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첫쪽

방문자수 (2014.04~)

전체 : 1,154,596
오늘 : 134
어제 : 250

페이지뷰

전체 : 42,180,376
오늘 : 5,104
어제 : 7,381
조회 수 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letter_bn.gif


【독서편지】 제1067호

2022.5.16. (음 4.16) / 발송인:

web_sign5.gif

mail.gif

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오늘의 어록

   


 누구나 거의 다 역경을 견디어 낼 수는 있지만,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 ―에이브러햄 링컨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외국어 선택

학교에서 시행하는 외국어 교육은 교양인이나 전문 지식인을 양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방식이다. 대개는 잘 알려진 선진국 언어를 선택해서 공교육에 반영한다. 보통 식민지 출신 국가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과거 지배국가의 언어를 계속해서 공교육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교육 인프라가 넉넉하고 비용이 덜 드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식민지 시절의 분노를 참을 길이 없어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교육에서 배제하는 경우이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식민지 시절 일본어 가능자가 꽤 많았는데 광복 이후 여지없이 공교육에서 배제해 버렸다. 지금의 일본어 전문가들은 식민지 시절 지식인들을 계승하고 있지 않다.

과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옆 나라 나미비아를 강압적으로 지배했다. 나미비아가 독립하자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칸스어를 버리고 영어를 교육언어로 삼았다. 분노 때문이었다. 역시 아프리카의 르완다도 유혈 낭자한 내전 이후 식민지 시절부터 자국의 분열과 갈등에 연루되었던 프랑스어보다 이웃 나라와 소통이 원활한 영어를 중요한 교육용 외국어로 삼아가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미국 쪽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우크라이나 역시 소비에트에서 이탈한 다음에 러시아어 학습자가 줄고 영어 학습자가 대폭 늘었다. 영어가 세계어로 등극한 것은 오로지 언어의 기능적인 유용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존중하는 사회적 기풍은 국제 사회의 외국어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 외국어로 얼마나 교양과 품위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심리적 평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평화로 국제 사회에 공헌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 될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다언어 사회

예로부터 ‘하나의 언어’는 ‘통일된 민족국가’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반대로 ‘다양한 언어’가 오히려 활기찬 나라의 상징처럼 되어 간다. 공통된 공용어와 각자 어떤 연고로 배운 딴 언어, 이렇게 복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정한 사회적 갈등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성취한다면 우리 사회는 커다란 혁신과 발전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포용하고 있다. 엄청난 문화적 잠재력을 품은 셈이다. 그러나 영어가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에 미국에 온 이주민들이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영어만 배우려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했건만 그리 다양한 언어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을 ‘언어의 공동묘지’라고도 비아냥댄다.

만일 한국이 국내의 외국인들에게 좀 더 나은 언어 정책을 제공하고 그들이 안착할 수 있게 한다면 다문화, 다언어 사회가 창출하는 다양한 문화적 수요와 새로운 경제적 활성화를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지식과 정보를 오로지 영어를 통해서만 받아들이는 지금의 방식은 과거에 우리가 중국에만 의존했던 나쁜 버릇의 유산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의 원천 자체를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인 언어 서비스’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자체와 경찰, 그리고 교육기관에 통역 서비스를 마련하고 통번역 앱의 개발과 보급, 기계번역 연구 등을 통해 한국에 취업했거나 학업을 마친 외국인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펼칠 수 있게 해야 우리 청년들도 더 다양한 기회를 얻는다. 과거에는 민족의 생존이라는 치열한 고민이 우리의 언어를 지켜왔다면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한몫을 분명히 차지하기 위한 언어문화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과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etter_bullet_1.gif

시나눔 → 우리나라 詩

   


긍지(矜持)의 날 -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1955. 2>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拒轍) /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반항함.  《출전》韓詩外傳 / 文選

⑴《韓詩外傳》(券八)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 : BC 794-731) 때의 일이다. 어느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이온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 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 가도록 하라."             


       ⑵《文選》에 보면,           

'당랑거철'은 삼국시대로 접어들기 직전, 진림(陳琳)이란 사람이 유비(劉備) 등 군웅(群雄)에게 띄운 격문(檄文)에도 나온다.

"조조(曹操)는 이미 덕을 잃은 만큼 의지할 인물이 못 된다. 그러니 모두 원소(袁紹)와 더불어 천하의 대의를 도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 지금 열악한 조조의 군사는 마치 '사마귀가 제 분수도 모르고 앞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

         

       【동의어】당랑지부(螳螂之斧), 당랑당거철(?螂當拒轍), 당랑지력(螳螂之力)
       【유사어】당랑규선(螳螂窺蟬)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너의 고통이 너의 자산이다 - 이창동

   충분히 어두워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별을 볼 수 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는 참 가난하고 초라한 젊은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 진학도 못한상태였고 가정의 불행과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기름에 빠진 날벌레처럼 출구가 없는 현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김원도라는 시를 쓰는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 글 솜씨를 눈여겨봤다며 문학 동인을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문학이라는 꿈을 꾸기엔 그때 나를 짓누르던 삶의 고통이 너무도 무거웠던 것이다. 나의 절망적인 하소연을 한참 듣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의 생활의 고통이 너의 자산이야."

  선배의 그 말은 두터운 얼음장을 깨는 도끼날처럼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현실의 고통은 치욕이 아니라 나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껴안고, 바로 그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덕분에 나는 그와 함께 (주변문학동인)이라는 작은 문학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고 소설 습작품을 쓰며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문학을 통해서 삶의 출구를 찾은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영화감독)


    작품 속 인물이 손을 내밀 때까지 - 손숙

  "배우가 그 인물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어느 날 작품 속의 인물이 손을 내민다."

  언젠가 연습이 만족스럽게 되지 않아 울고 있는 내게 이해랑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사실 당시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작품 속의 인물은 까마득하게 보이고 나는 그 인물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작품 속의 인물이 나를 거부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날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나를 닦달하기 시작하셨다. 대사 한 마디를 수십 번 연습했다. 나중에는 머리가 멍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자신이 부끄럽고 비참해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내 울음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다 울었으면 다시 한 번 해볼까?"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대본을 펼쳤다.눈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작품 속의 인물만 보기 위해서 혼신은 힘을 모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잠시 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핑 하고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때의 체험은 그후로 내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고 있다.

(연극배우)


    후배를 먼저 - 강익중

 3년 전 여름 기회가 닿아 미국 코네티컷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다. 백남준 선생님과의 공동 전시는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지만, 혹시나 그분에게 누를 끼치면 어쩌지 하는 압박감으로 미술관 직원들과 며칠째 작품의 배치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미술관 직원들과 나는,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 당연히 미술관 전시장의 주전시실에 놓여져야 한다는 데 거의 합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 마지막날 오전, 당시 독일 뒤셀도르프에 계셨던 백남준 선생님께서 미술관으로 팩스를 보내 주셨다. 단 두 줄의 문장이 담긴 간단한 내용이었다. (나는 괜찮다. 강익중 작품을 좋은 자리는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건네받은 우리들은 한편으로 당황하기도 했지만 모두 한 위대한 작가의 포용과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쨌든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과 내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심사숙고를 거쳐 전시장에 균형 있게 배치되었다. 자기를 낮추며 어린 나에게 기회를 주시려던 그분의 깊은 마음은 앞으로 나의 작품 활동 기간중에 나의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으로 언제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서양화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이글저글

   


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미남은 괴로워

  조선왕조 초기의 대표적인 학자요, 정치가로 정인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초대 임금인 태조 5년에 나서 성종 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씨 왕조의 초창기 왕성한 운세를 타고, 천품의 재주를 한껏 발휘하여 출세하고 또 많은 공적을 남긴 분이다. 19세로 식년 문과에 장원하였으니 뛰어난 글재주를 짐작케 한다. 순탄하게 벼슬길을 걸어 세종이 즉위하자 특별히 총애를 받아 예조와 이조의 정랑을 거쳐, 집현전 학사로 뽑혔으니 그의 학문은 날로 깊이를 더하였고, 세종 9년 32세로 문과 중시에  또한번 장원하여 곧장 좌필선에 선임되고 이듬해 부제학, 시강관을 겸임하기에 이른다.

  필선과 시강관은 둘 다 시강원의  요직으로 다음 왕위에 오를 세자의 직접 선생님이니, 세종의 신임과 총애가 어떠하였나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그의 소년시절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의 출생을 놓고 석성현감 홍인의 아들로  권우의 문인이라고 하였으니, 결코 혁혁한 가문은 못된다. 집안에 신동이 태어났다고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겠는데,  또한 사명감을 갖고 학문에 열중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옛날 공부라는게 학문으로 된 원전을 주로 참고하며 읽어 이해하고는, 책을 펼쳐놓은 채 눈길을 코끝으로 모아 책은 보는지 마는지 몸을 전후 또는 좌우로 흔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읽고 외우는 것이라, 가다가 막힐 때나 잠시 눈을 들어 본문을 보고, 다시 본래 자세로 돌아가 왱왱 외우는 것이 태반이다. 어두운 호롱불 아래서는 또 그렇게 하는 공부밖에 달리 할 길이 없다. 어느 가을, 밤도 이슥하여 주인공이 이렇게 글을 외우고 있는데, 시늉만의 등불이 펄렁이더니 앞이 갑자기 훤한 것이다. 눈을  들어 보니 묘령의 여인 하나가 다소곳이 서 있지 않은가?

  “사불범정이라니 요망한 귀신이거든 썩 물러가고 사람이거든 어인 사람이며 무슨 일로 왔는가를 말하라.”

  잔뜩 율기를  하고 묻는 말에 상대방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그러나 똑똑히 말한다.

  “곁의 집에 사는 처자이온대 도련님의 글 읽으시는 소리를 듣고, 사모하옵는 마음을 억제치 못하와 그만 이렇게...”

  금방이라도 다가올 모양이라 언사를 부드럽게 하여 차분히 일렀다.

  “우리나라는 예의지국이라, 자고로 예절을 숭상하는 터에 젊은 남녀가 사사로이 만나는 건 도리가 아닌 줄로 아오.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중매를 놓아 청혼하면 달리 방도가 있을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상대는 기안에 눌리어 다시 더 아무말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어휴...”

  큰 숨을 몰아 쉰 그는, 밝은 날로 부모님을 졸랐다.

  “집 팔고 이사갑시다.”

  이리하여 그는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보다 더한 예로 고려 초기의 강감찬 장군의 일화가 있다. 그는 천병만마를 호령하는 장군도 아니다. 문과 출신으로  체수도 적고, 얼굴은 박박곰보에 검기는 왜 그렇게 까맣든지, 흔히 외모론 보잘 것 없으면서 재주 있는 사람을 그렇게 별명지어 부르기까지 하는 그런 분이다. 옛날엔 청년들이 자기도 당당한 남아라고 뽐낼 때 하는 말이 있었다.

  “나도 임마! 홍역, 마마 다한 놈이다.”

  마마는 천연두 증세도 대단했고, 혹 살아 남더라도 그 흉터가 말이 아니다. 그래서 날짜를 채우고 환자가 머리를 들고  일어나게 되면, 호구별성마마 배송낸다고 마마귀신을 전별하는  의식을 치렀다. 시원스러게 어서어서  가라고 평화적이긴 하나 쫓아내는 절차다.  그런데 소년 강감찬이 그런 자리에 와서 두 손을 모아 빌더라지 않은가?

  “별성마마님, 이 집을 떠나거든 제발 내게로 와 주시오.”

  간데마다 쫓아내는데 오라고 환영하는 데가 있으니 오죽 좋은가? 강감찬은 그길로 몸져 누워 앓아 사경을 헤맸다. 얼굴에 손등에 무섭게 돋았던 것이 딱정이가 질 때 곱게 넘기면 흉터가 안남는 것인데, 이 딱한 소년은 제 얼굴을 제가 사정없이 할퀴었다. 어른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 그리하여 박박 얽어뱅이가 되어 일어앉은 그는 흡족한 듯이 웃었다.

  “이제 됐어, 얼굴이 좀 곱상하다  보니 계집애들이 어찌나 따르는지! 이젠 마음놓고 공부하고 장부답게 일도 해야지. 에헴!”


  박차오르는 필흥

  조선조 때 조씨라던가 하는 명필의 얘기가 있다. 주인공되는 조모라는 분은 물론 상당한 벼슬자리에 있고, 또 처신이 고결하여 사회의 칭송을 받는 분이었다. 그가 하루는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이 생겨 하인 하나만을 데리고 나귀를 몰아 대문을 나섰는데, 사실은 어디라고 뚜렷한 목표도 없이, 심심하니까 그저 바깥구경이나 할까 하고 그래서 나섰을 뿐이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연전에 작고한  매형 생각이다. 촉망받은 분이었는데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혼자된 누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바느질 품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계신 터였다.

  “옳지! 게나 가 보아야겠다.”

  그래도 살던 끝이라 아담하게 꾸민 중문을 들어서니 그댁 하인이 알아보고 반색을 한다.

  “마님, 사직골 나으리께서 행차하셨사와요.”

  옛날 법에 조관이라고 하여 양반이 하는 벼슬은 정1품부터 종9품까지 아홉 품수에 정과 종이 있어 18단계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6품 이상은 정, 종 품수 안에 다시 두 계층이 있어서 모두 30계단이다. 그리고 정3품은 동반(문관)일 경우 통정대부와 통훈대부로 갈리고, 서반(무관)을 절충장군과 어모장군으로 나뉘어서, 통정대부와 절충장군은 같은 정3품이면서도 당상관이라 하였고 나머지 둘은 당하관 품계였다. 그리하여 정2품 이상일때는 대감이라는 칭호를 올리고, 종2품과 정3품의 당상관을 영감이라 불렀으며, 그  이하는 모조리 나으리 - 한자로 쓸때는 진역 - 라 하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벼슬지위가 높으면 젊은 영감도 있게 마련이나, 당상관에 오르기는 참으로 쉽지않은 일이다.

  “어이구, 어쩐 일이셔? 동생이 우리집엘 다 납시니...”

 누님의 영접을 대청에 올라서며  보니, 잘 정돈된 안방 방바닥엔, 중국서 들여온 좋은 비단이 이제 옷을 마르려고 펼쳐져 있다.

  “동생! 잠깐  앉아 계시게. 내 장국상 차릴테니... 그동안 심심하더라도 잠깐 혼자 앉아 계셔야겠네.”

  앞치마를 두르며 호들갑을 떨고 뜰에  내려서 갔는데, 동생되는 나으리는 딴 생각이 들었다. 방 안을 휘둘러보니  매형이 쓰던 문방구가 그냥 있는데, 아껴쓰던  용연도 그대로다.  얼른 잡아다니어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이크! 알맞은 크기의 붓도 그냥 있고...”

  말이 장국상이지,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을 대접하려고 점심상을 차리는덴 시간이 조만히 걸렸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지.` 나으리는 잘 갈린 먹을 붓에 찍어 공글렸다. 그리고는 예의 중국비단을 폭 맞춰 방바닥에 깔아 폈다. 슬쩍 안마당의 기척을 살피고 나서, 팔을 걷어부치고 무릎걸음으로 비단폭 앞에 섰다. 고문진보나 문장궤범의 실린 글은 달달 외우는 터라, 구중의 좋은 글 하나를 책을 보지 않고 웅얼거리면서, 붓끝은 사뭇 바람을 일구어 행서와  초서를 섞어가며 써 내려가는데, 얘기쟁이 표현마따나 그냥  소맷자락에서 비파소리가 날 지경이다.

  “아이구, 저걸 어쩌나?”

  점심상을 마루에 놓으며 소스라쳐 놀라는 누님을,  “쉬이잇!” 손을 저어 제지하고, 여울에 흐르듯 용트름치며, 내려가는 필세에 누님도 혀를 내둘렀다. 동생이 명필이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참으로 놀랍다. 마지막 서명까지 하더니, 이마에 솟은 땀을 소매자락으로 닦아 올리면서 물러나 서서히 훑어본다. 그리곤 히죽이 웃으면서,

  “누님! 모처럼의 바느질감을 버려놨으니 어떡하우?”
  “얘,칠복아! 이것 갖고 종로 육주비전 배주부에게 갖다주고 이와 똑같은 비단으로 한 필, 그리고 돈을 줄테니 쌀과 나무를 사서 지워가지고 오너라.”

  방엔 글씨가 마르지 않은 채 있어서 점심상은 마루에서 받았다.

 “역시 우리 누님이셔, 술도 마련하셨구려! 글씨를 쓰고 나서  컬컬하니, 그냥 이 공기에다 부어 주슈.”

  연거푸 몇 잔을 들이키고 다른 음식도 걸신 들린 사람모양 탐스럽게 자셔 치웠다.

  “동생! 식성은 변하지 않으셨네 그랴?”
  “그게 아니예요. 흥이 나서 글을 쓰고 났으니까 이렇게 먹히는 거지요.”

  퇴침을 끌어당겨 베더니 이내 잠이 든다. 해가 설핏하여 하인 칠복이가 돌아오는데 아, 이게 다 뭐지? 쌀이 몇 섬, 나무가 바리 바리, 그것만이 아니다. 마루가 쾅 하도록 돈도 한짐을 내려놓았다. 나으리가 일어나 앉아 싱그레 웃었다.

  “역시 배주부가 알아보는군!”

  그 뒤 나으리는 누님에게 졸리고 배주부에게 부대끼었다. 그때 그런 글씨 다시 한 번 써 달라는 거다.

  “그런 글씨가 그렇게 쉽게 써지나요? 벅차오르는 필홍이 일순 돋아야지!”

  어느 원로 출판인이 애써 만든 책의 제호를 누구에게 써달라나 하고 궁리가 많았는데, 마침 마음에 드는 서체를 발견해 그의 댁을 찾았더란다. 이차저차 말씀 드렸더니 쾌히 승낙하면서 아무 날 오라 하기에  갔더니 글씨 쓴 종이 둘을 내어 놓더란다.

  “이중 마음에 드시는 걸로...”
  “어느 게 먼저 쓰신 겁니까?”

  그래 이쪽 거라 하길래

  “네, 그것을 쓰겠습니다. 나중 쓰신거야 첫장의 모자라는 점을 보강해 겉모양은 정제돼 있겠지만, 기가 살아있는 건 처음 것일테니까요”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예순아홉번째 이야기 - 구두쇠 이리사

  옛날에 이리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단히 큰 부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구두쇠라서 남에게 조그만한 물건도 보시하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먹는 것도 거의 맨밥에 가까웠고 옷도 다 낡은 옷만 입었다. 반면 이리사의 이웃집 사람은 그렇게 부자가 아닌데도 매일 밥먹을 때마다 고기와 생선이 끊이질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리사는 생각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부자인데 도리어 더 불쌍하게 사는구나.' 이리사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닭 한 마리를 잡은 다음 백미 한 됫박을 챙겨 마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벌판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닭을 굽고 밥을 해서 혼자서만 배불리 먹으려 했다. 이리사가 구두쇠인 것을 알고 있던 제석천은 그 우매함을 깨우쳐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 마리 개로 변신해서 이리사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는 닭 뼈다귀까지 꿀꺽 삼켜 개가 먹을 것이라곤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개는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며 입에는 침을 잔뜩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리사가 말했다.

  "네가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공중에 뜰 수 있다면 한 점 주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개는 이리사의 말대로 공중에 떴다. 그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닭고기를 주는 게 아까워 닭껍질을 조금 떼어주었다. 그러나 그 개는 닭껍질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이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네가 네 눈을 뽑아 준다면 닭고기를 조금 주지."

  곧이어 탁탁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개 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리사는 매우 기뻐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됐다. 이제 저 놈의 개가 눈도 없으니 따라오지 못하겠지? 이제 이 어른께서는 조용히 음식맛을 즐기겠다.' 이리사는 재빨리 음식을 챙긴 다음 자리를 옮겨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이리사가 멀리 가기를 기다린 제석천은 이리사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마차를 타고 이리사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지기에게 명령했다.

  "누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든 누구를 막론하고 매를 때려 쫓아내도록 하라."

  그리고 이리사로 변신한 제석천은 집안에 있던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해버렸다. 한편 자리를 옮겨 음식을 다 먹은 이리사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차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해서 문을 들어서려 하는데 문지기가 무조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끝가지 난 이리사가 소리쳤다.

  "아니, 감히 나를 때리려 한단 말이냐?"

  문지기는 조금도 봐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주인 마님께서 누구를 막론하고 집에 못 들이게 하셨소."
  "내가 바로 너희 주인인데 어느 주인 마님이 그랬다는 게냐?"
  "뭐라고? 정말 참지 못하겠군. 내 너를 때려 죽이리라."

  문지기로부터 뭇매를 맞은 이리사는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먼 발치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온갖 재물은 간 곳이 없고 집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리사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때 제석천이 수행승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이리사 앞에 나타나 합장을 한 다음 물었다.

  "시주께선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놈의 농간으로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오."
  "시주, 잘 들으시오. 재물이 많으면 번뇌와 화가 따르는 법이오. 당신처럼 돈을 목숨처럼 여겨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도 하지 않으면 죽어서 아귀의 몸을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설사 아귀의 몸을 벗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항상 천한 사람이 될 것이니, 잘 생각해보시오."

  수행승의 말을 들은 이리사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개과천선하여 보시행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구잡비유경>


    일흔번째 이야기 - 꼭두각시

  옛날에 한 솜씨 좋은 목수가 살았다. 그는 솜씨를 부려 만든 물건을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벌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던 중 한 나라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나라의 왕은 신기한 물건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목수는 나무로 꼭두각시 하나를  만들어 그 내부에 여러 가지 장치를 달았다. 꼭두각시의 얼굴은 매우 잘생긴 데다가 정밀하여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꼭두각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목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오."

  그 나라 백성들은 꼭두각시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가지 재물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왕은 그들을 초청해서 노래와 춤을 추도록 했다. 국왕과 왕비가 누각에 올라 구경을 하는데, 목수의 '아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없어 진짜 사람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국왕과 왕비는 구경을 하며 너무나 좋아했다. 그때 목수의 '아들'이 춤을 추며 곁눈질로 왕비를 훔쳐보았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대단히 화가 났다.

  "너는 왜 곁눈질로 내 부인을 훔쳐보는 게냐? 이 호색한 같은 놈아!"

  이렇게 말한 국왕은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깜짝 놀란 목수는 눈물을 흘리며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는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밖에 없어서 무척 아끼는 바입니다. 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아이가 그런 실수를 하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왕께서 굳이 이 아이를 죽이시겠다면, 저도 함께 죽을 작정입니다. 대왕이시오, 부디 이 아이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국왕은 목수의 간절한 부탁을 전혀 들어줄 태세가 아니었다. 목수가 다시 국왕에게 말했다.

  "정녕 죽이시겠다면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에는 국왕도 동의했다. 목수가 '아들'의 어깨에서 조그만 막대 하나를 뽑아내자 '아들'의 몸은  금방 분해되었다. 땅바닥에 나뭇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을 본 국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나무토막을 보고 화를 냈단 말이냐? 이 목수의 솜씨는 그야말로 천하 제일이다. 가 만든 꼭두각시는 수백 개의 나무토막으로 만든 것임에도 사람보다 행동이 더 자연스럽구나."

  감탄한 국왕은 그 목수에게 억만 냥의 황금을 주었고, 목수는 그 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들과 일생 동안 편안하게 살았다.

  <생경>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국내소설

   


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5/7)

  청암부인은 더 말이 없었으나, 그때 평순네의 눈에 비친 부인은  예전의 부인이 아니었다. 허옇게 백발이 되어 버린 그네의  머리와 흰옷이 유난히 그렇게 비쳤던가. 청암부인은허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바람만 불면 그대로 펄럭, 누워 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평순네의 가슴을 쩌르르하게 울리었다.

  “저...벨 것은 아닌디요. 마님, 진지를 못 잡숫는다고 허길래요. 이애호박 너물 조께 해 잡수시먼 입맛이 나실랑가 허고요...”

  자기도 모르게, 민망한 김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평순네는 두루치 자락을 치켜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고맙구나...내 그렇잖어도 애호박죽이나 좀 먹었으면 했더니라...네가 내 맘을 잘 보았다...어디 이리 가지고 와 보아...”

  청암부인은 쉬엄쉬엄 말하였다. 그리고 그네를 힘없이 손짓으로 불렀다. 평순네는 자꾸만 눈앞에, 그때의 그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있던 마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주 맛있겠구나...올 농사난...가물어서...고생이 많었지?”

  평순네가 두 손으로 올린 애호박 한 덩이를 받아 어루만지던 청암부인의 누렇게 마른손이 떠오른다. 그때 부인은 애써 미소를 지었었다.  (아이고...어쩌끄나...) 평순네는 내리찍힌 대청마루의 쇠스랑 자국에 몸을 떤다. 그때 기표를 데릴러 갔던 붙들이가 털레털레 그냥 올라와서

  “전주 가싯다는디요.”

하고 말한 다음에도, 쇠여울네는 죽어 나갈 만큼 몰매를 맞았다. 그네는, 자기 가슴을 쥐어 뜯으면 쏟아지는 몰매를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사정없이, 내리치는 대로 다 맞았다. 해가 설핏할 무렵에야 그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찢어진 옷자락에 살점을 너풀거리며 맨발로 좇겨났다. 쇠여울네는 몹시 서럽게 울었다. 이미 다 울어 버려서 목청만 남았을 뿐,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그네는 하염없이 울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절룩절룩 고샅길을 지나갔다. 사람들은 웅긋중긋내다보다가 고샅으로 몰려나왔다. 그네는, 자갈이 비죽비죽한 고샅에 핏자국을 찍으며  맨발로 허청허청 걷는 중에, 연신 코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닦아냈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서도 동네는 조용해지지 않았다. 조용하기는커녕, 더욱더 술렁거렸다. 어흐으으으. 어흐으응. 쇠여울네가 목을 놓아 우는 소리가 온 마을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흡사 여우가 우는 소리도 같았다. 아니면 늑대가. 아마 날이 새기 전에 쇠여울네는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것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음 소리를 채간다. 곡성은 칼로 자른 듯 끊겼다가 다시 바닥에서 솟구친다. 춘복이는 농막 귀퉁이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그 소리를 새긴다. 무섭게 내리치던 몽둥이와 장작이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켰지. 개 한 마리 잡는 것보다 더 처참하게 튀어 오르던 피. 이 피를 갚으리라. 그날, 쇠여울에 피 젖은 뒤꼭지, 헝클어진 머릿단이 생생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되살아나, 춘복이를 격렬하게 뒤흔든다. 그는 소름으로 온몸을 훑는 찬바람 속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원뜸의 지붕들을 노려본다. 이미  어둠이 깊어 지척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눈에는 불을 밝힌 것보다 더 훤히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조갑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오류골댁의 다소곳한 초가지붕은 더 잘 보인다. 내, 이 피를 갚으리라. 온몸의 힘줄이 땡기면서 주먹으로 모인다. 저절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이 힘줄을 땡기고 있는 것이다. 주먹은 돌멩이보다 더 단단해진다.

 (쇠여울네. 나를 야속타 말으시오. 내 이날 이때끄장 안 죽고 살어 남은 죄로, 그 집이서 밥 얻어먹은 죄로 쇠여울네 등짝을  내리치고 말었지마는, 인자 그 몽둥이, 그 장작으로, 때리라고 헌 놈 쥑여 부릴 거잉게. 오늘 니얄 안되먼 모레가 있고 곱페가 있소. 내 것 뺏기고 몰매맞고, 벵신 되고 동낭치로 쬐껴나는 심정은 죽어서도 섹히지 말고,  살어서도 잊어 부리지 마시오. 시방은 혼자 당헌 것 같고, 혼자 쥐어뜯음서 울지마는,  두고 보시오. 두고 보먼 알 거이요. 밤이 짚어지먼 새복이 오고 마는  거잉게. 쇠여울네. 더 울으시오. 더 울으시오. 울다가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좋응게 울으시오. 나도 따러  울고, 공배아재도 따러울고, 그 옆집이도 울고, 이  거멍굴이 떠내리가게 우읍시다. 언제  한 번도 한 소리로 소리 내 보도  못헌 놈의 벌거지 같은  인생살이, 인제라도 한 소리로  뫼야서 창사가 터지게 울읍시다. 호령 소리가  아무리 크다고 헌들, 우리들이 죽기로 한을 허고 어는 소리보다 클랍디여.)

  그때, 춘복이는 쇠여울네의 통곡이 이기채의 고함을 잡아먹을  만큼 커지기를 간절하게바라며 어금니를 맞문다. 그리고 지금. 이기채를 잡아먹은 통곡 소리가 성난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라온 마을을 뒤덮고, 강실이네 오류골댁 초가집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환각에 등을 부르르 떤다. (쇠여울네. 인자 두고 보시오. 죽지 말고 살어서 두 눈 딱 뜨고, 꼭보시오. 강실이가, 이놈 춘복이란 놈 자식 새끼를 낳고 마는 것을 뵈야디릴 거잉게. 그날끄장은 죽지 마시오. 그거이 머 몇 천 년이나 남은것도 아닝게, 쇠여울네, 어디로 가서 살든지 소식 끊지말고 그날을 지달리고 있으시오. 쇠여울네가 울고 내가 울고, 거멍굴에 엎어진 인생들이 울고 울던 설움을 내가 모질게 갚어 줄 거잉게, 오늘 내가 내리친 장작에 어깨 찢어진 거, 너무 야속타 말으시오, 쇠여울네, 미안허요.)

  춘복이의 번쩍이는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빛났다. 얼핏 보면 승냥이 한 마리가 거기 서 있는가 싶기도 했다.

       2  떠나는 사람들

  “만약에 이 지상에 오직 군소 국가들만 존재한다고 하면, 아마 지금보다 인류는 훨씬 더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한 뱃속의 새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하는데, 생성 존재의 근원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른 국가, 엄청난 이권  조직인 국가가 너나없이 어슷비슷 올망졸망 그만그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각기 그 나라의 힘대로 세력이 달라져서 종국에는 힘센 놈.약한 놈이 생겨나기 마련인즉. 강대  국가의 존재란 불가피하지. 그런데 강대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상대적으로 약소 국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고 강대 국가와 약소 국가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평화.평등이 아닌 약육강식이 이루어진단 말이야. 약육강식. 천지만물 삼라만상의 본능적 현상이 바로 약육강식이 아니냐. 말없는 우주의 원칙이  그러할진대 국가와 국가, 가문과 가문,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 관계가 명확하게  집행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다. 물론 조선의 처지도 강에 먹힌 약의  대표적인 것이지만...군소 국가는 나라가 작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말할 수 없이 비참해지는 거야. 반대로  강대 제국은 나라가 커서가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고. 결국 그 나라의 선.악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이 국가 번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는셈이지.  비단 국가에만 그런 것이 작용되는 게 아니야.  무릇 만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오직 힘이  필요해. 힘. 물리적인 힘만이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존속의 첫째 조건이 되는 거야.”

  강태는 더부룩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앞에 놓인 청주잔을 든다. 손톱 주변에 허연 꺼슬이 일어나 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마를 덮으며 흘러내린 머리칼에  가리어진 눈썹이 새까맣다.그래서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하관이 좀 빠른 듯한 모습은 아버지 기표를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차갑게 다물고 있을 때의 입술 선은 어찌 보면 기표보다 더 이지적이고 냉정한 성격으로 느껴지게 한다. 강모의 얼굴도 초훼하다. 지난 여름 오유끼의 사건으로 집안이 뒤집히고 난 뒤, 이기채는 강모를작은사랑에 가두어 두다시피 하였다. 심지어는 안채의 어머니 율촌댁에게 가는 것조차도 급하였으며, 그러지 않아도 소원한 효원의 건넌방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몇 십 년 만이라는 가뭄은 유난하여 누런 먼지가 황토빛으로 지붕을 뒤덮었는데, 큰사랑에서는 놋재떨이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도 멎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부자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는 특별히 꾸중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강모를 방안에 가두어 둔 채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스물한 살씩이나 먹은 장정, 애기 애비가 된 자식을어린애들처럼 방안에다 가두고 그러시요?”

  율천댁은 보다 못하여 이기채의 사랑에까지 나와 탄원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바늘끝같이 과민하여 신경이 벌겋게 청혈되어  있어서, 옆에 누가서기도 두려워했다. 그가 지나가기만 하여도  살을 베는 바람이 일어설 정도였다. 이기채는 강모를 증오하였다. 강모는 아버지 옆방에 갇히어 녹아 내리는 더위와 허적함,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 때문에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강모의 얼굴빛은 누렇다 못하여 검은색을 띠었다.

 “너도 마셔라.”
  “예.”

  강모는 술잔을 든다. 깍정이만한 도자 술잔의 푸르스름한 광택이 얼굴의 검은 빛을 더욱 검게 보이게 한다. 그들은 오랜만에 이렇게 서로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결국 군소 국가의  매 앞에 병아리같이 그 존망이 위태로워,  우여곡절을 겪고 싸우고버티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강대 제국에 완력으로 연합되어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불쌍한  것은 그러한 군소 국가에 태어난 국민이지. 자체를 방어할 만한 힘도 없고,궁핍을 면하게 해줄 방도가 없는 국가에 태어난 국민으로서는, 남의 나라 종노릇을 하는 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한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인 거야."

  강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보다도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훨씬 차갑다. 사기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얼굴은 강태가 강모보다 팔구  세는 연상으로 보였으나, 쇠잔한 표정에 시달리느라고 탈진한  듯 보이는 강모는 얼른  보면 강태보다 더 겉늙어 보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두 살 차이밖에 안되었다. 조금만 의기가 통한다면 호형호제 할것도 없이 막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처지인 것이다. 거기다가 종항이 아닌가. 그런데도 강모는 강태에게 깍듯이 형님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다. 그만큼 강태를 어려워한 점도 있었고, 또 성격상의 차이로 그다지 친숙하게 지내지 않는 탓도 있었다.

  “강자와 약자. 과연 무엇이 강자이고 무엇이 약자인가? 간단해. 힘을 가진 자는 강하고, 힘이 없는 자는 약하다. 힘? 그렇다면 힘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품도, 체력도,학문도, 가문도, 힘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수 있는 것은 결국 자본이야. 그것은 분명하고 강력해. 자본이 있는 자는 강하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자는 약하지. 있는 자와 없는 자, 이 적대적인 위치의 두 계급은 필연적으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이 갈등은, 있으면서 좀더 착취하려는 자의 폭력과, 없으면서 어떻게든 생존해 남으려는 자의 몸부림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온단 말이야. 그것은 한 마디로 압제자와 피압제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관계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나,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봉건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이들은 역사 이래 서로 적대 관계에 있어서. 헌데 이들은 적대 속에서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외형적으로 꾸준히 그 관계를  유지해 왔거든. 그만큼 투쟁과 갈등의 역사도  긴 셈이지. 이들은 때로는 은밀히 암투로, 때로는 치열하게 끊임없이 싸워 왔으니까. 이 싸움이야말로  한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한 계급이 무참히 짓밟히거나 또는 두  계급 모두가 비참하게 멸망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강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다문 입귀가 칼끝 같다. 강모는 강태의 모습에 이상하게 기가 질리는 기분이 되었다.

  “너는 궁도령으로, 하층민 계급이 아니니까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쪽 이야기가 한낱 피상적인 이야깃거리 정도로 들리겠지.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누리기 위한 조건들, 또는 기본적인 아무 권리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제 몽뚱이 사지를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 농민, 그 빈곤한 하층민 계급이, 사실은 인류의 대부분이야. 즉 약육당하는 계급이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안만 보더라도 문중의 종가인 큰집 하나를 빼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가 곤궁해. 다 떨어진 문서 쪽지에 양반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만.

 

letter_bullet_1.gif

사진 / 그림

   

800px-Faune_au_chevreau_Faun_with_kid_Le

[Faun with kid, by Pierre Lepautre (1685). Louvre Museum.]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1. 3.

banner2.gi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1080 【독서편지】 제1080호 2022.06.09
1079 【독서편지】 제1079호 2022.06.08
1078 【독서편지】 제1078호 2022.06.08
1077 【독서편지】 제1077호 2022.06.02
1076 【독서편지】 제1076호 2022.06.01
1075 【독서편지】 제1075호 2022.05.31
1074 【독서편지】 제1074호 2022.05.30
1073 【독서편지】 제1073호 2022.05.26
1072 【독서편지】 제1072호 2022.05.25
1071 【독서편지】 제1071호 2022.05.23
1070 【독서편지】 제1070호 2022.05.20
1069 【독서편지】 제1069호 2022.05.18
1068 【독서편지】 제1068호 2022.05.17
» 【독서편지】 제1067호 2022.05.16
1066 【독서편지】 제1066호 2022.05.1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73 Next
/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