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첫쪽

방문자수 (2014.04~)

전체 : 1,146,108
오늘 : 63
어제 : 218

페이지뷰

전체 : 42,023,617
오늘 : 304
어제 : 1,725
조회 수 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letter_bn.gif


【독서편지】 제1065호

2022.5.11. (음 4.11) / 발송인:

web_sign5.gif

mail.gif

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오늘의 어록

   


목마르기 전에 미리 우물을 파 두어라. ― 중국 속담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한국어의 위상

그리 신뢰할 만한 방식은 아니지만 각 언어의 사용자 인구를 비교하면서 언어별 위상을 견줘 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어 사용자는 거의 12억 정도라고 하고 영어 사용자는 3억이 좀 넘는다. 중국어의 세력이 영어보다 4배로 강해 보이지만 또 다른 숫자가 이 두 언어의 위상을 뒤집는다.

영어는 무려 100개 정도의 나라에서 사용된다. 반면에 중국어는 30여 나라에서 사용된다. 그것도 거의 그 지역 화교들 중심이다. 그러니 중국어는 중국인 및 화교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는 ‘민족어’에 가깝고, 영어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보다 비원어민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국제어’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떨까?

한국어는 대략 7700만 정도의 사용자 인구에, 사용 국가는 남북한, 일본, 중국 등 동포들의 분포지역 중심이다. 아직 국제어라기보다는 민족 내부의 의사소통 중심이다. 최근에 한국어 학습자들이 점점 늘고, 한국으로 귀화하거나 이주하는 사람들도 는다고 하지만 아직 통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머지않아 ‘인구 절벽’이 닥칠 거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현재 한국어 사용 인구 순위가 세계에서 12등에서 15등 사이에서 머무는 중인데 뒤에는 인구가 빨리 늘어나는 타이(태국)어, 베트남어, 인도의 타밀어, 마라티어 등이 따라붙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는 인구 절벽이 언어 절벽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어 교육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맨부커상을 받았던 한 젊은 작가가 또 다른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한국어에 다양하고 긍정적인 소통 기능을 부여하는 귀한 작업이다. 인젠 머릿수로 언어의 위상을 다툴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세계어 배우기

영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어’다. 문제는 그 세계어에 대한 개념이 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온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언어? 그건 아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조금만 열심히 배우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이건 비슷하게 맞는다.

아직도 이 세계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그럼에도 이방인에게는 으레 영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영어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하면 민망해한다. 다시 말해서 모두 잘 알아서 세계어가 아니라 당연히 잘 알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세계어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어의 위력이다.

영어는 잘 몰라도 쓸 수밖에 없다. 영어도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인과 역시 영어도 한국어도 모르는 일본인이 외국에서 만나서 무언가 말을 하려면 엉망진창의 영어로 말을 하는 수밖에는 방도가 없다. 또한 이런 것이 결코 흉이 아니다. 오히려 최선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세계어는 어쩔 수 없이 상처투성이의 언어가 된다. 오만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주워섬기니 불가피하게 언어는 많이 망가진다. 그것이 세계어가 된 업보이고 대가이다. 그래서 세계어를 쓰면서 자주 틀리는 것을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것, 헛갈리거나 실수하는 것은 세계어의 숙명이다.

세계어는 무슨 이론적 바탕으로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추세이다. 그 추세를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 행사에 반영해서 사용 언어를 선택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세계어를 배우는 데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은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한계선을 어느 정도 설정해 놓고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무한정 배우는 것은 고액의 학습비용을 곧바로 매몰비용으로 처리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etter_bullet_1.gif

시나눔 → 우리나라 詩

   


 구슬픈 육체(肉體) - 김수영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사이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1954>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고사성어

   


누란지위(累卵之危)  / 몹시 위험한 형세.    《出典》'史記' 范雎列傳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遊說)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무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須賈)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謀士)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다.(危於累卵)'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후 范雎[張祿]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동의어】위여누란(危如累卵)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우리는 각자 무한 능력자이다. - 양승옥

  당신의 미래는 많은 것들에 달려 있지만, 대부분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 프랭크 타이저

  1976년 나이 스물여섯 살 때 나는 비로소 그동안의 내 인생을 지배했던 큰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있었다. '공부도 잘했고 비교적 성실하고 진실한 내가 왜 이런 환경인가? 어떤 이유로 사람은 서로 다르게 태어나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중 (불광)이라는 월간지를 접하게 되었다. 그곳에 광덕 스님의 법문이 실려 있었다. '나의 환경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다. 지금 처해진 환경이 불만족스럽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을 부정하고 한정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큰 지혜와 아름다운 품성과 뛰어난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무한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목마른 대지가 물을 흠뻑 빨아들이듯이 나는 이 말씀에 공감했다. 나의 환경은 부모의 탓도, 절대자의 탓도 아닌 내 탓. 나는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인정하는 인생의 큰 전기를 마련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무한한 능력을 모르고 환경을 탓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일들을 바람에 실어 보내고, 새롭게 내 삶을 계획했다. 오남매의 맏이인 나는 집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기쁘게 인정하고 동생들을 보살핀 뒤 1985년에 15년 10개월의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그리고 이듬해인 서른다섯 살에 그렇게 소망하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진실한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더 크고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기 위한 단계일 뿐이다. 기쁘게 받아들이고 노력한다면 이생에, 또 다음 내생에서라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진리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1996년 대한민국 공예대전 대상 수상자)


    음지에서 찬란한 빛이 만들어진다 - 이봉주

  바로셀로나 올림픽의 영웅이자 동료인 황영조 선수가 부상으로 애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한국 마라톤에 대한 기대는 자연 내게로 집중되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은 국민들이 내게 거는 기대 이상으로 내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무대였다. 마라톤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 주고 은퇴한 황영조 선수나 국제 대회에 늘 불운이 따르는 김완기 선수에게 결코 실망스런 모습을 조여 주지 않겠다고 각오를 새로이 했다. 1990년 전국체전 준우승 이후 열다섯 번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이봉주란 이름은 는 사람들에게 1위를 받쳐주는 어시스트의 역할 정도로 기억되고 있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을 준비하며 하루 평균 50킬로미터를 달리는 강행군이 진행되었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생존 자체에만 매달리게 됨을 잘 아는 정봉수 감독님은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내 정신을 먼저 다듬어 주셨다.

  "봉주야, 우리는 프로다. 영광의 순간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아야지. 우리 음지에서 찬란한 빛을 만들어 보자."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나야말로 마라톤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애틀란타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으로 접어들면서 앞서 달리는 투구와네의 모습을 보았지만 아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고 그는 분명 나보다 더 잘 달렸으니까. 결국 진정한 마라토너는 자신의 한계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마라톤 2위 입상)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이글저글

   


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미녀는 괴로워

  고려시대라면 근 오백년 동안 개성에 도읍하였다. 창업지주인 태조 왕건  자신이 해군 출신이고, 중국을 읗해 문호를 열어서 개성의 외항은 자못 벅적거렸다. 개성은 임진강과 예성강을 양옆으로 둘렀으며, 전면은 한강수를 역류로 받고, 강화도가 수구를 막았는데 김포와 사이의 염하를 통해 남도로 연락한다. 물에 둘러싸여 물길로 사방 연결되는 위에, 서쪽으로 예성강만 건너면 황해평야의 기름진 땅이 펼졌으니, 참으로 하늘이 낸 좋은 땅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중국은 당이 멸망한 후 고도의 문화를 지닌 중국족의 세력이 차츰 남으로 밀려나고,북쪽에는 강력한 서북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어, 그전과 같이 육로로는 통할 수  없는 실정이라, 중국과의 교류는 뱃길로 황해를 건너다닐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자니 개성 가까이 예성강 하구에는 자연 국제적인 항구가 형성되어 자못 일성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런데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여기서 한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물자를 교역하러 왔던 중국의 돈 많은 상인 하두강이라는 이가 어떤 부인을 보고 홀딱 반해 버린 것이다. 오매불망 그 부인 모습에 정신이 나간 하대인은 골몰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한 꾀를 내었다. 어떤 경로로 밟았는지 그 부인의 남편되는 이와  알게 되고, 둘이는 시간만 나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며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상대방은 장사 수완으로 닳고 닳은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 바둑 수완은 서로 빤히 들여다 보이게쯤  되었고, 하대인은 지는게 분했는지 돈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제의해왔다. 뻔한 결과로 하대인은 연일 상당한 재물을 내기에서 잃었다. 오기가 났든지 내기에 거는 금액을 높여 갔으나 그의 바둑 수완으로는 부인의 남편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곱상한 아내를 둔 주인공-고려 사람이니(까오따아런) 이라고 해 두자- 은  한밑천 톡톡히 잡았다. 그러던 어느날 하대인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제의하는 것이다.

  “정말 까오따아런 바둑 수완은 못 당하겠어.
  "울리 사람이 그동안 내기에 다  잃고 이제 남은 거라곤 배 한척 하고 불알 두 쪽밖에 없어 해. 마지막으로 한 번 내기하는데 나는  남은 재산 다 걸고 따아런은 부인을 걸면 어때해?”
  “이 사람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나마 다 잃으면 만리타국에서 알거지가 될 텐데, 그땐 어떡하려고...”
  “괜찬아 괜찬아, 울리 송나라 사람 의리있어 해. 친구들 배 타고 귀국하면 울리집 장원 아직도 더 있어 해.”

  사람좋은 고대인은 상대방  바둑 수완쯤 익히(?) 아는 바라 괘히  승낙하고 판을 대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몇 점  놓으면서 보니 자기보다 몇 수나 위다. 점점 위기에 몰려든 고대인은 한 판을 다 못 두어 돌을 내려 놓고 말았다.

  “휴우!”
  “까오따아런! 장사꾼은 신용이  제일이야. 당신 아내는 이제 울리  사람 꺼다. 알았지?”

  이리하여 아내를 내기에 잃은 고대인은  그 동안 내기로 딴 재물이 있으니 아내를 값을 쳐서 팔아먹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아내를 싣고 가는 배의 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강 언덕에 멀거니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지어서 부른 것이 예성강곡이다. 천하일색을 손에 넣고 의기양양해서 돌아가던 배는 바다 복판에서 방향을 잃었다. 풍파도 없는데 한자리를 빙빙 돌며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나서 점을 쳐보니 부인의 높은 절개에 감동하여 하늘이 시킨다는 풀이다. 뱃사람들은 요동을 떨며 뱃머리를 돌렸고, 일동의 목숨도 온전할 수 있었다. 무사히 돌아와 남편을 대면한 부인은 눈물을  삼키면서, 노래 한곡조를 불렀는데, 이것이 예상강곡 후렴으로 물론 가사나 곡은 전하지 않는다.



  왕건의 조상

  고려시대의 정사인 <고려사> 첫머리에 김관의의 편년통록 기록이라면서 태조 왕건의 조상에 대한 기술이 재미난다. 성골장군 호경이라는 이가 친구들과 열이서 사냥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바위 굴에서 밤을 나는데, 호랑이가 굴 어귀에서 으르렁거리고 떠나질 않았다. 누군가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라고 열 사람의 갓을 차례로 던졌더니 다 물리치고 호경의 것을 덮쳐서, 호경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는데, 범은 간 곳이 없고 굴이 탈싹 내려 앉으며, 나머니 아홉 사람은 모두 깔려죽고 말았다. 무사히 살아난 것이 고마워 산신께 제사지냈더니, 산신이 자기와 부부가 되자면서 함께 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혼이 옛 아내에게 다니면서 강충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가 이인의 의견을 따라 송악으로 자리잡아 원 노릇을 하며, 대단한 부자로 지냈다. 두 아들 중에서 아우가 중이 되어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돌아왔는데, 꿈에 곡령에 올라가 오줌을 누어 온 세상을  덮은 것을 형에게 얘기했더니, 이제건이 형을 사위로 삼아 두 딸을 낳았다. 큰딸이 또한 오관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어 세상을 덮은 꿈을 꾸고 동생인 진의에게 얘기하였다. 그랬더니 진의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든지, 비단 치마를 줄테니 그 꿈을 팔라고 했다. 언니가 응낙하자 동생은 그 꿈 얘기를 다시 하라고 하며, 그것을 받아 품는 몸짓을 세 번 하더니 매우 흡족한 눈치였다. 그때 당나라 숙종 황제가 아직 임금이 되기  전, 천하를 두루 유람하고자 명황 천보 12년 봄, 바다를 건너  패강 서포에 왔는데, 마침 조수가 빠져 개펄이 드러나서, 수행원이 배 가운에  엽전을 꺼내서 펴고 상륙한 때문에, 그것을 전포라고 하게 되었다. 드디어 송악군에 이르러 곡령에 올라 남으로 바라보고
  “여기가 도읍할 만하다.”  라고 평하고 여러 경로를 거쳐 보육의  집에 묵게 됐는데, 주인의 두 딸을 보자 마음에 기뻐, 옷이 튿어졌는데 좀 꿰매주지 않겠는가라고 한다. 보육이 상대방이 중국의 귀하신 몸인 것을 알고, 곧장 큰딸에게 따르라고 일렀더니 간신히 문지방을 넘어서자 갑자기 코피가 터져서, 대신 작은딸을 들여보내 시중들도록 하였다. 머문 지 달포 만에 아기 가진 것을 알게 되자, 떠나기에 임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대당의 구인이로다. 남자아이를 낳거든 이 활과 살을 주라.”

  과연 아들을 낳으니 이 분이 작제건인데 훌륭히 커서, 열여섯이 되자 어머니가 감춰뒀던 활을 내어주니 백발백중이라, 세간에서 이르기를  신궁이라고 하였다. 이에 자기 아버지를 찾아 뵈려고 장사꾼 배를 빌어 탔는데, 바다 복판에 이르더니 구름과 안개로 사방이 캄캄하여 사흘이나 나아가지 못하게 되자, 배안의 사람들이 점쳐 보고는 고려사람을 없애야 된다고 야단이다. 작제건이 활과 화살을 지닌 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더니, 밑에는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달랑 서게 되었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고 바람이 일어 장사배는 나는 듯이 떠나 버렸다. 이윽고 늙은이 하나가 나타나 절하며 이르기를

  “나는 서해의 용왕인데  매일 밝을 녘이면 늙은  여우가 광채를 뿜어 부처의 모습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과 안개  사이에 일월성신을 늘어놓고, 북 치고 소라 불며 이 바위에 앉아 옹종경을 외워대면 내 골이 빠개지는 듯 아프구려! 듣자니 낭이 활을 잘 쏜다기에 나의 괴로움을 없애달라고 붙잡았소.”

  제작건이 쾌히 응낙하고 기다리는데, 정한 시각에 과연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울리며 서북으로부터 내려오는데, 하도 장엄하여 혹시나 진짜 부처나 아닌가고 망설였더니, 노인이 다시 나타나

  “틀림없이 늙은 여우니 마음놓고 쏘라”고 한다. 그래 잔뜩 당겨서 쏘지 떨어지는데 과연 여우다. 노인이 기뻐서 자기 궁전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의 소망을 물어 자기 딸을 주고 또 많은 보화를 주어 돌려보냈다. 그 용녀가 새로 우물을 파고 그리고 들어가 친정인 용궁으로 왕래하는데 남편과 약속을 했다.

  “내가 우물로 왕래하는 것을 보아서는 안되오. 지키지 않는다면 가서 돌아오지 않겠소이다.”

  그런 것을 하루는 답답해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몰래 엿보았더란다. 소녀와 함께 우물로 들어가더니, 황룡이 되어  오색구름을 일구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용녀가 돌아와 딱 잘라 말한다.

  “약속을 어겼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소.”

  그리고는 우물에 들어가 용이 되어 모습을 감추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용녀의 몸에서 네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 용건이 한씨를 얻어 도선이 일러주는 명당자리에 가 살다가 왕건 태조를 배어서 낳았다는 것이다.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예순일곱번째 이야기 -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곳

  옛날 부처님이 왕사성의 죽원에서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네 명의 바라문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칠일 후에 자신들의 목숨이 다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의논했다.

  "우리는 신통력으로 하늘과 땅을 뒤엎고 해와 달을 만지고 산을 옮기고 강을 막는 일도 할 수 있는데,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없겠는가?"

  그러고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했다.

  "나는 큰 바다 속에 숨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죽음의 귀신이라고 해도 내가 있는 곳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수미산을 가르고 그 속에 들어가 숨을 작정이다."
  "나는 넓디넓은 허공 속에 숨으련다."
  "나는 큰 시장 한복판에 숨을 것이다. 죽음의 귀신이 와서 나를 잡으려고 할 때,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어찌 알아보겠는가?"

  의논을 마친 네 형제는 왕에게 가 자신들이 나눈 이야기를 알리며  죽음에서 벗어난 후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각기 말한 대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과일이 익으면 떨어지듯이 칠일이 지나자 모두 죽고 말았다. 시장을 감독하던 관리가 왕에게 말했다.

  "어떤 바라문이 시장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왕은 곧 그 죽은 자가 네 명의 바라문 형제 중 한 사람임을 알고 말했다.

  "네 사람이 죽음을 피해 갔는데 이미 그 중 한 사람이 죽었다. 나머지 세사람이라고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

  왕은 곧 화려한 마차를 타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린 다음 말했다.

  "근래 신통력을 가진 네 명의 바라문 형제가 자신들의 죽음이 임박한 사실을 미리 알고, 모두 죽음을 피해 떠났습니다. 부처님, 그들은 과연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요?"
  "대왕이여, 사람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소. 첫째는 중음(중음은 죽은 뒤 다음의 생을 받아 태어날 때까지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으로 있으면서  생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둘째는 한번 나면 늙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그리고 셋째는 늙으면 병들이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넷째는 병들면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계속해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어라
  산속도 아닌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곳
  그 어디에도 없어라.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니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제아무리 초조해 한다고 해도
  늙음과 죽음의 근심은 짓밟고 다니리.

  이러한 사실을 알아 스스로 고요하고
  그렇게 생이 끝난다는 것을 보면
  비구는 악마의 병사를 싫어하여
  비로소 생사를 넘어서게 되리."

  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하면서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정말로 부처님 가르침대로입니다. 네 사람이 죽음을 피해 떠났지만 이미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목숨은 한정된 것이니 나머지 사람들도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신하와 관리들도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법구비유경>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국내소설

   


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3/7)

   “흐응, 내가 그 속  모르는 중 아능갑서. 어디 귀 빠진 눈먼  년, 중인 집구석으서라도 데릴사우로 데레가기 바래는 거이제?  앉은뱅이 꼽사라도 좋응게. 그리 장개가서 벵신 뒷바래지험서 저도 벵신 노릇 따라  허고라도, 상놈 소리 안 듣고 싶은 거이제?”
  “핫따, 거 시끄럽소.”

  드디어 더 참지 못하고 홱 돌아누워 버리는 춘복이 서슬에 흠칫 밀려나며 그네는 모질게 해붙인다.

  “그러먼? 그러머언. 원뜸에 강실이가 자개 차지 될 중 알었당가?  거그는 대체나 더 좋겄네? 양반 중에 양반잉게. 맵씨 좋고 태깔 좋아 향내가 난당가 냄새가 난당가, 남원골에 쩌르릉 허는 양반의 따님인디, 거그다가 몸뗑이도 헌 것 되야 부렀겄다. 온전헌  시집 못 갈 것은 불속을 디리다보디끼 훤허고. 나이는 먹고, 오란 디는 없고, 잘 되았네. 업어오지 그리여? 오매불망 정든 님은 기생첩을 옆에 찌고 전주로 도망가 부렀담서, 더 잘 되았네 그리여.“

  순간 춘복이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쩍 빛났다.  마치 부싯돌을 맞부딪친 것 같은 시퍼런 빛이었다. 그 느낌이 옹구네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섬뜩하고도 예리한 안광에, 오히려 말을 내쏘던 그네가 멈칫하고 몸을 움츠린다.

  “왜 그런당가?”

  벌떡 일어나 앉는 춘복이의 기세에 옹구네가 뒤로 밀리는 소리로 묻는다. 한 대 후려치는가 싶었던 것이다.

  “아니라요.”
  “내가 머 못헐 말 했당가?”

  아무래도 쭈밋거리는 투로 춘복이의 기세를 살피던 그네는 주섬주섬 두루치를 챙긴다. 이럴 때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둠 속이지만 치마 솔기가 뒤집힌  채 입고 나갈 수 없는 노릇이라 더듬거리면 옷을 간추린 그네는

  “나 갈라네, 그런디 한 마디는 허고 가야겄어. 여자가 마음에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안허등게비? 내가 암만 막 사는 년이라고는 허드라도, 쓸개끄정 썩은 년은 아닝게, 내 오장육부에다 바늘 꽂든  말드라고. 무신 일을 헐 때  허드라도, 나를 살살 달개감서  히여. 나 설웁게 말고오.”  하며 못을 박는다.
  “조심해서 가기요.”

  다른 때 같으면 그 말 정도는 꼭 하는데  오늘 밤은 그조차 없다. 여전히 춘복이는 눈에 불을 켠 채로 무엇엔가 넋을 흘린  듯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 모양을 힐끗 바라보고는

  “나는 갈랑게.”

하더니 옹구네는 덧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쌔앵 몰아친다.

  “아이고매 호랭이 물어가겠네. 오살 노무 바램이 기양 살을 비어 갈라고 그러네에.”    

  거기다가 또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며 짚신짝을 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농막 안은 괴괴해진다. 이따금 회초리로 후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강실이...?)
  아까 옹구네가 내쏘던 말이 그대로 춘복이 가슴 복판을 쒜뚫고 있는 것이다. 뚫린 복판에 꽂힌 이름은 곧 화살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소스라치게 놀라운 발견에 그는 아직도 흥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화살 맞은 자리에서 선혈이 쏟아지는 것 같은 뒤설렘을 가누지 못하는 춘복이는 벌떡 일어나 덧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동짓달의 매운 바람이 오히려 그의 더운 몸을 식혀 주기에는 알맞은 것이었다. 막힌 피가 터지면서 철철 흘러 넘치는 흥건함에 자신의 몸을 내 맡긴  채 숨도 쉬지 않고, 매안 마을의 종가 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검푸른 밤하늘의 별들이 소름 끼치게 영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그 별들을 쓸며 바람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를 때마다, 별빛은 더욱 차갑게 깜박인다. 

매안 문중의 마을은 여기 거멍굴에서는 아득할 만큼 멀어 보인다. 아니, 멀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다는 편이 옳았다. 불이 밝혀진 방문이 하나도 없어 그렇게 짐작되기도 하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닌, 물을 건너고 굽이를 돌아 엄중한 막을 치고 저만큼 있는곳. 문종. 그 코앞에 바싹 엎드려 있을 때도, 대문간 앞을 지날 때도, 그곳은 아득하기만 했었다. 어쩌다 무슨 심부름 때문에 그들의 앞에 마주 대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들판 너머쯤에나 있는 사람들처럼 아득했다. 그러나 지금 춘복이는, 두 팔을 뻗어 움키면 그 문중의  지붕들이 거머쥐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우옥스러운 이 짚신발로 걷어차면, 삭은  수숫대 올바자처럼 넘어갈 것만 같은 오류골댁 사립문 쪽을 그는 매섭게 쏘아본디.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이까. 내가 왜 그것을 몰랐이가.) 춘복이는 주먹을 부르쥔다. 그는 지금 늑대처럼 포효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그가 고함을 지르면 산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거그가 그 사램이 있는 것을  내가 이때끄장은 넘으 일이라고 생각했는디, 그거이 아니여, 그리여. 그렇제, 그거이 아니여.)  그의 눈앞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항상 먼 발치에서 무슨 죄 짓는 사람처럼힐끗 훔쳐 보았을 뿐인 그네였지만, 그리고 그나마도 좀처럼 바깥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서 정말이지 어쩌다 한두 번 밖에 본 일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상 꼭대기 구름 속에서만 노닐다가 꿈결인 양 언뜻 모습을 비치던, 어쩌면 이야기 속의 선녀 한가지로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그네. 공배아재나 아짐이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송구스러운 듯 얼굴에 화기를  띠며 말하던 사람. 우러러 섬기며 빈말이라도 한 마디 비난도 하지 않던  평순네. 심지어 옹구네조차도 그 태깔만은 인정하고 시샘을  참지 못하던 사람이 바로 강실이 아닌가.  거멍굴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고 있는 대갓집의 골기와 지붕 아래 오붓하게 감추어진 채, 언감생심 이쪽에서 감히 건너다보지도 못하게 감싸여져 있던 사람. (그것도 인자 예날 이얘기다.

청암마님 돌아가세 바라. 아직끄장은 그래도 그 훈짐이 끊어지들 안했응게 버티고 있었지마는 오늘 니얄  숨 떨어지먼 그 집도 헛간 된다. 누가 지킬  거이냐? 배깥이서 드는 도적은 지켜도 안에서 나는 도적은 못 막는다고  그러등가?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알어. 율천샌님 병약허고 새서방은  전주로 달어나 부리고.  거그다가 강실이는 인자  이 마당에 어디로 시집을 갈 꺼이냐. 소문이랑 거이 얼매나 무선 거인디. 허깨비맹이로 뵈이도 안헝 거이 생사람 목심도 잡는 거인디  말이여. 거그다가 그거이 보통 일도 아니고 들통나면 즈그  집안 낯바닥에 똥칠허는 거인디.벙어리  냉가슴이나 앓겄지. 쥑이도 살리도 못헐  사램잉게. 강실이는 오도가도 못허고 앉은 자리서 말러 죽게 생겠을 거 아닝가?) 춘복이의 주먹이 안으로 오그라진다. 그는 마치 병아리를 채려는 솔개처럼 오류골댁 마당 나직이 떠서 빙글빙글 도는 자신을  본다. 발톱을 모은 그의 눈빛이 번뜩인다. 더욱이 그 병아리는 지금 맥없이 한쪽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기회를 훔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춘복이는 자기도 모르게 보르르 몸을 떤다. 무엇인가 사무치며 치밀어 올라 목이 뜨겁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내가 이날을 이때끄장 지달렀능게비다. 그럴라고 이 거멍굴에 엎어 져서 살었능게비다. 부모가 있이까. 성지간이 있이까. 아무껏도 없는 바닥을 못 떠나고, 허허벌판 추운  시상을 모진 맘 먹고 친덕꾸레기로 살었다마는,  나라고 언지끄정 상놈으로만 살겄냐. 나는 죽어도 상놈 자식은 낳기  싫었능게 이 육시랄 노무 상놈 꺼죽 훨훨  벗어 내부리고, 사램이 사는  것맹이로 살고 자펐다. 무지헌 곰도 하눌님 아들을 만나서  인연을 지으먼 곰껍닥을 벗고 사램이 되는디,  나도 언지든지이 껍닥을 벳게 내고 사램이 되게 해  줄 여자를 만날라고, 그럴라고 지금끄장 살어왔다...)

  춘복이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다시 한번 오류골댁 쪽을 노려본다.  (작은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나는 작은아씨한테 양반 자식 하나  얻고, 작은아씨는 나한테 상놈 자식 하나 얻으시요.) 칼로 새기듯 또박또박 한 마디씩, 끓어 오르는 심정을 오류골댁 쪽의 하늘에 새기는 춘복이는 다시 한번 부를 떤다. (인자는 시상도 많이 변해 부렀응게요. 언지끄장 같은 시상이 아니여요.  천 년 묵은 낭구도, 죽고 나먼 그  썩은 자리가 개미굴이 되고 마는 거잉게. 사램이 살자면 팔짜가 뒤재비 칠 때도 있겄지라우. 사램이 비얌도 낳고, 곰이 사람으로 환생도 하고, 애초에 인연이랑 거이 맹랑헌 거 아닝교? 산골짝으서  나무 패든 나무꾼도 선녀랑  맺어지면 두룸박을 타고  하눌로 간다는디. 작은아씨는  비얌 한 마리를 낳고, 나는  곰껍닥을 찢어 내고 사람  한마리 낳고, 그렇게 피를 섞어야 나도 두룸박을 타고 승천을 헐랑갑소.) 새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가습팍으로 기와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 춘복이의 귀에 찰진 옹구네 목소리가 엉긴다. 마침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평순네와 옹구네 둘이서 정짓간에 허드렛일을 하던 날이었다.

  춘복이가 막 장작을 한 짐 부려 놓을 때 한 말이다.

  “참마로 마님도 젊었을 적으는 넘 못헐 일 많이 허겠다등만.”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누가 그랬다등만 그리여. 숭년으, 이 집 대문 앞에서 누구라등만, 나는 듣고도 넘 일이라, 하이튼지간에  숭년으 장리 쌀 이자를 못 갚어 갖꼬 논밭을 기양 눈 버언히 뜨고 이자로 뺏김서, 이 집 앞으 와서 죽었다등가아, 거랭이가 되서야 타관으로 떠났다등가, 그럼서 저주를 했드리야. 오냐 인제 두고 바라. 느그집 곡간에 곡식이 썩어 나도 먹을 사램이 없어서 못  먹는 날이 올 거이다. 내 생전에 그 꼴을 못 보먼  죽어서 혼백이라도 남어 갖꼬, 느그집 씨구녁을  막어 부릴 거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옹구네는 평순네가 휭하니 뒤꼍으로  나가 버리자 그만 제풀에 머쓱해졌다.

  “아이고매, 호랭이. 벨라도 얌전을 떨고 자빠졌네. 안 듣는 디서는 나랏님 숭도 본다는디 지께잇 거이 무신 충신 났다고... 허이고  차암, 즈그 씨어씨등갑다.내가 머 그른 말 했간디? 밥  한 숟구락이라도 얻어먹을랑게,속도 없는 것맹이로 주뎅이 다물고 살제마는 그런다고  내가 머 없는 소리 지어 낸  것은 아닝게. 그러고 이날끄장 차알찰 시퍼렇게 물이  넘치든 청호 주수지가 멋 헐라고 작년 올에사 말고 그렇게 거북이 등짝맹이로 짝짝 갈러졌겄어?  이거이 다 징조여 징조. 이 대갓집도 인자 운수가 다 된 거이제  머. 운수 소관이야 일월성신이나 아시제 누가 알거잉가. 가만히  앉어서도 산데미 같은 노적가리가 지 발로  걸어오는 운수도 있능 거이고, 쇠시랑 갈고리로 찍어 붙들어도  임자가 따로 있는 운수가 있능게...두고 봐라. 이집  운수는 바닥이 날텡게. 지금이라도 청호  주수지으 가 보라제. 집채 같은 조개바우가  헐떡헐떡 그 넓은 저수지 물을 다  둘러 생키고 말었는디? 조개가 머어이간디, 조개가! 그 주뎅이에서 물을 펑펑 쏟아 내도 시언치 않은디, 이것은 됩대 물  밑바닥끄장 죄다 핥어먹고 패싹 말려 놨이니, 재산이고 자식이고 불어  가기는 애저녁에 그란  거이제. 청암마님 돌아가심서  집안 안팎 운수도 다 한끕에 말어갈 거여. 허기사 머  청춘에 독수공방도 피멍이 맺히게 독이오를 일인디 자개 속으로 난  자식도 하나 없는 이놈의 시상에다가 누구존 일을 시키자고 복을 냉게 놓고 가겄냐. 나 같어도 기양은 안 갈 거이다. 좋은 드끼 넘 보는 디는 기세 좋게  살었어도 그 한 펭상이 어뜬 세월이었겄어? 그 양반이 인자 그 한풀이를 꼭 헐  거이다. 두고바아. 인자 두고 보라고. 내 말 헐 거잉만.

  엉구네는 솔가지를 툭툭 분질러 아궁이에 쑤셔  넣는다. 아궁이의 불길은 옹구네 낯바닥을 빨갛게 비추며 탄다. 그러다가 후욱 불길이 밀려 나오기도 한다. 밀려 나온 불길이 솟구치며 춘복이의 가슴에 붙는다. 새빨간 불혓바닥이  그를 둘러 삼킨다. 그렇게도 옹골지게. 저주에 가까울 정도의 모진 예언을 옹구네는 퍼부어댔었다. 그러나, 그  예언을 증명해 주는 어이없는 일은 며칠 뒤에 정말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놈아아, 너도 위로넌 부모를 뫼시고, 아래로넌 자석 손자를 키우는 놈이라먼 이렇게 헐 수가 있단 말이냐아. 내가 오널은 사생결딴을 낼라고 쫓아왔다. 니가 아무리 가문 좋고 재산이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는 못헐 거이다. 있는 사람의 문서에는 논 서마지기가  애기 콧구녁에 코딱지 같은 거일랑가 모리겄다. 그런디이, 우리 없는 사람은 그거이 아니여어, 그거이 아니라고오. 너느은 있는 재산에다가  귀 맞출라고 우리 논을 샀겄지마안, 우리는 목심을 팔어 넹긴 거이다아.아이고오. 아이고오, 이런 천하에 날도적놈아아. 칼만 안 들었제에, 이거이 강도나 한가지제 어디 사람의 지서리란 말이냐. 어서 내 논 문서 내놔라. 논문서  내놔아. 왜애, 아까워서 그리는 못허겄냐? 그러면 돈을 내놔얄 거 아니여, 돈으을. 눈도 하나 깜짝  안허고. 넘으 목심을 그렇게 둘러 생킬 수가 있을지 알었냐아? 니가아, 가문 있고  재산 있다고 하늘 무서운지를 모르능갑지마는, 내가 눈 뜨고는 안 당헌다. 그거이 어뜬 논이라고,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섰을 때 산 것을, 이때까지도 돈을 안 준단 말이냐? 천지에 백설이 날리고, 냉돌방에서 자식 새끼가 얼어 죽었는디도, 이 에미가 눈 버언히 뜨고 그것을 쥑였다. 내 눈앞으서  그 에린 거이 배고프고 추워서 죽었다고오. 네 이놈, 너는 니 자식을 잘 멕일라고, 넘으 자식은 얼어 죽고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냐. 이 천하에 날도적놈아. 그것도 우리 집  논 문서 말어갈 적으는, 금방 돈을 준다고 큰소리 땅땅 치고 가지가드니, 니 눈꾸녁으는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느냐?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여어? 공으로 뺏어가다시피 해 놓고는,  그나마도 철을 넹기고 자식을 얼려 쥐이드락 돈을 안 주먼 어쩔 거이냐, 어쩔 거이여?”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든 쇠여울네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저고리 앞자락은 풀어 헤쳐졌는데, 속에는 맨살이다. 쇠여울네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낯바닥이 누렇게  뜬데다가 검은 기미가 버섯처럼 피어 있어 차마 볼 수가 없는데 입술에는 허연 거품이 물려 있다.

 

letter_bullet_1.gif

사진 / 그림

   

Radiometer_9965_Nevit.gif

[크룩스 복사계 : 빛을 받으면 밀폐된 유리구 안의 날개가 돌아간다.]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1. 1.

banner2.gi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1070 【독서편지】 제1070호 new 2022.05.20
1069 【독서편지】 제1069호 2022.05.18
1068 【독서편지】 제1068호 2022.05.17
1067 【독서편지】 제1067호 2022.05.16
1066 【독서편지】 제1066호 2022.05.12
» 【독서편지】 제1065호 2022.05.11
1064 【독서편지】 제1064호 2022.05.10
1063 【독서편지】 제1063호 2022.05.09
1062 【독서편지】 제1062호 2022.05.09
1061 【독서편지】 제1061호 2022.04.28
1060 【독서편지】 제1060호 2022.02.24
1059 【독서편지】 제1059호 2022.02.13
1058 【독서편지】 제1058호 2022.02.10
1057 【독서편지】 제1057호 2022.02.08
1056 【독서편지】 제1056호 2022.02.0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