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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3호  2022.10.11 (음 9.16)  




 



 글나눔 → 오늘의 어록

   


富의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가 더 중요하다. ― A.H.V.
 

글나눔 → 말글

   


안녕히

상상하는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끝을 가늠할 수도 가닿을 수도 없구나. 바퀴 없는 자전거 타기. 달의 뒷면에 앉아 도시락 까먹기. 우리 아들의 아들로 태어나기. 배낭 메고 부산에서 출발해 강릉, 속초, 원산, 청진,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지나 모스크바까지 가기. 죽음의 길은 날아가는 걸까 걸어가는 걸까.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 새삼 알게 되지. 일상은 이다지도 진부하구나.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럴 때면 ‘안녕히’ 같은 말을 곱씹는다.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라는 뜻이렷다.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안녕히’는 어떤 말과 함께 쓰이나?(1분 안에 열 개를 생각해 낸다면 부디 당신이 이 칼럼을 맡아주오.)

아마도 이런 말들을 떠올릴 듯.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더 쥐어짜내면 ‘안녕히 돌아가세요.’ 정도. 뭐가 문제냐고? 이런 거지. ‘안녕히 오세요.’는 왜 안 되냐고? ‘안녕히 쉬세요. 안녕히 노세요. 안녕히 일하세요. 안녕히 드세요. 안녕히 보세요.’는 왜 어색하냐고? 뜻만 보면 낯가림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들러붙을 듯한데, 실제론 제약이 심하군. ‘안녕히’의 친구는 기껏 네다섯일 뿐. 안녕히 갈 수는 있어도 안녕히 올 수는 없다니.

인간은 말이 만들어 놓은 이런 ‘관계의 그물’ 속에 잡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망.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제와 다르게 ‘안녕히 가세요.’ 날마다 새롭게 ‘안녕히 계세요.’


‘~고 말했다’

모든 글은 편집이다. 본 것, 그중에서 몇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사진은 카메라 앵글에 잡힌 피사체를 모두 담는다. 글은 사진보다는 요리에 가깝다. 자르고 버리고 선택하고 이어 붙여서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를 만든다.

직접 경험한 일을 쓸 때는 ‘전갱이구이가 맛있더군’처럼 ‘-더-’를 쓴다. 직접 경험했으니 확신이 있고 평가도 선명하다. 허나 어찌 세상만사를 다 경험하리. 남들한테서 들은 말을 옮기기도 하니, 이럴 땐 ‘~다고 하다’, 더 줄여 ‘~대’를 쓴다. ‘그 소설 재미있대’라 하면 나는 아직 못 읽었지만 먼저 읽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는 뜻이다.

기자는 사건과 함께 말의 전달자다. 취재원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우리는 기자가 그 말을 어떤 인용의 틀 속에 집어넣는지를 봐야 한다. 가장 건조하고 객관적인 틀이 ‘~고 말했다’이다. 아무리 저열한 기사라 해도 ‘~고 말했다’를 쓰면 마치 중립적이고 냉정을 잃지 않은 글처럼 보인다. 반면에 이 자리에 ‘비판했다, 비난했다, 촉구했다, 반박했다, 공격했다, 꼬집었다, 비꼬았다, 몰아세웠다, 맹공을 퍼부었다’ 등을 쓰면 기자의 ‘해석’과 ‘감정’이 느껴진다. 기자의 견해가 은근히, 노골적으로 개입된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고 말했다”와 ‘부인했다’와 ‘잡아뗐다’의 격차를 느껴보시라.

눈에 힘을 빼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사람이 눈싸움에서 이기더라. 평정심! ‘~고 말했다’는 기자가 자기 글에 힘을 빼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시다. 나는 이걸로 신문을 비교하는 게 ‘비판적 신문읽기의 첫걸음’이라고 ‘우긴다.’


 

시나눔 → 우나라詩

   


巨大한 뿌리 -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장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天下를 호령한 민비(閔妃)는 한번도 장안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女史를 안 되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女史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은밀(隱密)도 심오(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1964. 2. 3>


 

글나눔 → 고사성어

   


국사무쌍(國士無雙)

國:나라 국.  士:선비 사.  無:없을 무.  雙:쌍 쌍.
[유사어]동량지기(棟梁之器)  [출전]《史記》〈淮陰侯列傳〉

나라 안에 견줄 만한 자가 없는 인재라는 뜻으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한 한왕 원년(元年:B.C. 206)의 일이다. 당시 한군(漢軍)에는 한신(韓信)이라는 군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초군(楚軍)에 속해 있었으나 아무리 군략(軍略)을 헌책(獻策)해도 받아 주지 않는 항우에게 실망하여 초군을 이탈, 한군에 투신한 자이다. 그 후 한신은 우연한 일로 재능을 인정받아 군량을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직책상 승상인 소하(蕭何)와도 자주 만났다. 그래서 한신이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안 소하는 그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무렵, 고향을 멀리 떠나온 한군은 향수에 젖어 도망치는 장병이 날로 늘어나는 바람에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 도망병 가운데는 한신도 끼어 있었다. 영재(英才)를 자부하는 그는 치속도위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자 황급히 말에 올라 그 뒤를 쫓았다. 그 광경을 본 장수가 소하도 도망가는 줄 알고 유방에게 고했다. 그러자 오른팔을 잃은 듯이 낙담한 유방은 노여움 또한 컸다. 그러데 이틀 후 소하가 돌아왔다. 유방은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노한 얼굴로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승상(丞相)이란 자가 도망을 치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도망친 것이 아니오라, 도망친 자를 잡으러 갔던 것이옵니다.”
“그래, 누구를?”
“한신이옵니다.”
“뭐, 한신? 이제까지 열 명이 넘는 장군이 도망쳤지만, 경은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뒤쫓은 적이 있소?”
“이제까지 도망친 제장(諸將) 따위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사오나, 한신은 실로 ‘국사무쌍’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옵니다. 만약 전하께오서 이 파촉(巴蜀)의 땅만으로 만족하시겠다면 한신이란 인물은 필요 없사옵니다. 하오나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이 소망이시라면 한신을 제쳐놓고는 함께 군략을 도모할 인물이 없는 줄로 아나이다.”
“물론, 과인은 천하 통일이 소망이오.”
“하오면 한신을 활용하시오소서.”
“짐은 한신이란 인물을 모르지만 경이 그토록 천거하니 경을 위해 그를 장군으로 기용하겠소.”
“그 정도로는 활용하실 수 없사옵니다.”
“그러면 대장군에 임명하겠소.”

이리하여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다. 즉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글나눔 → 추천글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사랑의 열 가지 방법'을 요청하라
   다잉앤 로만스 - '완전한 존경을 향하여'의 저자

  다음은 내가 요청했었던 '당신이 나에게 해줬으면 하는 사랑의 열 가지 방법'이다.

  1. 한 달에 최소한 두 차례는 예상치 않은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해 주세요.
  2. 일주일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애정어린 메시지를 남게 주세요.
  3. 한 달에 두 번은 꽃을 사주세요.
  4. 우리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글로 써서 주세요. 우리가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5. 일주일에 두 번은 무조건 시간을 내서  내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주세요.
  6. 멋진 데이트 계획을 세우세요. 예를 들어, '오페라의 유령' 순회 공연 소식을 들었다면 몇 달 전에 미리 관람표를 구해 놨다가 나중에 그것을 함께 보러 가지고 말하는 거예요.
  7. 깜짝 여행 계획을 세우세요. 이번 주말에 어디론가 가자고 말하면서도 목적지나 그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시치미떼는 거예요.
  8. 당신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나에게 요청하는 거예요. 내가 이 목록을 만드는 것처럼 당신도 자세하게 나에게 요청해 주세요.
  9. 당신이 평상시에 남에게 고마워하는 점에 대해서 말이나, 편지로써 표현해 주세요.
  10. 내가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시간을 내서 당신의 꿈을 말해 준다면 우리는 힘을 합해 서로의 꿈을 성취할 수 있어요.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말아라

 다른 이들은 현상을 보고 그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고 그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 존 F. 케네디

    제인 넬슨

 우리는 아이들을 더 존경심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항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에 대해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말아라. 대신, 다음과 같은 명료하게 질문하라.

  네가 무엇을 했니?
  어떻게 되었니?
  그것에 대한 기분이 어떠니?
  네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니?
  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니?
  그 정보를 다음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자녀들에게 행동의 결과를 더불어 미래의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또한, 그들을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대신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교육은 '애주카레'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고, 그 뜻은 '밖으로 끄집어낸다'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이들의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채워넣기만 하고 충분한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한다. 우리는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래, 이야기가 다  끝났니'라고 말하지 말고, '어머,  정말 재미있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니? 한 번 말해 볼래. 네 기분이 어땠니?' 혹은 '네가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니? 라고 질문하라.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도와주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더 많이 탐험하도록 도와줘라.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관중과 굴완의 설전

"초나라는 우리가 올 줄을 어찌 알았을까?"

관중이 곁에서 아뢰었다.

"누군가 반드시 비밀을 누설한 때문입니다. 초나라가 사람을 보낸 걸 보면 무슨 말인가가 있을 것이니, 신이 마땅히 대의로 꾸짖어 저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싸우지 않고도 항복하게 하겠습니다."

제환공을 대신해 관중이 수레를 타고 나아가 공손히 굴완에게 읍을 하니, 굴완도 황망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우리 주공께선 귀국의 병차와 군사가 온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신을 보내셨습니다. 주공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초는 남해 근처에 있고, 제는 북해에 있어 서로 아무 이해가 없는데, 군후께선 무슨 연유로 우리 땅을 들어서시는지 감히 그 까닭을 알고자 하십니다."

관중이 대답했다.

"옛날 주성왕(周成王)께서 우리 선군 태공(太公)을 제(齊)에 봉하시고, 소염공(召廉公)에게 제 땅을 하사하실 때 말씀하시길, 5후 9백(九伯)들이여 대대로 국방을 맡아 주왕실을 도우라. 동쪽은 바다까지, 서쪽은 하수(河水)까지, 남쪽은 목릉(穆陵)까지, 북쪽은 무체(無 )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로 직분을 함께 않는 자 있으면 너희 제후들은 그 자를 용서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나라 왕실이 동쪽으로 도읍을 옮긴 후 모든 제후가 제각기 방자해져서 우리 군후께선 왕명을 받들어 맹주가 되어 옛 왕업을 다시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는 남쪽에 있으면서, 다른 제후들과 같이 천자께 포모(包茅)를 바치고, 왕의 제사를 도와야 할 것이어늘 일체 공물과 축주도 바치지 않으니, 이 까닭을 알고자 우리 군후께선 지금 귀국을 방문중입니다. 그뿐 아니라, 옛날 주소왕(周昭王)께서 초나라를 치시다 강물에 빠져 세상을 떠나신 것도 당신들 때문인데, 이러고도 귀국은 할 말이 있으신지요?"

굴완이 불쾌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주나라가 그 기강(紀綱)을 잃었기 때문에 천하가 주왕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초국만 탓하십니까. 단지 그간의 포모를 바치지 않은 것은 우리 임금께서도 그 잘못을 알고 계십니다. 또 옛날 주소왕의 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그 때 배가 풍랑에 뒤집혀져서 왕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만일 믿지 못하겠으면 강변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우리 초나라의 책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완(完)도 대답할 것은 다 했습니다. 나는 우리 임금께 돌아가야 합니다."

굴완은 말을 마치자 수레를 타고 표연히 돌아갔다. 관중도 돌아가 제환공에게 고했다.

"초나라 사람이 완강해서 말로 타일러 굽힐 수 없습니다. 마땅히 진군하십시오."

제환공의 명령이 내리자, 대군은 일시에 초나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군은 즉시 경산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한수(漢水)가 멀지 않았다. 관중이 명령을 내렸다.

"이 곳에 주둔하고 일단 군세를 정비하라."

모든 제후가 관중의 명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대군이 이미 초나라 깊이 들어왔는데 왜 한수를 건너지 않소. 속히 건너가 승부를 결정냅시다. 이 곳에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관중이 모든 제후에게 대답했다.

"초가 사람을 보낸 것만 보아도 반드시 요처마다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군사란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곳에 머물러 우리의 큰 군세를 보여 주고 초로 하여금 우리를 두려워 하게끔 해야 하오. 그러면 반드시 저편에서 또 사람을 보내 올 것이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초의 항복을 받아야 합니다. 초를 치러 왔으니 초나라의 항복만 받으면 됩니다."

모든 제후는 관중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의론이 분분했다. 한편 초성왕은 이미 자문으로 대장을 삼고 갑병을 모아 한수 남쪽에 배치한 후였다. 초군은 모든 제후의 군마가 한수만 건너오면 내달아 싸우려고 대기중이었다. 세작이 와서 자문에게 보고했다.

"8국 대군은 경지에 주둔하고 있을 뿐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문이 초성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관중은 병법을 잘 알므로 만전을 기하지 않고는 쳐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계책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니, 사람을 한 번 더 보내어 저편의 군세와 그들의 의향을 살펴본 후 접전을 하든지 아니면 화평을 하든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누구를 보내는 게 좋겠소?"

초성왕이 물으니 자문이 대답했다.

"관중과 안면이 있는 굴완을 한 번 더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굴완이 이에 아뢰었다.

"그간 주왕에게 포모를 바치지 않은 것을 시인했으니, 임금께서 화평을 청할 의향이 계시면 신이 가서 양편의 분규를 해결해 보겠으나, 만일 끝까지 싸울 생각이면 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보내시는 게 좋을까 하옵니다."
"싸우거나 화해를 하거나, 모든 것을 경에게 일임하니 경이 좋도록 처리하기 바라오."

초성왕이 이렇게 말하니, 굴완은 분부를 받고 제나라 연합군에게로 다시 협상을 하러 갔다.


 

글나눔  → 읽어둘문학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한흑구편"
  한흑구(1909~1979)
 수필가. 소설가. 평양 출생. 미국 템플 대학 신문학과 수료 포항 수산 대학 교수 역임. 30년대에 월간지 '대평양', 문예지 '백광'을 창간. 주재하면서 단편 소설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한 바 있으며 해방 후에는 주로 수필에 전념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정 생활의 애틋함을 그렸다.


  석류

 내 책상 위에는 몇 날 전부터, 석류 한 개가 놓여 있다. 큰 사과만한 크기에, 그 빛깔은 홍옥과 비슷하지만, 그 모양은 사과와는 반대로 위쪽이 빠르고 돈주머니 모양으로 머리 끝에 주름이 잡혀져 있다. 보석을 꽉 채워 넣고 붙들어매 놓은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작은 꿀단지가 깨어진 것같이 금이 비끼어 터진 굵은 선 속에는 무엇인가 보석같이 빤짝빤짝 빛나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석류의 모양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본다. 매끈한 사과와는 달리 무엇에 매를 맞았는지 혹과 같은 것이 울툭불툭한 겉모양 그 속에는 정녕코 금은보화가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아까워서 아까워서 석류 한 개를 놓고 매일같이 바라만 보고 있다. 행여, 금이 나서 터진 그 석을 쪼개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석 주머니 같은 이 석류 한 기를 구하기에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나는 그것이 꽃 피는 봄부터 비바람이 부는 여름 장마철 속에서도, 또한 새맑은 가을 하늘에 추석달이 기울 때까지도, 얼마나 오랜 나날을 그리운 정으로 보고 싶고 갖고 싶은 꿈을 꾸었었나.

  "할머님, 추석도 지나고 했으니, 이젠 그 석류 하나 따 주세요."

  나는 석류나무집 할머니에게 이렇게 애걸했으나, 할머니는 또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니 약에 쓴다면서 벌써 따아? 찬서리를 맞고, 터져서 금이 나야 약이 되는 거지! 가래도 잘 삭고, 오랜 해수병엔 특효지. 몇 날만 더 참아요."

 이렇게 한 해의 철이 다 기울어져서야, 끝내 구해 온 귀한 석류 한 개가 내 책상 위에, 내 눈앞에 고요히 놓여 있다. 석류나무는 소아시아가 원산으로 살구나무보다는 키가 작은 관상용의 낙엽 교목으로서, 이상한 꽃과 열매를 맺는 특색을 가진 나무다. 가지가 꾸불꾸불하고, 터실터실하고, 대추나무같이 삐죽삐죽한 가지 같은 메마른 작은 가지들이 이파리도 없이 여기저기 돋아 나온다. 석류나무는 물론 목재도 될 수 없지마는, 과실을 맺는 나무치고는 작은 편에 들고, 꽃도 열매도 많이 맺지 못한다. 그러나 그 꽃은 양귀비꽃같이 붉고, 아름답고, 그 꽃받침은 무화과와 같이 살지 누두형으로 되어 있으며, 나중엔 석류의 귀한 과피가 된다. 봄이 지나고, 장미의 계절이라는 6월이 되면 석류나무는 정열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구같이 생긴 꽃받침 속에 선홍의 꽃잎으로 꽉꽉 채워서 그 둘레를 오붓하게 피어나온다. 꽃도 되고 또한 열매도 되는 이 육중한 꽃은 7월의 장마로 반 이상이 땅에 떨어져 어린애들의 손가락에 골무 노릇을 하기도 한다.

 10월이 지나고 하늘이 코발트색으로 높아 가면, 주먹 같은 빨간 석류 열매들이 검푸른 이파리들 속에서 뻔쩍뻔쩍 빛나는 왕관을 쓴 듯이 빛나고 있다. 석류의 머리 쪽은 별과 같이 삐죽삐죽한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고, 그것들이 가을의 된서리에 쭈그러지면 돈주머니를 잘라맨 듯한 모양을 한다.  8월의 태양과 뜨거운 더위에서 정열을 다 뿜어 내지 못했는지 석류의 조롱박 같은 얼굴 위에는 매를 맞아서 부어오른 것같이 혹이 나와서 울툭불툭 매끄럽지가 않다. 나는 미국의 이미지스트인 여류 시인 힐다 둘리틀의(더위)라는 시의 몇 구절을 연상해 본다.

  더위

  이 짙은 공기를 통해서
  열매가 떨어질 수 있을까
  배들의 끝들을 뭉툭하게,
  또한 포도알들을 동그랗게,
  치받쳐 올리는 이 더위 속으로
  열매가 떨어질 수 있을까.

  둘리틀의 (더위)라는 시를 읽으면, 모든 열매가 8월의 치받치는 더위 속에서 뭉툭하고 매끈하게 된다고 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석류는 열매 속에 무수한 보물의 정열과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그 겉모양까지가 울툭불툭 튀어나오다 못해서 찢어지고, 깨어져서 크게 금이 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된다. 나는 석류를 손에 들고 깨어져 금이 난 그 속을 들여다보다가, 그 자수정 같고, 금강석 같이 빛나는 속을 쪼개 본다. 벌집같이 오몽고몽한 갈피 속마다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석류씨(알)들이 꽉 차 있다. 그 수정 같고, 금강석 같은 석류알을 하나 떼어서 입에다 물고 혀로 굴려 보면서 주요한 씨의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 실렸던 "앵두"의 일절을 생각나는 대로 한 번 되새겨본다.

  5월에 무르익은 앵두 한 알,
  입에 넣고 터질까 봐
  그냥 혀로만 굴려 봅니다.

 입에 넣고, 혀로 굴려 보고, 씹어 보는 그 맛, 입 속, 가슴 속, 머릿속까지 시원하고, 새틋한 그 맛. 온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가을의 된서리 속에서 과피가 터질 때까지 정열을 간직하고, 또 터져나온 그 기개의 참되고, 아름다운 결정이여. 나는 책상 위에 쪼개 놓은 석류알들을 두루두루 바라보고 있다.


 

글나눔  → 삶속의글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처음에 지녔던 사랑으로
  - 유진 수사님께

 유진 수사님, 펭귄새를 연상케 하는 수도복을 입고 새벽 두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하는 `새벽의 바람` 트라피스트  수도자로서의 수사님의 모습을 그려 보며 새해 첫 글을 드립니다. 헨리 나웬의 <제네시 일기>를 통해 더욱 친숙했던 그곳을 방문하여 기도 시간에 숨도 크게 못 쉬고 앉아 있었던 저는 은은한 불빛 속에 흘러나오던 수사님들의 그 아름다운 노래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곳은 마치 깊고 큰 침묵의 섬으로 느껴져 일상적인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웠으나 그러한 침묵속에서도 경직되지 않은 사랑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얼마 전 여행에서 돌아오니 함께 일하는 수녀님이 고운 단풍잎도 몇 개 끼워 넣어 새로 도배한 우리 방의 하얀 창호지문이 얼마나 은은한 기쁨을 주던지요, 바구니에 담겨있는 우편물들 속엔 수사님이 보내 주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영문판과 반가운 편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소설<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과  더블어 제가 최근에 가장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였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수도자의 단순성이란 것이 부정적 고행 연습에서 온다기보다 단호한 생의 긍정에서 온다고 생각된다`는 말과 함께 단순노동에 대한 묵상을 생생히 적어 보내신 수사님의 글은 늘 깊은 침묵 속에서 건져  올린 참된 말과 지혜로 빛납니다.

 오늘은 `묵시록` 2, 3장의 다음  말씀을 되풀이해 읽으며 제 자신의 모습과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네가 살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 너는 죽었다. 그러므로 깨어나거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완전히 숨지기 전에 힘을 북돋워 주어라. ...너에게 나무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 삶에 활기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시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한껏 순수하고 뜨거웠던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타성에 빠져 안일하게 사는 데에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정상에 올라와 있는 예술인은 그가 처음으로 데뷔할 당시의 겸허하고 진지했던 노력을 새롭게 해야 퇴보하지 않으며, 수도자들은 수도원에 갓 들어올 때의 그 풋풋했던 설레임과 `열심히 잘살아 보겠다`던 선한 의지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새롭게 실천해 나가야만 제 모습을 갖춘 행복한 수도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올해는 좀더 겸허하고 참을성 있게 살고 싶다고 다짐했던 첫마음, 평범한 작은 일에 더욱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첫마음,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도 헤프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첫마음을 되찾아 실천해야겠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새해 새시간의 구슬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꿰어 귀하고 쓸모 있게 만들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처음에 지녔던 사랑`이 퇴색치 않는 푸르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애쓰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수사님의 그 고요하고 따뜻한 마음과 제네시수도원의 색유리처럼 아름다운 기도 속에 저를 자주 기억해 주신다고 생각하면 기쁘고 마음  든든하답니다. 그곳의 유명한 빵 굽는 냄새처럼 소박하고 구수한 분위기를 지니셨던 객실의 친절한 죠지 수사님께도 문안드려 주시길 바랍니다. 떠나신  지 오래되므로 모국의 산천과 사람들이 종종  그리우실 수사님께 새로 나온 한국우표도 몇  장 동봉할께요. 주님의 은총 속에 부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994)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감상문 쓰기  -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2/2)

    친구의 죽음을 생각하며

 다음은 지금부터 꼭 40년전에 쓴 글이다. 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슬픈 마음을 적어 놓은 이 글은 지금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무엇을 쓰든지 진정으로 쓴 글은 이와같이 오래오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머리로 재주로 쓴 글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없지만,  참말로 쓴 글의 목숨은 이래서  영원하다 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친구의 죽음 - 군복중학교 3학년 김종만

 어느 날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오늘 진현이 초상친다는 말을 무심 중에 듣고 깜짝 놀랐다. 진현이가 죽었구나! 그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을 벌써부터 듣고 있었으나 이처럼 갑자기 그의 앞에 애통한 죽음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진현이는 아직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생과 설움 속에 자라났건만 꽃다운 이 소년기도 넘기지 못하고 이처럼 갑자기 영원히 오지 못할 황천의 길을 가고 만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슬프다. 나도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허무한 운명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과거 그와 한 학교에서 뛰놀고 학교에 오고 가던 그때가 어제 같건만, 이렇게도 애통한 죽음이 그의 일생을 끝마치게 한 것은 참으로 꿈 같은 일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할아버지 한 분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삼촌 밑에서 한때는 남다른 설움과 고통을 받으며 꾸준히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지난번 졸업식을 앞두고 교내에서 동무들끼리 추억장을 주고 받을 때, 나는 그가 써 달라는 추억장에 이렇게 써 주었다. 삼년 동안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공부 충실히 하였으며 예수 진심으로 믿었느냐? 부디 진실히 믿어 천당에 갈 때는 너 혼자 가지 말고 나도 좀 다리고 가 달라.  이렇게 장난삼아 써 준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내가 쓴 말대로 진현이는 천당으로 가 버렸다. 내가 쓴 그 추억장은 내 기억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연 천당에 가서 내가 써준 추억장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아아 진현이! 이제는 너를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이 다만 안타까운 마음만 품을 뿐이구나. 이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너와 더불어 한 교실에서 뛰놀던 여러 친구들도 너의 죽음을 서러워하고 다시는 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영원한 인생의 이별로서 슬퍼할 것이다. 죽음1 인간이란 것이 한 번 나서 한 번 죽기는 공통된 운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란 말 한 마디가 왜 이렇게도 섭섭한지. 더구나 꽃다운 소년기도 넘기지 못한 애석한 젊은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그는 오지 못할 황천 길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것을 생각하니 그저 기가 막힐뿐,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군북중학교 학생문집 (19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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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참 깨끗한 말로 썼다. 어디 한 군데도 써서는 안되는 어려운 말이나 일본말투가 안 나온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이 쓴 글에 견주어 볼 때, 역시 그때는 자연이 그다지 오염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말도 오염이 덜 되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런데 꼭 한가지 잘못된 말이 있다.  -었었다 라는 이중과거형을 쓴 것이다.

- 그는 오늘날가지 할아버지 한 분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삼촌 밑에서 한때는 남다른 설움과 고통을 받으며 꾸준히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이 글월은  그는 오늘날까지...왔었다. 로 되어 있는데,  왔다 고 하면 될 것을  왔엇다 란 괴상한 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다. 대관절 어째서 이런 말이 마치 갑자기 달라진 (돌연변이) 현상처럼 나타났는가? 이 글이 실려 있는 학생문집 을 죄다 훑어 봐도 다른 글에서는 이 었었다 (았었다)가 어디에도 안 나온다. 물론 이 말이 함안 군북지방의 사투리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함안뿐 아니라 경남 어디에서도, 경북이고 전라도고, 우리 나라 어디서고 이런 사투리는 없다. 이 학생이  었었다 를 쓰게 된 것은 말로 쓴 것이 아니라 글에서 이 말을 배워서 글로 쓴 것이다. 그럼 어떤 글에서 이 말을 배웠을까? 두 가지 글에서 이 글말을 배웠다고 본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설이나 동화나 수필, 그 밖에 문필가들이 써 놓은 온갖 글에서 이  -었었다 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책을 읽는 학생들이 이런 잘못된 글말을 저도 모르게 배워서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었었다 는 이광수의 소설에서부터 나온다. 그래도 일제시대에는 이 말을 안 쓰는 작가가 더러 있었고, 한 잡지에서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렸다면 그 가운데서 세편은 이 -었었다 란 말이 아주 안 나올 정도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이 말이 안 나오는 작품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어느 글에서고 아무런 까닭도 원칙도 없이 제멋대로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오는 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말이 아니니까 무슨 원칙이 있을 수도 없다.

 다음 또 하나는 어이없게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 교과서로 이 괴상한 말법을 배운 것이다. 그때 나는 이 학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철없게도 최현배 선생의  우리 말본 을 신이 나서 가르쳤는데, 바로 그 책에 이  었었다 가 나온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한글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우리말과 글의체계를 세우는 일에도 큰 업적을 남긴 분이지만, 우리말 움직씨(동사)의 때매김(시제)을 영문법의 틀에다가 억지로 맞추어 놓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었었다   -었었었다  따위를 쓰도록 한 것이다. 해방 후 온 나라의 학교에서 문법 교과서로 가장 많이 쓴 것이 우리 말본 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배우고 가르친 사람들이 글을 쓸 때면 문법에 맞는 글, 유식해 보이는 글이 되게 하려고  -었었다 를 자랑삼아 쓰고, 심지어 말을 할 때도 가끔 지껄여 보고 싶어하는 풍조가 되어버린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군북중학교는 우리나라에서 표준말을 쓴다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상도 시골의 학교이기에 많은 학생들의 글을 모아 놓은 문집에도 이렇게 겨우 한 학생이, 그것도 단 한 번  -었었다 를 썼을 만큼 아니, 그보다 차라리 우연히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알맞을 정도로 글말의 공해를 적게 입은 것이다. 이  -었었다 는 최현배 선생보다 앞서서 우리 글을 연구한 주시경 선생의 문법책에서부터 나온다. 일제시대 문인들의 작품에 이  -었었다 가 나온 것도 우리 한글학자들의 잘못된 문법책에서 영향을 받아 그 모양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한글학자들의 잘못은  말 을 떠난  글 의 질서에 매달리고, 그 질서 속에 빠져버린 데 있엇다. 말을 떠난 글의 질서는 남의 것이다. 중국 것이고, 일본 것이고, 미국 것이고 서양 것이다. 이 밖에 바로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 말을 쓰게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근본을 다지면  -었었다 란 말을 지어낸 한글학자들의 잘못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앞에서, 이 글  친구의 죽음 이 입말로 쓴 것이 아니라 글말로 썼다고 했는데, 그것을 좀 설명해야 되겠다. 이 글이 들어 있는 학생 문집은 모두 123쪽으로 되어 있고, 이 책에 실려 있는 학생들의 글은 모두 입말로 씌어 있다. 이 친구의 죽음  바로 앞과 뒤에 있는 글들만 보더라도  아침을 일찍 먹고 지게를 걸머지고 나무를 하러 간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데 어쩐지 눈물이 흐르고...  오늘부터 기다리던 하복을 입게 되었다. 이런 말들로 시작되어 있고, 어느 글이고 다 이와같이 보통 우리가 하는 말로 씌어 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죽음 만은 좀 다르다.

  - 어느 날 초등 학교 학생으로부터 오늘 진현이 초상친다는 말을 무심중에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처음 시작한 글월도 말을 하는 것처럼 쓴 것 같지만, 말과 다른데가 있다. 학생으로부터  이것은 입으로 하지 않는 말이고 글에서만 쓰는 말이다. 입으로 하는 말대로 쓴다면 마땅히 학생한테서 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그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으나 이처럼 갑자기 그의 앞에 애통한 죽음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여기 나오는 대이름씨(대명사) 그 도 실제 입말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다.  신음하고 도 입으로는 앓고 라고 말하고,  듣고 있었으나 도 입으로 말할 때는  듣고 있었지만 이라 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알았으랴! 도 알았겠는가! 라고 해야 살아 있는 말이 된다.  이 밖에도 입말로는 쓰지 않는 말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자라났건만 - 자라나지만
  황천의 길 - 저승길
  과거 - 지난날 (과거는 입말로 어쩌다가 쓰인다)
  어제 같건만 - 어제 같은데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 학교를 다녔다
  하였으며 - 하였고, 했고
  과연 - 정말
  너와 더불어 - 너와 함께, 너와 같이
  애석한 - 아까운
  황천 길 - 저승길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 인생이 허무한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와같이 보통 우리가 입으로는 하지 않는 말들이 때로는 이름씨(명사)로, 때로는 움직씨(동사)의 씨끝(어미)으로, 때로는 어찌시(부사)나 토씨(조사)로 여기 저기 섞여 있어서 글 전체의 분위기라 할까, 질서 같은 것이 입으로 하는 말과는 조금 다르게 되어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 글의 내용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 사람의 죽음을 얘기하는 자리가 되자니까 여느 때는 농담을 하면서 지내던 친구였는데도 저절로 마음이 굳어지고 엄숙한 심정이 되어 이런 글말투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었었다 란 잘못된 말도 이런 글말의 분위기가 되다보니 갑자기 한 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고 보면 글말에도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써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글로 쓸 수 있는 말은 다시 또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중국글자말(한자말)이다. 앞에서 들어 놓은 글에 나오는 황천 과거 과연 애석 같은 말이 여기에 든다. 이런 말들은 입으로 더러 쓰게도 되었지만 어디까지만 글에서 생겨난 말이다. 다음은 옛말이 되어버려서 우리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글로서는 그대로 쓰고 있는 말이 있다. 앞에서 들어 놓은 말에서  -건만   -으며   -으랴  따위로 된 움직씨(동사)의 씨끝(어미)들과,  -로부터 라는 토가 이런 말이다.  세번째는, 역시 옛말이지만 한문을 새겨 읽을 때 나오는 말을 그대로 글에서 쓰고 있는 말인데, 앞에서 든 글에서는  더불어 와  바 가 있었다. 이 밖에도 한문새김말은 하여금 이른바 -으로써 따위로 많이 있다. 이 세 가지 글말들은 오랫동안 우리가 읽어온 글 속에서 글말로 이어져 왔기에 우리 것으로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런 말들을 우리 것이 아니라든지 벌써 죽어버린 말이라 하여 아주 물리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나날의 생활에서 살아 있는 입말로 쓰지 않거나 쓰지 않아도 될 말이니 글을 쓰는 경우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이런 말을 안 쓰거나 쓰더라도 적게 쓰는 것이 좋겠다. 입으로 하는 깨끗한 우리말을 써야 글도 살아나는 것이다.

  다음에, 써서 안되는 글말은 앞에서 말해 놓은  -었었다 란 말 밖에도 아주 많은데, 대강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아주 어려운 중국글자말이다. 조우, 해후, 호우, 하자(흠), 방불, 서식, 종용, 독백, 포효, 미지수.. 얼마든지 있다. 둘째, 말하기도 힘들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중국글자말이다. 오자, 오수, 오지, 수수, 유가, 주가, 고자, 기로, 끽연, 만끽, 가시화, 의의, 의외, 화훼, 회화, 박차, 미소, 미아, 유아, 발발.. 신문이나 잡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싹 쓸어 내버려야 할 말들이다. 셋째, 우리말이 있는데 공연히 쓰는 말이다. 돌연, 돌입, 붕괴, 비래, 작물,제초, 상호, 조기, 기호, 관건, 주방, 석권, 계곡, 도서(섬), 냉수, 여명, 초원, 수면, 휴식을 취한다.. 깨끗한 우리말을   아내고 안방에 들어와 앉아 주인 노릇을 하는 이런 엉뚱한 한자말이 얼마나 많은가! 넷째, 우리말의 얼개를 아주 망가뜨려 놓는 말이다. 구조를 파괴하는 말이라고 하면 더 잘 알아 들을지 모르겠다. 나의 집, 나의 어머니, 우리의 갈 길.. 이렇게  의 를 아무데나 쓰는 경우라든가,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에로(의), -로의, -으로부터의... 이런 따위로 쓰는 말인데, 거의 모두 괴상하게 되어 있는 토로서, 일본말을 따라 쓴다고 이 꼴이 되었다. 다섯째, 아주 일본글을 그대로 쓰는 말이다. 입장, 입구, 역할, 수순, 수속, 취급, 수취인, 인상, 인하, 매입, 매도, 민초, 승부사, 보다(어찌씨 = 부사로 쓰는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이런 말들 가운데는 벌써 입말로 널리 쓰고 있는 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널리 쓰고 있더라도 이런 말은 일본의 글말이니 언젠가는 꼭 없애야 한다. 여섯째, 서양말이다. 가이드, 오픈, 이미지, 쇼핑, 조깅, 레크리에이션, 캘린더, 조크, 스케줄, 해프닝..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말들이다. 일곱째,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만들어서 퍼뜨리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보기를 들면  먹을거리 란 우리말을 안 쓰고 공연히  먹거리 란 말을 써서 우리말을 어지럽게 하는 따위다. 책을  읽거리 라 하고 옷을  입거리 라 하니 참 어이가 없다. 이것이 다 책에 갇히고 글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하는 꼴이다. 말은 우리 것이다. 그런데 글은 중국에서 오고 일본에서 오고 서양에서 왔다는 것을 꿈에도 잊어서는 안된다.

 

첫쪽 →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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