 즉시 도망친다. 또 다른 조건 전략자는 '시험  보복파'이다. 시험 보복파는 기본적으로는 보복파를 닮았으나 때로는 다툼을 조금 실험적으로 확대시켜본다. 그리고 상대가 반격하지 않으면 이때 매파형의 행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만약 반격을 당하면 비둘기파처럼 관습대로의 위협으로 되돌아간다.  공격을 받은 경우에는 보통의 보복파와 똑같이 보복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금까지 말한 다섯 개의 전략자 모두를 서로 자유로이 행동하도록 시키면 보복파만이 진화적으로 안정됨을 안다. 시험 보복파는 거의 안정적이다. 비둘기파는 그 개체군이 매파와 허풍파의  침략을 허락하므로 안정이 안 된다.  매파도 그 개체군이 비둘기파와 허풍파의 침입을 허용했으므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복파의  개체군은 보복파 자신보다 잘하는 전략이 다른 것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전략자에게도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둘기파는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는 같은 정도로 잘할 수 있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비둘기파의 수가 점점 불어나게 된다. 그런데 비둘기파의 수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면 시험 보복파가(그리고 덧붙여 말하면 매파와 허풍파도)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비둘기파에 대해 대처하는 법이  보복파보다 좋기 때문이다. 시험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 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전략 중에서 보복파뿐이었고 이 전략으로서 어느 정도 낫다는 데 지나지 않는 의미에서이다. 따라서 보복파와 시험 보복파의 혼합된 것이 아마도 양자간의 조용한 진동을 유지하면서 소수파인 비둘기파의 수의 진동과  관련지으면서 우세를 점하여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어느 개체라도  항상 있는 정해진 전략을 취한다는 다형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각 개체는 보복파, 시험 보복파 및 비둘기파가 복잡하게 뒤섞인 행동을 취할 수가 있을 석이다.

  이 이론상의 결론은 대부분의 야생 동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동물의 공격 중 '글러브를 낀 주먹'적 측면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했다. 물론 상세한 것은 승리나 부상이나 시간의 낭비에 주어진 '점수'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바다코끼리에 있어서 승리에 대한 보수는 큰 하렘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승리의 득점은 매우 높게 해 놓아야만 한다. 싸움이 격렬한 것도, 중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것도 벼로 이상할 것이 없다. 시간의 손실이라는 비용은 부상에 의한 비용과 승리의 이익에 비하여 아마도 적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추운 지방에서 사는 작은 새에게는 시간의 낭비라는 비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손실일 것이다. 새끼가 있는 박새는 30초마다 한 번꼴로 먹이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낮에는 일초일초가 귀중하다. 매파 대 매파 싸움에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시간까지도 이와 같은 작은 새들에게는 아마도 부상의 위험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자연계의 모든 현상의 비용과 이익에  실제의 수치를 맞추어 보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는 제멋대로 정한 수치에서 결론을 간단히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중요한 일반적 결론은 ESS가 진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ESS가 집단의 합의에 따라 달성되는 최적 조건과 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상식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나눔 → 고사성어



  犬牙相錯(견아상착)
  犬(개 견) 牙(어금니 아) 相(서로 상) 錯(섞일 착)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이야기.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건국 후, 각지의 이성(異姓) 제후(諸侯)들을 제거하고 같은 성씨(姓氏)의 인물들을 왕후로 봉하였다. 그러나 3번째 군주인 경제(景帝) 때에는 각 지역의 동성 제후들이 증대된 세력을 믿고 조정에 대항하며 제위를 다투었다. 오왕(吳王) 유비(劉 )의 반란이 평정된 후, 경제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봉하였다. 한무제가 제위를 계승한 후, 조정 대신들은 이러한 왕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며, 그들을 제거하도록 무제에게 건의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왕후들은 크게 노하여 "우리는 모두 황실의 골육지친으로서 선왕께서 땅을 주시어 마치 개의 이빨처럼 서로 얽혀있으며(犬牙相交錯), 서로 도와 도읍을 지키며 종실을 반석처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를 무고하다니,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들 중 중산정왕은 무제의 앞에서 대성통곡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한무제는 그들을 위로하면서도, 비밀리에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였다.  犬牙相錯 이란 많은 요인들이 얽혀 상황이 복잡함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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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7. 몇가지 경험

  나탈의 항구도시는 더반인데, 보통 포트 나탈이라 부르기도 한다. 압둘라 셰드가 거기서 나를 맞아 주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배가 부두에 닿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친구를 맞으러 배로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인도 사람들은 그리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압둘라 셰드를 아는 사람들이 하는 태도를 보니 어딘지 젠 체하는 데가 있는 것을 안 보고 넘길 수 없었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다. 압둘라 셰드는 거기 태연하게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상당히 이상히 여기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옷차림이 다른 인도 사람과 눈에 띄게 달랐다. 나는 프록코트에 터번을 썼다. 그것은 뱅골 사람들의 옷차림을 따른 것이다. 나는 상사로 가서 셰드의 방 옆에 따로 내놓은 내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도 나를 몰랐고 나도 그를 몰랐다. 그는 자기 동생이 내 편으로 보낸 글을 보고 더욱 당황했다. 그는 자기 동생이 자기에게 흰 코끼리를 하나 보냈다고 생각했다. 내 옷 스타일과 생활양식이 유럽인들처럼 고급인 줄로 알고 놀랐던 것이다. 그때에 내게 맡길 각별한 사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사건은 트란스발에서 진행중이었다. 나를 그곳으로 즉시 보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나의 능력과 정직을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나를 감시하기 위해 프리토리아에 갈 수도 없는 일이다. 피고들은 프리토리아에 있었는데, 그들이 내게 비겁한 흥정을 해올지도 모른다고 그는 의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사건에 관한 사무를 만일 나에게 맡길 것이 없다면, 다른 모든 사무를 그의 사무원들이 다 잘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면 내게 또 무슨 사무를 줄 수 있을까? 사무원들이 잘못이 있으면 문책할 수 있다. 내가 만일 잘못을 저지른다면 내게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만일 그 사건에 관해서 내게 줄 일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압둘라 셰드는 실제로 무식한 사람인데,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민한 지성의 소유자요, 또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 연습으로, 회화에 필요한 정도의 영어를 주워댈 수 있을 정도인데, 그것을 가지고도 그는 모든 사무를 다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은행 중역을 만나거나, 유럽 사인들과 거래를 하거나, 또는 그의 변호사에게 자기 사건 설명을 하거나, 무엇이거나간에 인도인들은 그를 매우 존경했다. 그의 회사는 당시 인도인 상사 중 가장 큰, 또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였다. 이런 모든 장점이 있는 중에 오직 하나 단점이 있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았다. 그는 이슬람교를 믿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이슬람교 철학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비록 아랍어는 잘 몰랐지만 코란과 이슬람교 문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실례를 많이 알고 있어서 언제나 척척 내놓았다. 그와의 접촉에서 나는 이슬람교의 실제적인 지식을 상당히 많이 배웠다. 우리는 서로 더욱 가까워진 다음 종교 문제에 대해 서로 긴 토론을 벌이곤 했다.

  내가 도착한 지 이틀인가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나를 더반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보여 주었다. 거기서 그는 나를 몇사람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의 변호인 옆에 나를 앉혔다. 치안판사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드디어 나에게 터번을 벗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하고 법정을 나왔다. 그래서 여기서도 싸움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압둘라 셰드는 어째서 인도인들이 터번을 벗으라는 요구를 받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슬람교 풍속을 지키는 사람은 터번을 그냥 쓰고 있지만, 그밖의 인도인은 법정에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벗어야 한다고 했다. 이 미묘한 차별을 이해하기 위해 좀 자세한 말을 할 필요가 있다. 이 2,3일을 지내는 동안에 나는 인도인들이 서로 다른 단체들로 갈라져 있는 것을 알았다. 하나는 이슬람교 상인들인데 그들은 자신을 아랍인이라 부른다. 또 하나는 힌두상인이고, 다른 하나는 파르시 사무원이다. 힌두사원들은 아랍인 들과운명을 같이하지 않는 한, 여기도 끼지 않고 저기도 끼지 않는다. 파르시 사무원들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인 이라고 한다. 이 세 단체는 서로 어떤 사회적관련을 가진다. 그렇지만 가장 큰 단체는 타밀과 텔루구와 북인도인의 계약노동자와 자유노동자로 구성되는 것이다. 계약노동자란 무엇인가 하면 5년동안 일을 해준다는 계약을 맺고서 나탈로 간 사람들인데 기르미티야라 불린다. 기르미티야란 기르미트, 곧 영어의 어그리먼트(agreement : 합의, 계약)가 잘못되어서 생긴 말이다. 다른 세 단체는 이들과는 사업적인 관계를 가질 분이다. 영국인들은 그들을 쿨리*1라 부르는데, 인도인의 대부분이 노동자기 때문에, 모든 인도인을 쿨리, 그렇지 않으면 새미(Samis)라 부르게 되었다. 새미란 타밀 사람들의 이름 뒤에 흔히 붙이는 접미사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산스크리트의 스와미(Swami), 다시 말하면 주님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인도인은  새미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거나, 또한 재치있는 사람이면 이렇게 대답을 돌려준다. 즉,  나를 보고 새미라지만 당신은 새미란 말이 주인이란 뜻인 것을 잊었소, 나는 당신의 주인은 아니오!  어떤 영국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쑥 들어가고 말지만, 또 화가나서 욕을하고, 때로는 때리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그를 보고  새미 라 한것은 모욕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주인이라 해석하니 도리어 자기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쿨리 변호사 로 알려졌다. 상인은 쿨리상인 이라 불리었다. 쿨리의 본래 의미는 잊혀지고 인도인에 대한 통칭이 되어 버렸다. 이슬람교 상인들은 그것이 싫어서  나는 쿨리가 아니오, 나는 아라비아인이오 하기도 하고,  나는 장사꾼이오 하기도 한다. 그 경우 예의있는 영국인이면 사과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번을 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기의 인도 터번을 못견디어서 벗는 것은 모욕을 가만히 당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인도 터번에 안녕을 고하고 영국 모자를 쓰기로 했었다. 그러나 압둘라 셰드는 그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일을 하시면 대단히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인도 터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머리에는 인도 터번이 썩 잘 어울립니다. 당신이 만일 영국 모자를 쓰신다면 시중꾼으로 알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조언 속에는 실제적인 지혜와 애국심과 그리고 다소 좁은 생각이 들어있었다. 지혜인 것은 분명하고 그리고 그가 인도 터번을 주장하는 것은 애국심 없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중꾼이라고 멸시하는 말은 생각이 좀 좁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계약노동자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그리고 그리스도 교도이다. 마지막 것은 계약 인도인들의 자손들인데 그리스도 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1893년에도 이미 그 수가 많았다. 그들은 영국식 옷을 입고, 그 대부분이 호텔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생활해 갔다. 압둘라 셰드의 영국 모자에 대한 비평은 이 계급을 두고 한 말이었다. 호텔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것을 천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이다.

  전체로 보아서 나는 압둘라 셰드의 충고를 좋게 생각한다. 나는 그 사건을 신문에다 써 보내면서 내가 법정 안에서 터번을 쓴 것을 변호했다. 그 문제가 여러 신문에서 많이 논란이 되었고 거기서는 나를  반갑지 않은 방청객 이라고 불렀다. 그와 같이 하여서 나는 남아프리카에 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기대하지 않았던 광고를 내게 되었다. 더러는 나를 지지해 주었고 그외에는 나를 만용이라고 혹독히 비판했다. 나의 터번은 사실상 내가 남아프리카에 머물던 끝날까지 그대로 있었다. 내가 언제 어째서 내 머리에서 터번을 걷어치우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다음에 말하기로 한다.

*1. Coolies : 본래는 노력이란 말에서 나왔다. 서양인들이 중국 노동자를 멸시해서 부른 말인데, 후에는 중국인에 한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유색인종에 대해 모욕하는 뜻으로 썼다. 이밖에 같은 뜻으로 창(Chang) 이라는 것도 있다. 그것은 China에서 나온 말이요, 일본인도 중국인을 멸시해서  시나징 또는 창고로 라고 했는데 역시 China에서 나온 말이다.
 












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8장 인간의 탄생 및 기타

     3. 뮤즈

  뮤즈(Muses)는 므메모네슈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로 아흐레 밤을 정애로 동침하여 낳은 소산이다. 다른 전승에서는 뮤즈를 하르모니아의 딸, 또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가계나 족보로 보아 명백히 상징적 음악의 관념에 연유한 인격신일 것이다. 뮤즈는 시문을 읊고 노래와 무용의 재능을 가진 여신(요정)들로, 합창과 반주 및 음송으로 제우스 및 여러 신들을 기쁘게 하고 그 외 인문, 예술 및 과학 등 문화적인 모든 일을 관장한다고 보았다. 헤시오도스는 인류를 위한 뮤즈의 은혜를 찬양하였는데 특히 왕들과 같이 행동하여 싸움을 진정시키며 설득력에 영감을 주어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평화를 유지하게 하며 왕들에게 온화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민에게 사랑을 베풀게 한다고 찬양하였다. 뮤즈의 한 여사제는 지난날의 위대한 인물의 행적을 세상에 알리는 시를 읊게 하고 혹은 신과 인간의 고난과 슬픔을 금방 잊도록 하였다. 가장 오랜 노래로는 올림포스 신족이 티탄족에 승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시키는 시를 들 수 있는데, 음송과 합창으로 축하하였다.

  뮤즈에는 크게 두 가계가 있어 하나는 피에리아 산 마을에 사는 트라키아 여인들이고 또 하나는 헬리콘 산록에 있는 보이오티아 여인들이다. 전자는 올림포스 근방에 거주하며 흔히 시문에서 회자되는 피에리데스인데, 오리페우스 신화와 연줄이 닿고 디오뉴소스 예찬에 관여하며 트라키아에서 강세를 이루었다. 다음 헬리콘 산의 뮤즈는 직접 아폴론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천마 페가소스의 발굽이 닿아 솟아났다는 히포크레네(말의 샘)에서 노래를 하였다. 그외 다른 고장의 뮤즈도 있다. 이들은 요정 카리테스의 구성과 같이 세 명이 한 조로 되어 델포이와 시큐온에서 활동하였는데, 레스보스에서는 일곱 명이 한 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옛적 뮤즈는 아홉 명을 정원으로 하며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고의 존대 대상은 칼리오페이고, 이어 클리오, 폴류흄니아, 에우테르페, 테르프시코레, 에라토, 멜포메네, 탈리아 및 우라니아이다. 이들 뮤즈에게는 작가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특기가 부여되었다. 예컨대 칼리오페는 서사시, 클리오는 사실적인 시, 폴류흄니아는 몸짓, 에우테르페는 플루트, 테르프시코레는 경쾌한 시와 무용, 에라토는 서사시 합창, 멜포메네는 비극시, 탈리아는 희극시, 우라니아는 천문의 시를 담당하였다. 이들 뮤즈는 자신들의 전승 고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시인에게 영감을 부여하였다. 신들이 개최하는 큰 축제와 향연에서는 노래와 반주, 무용을 담당하였는데, 예를 들면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잔치나 하르모니아와 카드모스의 결혼연을 들 수 있다.

  칼리오페
  칼리오페(Calliope)는 제우스와 므네모슈네의 딸이며 9명의 자매 뮤즈 중 한 명으로, 다른 자매들과 달리 특별한 노래 재능은 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수금에 맞추어 시정시를 읊는 여신 뮤즈로 등장하고 있다. 페르세포네와 아프로디테가 미소년 아도니스를 사이에 놓고 갈등을 일으켰을 때는 제우스의 지시로 중재역을 맡았다. 바른손에는 트럼펫, 또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칼리오페는 때에 따라 세이렌, 리노스와 레소스의 어미라고도 한다.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혹은 아폴론)와 관계하여 오르페우스, 리노스를 낳았다.

 












문학자료 → 수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기차는 떠나고

  한 사람이 멀리 기차 여행을 떠나는데, 그가 키우는 소와 염소와 닭까지 환송을 나와 기차역에서 마구 배설을 하며 돌아다니는 나라는 지구상에 인도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행 떠나는 사람은 이불과 매트리스, 냄비, 들통 따위의 세간을 전부 챙겨들고 기차에 오른다. 흑백 영화에나 나옴직한 양철로 된 큼지막한 트렁크도 필수품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런 트렁크를 대여섯 개씩 머리에 이고 등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크고 네모진 가방 두세 개,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는 자루 한두 개, 영국 식민지 시절의 바부(서기)들을 흉내내는 서류 가방 한 개. 인도에 처음 온 사람이 보면 모두가 빚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들 같다. 그래서 이젠 철도청에선 역마다 '한 사람에 가방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러나 나머지 짐을 집에 두고 떠났다간 도둑 맞을 우려도 있고 해서 사람들은 여전히 소중한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 어깨에 울러멘다. 그도 그럴 것이, 왕복 70시간 이상 걸리는 캘커타나 뭄바이로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떠나는 길이라면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떠날 순 없는 일이다. 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바닥에 깔고 잘 매트리스도 필요하고, 오며가며 밥해 먹을 도구도 필요하다. 그러니 인도의 기차에는 의식주가 다함께 올라탄다.

 인도에선 기차가 늘 연착하기 마련이어서,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나무를 주워다 밥을 끓여 먹는다. 그 옆에선 개와 닭들이 즐겁게 겅중거리고, 무임승차를 할 것이 뻔한 노란 옷의 성자는 주위의 어떤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좌선의 경지에 들어가 있다. 집 없는 천민들과 거지들은 꾸역꾸역 역으로 몰려와 시원한 바닥에 쓰러져 잔다. 판잣집을 소유하고 사느니 차라리 손님 많고 널찍한 기차역을 거처로 삼는 것이 유리하다는 표정들이다. 그 사이에 어떤 여행자는 재빨리 빨래를 해서 담장에 말린다. 그리고는 소가 빨래를 걷어 먹을까봐 작대기를 들고 서 있다. 인도의 소들은 먹을 게 없으니 헝겊 조각이든 비닐 봉지든 아무 거나 먹어치운다. 만일 그 곳이 바라나시나 리시케시라면 여기에 성지 순례자들까지 대거 합세해서 대합실은 말 그대로 소음과 혼란의 아수라장이다. 고래고래 물건을 파는 사람, 머리의 이를 잡는 사람, 쭈그리고 앉아 방뇨하는 사람, 맨땅에 누워 자는 사람, 터번 쓴 남자와 사리 입은 여자, 회교식 복장을 한 노인. 이윽고 기관차가 꽈앙 하고 위풍도 당당하게 홈으로 들어서면 더 큰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누가 먼저 올라타나 내기를 하자는 식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멈추지도 않은 기차를 확 낚아채는 청년, 그 뒤로 휘적대며 걷는 성자, 성자를 밀쳐대는 계집아이, 그 계집아이의 발에 딴지를 거는 은행 관리, 밀치고 찌르면서 돌진해 오는 순례자의 무리. 이들 사이로 소떼들은 기차를 탈 것도 아니면서 콧김을 내뿜으며 밀쳐든다. 거기에 빠담(땅콩)과 기름에 튀긴 때묻은 과자들을 광주리에 이고 설쳐대는 장사꾼들, 난데없이 보자기 같은 검은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서 빼꼼히 내민 눈으로 승강구를 찾는 회교도 여자.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빨간 천으로 똬리를 한 쿨리(짐꾼)들이다. 쿨리들은 머리에다 매트리스 뭉치와 트렁크 두 개를 얹은 다음 양팔에 가방 두 개, 겨드랑이에 자루 하나씩을 껴안고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몸이 너무 말라서 오랜 기간 금식 수행을 한 자이나교 승려 같지만, 마치 전설 속의 용사들처럼 비틀거리지도 않고 "짐이오, 짐!"을 외쳐댄다.

  인도의 철도는 전체 길이 6 만 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는 세계에 서 네 번째로 긴 길이이다. 날마다 하루 1 만 1천 대의 기관차가 달리며, 7천여 개의 역으로 9천만 명의 승객을 실어나른다. 단일 회사로서 160 만 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용인을 거느린 것이 바로 인도 철도 회사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플랫폼은 서인도 벵갈 주에 있는 카락푸르 기차역으로, 그 길이는 자그마치 833 미터나 된다. 현지 인도인들은 그럭저럭 북새통을 뚫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외국인 여행자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는 씩씩해 보이는 쿨리에게 5루피를 주고 기차에 미리 올라타 자리를 잡아줄 것을 부탁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제는 인도 전역에 편리한 컴퓨터 시스템이 들어서서 시즌이 아니라면 기차 예약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 등칸이나 에어컨 1 등칸, 에어컨 침대칸 등을 예약하면 이런 북새통에 시달리지 않고도 신사처럼 편안히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 등칸의 북새통과 아수라장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파리떼의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렇게 되면, 감히 말하건데, 그것은 인도 여행이 아니다. 인도의 기차는 편안함을 찾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노리는 사치스런 여행자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유한 것 없이 묵묵히 지상의 삶을 견뎌낼 줄 아는 자에게 인도의 기차는 열려 있다.

  "여행의 백미는 기차 여행이고, 그중에서도 3 등칸 기차 안에 민중의 삶이 있다."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이것은 이제 사라져가는 불문율이 되어버렸지만, 9억의 인구가 버티고 있는 인도에선 아직 그 불문율이 그대로 통용된다. 인도의 기차 여행은 지구상의 그 어떤 종류의 여행과도 다르다고 여행자들은 곧잘 말한다.  인도의 기차는 너무 자주, 그것도 아무 데서나 선다. 그곳이 정거장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 정지하는 이유조차 뚜렷하지 않다. 인도인들은 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는 이유로 종종 비상 정지 케이블을 잡아당겨 기차를 세우곤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비상 정지 케이블을 잡아당기는 사람에게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리고 있지만 워낙 대륙이 넓으니 도망치면 끝이다. 기관사 또한 시간 개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도 여행 중에 나는 몇 차례나 다섯 시간 이상 연착한 기차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을 때마다 역무원들은 아마도 기관사가 도중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간 모양이라고 태연히 대답하곤 했다. 기차가 이유없이 정지해서 한두 시간씩 기다려도 인도인들은 마냥 태평스럽다. 그들은 승무원에게 항의하거나 유리창을 때려부수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좌석에 앉은 이상한 외국 친구를 한두 시간 더 구경하게 된 것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인도의 기차 여행은 불편하기 짝이 없고, 때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화장실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서 소변을 볼 수도 없었다. 온갖 형태의 불구자들이 쉬지 않고 열차 칸을 돌며 구걸을 하는가 하면, 어떤 여인은 기차도 탈 겸 돈도 벌 겸해선지 줄곧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내 앞에 와서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돈을 달라고 어거지를 부렸다. 돈을 줘도 더 달라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여자 때문에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같은 시대에 같은 별에 태어났는데 어쩌면 이렇게 삶이 다를 수 있는지 그 현장에 있으면서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아우성과 어거지와 불편함만이 전부라면 인도의 기차 여행은 별 의미가 없으리라. 캘커타로 가는 라즈다니 특급열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한 힌두 노인은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여행하면서 어떤 것을 배웠소?"
  그는 북인도 카르타나카에서 온 힌두 탁발승이었다. 둘둘 만 검은 머리를 흰 천으로 동여매고, 이마에는 가로 세로로 흰 선과 붉은 선을 그었다.
  "당신은 무엇을 이 세상에서 배웠소? 돈을 버는 재주를 배웠소? 아름다움과 추함을 배웠소? 아니면 신이 존재한다거나 내세가 존재한다는 걸 배웠소?"
  그는 너무 빼빼 말라 자칫하면 부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만큼은 인도의 고행자답게 푸르게 살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기차는 인도 들녘의 햇살을 어깨로 떠받치며 작은 간이역들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 힌두 노인은 기차를 내리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와서 장사하는 재주를 배울 수도 있고 병 고치는 기술을 배울 수도 있소. 하지만 무엇보다 신을 배우도록 하시오. 당신이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 신과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그 여행은 무의미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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