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1191호  2022.12.1 (음 11.8)  




 



 글나눔 → 오늘의 어록

   


하늘은 행동하지 않는 자를 돕지 않는다.- 소프클라데스


 

글나눔 → 말글

   


질척거리다

보통은 장애인을 향해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장애학자 마이클 올리버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라고 제안한다. 장애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걸 알게 하는 질문이다.

10월19일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자리. 며칠 전 정무위에서 국회의원 윤창현씨가 쓴 ‘질척거린다’는 표현에 국민권익위원장 전현희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 말에 의문을 품게 된 국회의원 배현진씨는 국감장에서 국립국어원장 장소원씨를 불러 세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이 이상의 사전적 의미가 있냐?’고 묻더라. 사전에 그런 뜻이 없으니 국가사전을 옹위해야 하는 국어원장 입장에선 당연히 ‘없다’고 하더군.

사전이 뭐라 하든, 말은 쉼 없이 움직인다.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다. 이미 인터넷엔 ‘질척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싫어한다는 글이 수북하다. 비슷한 뜻의 ‘질퍽거린다’는 말도 진흙이나 반죽 말고 사람에게도 쓰인다. 엄마를 좋아하는 우리 딸은 외출하면서 한 번이면 될 인사를 아쉬운 듯 몇 번씩 되풀이한다. ‘그만 질척거리고 어서 가’라는 핀잔을 듣고서야 새초롬해져서 간다. 나도 가끔 아내에게 귀찮게 굴어 이 소리를 듣는다. 

달리 물었어야 했다. “왜 진흙이나 반죽의 상태를 뜻하는 말을 ‘사람’에게 썼을까?” 혹은 “이 말을 사람에게 쓰면 어떤 뜻을 갖게 되나?”. 그랬다면 국어원장도 단답형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이 획득한 의미에 대해 자신의 식견을 펼쳤을 텐데. 나는 ‘질척거린다’는 말을 들으면 수치스럽다.


마약 김밥

‘똥통 학교’란 말을 아시리라. 어느 학교가 똥통 학교라며 여기서 쑤군, 저기서 쏙닥거린다. 취사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일반고로 나뉜 학교는 더욱 서열화했다. 묘책이 있다. ‘똥통’이란 말이 학생들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고 서열화를 강화하기 때문에 앞으로 ‘똥통’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떤가?

‘벼락부자’란 말을 자꾸 쓰면 벼락에 대한 ‘겁대가리’를 상실하여 ‘진짜 벼락’을 맞겠다며 먹구름을 쫓아다니는 부자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도처에서 행해지는 ‘폭탄 세일’과 ‘총알 배송’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해 최근의 한반도 긴장 고조의 심리적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식품 이름에 마약 등의 표현을 넣지 못하게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매일 먹는 음식에 ‘마약’을 쓰면, 사람들(특히, 사리분별 못 하는 청소년들)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잃고 쉽게 진짜 마약에 손을 댈지 모른다는 주장이 먹혔다. ‘중독될 만큼 맛있다’는 비유적 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약을 기호식품이나 식품첨가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외국에서는 인터넷에 마약이란 단어를 노출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니, 우리 사회는 그간 너무 헐렁했어! ‘마약 김밥’이여, 이젠 안녕.

말은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렇게 직선적이고 단순하지는 않다. ‘마약 김밥’을 못 쓰게 한다고 마약 사범이 줄어들진 않는다. 세상이 져야 할 책임을 말에 떠넘기지 말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시나눔 → 우나라詩

   


이혼취소(離婚取消) - 김수영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
나하고 별거를 하기로 작정한 이틀째 되는 날
당신은 나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내 친구의 미망인의 빚보를 선 것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집문서를 넣고 六부 이자로 十만원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十만원 중에서 五만원만 줄까 三만원만 줄까
하고 망설였지 당신보다도 내가 더 망설였지
五만원을 無利子로 돌려보려고
피를 안 흘리려고 생전 처음으로 돈 가진 친구한테
정식으로 돈을 꾸러 가서 안됐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이것을
하고 피를 안 흘리려고
저것을 하고 이짓을 하고 저짓을 하고
이것을 하고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바라 대학에 다니는
나이어린 친구한테 편지를 받았지
그 편지 안에 적힌 블레이크의 詩를 감동을 하고
읽었지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 그러나 완성하진 못했지

이것을 지금 완성하였다 아내여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블레이크의 詩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텔 파티에 참석한
천사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 않다
善이 아닌 모든 것은 惡이다 神의 지대(地帶)에는
中立이 없다
아내여 화해하자 그대가 흘리는 피에 나도
참가하게 해 다오 그러기 위해서만
離婚을 취소하자

<1966. 1. 29>


 

글나눔 → 고사성어

   


대의멸친(大義滅親)
大:클 대.  義:옳을 의.  滅:멸할 멸.  親:친할?육친 친.

[출전]《春秋左氏傳》〈隱公三?四年條〉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뜻으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원년(元年:B.C.719)의 일이다. 위(衛)나라에서는 공자(公子) 주우가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 형제간으로서 둘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선군(先君) 장공(莊公) 때부터 충의지사로 이름난 대부 석작(石?)은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주우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의 시대가 되자 은퇴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석작이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지 않자 석후는 아버지 석작에게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왕실을 예방하여 천자(天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진공(陳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진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고하도록 일렀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주우와 석후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 오소서.”

진나라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다음 위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글나눔 → 추천글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신에게 요청하라 3 - 로버트 쉴러

  나는 유명한 영화배우 존 웨인이 병상에서 걸어왔던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 암 제거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내가 친구인 존 웨인에게 신을 만날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어야 할까? 전지전능한 주님을 대신하여 그의 죄를 용서하고 현세의 삶을 정리하게 해야 할까? 내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대답은 확고했다.

  "아냐, 그것은 내가 할 말이 아니야."

  이어 주님의 성령처럼 작은 목소리가 이렇게 속삭였다.

  "존 웨인의 마음속에서 주님을 불러 일으켜라. 그는 스스로 주님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것이다. 그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유명 배우가 속옷 바람으로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초췌한 모습을 발견했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내가 말했다.

  "존, 내가 자네를 위해서 기도를 해도 될까?"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럼. 나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네."

  내가 기도하는 동안 그는 눈을 꼭 감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의도나  계획, 의식적인 꾸밈없이 내 입에서 기도  말이 쏟아져 나왔다.

  "주님, 존 웨인은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당신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그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당신이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또 용서하고 싶어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 깊이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존 웨인을 봤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 모든 긴장은 사라지고 막 떠오른 태양처럼 해 맑기 이를 데 없었다. 수치심이나, 심적인 저항감이나 불편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나는 올바른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



    신에게 요청하라 4 - 팀 피어링

  캐더린은 암으로 가슴에 큰 멍울이 생겼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헐벗고 사는 처지였다. 살림살이가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었기에 아무도 집안에 들이지 않던 그녀가 마침내 나의 방문을 허락했다. 나는 그녀와 친해졌고, 백방으로 구하여 식료품과 생필품을 댔다. 그녀는 암으로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당장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갈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을 마주 보고 앉아 기도했다.

  "주님, 우리가 캐더린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였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이유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요, 캐더린만 그 과정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녀가 영적으로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한 시련이 이 병이리라. 하지만 나는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치료하고,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진정으로 그녀가 완치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2주일 내로  그녀는 병원에 다니게 되었고, 두 달 내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 가슴의 멍울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의사들은  입을 모아 그녀의 회복을 기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 일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정말 고통받는 이에 대한 나의 특별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신에게 요청하라 5 - 산드라 로저스의 <여명>중에서

 베티 J. 에디는 베스트 셀러가 된 저서 <빛으로 둘러싸여>에서 천사를 봤다고 고백했다. 1973년 거의 죽다 살아났던 경험 중에 그녀와 사람들의 기도에 천사가 나타나서 응답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도를 올렸던 이들은 빛으로 둘러싸여 작은 백열구처럼 빛나며 지상을 밝혔다고 한다.

 "나는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천사의 말을 이 귀로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초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권능을 지니셨지만, 그 힘은 그 분 자신의 법과 우리의 의지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의 권능을 우리 자신의 것이 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일단 우리가 진정으로 요청하고 그분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반드시 받을 겁니다." 


 -  캐서린 캐슬

  어느날 아침, 나는 컨트리 클럽 플라자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한 상점에서 새 지갑을 막 구입한 터였다. 나는 쇼핑백에서 지갑을 꺼내서 손에 꼭 쥐고 주님에게 청했다.

  "이 지갑 속에 돈이 그윽하게 하시고, 그 돈을 다른 이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끝나자  마자, 스테이션 웨건 한대가 천천히 내 옆에 섰다. 그리고 그 안에 탄 두 명의 남자가 아무 말도 없이 반짝이는 동전을 나에게 와르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돈'이 아니고 무엇이랴!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5. 백리해, 언제 때를 만나랴

진(秦)과 진(晋)의 통혼

한편 진목공(奏穆公) 임호(任好)는 즉위한 지 6년이 지났으나 아직 정실 부인이 없었다.그는 대부 공자 칩을 진나라로 보내어 혼인을 청했다. 그는 진헌공(晋獻公)의 큰딸이며 세자 신생의 여동생인 백희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었다. 진헌공은 진목공의 청혼을 받자, 태사 소에게 허혼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시초점을 쳐 보게 했다. 태사 소가 시초점을 치자 괘효가 나타났다.

 士卦羊 亦無盲也
 女承筐 亦無賂也
 西 責言 不可償也

장사가 염소를 찔렀으나 웬일인지 피가 나지 않네.
여자가 대광주리를 받았으나 또한 들어 있는 물건이 없네.
서쪽 이웃이 책임을 묻건만 갚을 길이 없도다.

태사 소는 효사를 보고 말했다.

"진(秦)나라는 우리 나라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효사에 책임을 물었다는 말이 있으니 이건 두 나라 사이가 앞으로 좋지 못할 징조입니다. 그러니 이 혼사는 달리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공은 이 혼사를 절대로 허락하지 마십시오."

진헌공은 다시 태복 곽언에게 거북점을 쳐보게 했다. 태복 곽언은 거북이 등뼈를 불에 구워 그 금간 모양새를 자세히 살폈다. 나타난 징조는 길했다. 태사 소는 시초점이 옳다 하고, 거북점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우겼다. 태복 곽언은 시초점보다 거북점이 영험하니 이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걸 보고서 진헌공은 허혼을 결심했다.

"시초점보다 거북점이 낫다. 이미 거북점에 통혼(通婚)하는 것이 길하다고 났으니 서로 다툴 것 없다. 더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진나라는 꿈에 백제의 명을 받고 그 뒤로 점점 강대해졌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청혼을 굳이 거절할 것 없다."

마침내 진헌공은 공자 칩에게 청혼을 받아들여 혼사하겠다는 승낙을 했다. 공자 칩이 사명을 성공리에 마치고 진(秦)나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길가의 밭에서 상당히 비범하게 생긴 한 농부가 땅을 뒤집어 갈고 있었다. 그 농부의 얼굴빛은 피를 바른 듯이 붉고, 수염은 용틀임처럼 힘있게 뻗쳐 있었다. 더구나 그 농부는 팽이로 땅을 파는데, 괭이가 한번 땅에 박히면 몇 자씩 흙을 파헤쳤다. 공자 칩이 수레를 멈추고 한동안 구경하다가 곁으로 다가가서 정중하게 청했다.

"그 괭이 좀 한번 구경해 봅시다."

농부가 괭이를 가지고 가까이 와서 보이는데 그 크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공자 칩은 시종들에게 그 괭이를 한번 높이 들어올려 보라고 했다. 시종들은 서로 높이 들어올리려 했으나 팽이는 허리 높이 이상 올라가지를 않았다. 공자 칩은 그 농부가 천하 장사란 걸 알았다.

"그대 성씨와 이름이 무엇이오?"

농부가 대답했다.

"성은 공손이며, 이름은 지, 자(字)를 자상이라고 하오. 우리 진(晋)나라 주공의 먼 일가뻘이지요."

공자 칩이 되물었다.

"그대와 같은 인재가 어찌 이런 시골 땅에서 아깝게 일생을 보내고 계시오?"

그 농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도 주공에게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공자 칩이 정중히 청했다.

"나와 함께 우리 진나라에 가서 함께 강산 유람이나 하면 어떻겠소?"

공손지가 선뜻 대답했다.

"군자는 몸을 사릴 때는 죽은 듯 숨죽여 있지만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만일 대부께서 나의 앞날을 돌봐 주신다면 참으로 이 이상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어 마침내 공자 칩은 공손지를 자기 수레에 태우고 함께 진나라로 돌아갔다. 공자 칩은 귀국하자 즉시 진목공에게 혼사에 대한 승낙을 받았다는 것과, 도중에서 공손지를 데리고 오게 된 경과를 소상히 아뢰었다. 진목공은 소소한 질문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공손지에게 대부 벼슬을 줬다. 진목공은 진(晋)이 이미 허혼했기 때문에 다시 공자 칩을 진헌공에게 보내어 폐백을 바치니 진목공은 드디어 진(晋)나라 백희(伯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진헌공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번 신부가 시집으로 갈 때 데리고 갈 남자 종은 다 뽑아 뒀는가?"

주지교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백리해는 우리 진나라에서 벼슬을 살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 속맘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자는 별수 없이 가까이 두지 말고 먼 곳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그러니 신부가 데리고 갈 남자 종으로 백리해를 보내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백리해를 미워하게 된 주지교는 이렇게 그를 곤경에 몰아 넣을 생각이었다. 장차 백리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지? 남자 종이 되어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글나눔 → 삶속의 글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우리를 흔들어 깨우소서

  어디서나 산이 보이고 강이 보이는
  작지만 사랑스런 나라
  우리가 태어나 언젠가 다시 묻혀야 할
  이 아름다운 모국의 땅에서
  우린 늘 아름다운 것을 기억하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 소박한 꿈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를 긴 잠에서 흔들어 깨우소서. 주님
  또 한 해가 저물기 전에 두 손 모으고
  겸허한 참회의 눈물을 흘릴 줄 알게 하소서

  나라의 일꾼으로 뽑힌 사람들이
  거짓과 속임수를 쓰며
  욕심에 눈이 어두운 세상
  자식이 어버이를 죽이고
  제자가 스승을 때리며
  길을 가던 이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우리의 병든 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신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그럴듯한 이유로 합리화시켜
  잉태된 아기를 수없이 죽이면서도
  해 아래 웃고 사는 우리의 태연함을
  가엾이 여기소서

  한 주검을 깊이 애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주검이 보도되는 비극에도
  적당히 무디어진 마음들이 부끄럽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굽어 보소서

  잘못된 것은 다 남의 탓이라고만 했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비겁하게 발뺌할 궁리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그리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엄청난 아픔과 슬픔엔
  안일한 방관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우리가 배불리 먹는 동안
  세상엔 아직 굶주리는 이웃 있음을
  따뜻한 잠자리에 머무는 동안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이들 있음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먼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먼저 생명을 존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변화시켜 주소서, 주님
  항상 생명의 맑은 물로 흘러야 할 우리가
  흐르지 않아 썩은 냄새 풍기는
  오만과 방종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소서
  사랑이 샘솟아야 할 우리 가정이
  미움과 이기심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소서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길 바라고 미루는
  사랑과 평화의 밭을 일구는 일
  비록 힘들더라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집을
  내가 먼저 짓기 시작하여
  더 많은 이웃을 불러모으게 하소서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나직이 죽은 이를 불러 보는 낙엽의 계절
  우리는 이제 뉘우침의 눈물을 닦고,
  희망의 첫 삽에 기도를 담습니다, 주님

  (1994)


 

글나눔  → 읽어둘문학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동리편" 
 김동리(1913~1995)
 소설가. 본명은 시종, 경북 경주 출생. 경신 고보 중퇴, 서라벌 예술대학장. 한양대 예술대학장 역임. 일찍이 민족 진영의 문학을 대표하여 좌익을 분쇄한 바 있고 순수 문학의 옹호자로서 전후 문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왔다. "황토기" "등신불" "까치 소리" 등 문제 소설의 작가이다.


      수목송

  돌과 흙과 쇠 같은 따위들은 그 깸 없는 깊은 잠에 주검처럼 굳어진 자들이라, 일깨워 우리와 사귈 수 없고, 조수와 충류들은 생로병사에 사람의 아픈 바를 지니되, 그 신령한 바를 갖추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살기에 나를 기를 것이 없다. 수목은 이와 달라, 돌, 흙, 쇠같이 깸 없는 잠으로 굳어진 자도 아니요, 꽃으로 잎으로 또는 열매로 그 생명의 다양한 변화가 사람의 얼굴에서처럼 발랄하되, 그 생로병사에 신음없이 의젓함은 조수, 충류에서 멀다. 깨어 있으되 소란하지 않고, 삶을 누리되 구차하지 않음이 사람에서는 지인달사의 풍모라고나 할까? 우리가 수목에서 가장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수라 할지니, 느티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녹나무, 회화나무, 편백나무 따위들은 그 수명이 천 년에 이르는 자 많고, 떡갈나무, 이깔나무, 벚나무, 감탕나무 따위들은 그 연연하게 물들어 화사하기 꽃과 같은 잎을 달고도 견디기를 오히려 5백 년에서 지난다.

동양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에 보면, 주인공 유비의 고향은 탁현인데, 그의 집 앞에 천 년 묵은 뽕나무가 누각처럼 펼쳐 서 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누상촌이라 불렀다 하며, 또 다른 주인공의 하나인 조조의 죽음을 재촉한 이야기에도 천 년 넘은 배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뽕나무, 배나무도 다 각각 천 년의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뿐 아니라,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과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의 어느 기둥들은 각각 천 년 된 싸리나무와 박달나무라고 전해지고, 이 밖에도 고사 거찰에 대개 천 년 넘은 잡목 기둥이 한 두 개씩 들어 있다고, 그 절의 승려들로부터 자랑하는 말을 듣는다. 이로써 볼진대, 천 년을 사는 나무의 이름들은 따로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수목이 이와 같이 사람이나 조수, 충류에 비겨 그 유장한 세월을 누림은, 그 뿌리를 깊이 땅속에 묻고 그 잎으로 직접 태양을 흡수하게 때문이리라. 따라서, 수목은 대지와 태양을 직접 먹이로 삼고 살아가는 유기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할 때 맨 먼저 수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또한 수목에서 그 장수와 더불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청춘이라 하겠다. 수목은 어린 나무나 늙은 나무나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이상 언제나 청춘이다. 그 잎은 푸르고 그 꽃은 붉은 것이 보통이다. 붉지 않으면 희거나 누르거나 푸르거나 하더라도, 꽃이란 꽃은 다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렇게 청청한 잎과,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꽃을 가진 모든 수목은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와 위안을 준다.

  우리가 고향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라든지 가까운 육친의 모습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연로해서 세상을 떠나셨거나 했을 땐 어버이 대신 형제나 또는 다른 친척, 친지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대신할 형제나 친척마저 타처로 떠나 버렸을 때, 아아, 그 때 고향을 지키는 얼굴은 마을 앞에 서 있는 늙은 팽나무나, 마을 뒤에 서 있는 묵은 느티나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예로부터 고향산천이란 말이 있고, 또 사실 산과 내야 나무보다도 더 오래고 더 믿을 만한 고향이기도 하지만, 마을 앞뒤의 늙은 팽나무나 묵은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어느 낯선 마을 앞에 늙은 회나무와 느티나무가 몇 그루 멋지게 가지를 벌리고 서 있으면 덮어놓고 그 동네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러워 보이며, 무언지 깊은 유서나 전설이라도 깃들인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그 나무 곁에 주막이라도 있다면 곧 뛰어내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수목은 산야나 벽지에만 흔한 것이 아니라, 도회와 읍, 시의 거리 거리, 공청과 여사와 민가의 뜰마다 번성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렇게 현대 같은 문명의 폭위에도 배척받지 않고, 도시의 시가와 청사, 여염집 마당에 번영, 무생하여 사람과 더불어 공존, 교환함은, 수목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그윽한 즐거움과 기쁨과 희망과 이익을 줄지언정,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목이 없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기쁨과 위안과 희망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수목에서 받는 이 형언 할 수 없는 그윽한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과, 그리고 마음의 안정은 어디서 연유하여 오는 것일까? 그것은 흡사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신에게서 받는 그것과도 같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꾸며 쓰는 버릇 어떻게 고칠까(2/2)

  다음은 역시 같은 문집에 있는 같은 학년 학생의 작품이다.

  기쁨과 슬픔

  꽃의 모습이 아름다워
  손에 쥐었다.
  언제나 창가에 두고 싶어서.

  햇살이 비추면
  그 빛에 빛나고
  달빛이 비치면
  내 작은 별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내 창가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어둔 그림자만 보일 뿐.

  내겐 기쁨을
  주었지만
  꽃에겐
  아픔이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다듬어야 할 한자말이 없다. 쉬운 말로만 쓴 점은 잘 되었다. 그런데 말의 문제는 여전히 있다. 

꽃의 모습이 아름다워 
손에 쥐었다.

  첫머리에 나온 이 말인데, 여기 씌어 있는 낱말들이 모두 깨끗한 우리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과는 다른 질서를 가진 말고 되어 있다. 우리가 말을 한다고 할 때  꽃의 모습이.. 라고는 하지 않는다. 꽃 모습이.. 라고도 안하고 꽃이 아름다워.. 하는 것이다. 시가 꼭 입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써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입으로 하는 말을 떠나면 그것이 거의 모두 일본말법이나 서양말법을 따라가는 글말로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시에서 쓰는 말이란 다른 게 아니다. 살아 있는 말, 우리가 살아가면서 입으로 하는 말이 가장 좋은 시의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줄에 적힌 손에 쥐었다 는 매우 간결하고 요령있는 말 같지만 잘된 말이 아니다. 시는 어떤 모습이든지 행동이든지 될 수 있는 대로 뚜렷하게 보여주는 말로 되어야 하는데, 이 말은 그저 최소한도의 뜻만 전하는 말로 되어 있다. 대체 그 꽃은 어느 꽃밭에서 꺾었다는 것인가? 가계에서 샀다는 것인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달라고 해서 얻었다는 것인가?

  꽃이 아름다워
  한 송이 샀다.

  가령 이렇게 쓴다고 해서 말이 길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게 무슨 꽃이었는지도 쓸 것이지 왜  꽃 이라고만 했는가? 시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물을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고 추상으로 된 말로만 쓰는 것이라면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를 추상으로 된 말로만 쓰다니! 이것은 시에서 가장 거리가 먼 글이요, 시가 될 수 없는 글이다. 이래서 둘째 연도 최소한의 뜻만 전하면서 곱게 그려 보이려고 한 말이 되었고, 셋째 연은 쉽게 전달이 안 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이러고 보니까 이 시는 이 학생이 겪은 사실도 없는 일을 말로만 이렇게 만들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물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 와서, 지금까지 대강 설명만 하듯이 한 말들이 조금은 살아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꽃이란 생명을 두고 생각하는 태도가 고등학생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그 꽃에게 어찌 아픔 정도이겠는가? 바로  죽음 인 것을!


  다시 같은 문집에서 한 편만 더 들어 본다. 이번에는 3학년생의 작품이다.


 아부지

  난 거리를 헤매다
  누군가를 보고 도망친다.

  밑을 두세 번 걷어올린
  헐렁한 군복 바지에 작업복 상의
  검정 장화
  목장갑을 끼고
  두 바퀴 삐그덕
  자전거를 타고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한 누군가를 보고 도망친다.

  난 친구들과 거리를 나돌다
  누군가를 외면한다.

  외면하고 돌아선 나를
  그 누군가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가지
  한없이 바라보았다.
  난 그 누군가의
  시선조차도 외면한다.

  뒤란에 뒷짐지고 홀로 서서
  감나무를 눈물로 쳐다보는
  아부지를 외면한다.
  마치 잎이 떨어진 감나무처럼  
  서 있는 아부지를...


  이 시에서도 어려운 낱말은 별로 없지만  상의 시야 시선  같은 말은 잎으로 하는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상의 는 웃옷 이나 저고리 로 쓰면 좋고 시야 는 눈 하면 되고, 시선 은 눈길 이면 된다. 이 시는 모두 다섯 연으로 되어 있는데, 그 연의 마지막마다 도망친다 와 외면한다 는 말이 되풀이 되어 있다. (다만 끝연에서는  외면한다 다음에 다른 말이 더 붙어 있다.) 1,2연은  도망친다 이고 3,4,5연은  외면한다 이다. 이 도망친다 와 외면한다 는 비슷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바로 이 시의 주제가 되는 말이겠는데, 그렇다면 지은이는 무엇에서 왜 도망치고 외면하려고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벌써 제목에서 나타나 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내 모든 앞날을 결정하는 아부지 로부터 도망하는 것이고, 그  아부지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 까닭을 이 시에서 뚜렷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목과 2연과 마지막 연에서 적어 놓은 말들로 느껴 알 수 있다. 사투리를 쓰는 무식한 아부지 가 싫고,  밑을 두세번 걷어 올린 헐렁한 군복 바지에 작업복 웃옷 이 싫고, 검정장화 와 목장갑 과 두 바퀴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하게 일만 하는 사람이 싫고 뒤란에 뒷짐지고 홀로 서서 감나무를 눈물로 쳐다보는  가난한  아부지 가 싫은 것이다.이렇게 되고 보면 이 작품을 쓴 사람의 정신 상태가 문제된다.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싫고 일하는 사람이 싫고, 가난한 사람들이 싫고, 그래서 이 땅과 조국이 싫고 부끄러워 남의 나라만 쳐다보고 서양나라만 부러워하는 이런 정신 상태는 비단 이 작품을 쓴 학생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미 이런 정신 상태를 우리 겨레가 가지고 있는 무더기 정신병이라 하여, 우리말을 버리고 한자말, 일본말, 서양말을 쓰고 싶어하는 고약한 버릇으로 지적한 바가 있다. 시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부고 높여주는 것인데, 이런 병든 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 글을 어찌 시라 하겠는가?

   난 거리를 헤매다
  누군가를 보고 도망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않고 첫 연부터 이렇게 낯선 사람을 말하듯 누군가라 해서 되풀이해 놓은 것도 문제지만, 대관절 고등학생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거리를 헤매는가? 이래서 이 작품은 지은이의 마음가짐뿐 아니라 표현이 또 문제가 된다. 말하자면 시 같은 것을 흉내내고, 시인인 척하는 글 버릇 말이다. 이 작품은 지은이의 참마음을 쓴 것이 아니라, 전체가 어떤 틀의 시를 흉내내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앞에서 지은이가 아부지 를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까닭이 2연과 5연에 나타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2연도 5연도 제대로 쓴 것이 아니다. 2연에 그려 놓은 사람은 대관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헐렁한 군복 바지에 작업복 웃옷 검정장화 .. 와 같은 말들을 늘어 놓고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 하다는 따위 틀에 박힌 말만 적었지, 조금도 그 사람의 뚜렷한 모습이 안 보인다. 5연은 더 엉터리로 되어 있다.  뒤란에 뒷짐지고 홀로 서서 감나무를 눈물로 쳐다보는 아부지 라 했는데, 이 아부지는 뭘 하는 사람인가? 왜 감나무를 눈물로 쳐다보는가? 잎이 떨어진 감나무처럼 아부지 가 서 있다니 무슨 뜻을 나타내려 했는가? 엉터리요, 흉내요, 무슨  척하는 말일 뿐이다. 4연을 보면  외면하고 돌아선 나를 그 누군가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한없이 바라보 다가, 그만 그 누군가의 눈길조차도 외면한다 고 했다. 도망치고 외면하는 나를 바로 보려고 하는 또 하나의 나를 외면했으니,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요, 따라서 도망치고 외면하는 나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난스런 말이다.

  시의 제목 아부지 란 말부터 문제다. 아부지 라고 아직도 말하는 고등학생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부지만 말을 얼마든지 글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아무래도 어색해 보인다. 그것은, 다른 말들은 모두 표준말이고 유식한 말인데, 이런 말을 쓴 사람이 하필 아버지란 말을 안 쓰고 아부지 라 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아부지 란 사투리를 쓰는데서 그런 사투리로 살아가는, 일만 하는 아버지, 가난하고 무식하고 그래서 부끄럽기만 한 살붙이의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려고 한 속셈으로 쓴 것일까? 그래서 실제는 아빠 라고 말하면서 글에서는 일부러 아부지 라 쓴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계산이요 흉내다. 계산과 흉내가 시를 결딴낸다. 거짓되게 한다. 사투리나 써서 무식한 그 아버지가 싫고 부끄럽다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 사투리를 자랑스럽게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지금까지 시 세편을 들어 말했는데, 오늘날 고등학생들이 쓰는 시의 특징 - 결점을 이 시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들의 시에 공통되는 결점은

1.삶이 없고,삶을 떠나 있고,
2.시인들의 시를 흉내내고,
3.실감이 따르지 않는 허황한 말을 늘어놓은 것, 이 세 가지다.


 

첫쪽 → 풍경소리

   

 


web_sign5.gif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05 제1205호 2022.12.26 월요일 (음 12.4 風文 2022.12.26 54
1204 제1204호 2022.12.25 일요일 (음 12.3) 風文 2022.12.25 37
1203 제1203호 2022.12.24 토요일 (음 12.2) 風文 2022.12.24 46
1202 제1202호 2022.12.22 목요일 (음 11.29) 風文 2022.12.22 60
1201 제1201호 2022.12.19 월요일 (음 11.26) 風文 2022.12.19 72
1200 제1200호 2022.12.17 토요일 (음 11.24) 風文 2022.12.17 107
1199 제1199호 2022.12.15 목요일 (음 11.22) 風文 2022.12.15 100
1198 제1198호 2022.12.12 월요일 (음 11.19) 風文 2022.12.12 87
1197 제1197호 2022.12.11 일요일 (음 11.18) 風文 2022.12.11 148
1196 제1196호 2022.12.10 토요일 (음 11.17) 風文 2022.12.10 118
1195 제1195호 2022.12.8 목요일 (음 11.15) 風文 2022.12.08 133
1194 제1194호 2022.12.7 수요일 (음 11.14) 風文 2022.12.07 117
1193 제1193호 2022.12.6 화요일 (음 11.13) 風文 2022.12.06 133
1192 제1192호 2022.12.4 일요일 (음 11.11) 風文 2022.12.04 171
» 제1191호 2022.12.1 (음 11.8) 風文 2022.12.01 159
1190 제1190호 2022.11.30 (음 11.7) 風文 2022.11.30 132
1189 제1189호 2022.11.28 (음 11.5) 風文 2022.11.28 130
1188 제1188호 2022.11.23 (음 10.30) 風文 2022.11.23 128
1187 제1187호 2022.11.22 (음 10.29) 風文 2022.11.22 143
1186 제1186호 2022.11.18 (음 10.25) 風文 2022.11.18 142
1185 제1185호 2022.11.10 (음 10.17) 風文 2022.11.10 150
1184 제1184호 2022.11.9 (음 10.16) 風文 2022.11.09 150
1183 제1183호 2022.10.28 (음 10.4) 風文 2022.10.28 166
1182 제1182호 2022.10.27 (음 10.3) 風文 2022.10.27 151
1181 제1181호 2022.10.25 (음 10.1) 風文 2022.10.25 14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50 Next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