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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2호  2022.10.10 (음 9.15)  




 



 글나눔 → 오늘의 어록

   


누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다. 불행한 것은 그런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 몽테뉴
 

글나눔 → 말글

   


인과와 편향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자꾸 그 원인을 따지는 버릇이 있다. 국이 짜면 ‘국이 짜구나’라 안 하고 소금을 너무 많이 쳤나 보군, 눈이 작으면 ‘눈이 작구나’라 하지 않고 다 아빠 때문이라 한다. 재판은 원인 찾기 경연장이다.

원인은 무한하다. 당구공을 구르게 한 건 큐대이지만 팔근육을 앞뒤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큐대가 공을 칠 수 없었을 것이다. 팔은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테고. 대뇌피질을 움직이게 한 건 뭘꼬?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얘기도 존재에 연관된 수많은 원인과 조건을 말하는 거겠지.

원인 찾기에는 사회 문화와 정치 성향이 반영된다. 보통은 개인과 환경 중 하나에 몰아주기를 한다. 폭식의 원인은 운동은 안 하고 절제력 없이 음식만 탐하는 개인 때문일까, 식품산업의 로비나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 때문일까. 한두 가지 원인만이 어떤 현상의 유일한 이유가 될 순 없다. 폭식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 적다거나, 그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도 원인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다른 원인이 있고, 중첩이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우리는 책임을 물을 때 일정한 편향성을 갖는다. 당신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라면 재임 기간에 일어난 좋은 일(남북회담)은 대통령 덕분이지만, 나쁜 일(LH 사태)은 구조 탓이라고 말한다. 반대파라면 좋은 일은 누가 하더라도 벌어질 거였고 나쁜 일은 모두 문재인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향적이다. 이 편향성을 스스로 알아채느냐, 그리고 다른 원인에도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가 과제이다.


같잖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 29일 오후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 여러분 보는 앞에서 토론을 해야 하겠느냐. 어이가 없다. 정말 같잖다”고 말했다.

곁에 있으면 복잡한 게 단순해진다. 무뎌진다 해도 좋다. 말에도 곁에 있다가 하나가 되는 경우가 있다. ‘마른안주, 비린내, 열쇠’ 같은 말이 그렇다.

‘-잖다/-찮다’는 ‘~(하)지 아니하다’가 줄어들어 앞말을 부정하거나 가치를 떨어뜨리는 뜻을 갖는다. 예도 솔찮게 있다. ‘남부럽잖다, 달갑잖다, 시답잖다, 적잖다, 점잖다’, ‘괜찮다, 귀찮다, 만만찮다, 시원찮다, 심심찮다, 우연찮다, 편찮다, 하찮다’. 형태나 의미가 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앞말을 부정하는 뜻으로 읽힌다.

‘같다’는 두 대상을 비교한다. ‘나도 너랑 같은 마음이야’에선 ‘나와 너’가 비교된다. ‘같은 값이면’이라고 하면 두 물건의 값이 같다는 뜻일 테고, ‘같은 물에서 논다’고 하면 두 사람이 같은 환경에서 지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같잖다’는 ‘같지 아니하다’와 같지 않다. ‘뭐가 같잖지?’라 물으면 뭘 비교하는지 답하기 수월찮다. 반면에 ‘없이 사는 사람’이라 하면 뭐가 없는지 쉽게 답할 수 있다. ‘같잖게 보다/여기다’처럼 쓰기도 하고, ‘같잖은 말, 같잖은 변명, 같잖은 일, 같잖은 놈’ 식으로도 쓴다. 뒤의 표현은 ‘말 같잖은 말, 변명 같잖은 변명, 일 같잖은 일, 사람 같잖은 놈’처럼 뒷말을 앞말에 다시 쓸 수 있다. ‘꼴같잖다’와 비슷한말이기도 하니 생김새가 변변찮은 사람에게 쓰이다가, 사람 됨됨이가 수준 이하라며 헐뜯는 말이 됐다.

‘같잖다’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금을 그어놓고 타인이 거기에 못 미친다고 소리치는 말이다. 상대를 전면 부정하는 거라 당사자와 말섞기가 쉽잖다.


 

시나눔 → 우나라詩

   


참음은 - 김수영

참음은 어제를 생각하게 하고
어제의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새로 확장된 서울특별시 동남단 논두렁에
어는 막막한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전근을 한 국민학교 선생을 생각하게 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주막거리에서 쉬는 十분동안의
지루한 정차를 생각하게 하고
그 주막거리의 이름이 말죽거리라는 것까지도
무료하게 생각하게 하고

기적(奇蹟)을 기적으로 울리게 한다
죽은 기적을 산 기적으로 울리게 한다

<1963. 12. 21>


 

글나눔 → 고사성어

   


 구우일모(九牛一毛)

九:아홉 구, 牛:소 우, 一:한 일, 毛:털 모

[유사어] 창해일속(滄海一粟), 창해일적(滄海一滴), 대해일적(大海一滴)
[참조] 인생조로(人生朝露), 중석몰촉(中石沒鏃)
[출전] ≪漢書≫ <報任安書>, ≪文選≫ <司馬遷 報任少卿書>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쇠)털이라는 뜻으로, 많은 것 중에 가장 적은 것의 비유.

한(漢)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B.C. 99) 5000의 보병을 이끌고 흉노(匈奴)를 정벌하러 나갔던 이릉(李陵:?~B.C. 72) 장군은 열 배가 넘는 적의 기병을 맞아 초전 10여 일간은 잘 싸웠으나 결국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듬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난전(亂戰)중에 전사한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안 무제는 크게 노하여 이릉의 일족(一族)을 참형에 처하라고 엄명했다. 그러나 중신을 비롯한 이릉의 동료들은 침묵 속에 무제의 안색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이릉을 위해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를 분개한 사마천(司馬遷:B.C. 135?~93?)이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사마천은 지난날 흉노에게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던 이광(李廣) 장군의 손자인 이릉을 평소부터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국난(國難)에 임할 용장(勇將)’이라고 굳게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가(史家)로서의 냉철한 눈으로 사태의 진상을 통찰하고 대담하게 무제에게 아뢰었다.

“황공하오나 이릉은 소수의 보병으로 오랑캐의 수만 기병과 싸워 그 괴수를 경악케 하였으나 원군은 오지 않고 아군 속에 배반자까지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패전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하오나 끝까지 병졸들과 신고(辛苦)를 같이한 이릉은 인간으로서 극한의 역량을 발휘한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옵니다. 그가 흉노에게 투항한 것도 필시 훗날 황은(皇恩)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사료되오니, 차제에 폐하께서 이릉의 무공을 천하에 공표하시오소서.”

무제는 진노하여 사마천을 투옥(投獄)한 후 궁형(宮刑)에 처했다. 세인(世人)은 이 일을 가리켜 ‘이릉의 화[李陵之禍]’라 일컫고 있다.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것으로 가장 수치스런 형벌이었다. 사마천은 이를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알리는 글[報任安書]’에서 ‘최하급의 치욕’이라고 적고, 이어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니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리고 세상사람들 또한 내가 죽는다 해도 절개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나쁜 말하다가 큰 죄를 지어서 어리석게 죽었다고 여길 것이네.”

사마천이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살아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으로 봉직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임종시(B.C. 122)에 ‘통사(通史)를 기록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사기(史記)》를 집필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사기》를 완성하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 그로부터  2년후에 중국 최초의 사서(史書)로서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로 꼽히는 《사기》130여권이 완성(B.C. 97)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주] 태사령 : 조정(朝廷)의 기록?천문?제사 등을 맞아보던 관청의 관리. 사관(史官).

사마천 : 전한의 역사가. 지는 자장(子長). 경칭은 태사공(太史公). 젊었을 때 전국 각처를 주유(周遊)하며 전국 시대 제후(諸侯)의 기록을 수집 정리함. 기원전 104년 공손경(公孫卿)과 함께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여 후세 역법(曆法)의 기틀을 마련함. 아버지 사마담(史馬談)의 뒤를 이어 태사령(太史令)이 됨. 흉노(匈奴) 토벌 중 포로가 되어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받음. 기원전 97년 불후의 명저《사기》130권을 완성함. (B.C. 135?~93?)


 

글나눔 → 추천글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사랑은 자연으로 치장되고 상상력으로 수놓아진 캔버스이다. - 볼테르


 
    요청과 사랑은 아무 관계도 없다 

 우리 어머니는 3년 연속 단추 달린 셔츠를 보내 주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아무 소리  없이 그 옷을 받았다가는 앞으로 20년 동안 계속 새 셔츠를 받게 될 판이었다. 내가 단추 달린 셔츠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는데 무려 3년이나 걸렸으나, 결국 성공했다!


    바바라 드 안젤리스

 여성들이 요청하기 두려워한는 이유는, 무의식 깊은 곳에 더 고분고분하고 요구가 적은 다른 여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인식 자체가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암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남녀는  서로에게 이것저것을 원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치만 살피게 된다. 그 다음에 그들은 모두 의기소침하고,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좌절감에 괴로워하다가,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이혼한다. 이런 사태는 모두 직접적인 말과 분명한 요청으로 막을 수 있다.


    명령하지 말고 요청하라 - 죠 배튼

 내 세미나의 수강생 중 다수는 명령하는 것보다 요청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식으로 그 상황을 처리한다. 어떤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치자.

  "죠, 잠깐 기다려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명령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요"

  나는 쏘아붙인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나는 예전에 해군에 있었을 때도 그 점에 대해 확신이 가지 않더군요. 그런데, 결혼하셨습니까?"
  "그렇소."
  "아내에게 청혼하셨습니까?"
  "당연히."
  "혹시 '넌 나와 결혼해야 해'라고 청혼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닌데요."
  "그런,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요청했소."

  그 다음에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당신이 정말 이루고 싶어했던 중요한 업무가 있거나 돈이 바닥났을 때는 명령하지 않았잖습니까. 요청했지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동의한다.



   상대에게 만능을 요청하지 말라

 당신의 배우자가 모든 필요를 다 충족시켜 줄 수 있거나, 기꺼이 그렇게 하리라는 기대는 아예 말아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다른 이에게 요청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종종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거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 요청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손을 내미는 것보다 덜 부담스럽고, 덜 효과적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만 계속 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 훨씬 쉽지만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우리는 배우자만큼 다른 이에게 요청할 필요가 있다. 다른 친구들과 갖고 구성원은 우리의 삶에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누구는 재미있는 익살꾼이고, 누구는 믿음직한 상담자이다. 어떤 이는 현명한 재정적인 충고자이고, 또 다른 이는 끈기있는 청취자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영적인 동반자인 반면, 저 사람은 문제 해결사이다. 당신이 협조의 그물망에 많은 친구와 친지를 가졌는지 확인하라. 저스틴 스튜어트는 책의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당신 남편이 가장 친한 여자 친구와 똑같은 식으로 가까워지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런 일은  없어요. 그저, 당신의 그런 필요를 채워 줄 최고의 여자 친구가 곁에 있는지 확인하세요."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채나라를 공격한다

이후 강, 황 두 나라의 주장(主長)들은 각기 본국을 지키며 제환공의 명령이 올 때만을 기다렸다. 한편 제나라에 노나라의 공자 계우가 찾아왔다. 계우는 노희공의 전갈을 옮겨 전했다.

"우리 나라는 그간 주나라, 거나라와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군후께서 형나라와 위나라를 위해 수고하실 때 돕지 못한 것을 사죄합니다. 이제 군후께서 강, 황 두 나라와 동맹을 맺고 장차 큰일을 도모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방을 치실 때는 원컨대 우리 노군이 군후의 말채찍을 잡고서 앞서 달리고자 합니다."

계우가 전하는 이와 같은 노희공의 전갈을 듣고 제환공은 크게 만족했다. 제환공은 장차 초나라 칠 것을 노나라와도 비밀히 약속했다. 한편 초군은 다시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문공은 죄없는 백성들이 화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화평(和平)을 청할 생각이었다. 대부 공숙이 아뢰었다.

"화평을 청하시다니 안 될 말입니다. 제나라가 초나라를 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우리 정나라를 위한 것으로 이렇듯 제환공께서 애쓰는데 그 은덕을 몰라 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굳게 지키며 때를 기다리십시오."

정문공은 생각을 돌리는 한편 사람을 제나라에 보내어 사세가 급함을 고했다. 제환공이 정나라에서 온 사자에게 계책을 일러 주었다.

"곧 돌아가서 제나라 구원병이 온다고 소문을 퍼뜨려 어떻든 초군의 공격을 늦추게만 하여라. 지금 예정한 대로 때가 오면, 과인이나 신하거나 간에 그 어느 한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호노로 나가서 채나라를 칠 것이다. 동시에 호노 땅으로 모여들 모든 제후와 힘을 합해 가지고 초나라를 무찌를 작정이다."

이에 제환공은 송(宋), 진(陳), 위(衛), 조(曹), 허(許) 모든 나라 군후에게 사자를 보내고 기약한 날짜에 다같이 군사를 일으켜 줄 것을 요망했다. 이 때의 명목은 채나라를 친다는 것이었지만 실속은 초나라를 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듬해가 되자 제환공은 친히 주왕실에 가서 주혜왕에게 신년 하례를 올렸다. 하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제환공은 즉시 남방으로 쳐들어갈 일을 의논했다. 이에 관중이 대장이 되어 습붕(濕朋), 빈수무(賓須無), 포숙아(鮑叔牙), 공자 개방, 수작 등을 거느리고 병차 3백 승에다 갑사(甲士) 만인과 함께 대를 나누어 일제히 진군하기로 했다. 태사가 날을 받아 아뢰었다.

"7일 날이 가장 길일(吉日)입니다. 이날 진발하도록 하소서."

이번엔 수작이 앞으로 나아가 청했다.

"신이 한 군대를 거느리고 소리없이 먼저 가서 채나라를 쳐서 점령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 군사가 오는 대로 한데 합치도록 하겠습니다."

제환공은 이를 허락했다. 한편 채나라는 늘 초나라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가 없었다. 제군이 쳐들어오는 걸 알고서야 채나라는 군사를 소집하고 수비를 서둘렀다. 채나라 성 아래 당도한 수작은 제군을 휘몰아 창검을 번뜩여 위엄을 드날리면서 공격했다. 제군은 밤늦게까지 성을 공격하다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물러갔다. 채목공은 제군의 장수가 바로 수작인 걸 알았다. 지난날 채희가 제나라 궁에 있었을 때, 수작은 그 밑에서 허리를 굽신거렸고 채희의 총애를 적지 않게 받았었다. 그래서 채목공은 수작이 능력도 별로 없는 변변치 못한 인물이란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채목공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황금과 비단을 한 수레 가득 실어 수작에게 보냈다. 제나라 진중에 간 심부름 하는 사람은 그저 수작이 사정을 봐주면서 적당히 공격해 주기를 바란다는 채목공의 말을 전했다. 수작은 뇌물을 받고 몹시 기뻤다. 수작은 뇌물을 가지고 온 심부름 하는 사람에게 제환공이 7로(七路) 제후들을 모아 먼저 채를 치고 나중에 초나라를 칠 것이라는 군사 기밀까지 털어놓았다. 그날 밤 채목공은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하는 보고를 받자 크게 놀랐다. 그날 밤으로 채목공은 궁중 권속을 데리고 성문을 열고서 초나라로 달아났다. 이렇게 군후가 도망치자 채나라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성문을 열고 제군에게 항복했다. 수작은 이걸 오로지 자기 공로로 돌려 제환공에게 보고했다.

한편 채목공은 초나라에 당도하자 즉시 초성왕을 찾아뵙고 수작의 입에서 나온 그 깜짝 놀랄 정보를 털어놓았다. 초성왕은 제나라의 계책을 알고 급히 명령을 내렸다.

"군사와 병차를 모으고 싸울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그리고 정나라 정벌에 참가한 투장 등을 소환했다. 며칠 후 군사를 거느린 제환공이 채나라에 당도하니, 수작은 자기가 채나라를 정복했다고 크게 자랑을 했다. 한편 각국의 제후들도 각기 군사와 병차를 거느리고 속속 모여드니 그들 제후는 다음과 같다.

송환공 어설(宋桓公 御說)
노희공 신(魯僖公 新)
진성공 저구(陳成公 杵舊)
위문공 훼(衛文公 毁)
정문공 첩(鄭文公 捷)
조소공 반(曹昭公 班)
허목공 신신(許穆公 新臣)

이들 7국 제후와 맹주 제환공 소백(小白)까지 합치면 모두 여덟 나라 군후가 모였으니, 이들 8국 대군의 위엄은 실로 용맹하고 씩씩했다. 이중 허목공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초나라 토벌전에 참가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달려와 제일 먼저 채나라에 도착했다. 제환공은 그 의기(義氣)에 감동해 조소공보다 윗자리에 서게 했으나, 수일 후 허목공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에 제환공은 채나라에서 3일을 머물고, 허목공의 죽음을 전군이 애도하게 하는 동시에 허목공을 후작에 대한 예로 장사 지내도록 허나라에 분부하니 남은 7국 군사는 초나라를 향해 남쪽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7국 대군이 초나라 경계에 이르니, 초나라 땅 저편에서 의관을 정제하고 수레를 길 왼편에 세우고 한사람이 허리를 공손히 굽히며 대군을 영접했다.

"대군을 거느리고 오시는 분은 제후가 아니십니까? 우리 초나라 군후께서 신으로 하여금 제후를 기다리게 한 지 오래이옵니다."

그 사람은 초나라 공족으로서 벼슬은 대부이며 성은 굴(屈)이라 하고 이름은 완(完)이라 하는 자로서 초성왕의 명을 받고 제군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에 제환공이 크게 놀라 물었다.


 

글나눔  → 읽어둘문학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한흑구편"
  한흑구(1909~1979)
 수필가. 소설가. 평양 출생. 미국 템플 대학 신문학과 수료 포항 수산 대학 교수 역임. 30년대에 월간지 '대평양', 문예지 '백광'을 창간. 주재하면서 단편 소설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한 바 있으며 해방 후에는 주로 수필에 전념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정 생활의 애틋함을 그렸다.


    옥수수

 아내가 거리에 나갔다가 옥수수 두 개를 사 왔다. 하나씩 먹자는 뜻이다. 그러나 옥수수 자루가 얼마나 큰지 반 토막도 다 못 먹겠다. 한뼘 반도 넘으니 양적으로 한 자나 되는 것 같다. 요사이 TV에서 전하던 개량종 수원19나 20 호인 거 같다. 그리고 멀리 강원도 산간 지방의 화전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옥수수를 퍽이나 좋아했다. 키가 2미터 이상이나 자라난 옥수수밭이 길 양쪽에 서 있는 좁은 길로 혼자서 지나갈 때에는 무서운 짐승이나 뛰어나올 것 같아서 머리털이 오싹 일어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옥수수의 이파리들은 야자수의 이파리처럼 길게 뻗어 나무의 양쪽이 늘어져서 춤을 추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병사들이 칼을 빼들고 열을 지어서 몰려나오는 것 같은 무서움도 주었다. 키가 큰 옥수수나무들이 강한 비바람에 줄기가 휘어서 절을 하는 모양을 하였다가도 향일성이 강한 탓으로 다시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똑바로 쳐들었다.

 나의 고향, 평양의 근방에는 옥수수를 전문으로 농사짓는 동리가 많았다. 대동강을 건너 동쪽에 있는 사동과 미림이 그 대표적이고, 밭이 많은 이북에서는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옥수수를 심어서 식량을 보탰다. 사동에는 내 누님이 살고 있어서 방학 때이면 으레 놀러 갔고, 그 곳의 옥수수는 좀 일찍여서 여름 방학 달인 8월이 한창이었다. 국민 학교 시절부터 나는 옥수수를 많이 먹었고, 또한 좋아했다. 옥수수의 나무는 키가 크고, 후리후리해서 멋이 있지만, 야자 이파리같이 길게 늘어진 것도 보기가 좋고, 또한 그 열매야말로 어느 열매와도 비길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탐스럽고, 우아했다. 푸른 식물성 섬유의 천 조박지 같은 껍질로 싸여 있는 열매를 한 갈피 한 갈피 벗기어 가면, 마지막 속잎은 희고 깨끗한 모시 속옷과 같이 씌워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것마저 벗기면 파릿하고 흰 수염들이 열매를 보호하는 듯이 감싸고, 품어 주고 있었다. 흰 명주실과 같은 수염들을 곱게 뜯어내면,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순스럽고, 탐스러운 옥수수알들이 곱게 줄을 지어서, 지붕 위에 있는 기왓골같이, 가지런히 박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처녀의 빨간 입술 속에서 진주알같이 빛나는 이빨보다도 더 빛나고 자연스러웠다. 하느님의 섭리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신기한 조각이라고 생각하였다.

  탐스러운 옥수수를 쪄서 먹어 보면 아무런 자극성이 없이 담백하면서도, 달고, 고소하고, 향긋하였다. 한알 한알 따먹어도 맛이 있고, 누에 모양으로 길다랗게 뜯거나, 이빨로 마구 뜯어 씹어도 그 맛은 한없이 달고, 고소하고, 향긋하였다. 열 자루를 그냥 계속해서 뜯어 치우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옥수수를 가공해서 먹는 방법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옥수수묵이다. 옥수수알을 맷돌에 갈아서 된죽을 쑤고, 찬 우물물을 자배기에 채운 다음, 여러 개의 잔 구멍이 뚫린 바가지로 된죽을 찬 물 속으로 뚝뚝 흘러내려서 식히는 방법이다. 이것을 옥수수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올챙이같이 생겼다 해서 올챙이묵이라고도 한다. 옥수수가 많이 생산되는 미국에서는 이 담백한 옥수수를 여러 가지로 가공해서 식품으로 많이 사용한다. 옥수숫가루를 비롯해서, 설탕, 전분, 과자 등과, 튀김과 야채 기름 등 많은 종류의 식품을 가공한다. 그러고도 남는 옥수수는 소, 돼지의 가축 사료로 쓰이고, 그러고도 또 남는 것은 외국으로 수출하는 형편이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이들의 말을 들으면, 북한에서 살고 있는 서민들은 주식으로 옥수수를 배급받아서 살아가기 마련이고, 이것도 부족하게 주어서 수수죽을 쑤어 먹는 형편이라고 한다. 아무리 옥수수가 맛이 좋다고 해도 매일같이 주식을 삼아 먹어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서 죽을 쑤어서 먹어야 한다니, 그 어렵고 슬픈 사정은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식생활 사정이 이러하다니, 간장, 고추장은 어떻게 담가 먹으며, 채소나 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을 것이 뻔한 노릇이다. 우리 속담에 '굶는 것같이 서러운 일이 없다.'고 했는데, 북한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백성들을 굶겨야 하나. 아내가 사 갖고 온 강원도산 수원 19호의 큰 옥수수 자루를 들고, 한알 한알 뜯어서 씹으며, 옛 추억에 잠겨 본다. 야자나무 수풀과 같이 우거져 서 있던 옥수수나무들의 긴 이파리들이 너울너울 팔들을 벌리고 춤을 출 때면, 손가락을 벌린 듯이 높이 피어난 옥수수꽃의 꼭대기로 수많은 풍뎅이들이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옥수수의 시원한 그늘 속에 뚫린 길을 혼자서 20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다니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풍경화와 같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웠던 옛 시절을 되씹는 듯이 옥수수의 반 토막을 맛이 있게 뜯어먹다가 오늘의 고향을 생각하면서 그만 내어놓고 만다.

 

글나눔  → 삶속의글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사랑하면 될텐데
  - 박완서 선생님께

  방바닥에 내려앉은 아침햇살을
  아기는 손으로 집어 듭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햇살 잡다가
  아기는 그만 울음이 터집니다
  울음소리에 놀란 햇살은
  슬그머니 문틈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봄햇살 속에 사랑스런 손녀를 안고 계실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 보며 강원도 초등학교 분교의 어느 친지가 보내 준 동시 한 편을 적어 봅니다. 얼마 전 따님을 통해 보내 주신 선생님의 새 작품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여행길에서 사다 주신 검은 목도리도 감사히 받았습니다. 언젠가 영국을 다녀오시며 선물로 주신 워즈워드의 `수선화`란 시와 그림이 새겨진 갸름한 접시에 저는 향나무 연필들을 담아 두었답니다. 신경숙 씨의 <외딴 방>을 읽을 무렵 선생님의 책을 읽었는데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도 삶은 아름답고 그  삶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다 따뜻하고 사랑스런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체험적 진실, 웃음과 눈물 속에 그대로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 작가들의 그 빼어난 묘사력에도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 좋은 글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어느새 봄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저희 수녀원 정원에도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이젠 천리향, 수선화가 얼굴을 보이겠지요. "슬픔 가득할 땐 꽃 핀 걸 봐도 힘들기만 하다"고  어느 날 조용히 말씀하시던 선생님과 저의 첫만남은 수년 전,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 중의 두 사람과 사별을 해야 했던 고통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졌기에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 켠이 아려 오곤 합니다. 요즘 매주 <서울주보>에 글을 쓰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 선생님의 애독자이며, 자매들인 저희는 좋은 글감이 많이 생기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기로 했답니다.

  3월은 제가 수녀원에 입회했던 달이기에 더욱 새롭게 느껴집니다. 30년 전 제가 공부하던 강의실에 한참 어린 후배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그 많은 세월 동안 사랑과 기도의 종소리에 제대로 깨어 살지 못한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연중 피정 강론에서 듣게 된 신부님의 말씀이 계속 제 안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수도자들은 모든 이를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어떤 누구도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제발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십시오. 그리고 석고상같이 경직되어 있지 말고 실수해도 좋으니 좀 웃는 얼굴로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고 기뻐할 수 있도록..."

 서 신부님의 그  말씀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전적으로 사랑한다고 늘상 말로만 거듭했을 뿐 진정한 사랑의 길에선 멀리 있는 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늘 조금씩 겁먹은 표정으로  거리를 두고 몸과 마음을 사려 온 자신을 들여다보며 저는 요즘 계속 스스로에게 타이르곤 합니다. `이봐, 뭐가 두렵지? 사랑하면 될텐데`하고 말입니다. 행동뿐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늘 절제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등의 말을 접어 두었고, 어줍잖은 체면 때문에 인색하고  차갑게 군 적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다른 수녀원에 계신  수녀님과 함께 교도소엘 가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는데도 제가 너무 굳어 있었는지 저와의 첫만남을 설레며 고대하던 어떤 형제는 후에 편지로 `저는 수녀님을 보긴 했지만 느끼진  못한 것 같다`고 적어 보냈습니다. 작별하는 순간에도  수인들에게 따스한 미소와 함께 스스럼없이 포옹해 주던 옆의 수녀님과, 어색한 몸짓으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저의 냉랭한 모습이 비교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필요한 용기, 인내, 겸손도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으려고 애쓰는 이 연습생을 선생님도 기도중에 기억해 주세요. 어느 때보다도 저의 사랑  없음을 절감하는 요즘은 항상 넉넉하고 자연스런 모습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이글이 가장 부럽습니다. 사소한 일들로 우울했던 마음을 털고 흙냄새 가득한 정원으로 꽃삽을 들고 나가야겠습니다. 봄까치꽃이 가득한 길을 선생님과 봄햇살 속에 산책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항상 미풍처럼 은은하게 베풀어 주신 그 사랑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천리향 향기 속에 띄우는 남쪽의 봄을 먼저 받아 주십시오.

  (1995)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감상문 쓰기  -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웃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다음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글이다. 이번에는 낱말이나 말법도 보아야 하겠지만 글의 내용을 더 많이 생각해 보자.


    라면 한 그릇의 사색

 정해진 밤 자습을 마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집에 와서 혼자 라면을 끓여서 마시다시피 먹고 있는데, 창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다보니 술이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는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동네 사람들도 몇 끼어든 것 같다. 나로서는 감히 해볼 엄두도 안 나는 욕이 동네를 울리고 있다. 그런 속에서 스프를 두 개 넣어 걸쭉한 라면과 걸쭉한 그 소란을 음미하여 본다.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인가? 아닐 게다. 그런 보통 사람일 게다. 파라리 넥타이 매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이나 생명에는 관심도 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나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가? 신사답지 못하게 욕을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인다. 국민에게 발포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군인이었던 정치인도 더 나쁜 사람이다. 저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여러 사람이 듣도록 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가? 아니다. 우리들은 어떤가? 눈도 깜짝 않고 남의 마음을 도려낼 만한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있다. 그것도 더 배운 놈일수록 남 공격하는 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얼굴 빛은 물론 맥박이나 혈압의 변화도 없다. 그나마 저들은 흥분해 있고 이성이 잠시 비켜난 상태 아닌가? 그럼 저들이 우리보다 착한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 같을 게다. 그럼 왜 저들은 나쁘게 보이고 우리들은 그렇지 않은가? 왜 대통령이 전쟁 터뜨리면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가? 돈 많고 많이 배운 놈일수록 포장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저들은 못 배우고 돈 없다는 이유로 자기의 나쁜 점을 그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불이익이 아니고 정당한 거다. 나쁜 것 나쁘게 평가받지 않는 게 부당한 거다. 그럼 나나 더 배운 놈이나 돈 많은 놈이 부당한 것이네? 그렇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당해질 수 있지? 모르겠다. 어쨌건 플러스 마이너스로 볼 때 우리는 마이너스고 저들은 제로에 가까우니 저들에게 항상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진 놈 배운 놈은 마이너스 벗어나기만 해도 대단한 인물이 된다. 그만큼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울수록 더러워지기 쉽고 깨끗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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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꽤 주의해서 읽어야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게 될 것 같다. 그만큼 남다른 생각이 나타나 있고, 글월마다 뜻이 차 있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는데, 밖에서 고함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아저씨의 아주머니가 `지거리를 하면서 싸우고 있고, 마을 사람도 몇이 끼어들어 있다. 여기서 글쓴이는 그 이상자세히 그 싸움의 속사정과 모습을 살피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겠지만, 흔히 일어나는 이웃 사람들의 싸움이라 도 그런 것이겠지 하고 그 이상 관심을 안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흔히 일어나는 사람들의 싸움에 대해서 오늘은 뭔가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내가 먹는 라면과 함께 곰곰이 되씹어 보자고 해서 생각을 적은 것이 이런 감상문이 되었다. 이 글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 보나. 저 듣기 거북한 욕지거리, 교양이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 토해내는 고함소리, 누구나 저 사람들을 욕할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나쁘기로 말하면 저들을 욕하는 점잖은 사람들, 신사 숙년들, 무엇을 배웠다는 이들이 훨씬 나쁘다.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할뿐이지만, 교양을 갖추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점잖게 논리를 세워서 상대편을 아주 크게 해치는 말을 한다. 그뿐 아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사람의 목숨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전쟁까지 일으켜 사람을 무더기로 죽인다. 그런데 어째서 골목에서 욕설을 하면서 싸우는 저들을 나쁘게 보이고, 돈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게 보이는가? 그것은  포장을 잘 하기 때문  이다. 곧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싸우면서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들한테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면, 돈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고 한 사람들은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 대강 이런 생각이다.

  이 글을 쓴 학생은 자기도 배운 놈 편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들이 우리보다 착한가? 하고 스스로 묻는 말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고했고, 다 같을 게다 는 대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라고 한 말에는 돈 많이 가진 사람이나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까지 들어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언제나 땀흘려 일하면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식하고 거칠어서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볼 때 플러스도 아니도 마이너스도 아닌 제로 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저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진 놈, 배운 놈은 마이너스 벗어나기만 해도 대단한 놈이 된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해서 조리있게 쓴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일과 삶을 보는 관점이 뚜렷하고, 그래서 아주 확신을 가지고 쓴 글이다. 글쓴이의 이런 주관과 신념은 어떤 책에 씌어 있는 이론을 읽어서 머리 속에 넣어 놓은 것으로 풀어 낸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만큼 자기 것으로 된 말로, 확신에 찬 말로 썼다.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글쓴이의 깊은 이해와 따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이 이런 생각을 쓸 수는 없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서 이만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느낌과 생각을 쓴 것이 자세하고 정확하며, 그래서 그것이 결코 어떤 감정에 치우치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매우 온당하게 나타나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것 또한 글쓴이가 가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심정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쯤 하고, 낱말과 문장에 대해서 말해 본다.

  - 라면 한 그릇의 사색

  좀 멋을 부린 제목이다. 이런 멋이란 알고 보면 흉내다.  차 한잔의 사상 꼴로 쓴 것이다. 이렇게 쓰더라도 늘 입에서 나오는 낱말을 쓰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사색 을 생각 으로 바꾸어 보라. 흉내가 아니고 제법 제 생각같이 느껴질 것이다.

  - 내다보니 술에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는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여기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고 하는 말이 괴상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말법이 아니다. 우리말법일 수 없는 것은, 이런 말이 우리 입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곧 깨달을 수 있다. 하도 외국글 따라 외국말법을 그대로 옮겨 써놓은 글을 많이 읽게 되니 자기가 쓰는 글도 그만 이렇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하나? 말하는 대로 쓰면 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운다 고 말이다.

  - 그런 속에서 스프를 두 개 넣어 걸쭉한 라면과, 걸쭉한 그 소란을 음미하여 본다.

  글재주를 잘 부려 놓은 대문이다.  ..라면을 먹으면서 시끄러운 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고 할 것을 이렇게 멋을 부려 썼는데, 그다지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말재주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차를 마실 경우에야 이야기를 하면서 마실 수도 있고 무엇을 골똘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가 고파 라면을 마시다시피  마구 먹으면서 무슨 바깥의 사람 소시를 그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치는 크게 허물하지 않겠다. 다만 이 이상의 말재주를 부릴 생각은 말아야 하고, 말재주를 즐기는 버릇을 조심해야 하고, 이런 말재주보다 차라리 소박하게, 보통 우리가 누구나 입으로 하는 말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글이라는 것만은 알아 두어야 한다. 또 위의 글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음미하여 본다 만은  맛보기로 한다 고 쓰는 것이 좋겠다.

  - 신사답지 못하게 욕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신사 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로 상류 사회의 남자 란 뜻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쓸 말은 아니다.  점잖지 못하게...  이렇게 쓰면 우리말이 되는 것이다.

  - 국민에게 발포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여기에 쓴 거리끼지 않는 은 좀 맞지 않은 말이다.  서슴지 않는 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여러 사람이 듣도록 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글월에 나오는 함으로써 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것은 글에서만 나오는 말이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  해서 로 쓰면 될 것이다. 입으로 하는 말을 써야 글이 살아난다.

  -그것도 배운 놈일수록 남 공격하는 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논리적, 합리적, 비교적.. 이렇게 무슨  -적 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말은 일본글을 따라서 쓰는 꼴이니 안 쓰는 것이 좋다. 도대체  논리적 이란 무슨 말인가? 논리가 잘 서 있다는 말인가?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인가? 겨우 조금만 서 있다는 것인가? 논리가 잘 서 있다는 말이라면 논리가 서 있고  하면 될 것이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 그렇게 써야 할 것이다. 무슨  -적 이란 말은 말뜻을 흐리게 하는 좋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 그럼 저들은 못 배우고 돈 없다는 이유로 자기의 나쁜 점을 그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불이익을 짊어지고 있나?

  여기 나오는  이유 란 말은  까닭 이란 말로 바꿔서 쓰는 것이 좋다.  돈 없다는 이유로 를 돈이 없기 때문에 라고 써도 되겠지. 그리고  평가받아야 를 값매겨져야 로 쓸 수는 없는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불이익 도  손해 라 하는 것이 좋다.

  중국글자말 앞에 불 자를 써서 본디 말에 반대되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 많고, 이런 말이 편리하다고 해서 자꾸 쓰지만, 우리말을 죽이는 결과가 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고 우리말을 살려 쓰는 것이 옳다.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할  불- 자 붙은 말을 다음에 들어본다.

  불가하다 - 옳지 못하다  
  불가분의 - 뗄 수 없는
  불가사의하다 - 이상야릇하다
  불가해하다 - 알 수 없다
  불경기 - 세월없다
  불계승 - 안 세고 이김
  불과하다 - 지나지 않다
  불가능하다 - 할 수 없다
  불가불 - 마땅히
  불가피하다 - 피할 수 없다
  불결하다 - 깨끗하지 못하다
  불경제하다 - 헤프다
  불공평하다 - 고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런데도
  불굴의 - 굽힐 줄 모르는
  불귀객 - 못 돌아올 사람
  불균일한 - 고르지 않은
  불균형 - 고르지 못함
  불량 - 나쁨
  불로소득 - 힘 안 들인 벌이
  불리하다 - 이롭지 못하다
  불만족하다 - 만족스럽지 않다
  불매운동 - 안사기 운동
  불면증 - 잠 안 오는 병
  불멸 - 안 없어짐
  불명예 - 명예롭지 못함
  불모지 - 풀 안 나는 땅. 메마른 땅
  불무하다 - 없지 않다
  불문 - 묻지 않음
  불문가지 - 물을 것 없음. 뻔함
  불미스러운 - 좋지 않은
  불변하다 - 변함없다
  불복 - 복종 않음
  불비 - 못 갖춤
  불비점 - 못 갖춘 점. 덜된 점
  불사약 - 안 죽는 약
  불사조 - 안 죽는 새
  불사한다 - 사양 않는다
  불손하다 - 버릇없다
  불순물 - 잡것
  불식 - 씻음
  불시에 - 갑자기
  불안감 - 불안한 느낌
  불야성 - 등불천지
  불요불급하다 - 급하지 않다
  불요하다 - 쓸데없다
  불우 이웃 - 가엾은 이웃
  불응한다 - 따르지 않는다
  불원간 - 머지않아
  불의 - 뜻밖
  불충분하다 - 넉넉지 않다
  불충실하다 - 충실하지 않다
  불취학 - 학교 들지 못함
  불치병 - 못 고칠 병
  불침번 - 안 자는 당번
  불쾌감 - 언짢은 느낌
  불통 - 막힘
  불퇴진의 - 안 물러설. 끄덕없는
  불투명색 - 흐릿한 빛
  불투명하다 - 흐릿하다
  불편부당 - 공평함. 치우치지 않음
  불평분자 - 불평꾼
  불필요 - 필요없음
  불허 - 허락않음. 허가않음
  불황 - 세월없음
  불후 - 안 썩음
  불후의 - 안 썩는. 길이 생생한

  이렇게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중국글자의 해독을 입고 있는가를 알 수있다. 중국글자말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우리말을 살릴 수 없다. 끝으로, 이 글은 마지막에 라면을 다 먹은 이야기를 한마디 덧붙였더라면 자연스런 형식을 더 낫게 갖추었을 것임을 말해 두고 싶다.


 

첫쪽 →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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