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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4호  2022.11.9 (음 10.16)  




 



 글나눔 → 오늘의 어록

   


눈여겨 볼 때와 눈감아 줄 때를 아는 아내가 현명한 아내 ― A.H.

 

글나눔 → 말글

   


몸으로 재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기’는 담지 못한다. 카메라를 개미에 바짝 붙여 찍으면 코끼리보다 크고, 코끼리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찍으면 개미보다 작게 보인다. 그래서 범죄 현장에서 찾은 증거물은 항상 자를 옆에 놓고 찍는다.

세상 모든 척도가 미터와 그램, 리터로 통일된 듯하다. ‘배럴, 갤런, 파운드’처럼 낯선 단위를 만나면 가늠이 되지 않는 걸 보면 더 그렇다(허리둘레나 텔레비전 크기를 말할 땐 ‘인치’를, 골프에선 ‘야드’를 쓰긴 하더라…).

그러나 미터법과 같은 보편적인 척도를 배우기 전에도 우리는 이 세계를 ‘쟀다’. 그 기준은 몸이다. 새로 난 떡잎은 손톱만 하고, 복숭아는 어른 주먹만 하며, 가지는 팔뚝만 하고, 호박은 머리통만 하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한 ‘입’에 얼음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이 더위를 식힐 수 있으련만. ‘뼘’은 엄지손가락과 집게나 새끼손가락을 힘껏 벌려 잰 길이이고, ‘움큼’이나 ‘줌’은 주먹으로 쥘 만한 양이다. ‘아름’은 두 팔을 벌려 안을 수 있는 분량이고, 아무도 모른다는 ‘한 길 사람 속’에 쓰인 ‘길’은 한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 ‘한 평’이면 사람이 얌전히 누울 정도의 넓이. ‘세 치 혀’에 쓰인 ‘치’나 영어 ‘인치’는 모두 손가락의 길이나 굵기에서 왔다.

몸으로 이 세계를 재는 민속적 척도는 뒷방 늙은이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쓰인다. 세월의 간극에서 오는 해석과 시선의 공존은 얼마나 반갑고 흥미로운가. 말을 포함해 세대차는 나면 날수록 좋다. 세대차 자체보다는 그걸 못 견뎌 하는 풍토가 문제일 뿐.


윙크와 무시

누구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싶어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로 말솜씨는 고작 7%에 불과하다. 나머지 93%는 몸짓이나 목소리가 좌우한다(메라비언의 법칙). 언어보다 비언어적인 요소가 결정적이란 뜻이다.

눈으로 보내는 메시지 중에 상반된 두 가지가 있다. 윙크와 무시. ‘윙크’는 매우 독특하다. 생리적 반응인 눈 깜박거림과 달리, 일부러 한쪽 눈만 감는 윙크는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녹아 있다. 그만큼 작위적이다. 윙크는 뭘 뜻할까? 친밀감의 표시? 추파? 비밀스러운 약속에 대한 확인? 어떤 사안이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니 안심하라는 표시?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겠지만, 그 내밀함은 유지된다.

반면에 ‘무시’라는 말은 ‘보지 않음(無-視)’으로써 ‘업신여김, 깔봄, 신경 안 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이 들게 하다니 얼마나 강력한 신호인가. 그런데 오해 마시라. 누군가를 ‘쳐다보는’ 일은 의외로 드물게 일어난다. 우리 눈은 온종일 뭔가를 바삐 보지만, 눈길을 주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눈은 인간의 내면이 드러나는 통로인지라, 그 내면을 엿보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르는 사람의 눈을 5초 이상 쳐다보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뭘 쳐다봐!’ 하면서 다툼이 생길 거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때는, 눈길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이가 그러지 않았을 때다. 사이가 틀어졌거나 대등한 관계가 아닐 때다.

윙크와 무시 모두 의도적인 행동이다. ‘노룩 악수’로 무시당했다면, 다음번엔 윙크로 ‘선빵’을 날려 보시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시나눔 → 우나라詩

   


적(敵)(一) - 김수영

우리는 무슨 敵이든 敵을 갖고 있다
敵에는 가벼운 敵도 무거운 敵도 없다
지금의 敵이 가장 무거운 것같고 무서울 것같지만
이 敵이 없으면 또 다른 敵一來日
來日의 敵은 오늘의 敵보다 약할지 몰라도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敵으로 來日의 敵을 쫓으면 되고
來日의 敵으로 오늘의 敵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1965. 8. 5>

 

글나눔 → 고사성어

   


 녹림(綠林)
綠:초록빛 록.  林:수풀 림.

[동의어] 녹림호객(綠林豪客) [유사어] 백랑(白浪). 백파(白波). 야객(夜客).
[출전]《漢書》〈王莽傳〉.《後漢書》〈劉 傳〉

푸른 숲이란 뜻으로, 도둑 떼의 소굴을 일컫는 말.

전한(前漢:B.C. 202~A.D. 8) 말, 왕실의 외척인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신(新:8~24)이라 일컬었다. 왕망은 농지, 노예, 경제 제도 등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책을 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잡한 제도에 걸려 농지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한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 역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왕망은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로부터도 심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북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當陽縣) 내의 녹림산에 근거지를 둔 8000여의 한 무리는 스스로를 ‘녹림지병(綠林之兵)’이라 일컫고 지주의 창고와 관고(官庫)를 닥치는 대로 털었다. 그 후 이 녹림지병은 5만을 헤아리는 대세력으로 부상했는데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 유수(劉秀)는 그들을 십분 이용하여 왕망의 신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글나눔 → 추천글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진면목을 요청하라 - 헬리스 브릿지

 나는 나른한 햇살 속에서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온몸에서 긴장이 다 풀리는 듯했다. 내 벤치의 한쪽 끝엔 숙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은 양, 허리가 구부정하게 휘고 가냘픈 체구인데다 마녀 같은 매부리코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길을 바다에 두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노숙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질문했다.

  "우리가 서로를 두 번 다시 못할 거라면, 저에게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시렵니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두 뺨 위로 눈물 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를 그토록 생각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우."

  그녀는 흐느꼈다. 나는 한 손을 가볍게 그녀의 어깨에 얹고 위로하며 말했다.

  "여기 제가 있잖습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우. 하지만 우리 어머니 말씀이, 내  행동이 너무 굼뜨다는 거야.  그래서 발레를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수. 하지만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우.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나는 네 살 때부터 나만의 춤을 연습해 왔어. 나는 어머니 몰래 옷장에 숨어서 연습했었다우."
  "저에게 그 춤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청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나를 다시 보았다.

  "내 춤을 보고 싶수?"
  "그럼요."

  그리고 나는 기적을 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고통의 흔적은 사라졌다. 이제 그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높이 들고 어깨를 뒤로 활짝 펴고 당당하게 일어났다. 그녀는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 돌아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치 온 세상이  그녀를 위해 멈춰선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그녀가 평생토록 기다려  왔던 무대였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춤을 추고 싶어했다. 그녀는 내 앞에 서서 큰 숨을 들이켰다. 몇  초 전만 해도 흐릿했던 그녀의 눈빛이 지금은 살아  있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녀는 우아하게 발끝으로 서서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로  대가다운 몸짓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을 응시했다. 추하고, 늙고, 비참한 노파가  유리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로 변신한 것이다.  그녀는 평생을 걸려 춤을 익혔고, 단 몇 초 동안 춤을 췄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달성되었다. 그녀는 춤을 췄다! 이제 그녀는 울며 웃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녀의 모든 말에 귀를 귀울였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발레리나입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몹시 기쁩니다."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작별 인사를 했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와 손을 흔들며 작별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를 가든 발걸음을 멈춰서서 사람들의  진면목을 보려고 힘쓴다. 나는 그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기적을 목격한다.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3. 진나라를 도는 회오리

여희의 치밀한 계교

맹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기회를 놓치고 귀국길에 오른 진헌공이 아픈 몸으로 겨우 나라의 경계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일대의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을 나오는 것이었다. 진헌공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기별을 하지 않았거늘, 과인이 이 때 귀국할 줄을 어찌 알았느냐?"

마중 나온 신하들이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모두가 부인의 영험한 꿈 덕분입니다."

그들은 여희가 시킨 대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진헌공은 부인의 꿈이 영험하다는데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묻고 대답을 들었는데, 사실은 이러했다.

이야기는 한참 거슬러올라가 여희가 정부(情夫) 우시와 함께 세자 신생을 죽이고, 자신이 낳은 아들 해제를 세자로 앉히려는 계교를 짜는 데서 시작한다. 여희는 언제나 대낮에 밀회를 즐기고 나서는 우시에게 애교를 떨며 상의했다. 그렇게 해야 상대가 맥을 못추고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게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기회가 왔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우시가 여희의 벗은 몸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세 공자가 모두 먼 곳에 있는데 누가 감히 부인의 일을 방해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치운다면 어찌 성공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여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세 명 모두가 나이도 많고 따르는 부하도 적지 않다네. 또한 세상의 경험이 많은지라 섣불리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네. 감쪽같이 해치울 좋은 계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네."

우시가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한 놈씩 차례차례로 없애 버리십시오."

여희가 바짝 다가갔다.

"누구를 먼저 없애야 할까?"

우시가 대답했다.

"물론 세자인 신생부터 없애야지요. 신생은 성품이 정결(精潔)하지요. 성격이 정결한 사람은 조금만 창피를 당해도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창피당하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을 자책하고 해치기 쉽습니다. 신생의 결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부인께서는 섣불리 신생을 모략해서는 성과가 없습니다. 우선 세자의 장점을 널리 활용하십시오. 그러면서 일변 다른 계략을 섞어 쓰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잠자리에서 갑자기 울면서 주공에게 호소하십시오. 악몽을 꾸었다거나 아니면 들은 소문이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우시의 말이 끝나자 여희는 마치 모든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매우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잠자리에서 호소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시를 흥분시켜 다시 한 번 음욕을 채운 후, 그를 내보내고 여희는 몹시 흡족해 했다. 과연 그날 밤이 깊어서였다. 한밤중에 여희는 훌쩍훌쩍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잠자던 진헌공은 놀라 깨어나서 그 우는 까닭을 물었다. 물어도 대답없이 여희는 울기만 했다. 진헌공은 여러 차례 묻다가 급기야는 속이 답답해서 왜 대답을 않느냐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요즘 와서는 잠자리에서 제대로 사내 구실조차 못하는 만큼 진헌공의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여희가 늘어지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첩(妾)이 대답한들 상감은 저를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첩이 우는 까닭은 별것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상감을 모시고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헌공이 놀라 물었다.

"무슨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는고?"

여희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첩이 듣건대 신생은 그 성품이 밖으론 인자하고 안으론 참을성이 많다 합니다. 그는 곡옥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백성들이 신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사양치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생은 그 백성들을 적절한 때에 이용할 것입니다. 어찌 그걸 알 수 있는가 하면 신생은 사람들에게 곧잘 이런 소릴 한답니다. '아버지는 첩년에게 정신을 모조리 뺏겼소. 두고 보시오. 앞으로 우리 진나라에 큰 난(亂)이 있을 것이오.' 이건 소첩만이 들어 아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건만 유독 상감만이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파가 일어나면 장차 그 재앙이 상감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첩을 죽여 주십시오. 그래야만 신생에게 사과(謝過)도 되려니와 그들의 공작(工作)을 미연에 막을 수 있습니다. 보잘것 없는 첩년 때문에 상감의 체통에 금이 가고 장차 백성들을 혼란의 구덩이로 몰아넣지 마십시오."

진헌공이 말했다.

"신생은 백성에게도 인자하다는데 어찌 아비를 거역하고 반역하겠는가."

여희가 더욱 정색하며 대답했다.

"첩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깥 사람들이 말하기를, '필부(匹夫)의 어진 것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어진 것과는 결코 같지 않다. 필부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으로 인(仁)을 삼지만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국가를 위하는 것으로 인(仁)을 삼는다.' 고 말합니다. 그러니 인자한 일과 부모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진헌공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라 감싸는 게 결코 아니오. 신생은 결백한 걸 좋아하니 어찌 누명(陋名)을 듣고자 원하리오."

여희가 슬며시 옛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주유왕(周幽王)은 의구를 죽이지 않고 신(申)나라로 추방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후가 견융을 끌어들여 유왕을 여산 아래서 죽이고 의구를 군위에 세웠으니, 그가 바로 주평왕이며 동주(東周)의 시조입니다. 그후 오늘날까지 유왕이 덕없고 포악하다는 말은 있어도 아비를 죽게 한 평왕을 나무라고 나쁘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진헌공은 그제서야 머리끝이 갑자기 쭈뼛해졌다. 그는 덮고 있던 이불을 제치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부인 말이 옳소. 그러면 어찌해야 좋을 것 같소?"

여희가 대답했다.

"상감은 늙었다 핑계하시고 나라를 신생에게 내주십시오. 신생이 나라를 물려받고 뜻을 이루면 혹 상감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옛날에 곡옥과 익은 서로 한 조상의 핏줄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선군 진무공께선 익(翼)의 애후(哀侯)와 소자후(小子侯)를 죽이고 우리 진나라를 하나로 통일하셨습니다. 신생이 지금 뜻하는 바도 옛날의 상감이 하셨던 것과 추호도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이 나라를 신생에게 넘겨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진헌공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 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武)와 위(威)로써 모든 제후를 대했다. 내가 번연히 살아 있으면서 나라를 잃는다면 이는 무(武)라 할 수 없으며, 자식을 누르지 못하면 이는 위(威)라 할 수 없다. 무와 위를 잃으면 남의 지배를 받는 법이니, 그러고야 차라리 목숨을 끊어 죽느니만도 못하다. 앞으로 내가 달라질 것이다. 그대는 조금도 근심말라. 내 장차 이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리라."

여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근래 적적족(赤狄族)인 고락씨가 자주 우리 나라를 침범해서 두통거리인데 이왕이면 왜 신생으로 하여금 적적(赤狄)을 치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생이 능히 장병을 잘 부리는지 못 부리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싸워서 지면 신생을 처벌할 수 있는 명목이 섭니다. 또 싸워서 이기면 장병을 잘 부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신생은 자기의 공로와 실력을 믿고 반드시 딴 뜻을 품을 것입니다. 그가 딴 뜻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그 때에 신생을 처벌하면 백성들도 다 복종할 것입니다. 좌우간 신생이 적을 무찔러 변방(邊方)을 평정한다면 또한 세자(世子)로서의 능력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공은 왜 신생을 곡옥 땅에 내버려 두고 그 능력을 부리지 않습니까."
"그 말이 옳다."

마침내 진헌공은 머리를 끄덕였다. 날이 밝자 진헌공은 서둘러 곡옥으로 사자를 보내면서 단단히 전하라고 다짐하며 말했다.

"즉시 곡옥에 가서 과인의 명령을 세자 신생에게 전하되, 곡옥 장병들을 모조리 거느리고 가서 적적족인 고락씨를 쳐부수라고 하여라."


 

글나눔 → 삶속의 글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첫눈, 첫사랑, 첫걸음
  첫약속, 첫여행, 첫무대
  처음의 것은
  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
  숨어 있습니다

  새해 첫날
  첫기도가 아름답듯이
  우리의 모든 아침은
  초인종을 누르며
  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손님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나팔꽃 같은 얼굴에도
  사랑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에도
  가족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하는
  어머니의 겸허한 이마에도
  아침은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새아침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밤새 괴로움의 눈물 흘렸던
  기다림의 그 시간들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듣는 것은 씨 뿌리는 것
  실천하는 것은 열매 맺는 것`이라는
  성 아오디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겉돌기만 했던 좋은 말들
  이제는 삶 속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는
  은총의 한 해가 되게 하십시오

  사랑과 용서와 기도의 일을
  조금씩 미루는 동안
  세월은 저만치 비켜 가고
  어느새 죽음이 성큼 다가옴을
  항시 기억하게 하십시오

  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
  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
  우리의 첫열정을 새롭히며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일
  정을 나누는 일에도
  정성이 부족하여
  외로움의 병을 앓고 있는 우리

  가까운 가족끼리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바쁘게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
  잘못해서 부끄러운 일 많더라도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밝은 태양 속에 바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길 위의 푸른 신호등처럼
  희망이 우리를 손짓하고
  성당의 종소리처럼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는 새해 아침

  아침의 사람으로 먼길을 가야 할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글나눔  → 읽어둘문학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류달영편"  류달영(1911~2004)
 농학자. 사회 운동가, 수필가. 경기도 이천 출생. 수원 고농 졸업. 미네소타 대학 수학. 서울 농대 교수. 재건 국민 운동 본부장 역임. 그는 수필 "신문 망국론" "흙과 사랑"에서는 경세가로서의 풍모와 자연 찬미를 보여 주었다. 담백하고 진지한 인간상을 모색하는 철학적인 필치로 정평이 높다.


    슬픔에 관하여

 사람의 일생은 기쁨과 슬픔을 경위로 하여 짜 가는 한 조각의 비단일 것 같다. 기쁨만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없고 슬픔만으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없다. 기쁘기만 한 듯이 보이는 사람의 흉중에도 슬픔이 깃들이며, 슬프게만 보이는 사람의 눈에도 기쁜 웃음이 빛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쁘다 해서 그것에만 도취될 것도 아니며, 슬프다 해서 절망만 일삼을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책상 앞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있다. 고호가 그린 "들에서 돌아오는 농가족"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얇게 무늬지고, 넓은 들에는 추수할 곡식이 그득한데, 젊은 아내는 바구니를 든 채 나귀를 타고, 남편인 농부는 포크를 메고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활하는 사람의 세계를 그린 그림 가운데 이보다 더 평화로운 정경을 그린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넓은 들 한가운데 마주 서서, 은은한 저녁 종 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농부 내외의 경건한 모습을 우리는 밀레의 "만종"에서 보거니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은 그 다음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밀레와 고호의 가슴 속에 흐르고 있는 평화 지향의 사상은 마치 한 샘에서 솟아나는 물처럼 구별할 수 없다. 그 무서운 가난과 고뇌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모든 사람의 가슴을 가라앉힐 수 있는 평화경이 창조될 수 있었을까? 신비로운 일이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나(봄의 소나타)를 들을 때도 나는 이러한 신비를 느낀다. 둘 다 베토벤이 귀머거리가 된 이후의 작품인 것이다. 슬픔은, 아니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 예수 자신이 한없는 비애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인류의 가슴을 덮은 검은 하늘을 어떻게 개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공자도 석가도 다 그런 분들이다.

  나의 막내 아들은 지난봄에 국민 학교 1학년이 되었어야 할 나이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 때 이 아이는 '신장종양'이라고 하는 매우 드문 아동병에 걸렸다. 그러나, 곧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 왔다. 그런데 오늘. 그 병이 재발한 것을 비로소 알았고, 오늘의 의학으로는 치료의 방법이 없다는 참으로 무서운 서고를 받은 것이다. 아이의 손목을 하나씩 잡고 병원 문을 나서는 우리 내외는, 천 근 쇳덩이가 가슴을 눌러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은, 시골서 보지 못한 높은 건물과 자동차의 홍수, 사람의 물결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에게는 티끌만한 근심도 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자기의 마지막 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을 맹목으로 만들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빠, 구두."

  그는 구두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구두가 신고 싶었었나 보다. 우리 내외는 그가 가리킨 가게로 들어가, 낡은 운동화를 벗기고 가죽신 한 켤레를 사서 신겼다. 어린것의 두 눈은 천하라도 얻은 듯한 기쁨으로 빛났다. 우리는 그의 기쁜 얼굴을 차마 슬픈 눈으로 볼 수가 없어서 마주 보고 웃어 주었다. 오늘이 그에게는 참으로 기쁜 날이요, 우리에게는 질식할 듯한 암담한 날임을 누가 알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천붕'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나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 표현이 옳음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의사의 선고를 듣고,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두 아이를 잃은 일이 있다. 자식의 어버이 생각하는 마음이 어버이의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 까마아득히 못 미침을 이제 세 번째 체험한다.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수술 경과가 좋아서 아이가 밖으로 놀러 나갈 때, 나는 그의 손목을 쥐고,

  "넌 커서 의사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사가 너의 병을 고쳐 준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의 나쁜 병을 고쳐 줄 수 있게 말이다."

하고 말했었다. 그른 고개를 끄덕이었고, 그 후부터는 누구에게든지 의사가 되겠다고 말해 왔었다. 이 밤을 나는 눈을 못 붙이고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고귀한 것은 한결같이 슬픔 속에서 생산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없이 총명해 보이는 내 아들의 잠든 얼굴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은 기쁨만도 슬픈만도 아니라는 그리고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훌륭한 가치를 창조한다는 나의 신념을 지그시 다지고 있는 것이다.

 '신이여, 거듭하는 슬픔으로 나를 태워 나의 영혼을 정화하소서.'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3/4)

  글을 머리로 만들지 말고

 글은 몸으로 부딪힌 일을 쓰고 가슴에 울려온 느낌과 생각을 쓰는 것이지, 머리로 써서 는 안 된다. 머리로 글을 만드니까 말을 부질없이 꾸미게 되고 사실과는 다른 것을 쓰고 유식한 말을 흉내낸다. 알맹이는 없이 말만 요란한 글, 남을 속이는 거짓스런 글은 이렇게 해서 씌어진다. 거짓글까지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논리로 써서는 안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논리로 쓰는 것이 머리로 쓰는 것이다. 다음은 고등하교 1학년 학생이 쓴 글이다. 이 글이 몸으로 부딪힌 일을 쓴글인지, 머리로 쓴 글인지 살펴보자.


    어머니

  우리는 흔히 어머니를  위대하다  라고 일컫는다.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빨래 청소는 물론, 모든 것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위해 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꼭 의무적으로 일을 하신다. 이럴 땐 나의 마음은 흐뭇할까? 아니다. 돕고 싶을 뿐이다. 솔선수범해서 도와야 할 우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피해 버린다. 이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방이 더럽다고 야단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 틈이 언제 있냐고 하신다. 이건 나의 일시적인 말에 불과하다. 어머니의 거룩한 상. 이건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이것을 이룰지.... 그러나 나도 하염없이 노력을 하련다. 쓴내나는 생활을 이겨내는 어머니, 왜 어머니의 입에서  목구멍에서 쓴내난다 라는 말이 자꾸 나왔어야 할까.

  어제의 일이다. 새벽부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엄마는 오늘 답배 모종을 해야 하니 일찍 서둘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귀가 따가울 정도다. 좁을 얻어야만 우리가 편할 텐데.. 하고 우선 편함을 앞세운다. 점심 전에 아버지께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니, 이건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그런 말하면 못쓴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나는 이유를 단다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시는 분을 잊기 쉽다.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그러나 엄마, 먼 미래를 기다려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도울께요. 효도도 잘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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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 읽고 나서도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다. 가슴에 울려오는 것이 없다. 맛이 없는 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는 글이 된 것은 머리로 썼기 때문이다.  글 가운데 실제로 겪은 사실을 쓰려고 한 대문이 있기는 있다. 담배 모종을 한 것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대문이 그렇다. 그런데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쓰다가 그만두고 곧 머리로 말을 만드는 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를 위해 늘 일만 하면서 고생하는 어머니는 훌룡하시다. 나는 어머니께 효도를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다면 무엇보다도 자기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모습을(언제 어디서 보았다든지, 함께 일하면서 깨달았다든지 하는 사실을) 뚜렷하게 그려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정직한 이야기는 없이 그저 머리로 생각한 말만 늘어놓았으니 그런 말이 군소리가 되고 빈 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이 머리로 글을 쓰면 유식한 글말을 흉내내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이 글에는 공연히 쓴 글말, 유식한 한자말에다가 아주 허황한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잘못 쓴 말, 제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 말을 차례로 보아 나가자.

  - 우리는 흔히 어머니는  위대하다 라고 일컫는다.
 여기 일컫는다 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지 않는다. 벌써 죽어버린말이라도 그것을 대신해서 쓸 말이 없다면 살려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린애들의 입에서도 쉽게 나오는  말한다 를 쓰지 않고  일컫는다 를 써야 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글을 전문으로 쓰는 문인이든지 학생이든지  일컫는다 란 말을 쓰는 까닭은, 뭔가 유식한 글을 써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틀림 없다. 실제로 말을 할 때도 우리 어머니는 훌룡하시다 고 하지 우리 어머니는 위대하시다 고 말하지 않으니까.

  - 새벽부터 일어나 꼭 의무적으로 일을 하신다.
 여기 나오는  의무적으로 란 말은 어떤 말일까?  어쩔 수 없이 란 뜻일까? 앞뒤의 글을 보아서 그런 뜻은 아닌 것 같다.  반드시 란 뜻으로 썼는가? 그러나 바로 앞에 꼭 이란 말이 있다. 결국 이 말은 아무 쓸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 말이 좀 덜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해야지.

  - 솔선수범해서 도와야 할 우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피해 버린다.
 이 글월에 나오는  솔선수범 은 학교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들이 무슨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쓰는 이 말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런 글에서 쓸 것이 아니다.  먼저 본을 보여 하면 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했는데, 나는 이라고 할 것을 잘못 썼다.

  - 이전 나의 일시적인 말에 불과하다.
  이 글월은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이건 내가 한 번 해본 말일 뿐이다.  

  - 어머니의 거룩한 상.
  갑자기 나오는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선 상 이란 말부터 무슨 말인가? 모습이란 말이라면 어머니의 거룩한 모습 이라고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머니의 거룩한모습 이 나오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이  어머니의 거룩한 상 이 나온 다음에는  이건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이것을 이룰지.. 라고 써 놓았는데, 이 말들이 서로 어떤 듯으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 나도 하염없이 노력을 하련다.
 이 하염없이 는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 것 같다.

  - 왜 어머니의 입에서 목구멍에서 쓴내난다  라는 말이 자꾸 나왔어야 할까. 이 글에 나오는 나왔어야 는 나와야 로 써야 우리말이 된다. 이것은 이중과거형은 아니고 그냥 과거형이다. 우리말 움직씨(동사)에는 이중 과거형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형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두어 가지 보기를 들어 본다.  

  -  복잡한 도로, 기사설명 혼란 알기 쉽게 약도 게재했어야
  이것은 어느 신문에 난 독자의 글제목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신문에서, 서울 동남부 지역의 간선도로망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공사를 하는 형편을 보도한 모양인데, 그것을글로만 설명해 놓아서 알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를 곁들어  눈으로 보아서 잘 알 수 있게  설명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제목도 약도 게재했어야 로 쓰지 말고 약도 게재했더라면 으로 써야 우리말 답게 된다. 물론 게재 란 말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약도 실었더라면 이나 약도 그려 보였더라면  이라고 쓰는 것이 더 좋다. 또 이 말은  약도 게재해야 -> 약도 실어야 이렇게 써도 된다. 한 가지 더 들어 본다.


 

첫쪽 →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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