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첫쪽

방문자수 (2014.04~)

전체 : 1,154,586
오늘 : 124
어제 : 250

페이지뷰

전체 : 42,179,934
오늘 : 4,662
어제 : 7,381
조회 수 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letter_bn.gif


【독서편지】 제1062호

2022.5.9. (음 4.9) / 발송인:

web_sign5.gif

mail.gif

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오늘의 어록

   


그 사람 하나만 보고는 사람 됨됨이를 모르는 법. 그 사람의 친구들을 살필 것. ― H.E.F.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남과 북의 협력

북의 미사일이 날아가고 언제 또 핵실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할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철이 없거나 아니면 허무맹랑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엄중하다 해도 역사적으로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또한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나 경제, 또는 군사나 스포츠 등은 손익과 우열, 그리고 승패의 문제가 얽혀 있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도 남과 북이 해결해 나가야 할 일도 퍽 많다. 서로의 언어와 표현 차이의 극복, 믿음직하고도 유용한 사전 편찬, 맞춤법의 공통성 확대 등은 싸우면서도 늘 해야 할 숙제들이다. 더 나아가 해외 동포들과의 소통 문제, 올바르고 적절한 번역 등을 위한 사업은 한시도 외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굳이 언어 문제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역사 분야로 넘어들어가 서로 유적 발굴을 함께 한다든지, 박물관 수장품들을 공동 전시한다든지 공동 목록집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요란한 언론 플레이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끼리 이러한 ‘안전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도 훨씬 유리하다.

이미 남과 북은 함께 ‘겨레말사전’이라는 것을 편찬하는 중이었다. 그간의 정치적 장애로 지체되었던 사업을 이럴 때일수록 정치적 긴장과 관계없이 대범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은 민족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종 ‘국제적 제재’와 굳이 연동시킬 필요도 없다. 정치적 군사적 갈등의 전제는 언젠가는 통합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갈등이 심할수록 이런 사업에는 더욱더 힘을 쏟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기나긴 분단의 세월을 극복하고 서로를 이어줄, 가늘면서도 질긴 명주실을 언어와 역사의 문제에서 찾아보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일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외국어 차용

서로 다른 언어가 접촉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언어에서 어휘를 빌려다가 사용하게 되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이런 것을 ‘차용’이라고 한다. 우리가 쓰는 ‘버스’니 ‘택시’니 ‘티브이’니 하는 숱한 문물들이 이러한 ‘차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휘를 빌려 쓰는 과정에서 그 의미나 용도가 달라지기 쉽다.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과 토양의 차이가 반영되는 것이다.

‘모텔’이라는 말은 자동차로 멀리 여행하다가 들르게 되는 숙박업소라는 뜻의 영어에서 왔다. 그러나 우리한테 들어온 이 말은 여행자를 위한 숙박업소라기보다는 그저 그냥 유흥업소들 틈새에 섞여 있는 간이 숙박업소라는 뜻이 더 강하다. 말은 분명히 영어에서 차용해 왔는데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외국어를 차용해서 우리한테 필요한 말을 만들어 쓰다 보면 가끔 그럴듯한 ‘걸작’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 한국인들이 외국어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말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말은 ‘알바’가 아닌가 한다. 독일어의 ‘아르바이트’(Arbeit)보다 훨씬 유용하다. 독일어에서는 ‘노동, 일, 숙제, 일거리’ 등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한국어에 들어와서는 매우 유용한 개념인 ‘부업’ 내지는 ‘비정규 일자리’로 정착되었다.

근간에는 한국식 영어가 거꾸로 외국에 알려지기도 한다. 호들갑스러운 몇몇 정치인이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는 ‘코리아 패싱’이 바로 그것이다. 농구의 속어로 쓰이던 ‘노룩패스’는 한 유명 정치인의 동영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언어적 세계화는 강력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투사되는 일방적 영향만 가리키지 않는다. 이렇게 거꾸로 주변 언어에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왕이면 좀더 의미 깊은 어휘로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저 그런 수준의 우스개 어휘로 세계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퍽 아쉽기만 할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etter_bullet_1.gif

시나눔 → 우리나라 詩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 5>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고사성어

   


 남귤북지(南橘北枳)  /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환경에 따라 악하게도 되고 착하게도 된다는말.    《出典》'晏子春秋'

  춘추시대 말기, 제(齊)나라에 안영(晏?)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했다. 안영이 너무 유명하니까 만나보고 싶은 욕망과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심술이 작용한 것이다. 수인사가 끝난 후 영왕이 입을 열었다.

 "제(齊)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사람이야 많이 있지요."
 "그렇다면 경과 같은 사람밖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소?"

 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예,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왔습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격의 대답이었다. 그때 마침 포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예, 제(齊)나라 사람이온데, 절도 죄인입니다."

         초왕(楚王)은 안영에게 다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하고 안영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영은 초연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강남에 귤(橘)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枳]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齊)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

 그 기지(機智)와 태연함에 초왕은 안영에게 사과를 했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동의어】귤화위지(橘化爲枳)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거절할 수 없는 것 - 이외옥

  드디어 제가 첫아들을 낳고 보란 듯이 그이에게 아이를 보였을 때 아이를 바라보는 그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빠로서의 뿌듯한 기쁨과 함께 당장 닥친 돈 걱정 때문이었지요. 아니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책임과, 스스로 무능하다고 자신을 학대하는 비탄의 눈물을 저는 그때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으료보험 카드가 없어(지금은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할인 받을 수도 없는 병원비 때문에 그이는 거리를 해메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퇴원날이 되었지요. 그이는 아침에 잠깐 얼굴을 비치고 나서 열한 시가 되어도 열두 시가 되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그 초조함과 불안한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두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상기된 얼굴의 그가 들어왔습니다. 돈을 빌려 주겠다던 친구에게 돈이 안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그이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것을 겨우 추슬러 혹시 하고 다른 침구를 찾아갔답니다. 그런데그도 형편이 어려운 친구로서 간신히 약간의 돈을 빌릴 수 있었답니다. 병원으로 달려와서 원무과장 수녀님(성가병원)에게 돈을 내밀며 남편은 말했습니다.

  "조금 적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돈을 세어 보고 말없이 웃더니 말했습니다.

  "얼마 부족하지 않네요."

  수녀님은 많이 부족한 병원비에서 다시 그이에게 돈을 주며 말했습니다.

  "1만 원은 아기 우유값, 또 1만 원은 산모와 아기와 택시 타고 가시고 나머지는 직장 구하는 데 필요한 교통비로 쓰세요."

  그이는 원무과 사무실에서 그동안 가슴 조이며 뛰어다니던  설움과 고마움에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답니다. 수녀님은 그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제가 보기엔 꼭 성공하실 분이에요. 앞으로 큰사람이 되었을 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을 주도록 하세요. 지금 이것은 아기를 위해 외상으로 드리는 거예요."

(MBC라디오 여성시대 주최 신춘편지쇼 대상 수상자)


    외상으로 살린 아들 - 전부순

  지금부터 30년도 더 지난 일이군요. 1960년 10월에 신랑은 이불짐을 지고 저는 아기를 업고 자그만한 보따리를 들고 금호동 달동네를 찾아들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썼지만 하늘도 무심한지 우리 아기가 병에 걸렸습니다. 이듬해 여름의 일이었지요. 아기를 보는 사람마다 오래 못 살겠다고 눈짓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때 돈이 없어서 아기를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불쌍한 우리 아기가 죽으면 서울 어디에다 묻을 것인가 그런 걱정만 하던 몹쓸 어미였지요.  그런 어늘 날이었습니다. 아기를 업고 돈 300원을 들고 왕십리를 향해 무작정 걷고 있는데 보건병원이라고 씌어진 간판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그때 끼니도 잇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저는 아기를 업고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아기 때문에 오셨군요"하시는 말씀에 저는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어디 보자"하시더니 아기를 진찰하셨지요. "저는 저... 저... 가진 것이 300원밖에 없는데요"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원장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치료비는 외상입니다. 다음에 가져오셔도 돼요. 그런 걱정 마시고 아기는 사흘 동안 꼬박꼬박 데려오셔야 합니다."

  저는 우물쭈물하다가 "치료비는 얼마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900원입니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때 갖고 있던 돈 300원을 우선 드렸더니 원장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이거면 됐습니다."하셨어요. 그리고는 앞으로 사흘 동안 매일 아기를 데려와야 한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저는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반가운 얼굴로 우리 모자를 맞아 주셨습니다. 아기를 치료하신 후, 원장 선생님께서는 아기 아버지가 무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별 직업이 없어요"하니까 다시 고향은 어디냐고 물으셨지요. 저희 고향이 충청도 충주라고 말씀드리니까 원장 선생님께서는 "양반 고을에서 살지, 서울엔 왜 고생하러 왔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배려로 우리 아기는 사흘 동안 외상으로 병원에 더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도 깨끗하게 나았구요.  한 달 뒤였습니다. 저는 700원을 어렵게 마련해서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어, 조진영이 왔구나"하고 우리를 반겨 주셨습니다.  원장 선생님께 저는 준비한 돈 700원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그분은 다음에 아기 아버지가 돈 많이 벌 때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서 돈을 한사코 받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고마워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저는 2천 백 원을 마련해서 늦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다른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놀라서 그분께 물었습니다. 먼저 계시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디로 가셨느냐고요. 그랬더니 그분은 이민을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새로 오신 의사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그 선생님께 우리 아기의 병원 치료비를 드리지 못했거든요. 선생님께서 외상값 2천 백 원을 대신 받아 주세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부탁을 거절하셨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대신 전해 주세요"하고 부탁드려도 선생님께서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아기가 아프면 데려오라고 하셨지요. 저는 할 수 없이 그 자리를 그냥 돌아서 나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1969년도에 운전면허를 따서 지금은 개인 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지금도 무학여고 앞에 있는 보건병원을 지날 때면 꼭 그 원장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차를 몰고 있습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 주최 신춘편지쇼 동상 수상자)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이글저글

   


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건방진 놈이다. 묶어라

  옛날 산중에 있는 이름없는 절간의 스님들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어쩌다 생기는 불공의 수입 가지고는 건물 유지조차 힘이 들고,  민간으로 나돌아 다니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여간한 수단 가지고는 그것도 용이치 않았다. 충청도 어느 산간 조그만 암자의 스님 한 분이 궁여지책으로 시냇물을 따라가며 닥나무를 심었다. 한지를 뜨는 닥나무는 그런 곳이라야 잘자라고, 또 지역이 넓어 곧 많은 수의 나무를 심어 그것을 베었다. 그로부터의 공정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닌데, 중은 도 닦는 기분으로 그것을 끈질기게 해냈다. 도랑물을 이끌어 물방아를 걸어서 재료를 찧고, 껍질을 벗기고 난 속대를 말리어 삶아 쪄서는 거기 넣고 다시 찧었다. 힘드는 여러 과정을  두루 거쳐 종이를 떠냈는데, 전문 직공이  아니다보니 힘은 곱이나 들고 성과도 아마 번지르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벽에 붙여 말려서 떼어내 스무 장씩 겹쳐서  접으니 그것이 한 권이요, 그것을 단위로 하여 매매하는 것인데, 그것을 여러권 포개  짐을 묶어서 멜빵을 걸어 지고 산을 내려갔다. 인간 많은 곳에 가야 팔겠어서 한나절을 걸려 청주를 찾아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면 오죽 좋으랴만, 하필이면  날짜를 잘못 짚어 장날이 아니어서,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이 조차 없다. 전방 차린 데를 찾아갔더니 성수기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고 턱없는 헐값에 거저 뺏으려 든다. 간신히 어떤 집에서  점심 한끼를 얻어먹고, 호젓한 길가 담모퉁이 편편한 곳을 찾아 종이짐을 내려놓고, 멜빵을 내려 팔에 걸친 채 짐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쉬다가 식곤증이  생기어 어느덧 가무락 가무락 졸음이 오고,  새벽부터 험한 길을 걸어온 피로마저 포개어, 내처 고개를 떨군 채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대처라면 으레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 그대로, 해가 설핏해 중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빈 멜빵만 팔에 걸쳐 있을 뿐, 종이 짐은 온데간데가 없다. 정신이 번쩍 든 중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훔친 자취를 남겨두고 갈 멍청한 도둑놈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중은 그만 맥이 탁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참을  멍청히 있다가, 다시 일어나 어슬렁 어슬렁 그곳 원님이 계신 곳을 찾아갔다. 파수가 허술했든지 관아의 삼문을 무사히 들어선 중은 정면 원님 처소 그 아래로 가 엎드리며 두 손을 짚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웬 중인데 이리 소란을 떠는고?”

  손님을 대해 앉아 약주를 들고 있던 원님은,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물었다. 중의 푸념 섞인 하소연을 다 듣기도 전에 원님은 미닫이를 소리나게 쾅 닫았다.

  “나, 웬 미친 놈의 중도 다 보겠다.  제가 실수해 잃어버려 놓고, 그런 것까지 관에 와 찾아달래? 어서 그 잔 비우게... 여봐라! 그놈 꼭두잡이 시켜서 내쫓아라.”

  해가 설핏할 무렵 술자리가 파하여 손님은 일어나  가고, 원님은 배웅할 겸 대청까지 나섰다가 불현듯이 영을 내렸다. 어느 영이라  지체하랴? 더구나 원님은 낮부터  자신 술에 얼굴이 대춧빛이지 않은가? 관청 안이 들끓어 총동원되고 앞 뒤 배종에 육방관속이 말타고 뒤따르는 행렬은 지체없이 정비되었으며, 원님은 풍채좋은 군복  차림에 상모를 휘날리며 등채를 짚고 백마에 높이 올라 일동은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삼문을 나섰다.

  “저녁 안개 스미는 황금빛 벌판, 수수잎 버석이는 건들바람...”

  원님은 글귀를 읊조리며 얼마를 가다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한번 달리자꾸나.”

  말은 어흥 소리를  지르며 네 굽을 모아  달리고 때아닌 돌개바람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얼마를 달리다가 걸음을 늦춘 원님은 땀을 닦았다. 곧 먼 데까지 나갔다가 거의  땅거미가 져서 돌아오는 길에 원님은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저건 웬 놈이냐?”

  길가에 서 있는 장승을 채찍으로 가리키며 하는 소리다.

  “그건 장승이올시다.”
  “장승이여? 성은 장가인데 이름은 외자로 지었구. 어디 장가인고?”
  “사또! 그것은 장승이올시다.”
  “장승이! 너희가 모두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그놈 이름 있는 왈패인 게로구나!

  건방진 놈, 관장이 지나시는데 뻣뻣이 서서...,  그중에 술을 쳐먹었더냐? 웬 얼굴은 저리 붉고 무엄하게끔 눈깔을 부릅뜨고..., 저놈 잡아 묶어라.”

  여럿은 얼굴을 서로 쳐다 보았다.

  `낮술 안주에  무엇을 잘못 자신 거나 아닌가? 잘못 독버섯을 먹으면  미친 짓을 하다가 끝내는 죽고 만다는데...` 서로 눈을 끔뻑이며 하라는대로 오랏줄로 장승을 겹겹이 묶어 말에 실었다. 관청에 돌아온 원님은 모두를 세워 놓고 엄숙하게 일렀다.

  “저놈을 단단히 치죄할 것이로되,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옥에 내려 가두고 비상령을 내려서 관속들 모두가 모여서  밤새도록 지키게 하라. 흉악한 놈이니 밤사이 도망하면 큰일이로다.”

  그리고는 능글맞은 행수기생이 상대로 또다시 술상을  대하여, 큰 잔으로 연거푸 기울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큰일이 벌어졌다. 원님이 좌기를 차리고 장승을 대령하라는데 간 곳이 없다. 물론 밤사이 행수기생이 영리한 사람을 시켜 갖다 감춘 것이다.

  “네놈들 듣거라. 내  그처럼 엄중 감시하라 했는데 기어이 놓쳐  버렸으니 이놈들을 그저 모조리...”

 펄펄 뛰는 원님을 비서격인 책방이 뜯어 말려서 간신히 무마시켰다.  “내 책방의 청을 들어 체벌만은 않을 것이로되, 일후를 징계하여  벌로 물건을 받으려 하니, 매 인당 창호지 두 권씩을 바치되 지체하면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관속들은 종이를 구하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청주 성안의 종이는 시시각각 값이 올랐으나 그나마 바닥이 났다.

 “여봐라, 어제  여기 왔던 중놈이 가지 않고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을데니 그놈을 데려오도록 하라.”

  얼마만에 맥없이 끌려온 중에게 원님은 인자한 얼굴로 일렀다.

  “네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게다만 이 중에서 어떤 종이가 네가 뜬 것인지 가려내봐라.”

  중은 거침없이 그 중에서 상당량의 종이를 추려냈다. 종이 끝에 꿰어 단 꼬리표를 점검해 그 종이 바친 사람들을 따로 모았다.

  “너희는 이 종이를 어디서 구했더냐?”

  그리하여 범인은 쉽사리  잡히고, 여럿이 바친 많은 양의 종이는  관청 창고에 들여 놓고 쌓았다.

  “이 종이는 다른  데 쓸 것이 아니다.  너희들 중에, 두드러진 공로있는 자가 생기면 그때마다 상급으로 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라.”  
“...”

  경주 이씨의 오성대감 이항복의 현손인 이광좌에  얽힌 얘기인데, 이렇게 기발한 안을 낼 정도로 유능한 분이라, 뒷날 영의정에까지 올라 나랏일에 공헌하였다.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쉰여덟번째 이야기 - 비구와 주모

  옛날 마투라국에 사는 한 남자가 세속을 싫어하여 불제자 우파급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이렇게 해서 비구가 된 그 남자는 우파급다에게 부정관을 전수받아 번뇌를 끊고자 했다. 부정관이란 인간의 육체가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관찰하여 탐욕의 번뇌를 없애는 관법이다. 그런데 그 비구는 부정관을 완전히 다 익히기도 전에 이미 번뇌를 모두 멸했다고 자신하였다. 그래서 스승 우파급다를 찾아가 말했다.

  "저는 이미 부정관을 통해 모든 번뇌를 멸했습니다."

  우파급다는 이 비구가 비록 바탕이 총명하기는 하나 모든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다.

  "어찌 한두 번 부정관을 수행했다고 해서 번뇌가 끊어지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거라."
  "스승님, 저는 정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너는 건타라국에 사는 주모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 그녀는 재가 신자인데, 마치 너처럼 충분한 수행을 다 하지도 않은 채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여자다. 수많은 번뇌의 고통 없이 해탈을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쨌든 정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건타라국에 가서 그 주모를 만나보고 오너라."

  비구는 스승의 말에 따라 행장을 챙겨 건타라국으로  떠났다. 이윽고 건타라국에 도착한 비구는 토석사라는 절에 묵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탁발을 나간 비구는 사람들에게 그 주모가 살고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그 주모는 대단히 유명했던지 사람들은 즉시 그 거처를 알려주었다. 비구가 그 집으로 찾아갔더니 한 여자가 마당에서 바삐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주모는 한 비구가 문 앞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보시할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그 순간 비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주모는 날씬한 몸매에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정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또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말하는 주모 역시 비교적 잘생긴 편에 속한 비구를 보자 마음이 흔들려 그만 욕정을 느끼고 말았다. 주모는 백옥처럼 흰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짓고는 비구의 발우를 받아들려고 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손이 서로 부딪혔다. 이때 비구는 갑자기 스승 우파급다가 생각났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음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직 번뇌를 다 끊지도 못했는데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주모 역시 아라한의 경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비구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구는 부정관을 사용하여 주모의 아름다운 육체 역시 본질적으로는 더럽고 추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음욕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구는 스승 우파급다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이 무척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나중에 그는 마투라국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수행해서 마침내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다.

  <아육왕경>


    쉰아홉번째 이야기 - 하늘이 내려준 아들

  옛날에 선시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삼보를 받들어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시에게는 매우 예쁘고 영리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는 찼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장자의 딸아이 몸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만 임신이 되고 말았다. 장자 부부는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깜짝 놀라 언성을 높여 딸을 추궁했다. 그녀는 자기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장자 부부는 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겨 매를 휘두르면서 이실직고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끝까지 자기도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장자 부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국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국왕은 장자의 딸에게 불미스러운일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집에 불이 난 후 자신도 모르게 임신하게 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떻게 국왕이 그 말을 믿겠는가? 국왕 역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화가 나서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결코 저는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죽이시겠다니, 이 억울함은 부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은 마음이 변해서 그녀에게 확실히 억울한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연약한 여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국왕은 선시 장자에게 그녀를 아내로 삼겠다고 했다. 그녀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뱃속에 있는 아이는 분명 하늘이 내리신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자 부부는 매우 기뻐하면서 딸을 국왕에게 시집보냈다. 이렇게 해서 국왕의 부인이 된 장자의 딸은 어느덧 달이 차자 아들을 낳았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고 총명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천진하고 순박한 마음씨를 그대로 유지했다. 나중에 그는 출가해서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경지를 이루었다. 그후 그는 자신의  부모를 제도했는데,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불법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국왕과 여러 대신들도 전부 삼보를 공경하며 선행을 쌓았다.

  <분별공덕론>


    예순번째 이야기 - 귀신을 잡은 서생

  안양성 남쪽에 한 사원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귀신들이 들끓어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는 간 큰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음날 살아서 걸어나온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귀신이 실제로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를 보러가던 한 서생이 그 사원에서 하룻밤 묵어가려고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서생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서생은 코방귀를 뀌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으며, 자기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치고선  말리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서생은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다가 밤이 이슥해지자 불을 끄고 잠을 자려고 했다. 침대 위에 누운 그는 갑자기 낮에 사람들이 말했던 귀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록 귀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아무래도 꺼림칙한 면이 있어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창 밖에서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서생은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그래서 자세히 쳐다보니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창 밖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한 곳에 멈추더니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그러자 어두컴컴한 곳에서 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낮에 서생 한 사람이 들어와 방금 전까지 책을 읽다가 막 자리에 누웠는데 겁에 질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쉬더니 곧 가버렸다. 서생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잠시 후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자가 창 밖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고는 앞의 검은옷을 입은 자가 섰던 곳에 멈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또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서생 한 사람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네."

  붉은 옷을 입은 자 역시 후유  하고 한숨을 쉬더니 가버렸다. 이제  서생은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로 겁이 났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서생은 용기를 냈다. 몸을 일으켜 앞의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으로 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그러자 과연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서생 한 사람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직 잠을 못 이루고 있지."
  "그런데 아까 그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누구입니까?"
  "북당에 사는 암퇘지라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자는 누구입니까?"
  "그건 서당에 사는 수탉이라네."
  "그러면 주인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땅속에 사는 전갈이지."

  서생은 앞 뒤 사정을 눈치채고선 조용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촛불을  켜고 날이 밝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 날이 밝자 마을 사람들은 서생이 분명히 죽었을 것이라고 떠들어대며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서생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호미와 올가미를 가지고 오시오. 나와 함께 귀신들을 잡으러 갑시다."

  곧이어 호미와 올가미를 가지고 온 마을 사람들은 서생 뒤를 졸졸  따라가서 어젯밤 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파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전갈이 떡 버티고 앉아 있는데, 몸통이 비파만 하고 독침이 수 척에 이르는 정말 무섭게 생긴 놈이었다. 그러고 나서  서당에 가보니 역시 요물스럽게 생긴 수탉이 있었다. 또 북당에 가보자 과연 요괴처럼 생긴  암퇘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 세 요물들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후로 그 사원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법원주림>


    예순한번째 이야기-충격 요법

  옛날에 병을 잘 치료하기로 소문난 의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한번은 그가 외국에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들이 집에 있는 독약을 먹고 발작하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중독된 아이들 중에서  그나마 제 정신이 남아 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저희들이 미련하여 독약을 먹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곧 여러 가지 약재를 꺼내와 해독제를 만들어 아들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약만 복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게다."  그러나 제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아들들은 곧 그 해독제를 먹고 완쾌되었으나, 심하게 중독된 아들들은 아버지도 몰라보며 해독제를 도통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서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 여기 해독제를 두고 다시 볼일을  보러 갈 것이니, 너희가 이 해독제를 먹으면 반드시 완쾌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는 외국에 나가 다른 사람을 보내 자신이  객사했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들은 비통해하면서 탄식했다. "아버지가 계시면 언제나 우리를 보살펴주실 텐데, 이제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실성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던 아들들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해독제를 먹고 모두 완쾌되었다. 그제서야 의사는 집에 돌아와 아들들에게 자신이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묘법연화경>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국내소설

   


혼불2 - 최명희


   14. 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4/4)

김씨부인이 감는 실꾸리에 한숨이 감긴다. (살이  식은 사람.) 청암부인은 김씨부인의 말을 되받아 속으로 뇐다. 그렇게 말하는 김씨부인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때 맞추어 저절로 식어 준다면 그 또한 다행한 일이다. 끓어 넘치는 국물도 다 시간이 가면 미지근해지고, 더 두면 썰렁해지는 법. 사람이라고 다르랴. 허나, 그렇게 식기까지  기다릴 수조차도 없어서 입김으로 불고 부채질로 찬 바람을 일으키어 서둘러 식히는 일도 더러는 있다.  우리 두 사람 마주보고 앉아 서로의 기구한 명운을 탄식하고는 있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의 몸이란 살로만 되어 있지는 않은 것. 뼈로는 일을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비록, 더불어 정을 나눌 사람이 없어 그쪽으로는 죽은 목숨이나 진배 없으나, 아직은 뼈가 젊으니 일을 해야지.  아마도 이 할 일 많은 가문에 들어온 내가 헛눈 팔까 보아 이렇게 홀로 버티게  한 것 같구나. 감축하옵게도 기채를 양자로 주셨으니 정성으로 기르리라.) 그렇게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보이는 청암부인이 지우지 못한 그림자는 신랑 준의였다. 그리고 마음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불안은 다름아니라 그 그림자의 그늘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박복한 두 여인네의 품안에 어린 생명을 맡기려 들어온 기채가, 혹시라도 부정을 타지는 않을까. 보쌈마님 김씨부인이 타고난 운명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나 또한 소년과부로 남 사는 세상을 못 사는 사람. 행여, 이 거센 운수에 짓눌려 기채가 다치지는 않을 것인가.) 그러나 입 밖에 내서 말을 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그네는 말에 정령이 붙어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결코 함부로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속 깊은 곳에 지나가는 생각조차도 불길한 것은 황급하게 털어내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안하려 안하려 해도 떠오르는 이 생각은, 무엇 때문인가.) 결국 청암부인은, 피하여 달아나던 생각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저것도 요절을 해  버리면 어쩌나... 정성으로 길러서 열  살을 넘기고 열다섯을 넘긴다 한들,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덧없이 죽어가면 그 노릇을 어찌할 꼬 누구는  죽고 싶어 죽겠는가. 하늘이 주신 명이 그뿐이면  어쩌랴. 이 집안의 운이  비색하여 모두 선대에서 단명하였는데, 이 아이라고 벗어날 수 있을까. 더욱이 이와  같이 음침한 기운이 집안에 아직도 고여 있는데.) 청암부인도 말도 못할 두려움에 숨을 죽였다. 어디 가서 속 시원한 언약을 받을 곳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무거운 속을 털어내 놓을 곳도 없었다. 돌아보면 첩첩산중이고 올려다보면 텅 빈 하늘뿐이었다. (세상에 막막하기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김씨부인이  곁에 있다 하나 그는 나와는 또 다르다. 막말로 그 양반은 이제 죽으나 내일 죽으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 남의 자식을 내 자식으로 받아 안은 나보다는 그래도  가볍다.) 천지에 의지할 곳 없다는 생각이 등골에 사무치며 오르르  몸이 떨렸다. 그 순간 청암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인력이 자극하면  천재를 면하나니. 이 뼈가 우뚝 서서  뿌리를 뻗으면 기둥인들 되지 못하랴. 무성하게 가지 뻗으면 지붕인들 되지 못하랴.  그네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는 양자 기채를  서리 맺힌 눈매로 바라보았다.

기채는 세  살 버릇 그대로 밥숟가락을 수북하게 해 본 일  없이 마디게 자라났다. 그는 밥만이 아니라 다른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명절이면 색다르게 준비되는 음식들도 손가락 끝으로 한 점 떼어먹는 시늉만 할 뿐, 상을 밀어내면 그뿐이었다.

"아가. 이 엿  좀 먹어 봐라. 이것저것 잘 먹지도  않는데 허기지겄다. 이런 엿은 입에다 넣고만 있으면 저절로 안 녹냐? 먹는 데 힘들 것도 없겠구마는."

청암부인이 애가 닳아 모반에 엿을 담아 내주어도 어린 기채는 기껏 한 조각 정도만 맛을 보았다.

"입에서는 달고, 뱃속에 들어가면 빈 속에 진기도 있을 텐데."

노르께한 낯빛으로 앉아 있는 이기채를 온갖 말로 달래어 겨우 한 조각을 더 먹이고 나서

"그럼 무엇 해주랴?" 하고 물어도 고개를 흔들었다.
"먹어야 크지."

그런 근심이 늘 가슴에 얹혀 있는 중에도 이기채는 무사히 열다섯을 넘기고, 열여섯도 넘기고, 작배도 하였다. 열여섯 나이 탓에 죽은 것도 아니었지만, 하도 꿈속같이 어이없는 변고를 당한 포한이 기가 막혀, 청암부인은  아무리 급해도 기채만은 스무 살을 다 채워 치혼하리라, 결심했었다. 안 그래도 어려서부터 남달리 조심스러운  기채가 성년으로 실해지기도 전에 장가들어 안팎으로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되면, 다음 일을 누가  알리야. 그래서 그는 스물하나에 혼인하였다. 그가 율촌으로 혼행을 가던 날 새벽, 인사를 드리러 안방으로 들어왔을 때, 청암부인은 오직 한 마디만을 했다.

"잘 다녀오너라."

이기채는 두 손을 방바닥에 공손히 모으고 절을 한 다음 일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나섰다. (잘 다녀오너라.) 그네가 더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을 만큼 그 말은 간절한 것이었다. 마흔여섯 그늘진  그네의 허리에, 시린 설움이 응달진 채 얼어 있었으므로, 말을 보태다가는 자칫 부정을 탈 것만 같아서였다. 그때는 이미 김씨부인은 타계하고 난 뒤였다. 참으로 박복한 여인이었으나, 그나마 마음에 의지되고 동무도 되어주었던 김씨부인은 하룻밤 잠든 사이에 자는 듯 죽어갔다.

"타고난 복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양반. 그래도 죽음  복은 타고나셨던 모양인가."

오래 살아 노망까지 하면서 자기 수족을 마음대로 못 쓰고 남의 손을 빌어 목숨을 이어가는 구차함이나, 날마다 앉고 서는 집일망정 언제나 남의  집 같아서는 늘 손님  같은 처지에, 까딱하면 군식구  대접을 스스로 받을 뻔한 것을 그네는 피해간 셈이었다. 아무 유언도 없이, 무슨 고통도 없이, 김씨부인은 홀연히 청암부인의 곁을 떠났다. 글쎄... 김씨부인도 사람이니 그 나름대로 희로애락과 애오욕이 어찌 없었을까. 그러나 길지 않은 나이 몇  십을 사는 동안 어느 한 가지를 편중되게 겪다 보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감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씨부인은 자신의 심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즐겁고 성난 것을 말한다고 아는 것은  아니다. 청암부인은, 그네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소리 내어 성내는 것도  못 보았다. 또한 어디 따로이 혼자만의 낙을 감추어 둘 것인들  있었겠는가. 마음을 기울여 애착하는 아무도 없었다. 애착이 없는데 증오가 있을까. 다만 한 가지 그네의 고적한 평생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애였다. 그것은 안개처럼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고, 그네의 흰옷을 젖게 하고, 몸을 식게  하였다. (좋은 일 한번  못 보고.) 떠나간 김씨부인이 가엾게도 여겨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네가 지하에서나마 조용히 잠들어,  젖은 옷을 다 벗고, 다만 혼백으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적막한 가운데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채가 혼인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는 청암부인의 심사는 달래기 어려웠었다. 자기와 단 몇 번 얼굴을 마주하였을 뿐인 어린 소년 신랑 준의도 초례청의 자리에서야 죽음의 명운 앞에 그렇게도 바싹다가서  있는 줄을 어찌 알았을까. (불길하고 사위스러운 아낙이로다. 허나 아무래도  내가 그 양반 세상 뜬 일에  깊이 놀랐던 모양이다. 그저 기채가  이번 고비까지만 무사히 넘겨 주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지 않는 것으로  알리라. 지금까지 남  모르게 근심하며 노심초사했던 불안이 바로 이 고비였던가 보다. 어쩌든지 무사하게만...) 과연 그네의 말대로 하늘이 그네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금방 손안에 잡을 수 있었다.

이기채는 걸음걸이조차도 완연 의젓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율촌으로부터 가마가 당도하였다. 꽃각시 율촌댁이 아담하고 조신한 맵시를 드러냈을 때, 둘러선 사람들은 너나없이 탄성을 한숨처럼 발했다.

"곱기도 해라."
"청암아짐 못다 받으신 음덕이 이제부터 발복하려나 보네요."
"온 집안이 다 훠언하네 그냥."
"집안만이 아니라 삼동네 안에서는 저렇게 이쁜 새각시 없을 것이그만."

아랫것들이 넘겨다보며 숨죽여 내지르는 찬탄은 그만두고라도, 문중의 부인들끼리 주고받는 말로만도 폐백의 자리는 흥겨웠었다. 아닌게 아니라 율촌댁의 자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몸에 익은 태도에서 풍기는 여염함이 그린 듯이  고왔기 때문이었다. 녹의홍상이라는 것이 본디 생기 있는 복색이면서도 수줍고, 그러면서도 당당한 빛깔이라는 것을 청암부인은 눈이 부시게 느꼈다. 그네 자신이 시댁으로 올 때, 가마 속에 허연 소복을 입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에, 놀라 소리를 지르던 농가의 아낙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오름도 그 빛깔이 눈부신 탓이었다. (아름답고나.) 윤이 나게  빗어내린 낭자머리에 꽂힌 청옥 비녀꼭지의 다부진 푸른 빛 또한 가슴이 서늘할 만큼 고왔다. 고운 그 머리를 조아리며 청암부인 앞에  다소곳이 절하는 율촌댁의 치마폭에 그네는 대추를 한 줌 던졌다.

"부디 아들을 많이 낳아라."

부축하고 있던 수모가 공손한 솜씨로 얼른 대추를 줍고 있는 사이, 청암부인은 율촌댁이 얼굴 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며느리가 얼굴을 들었을 때, 시어머니 청암부인은 속으로 (더불어 큰일을 의논할 상은 아니로다. 잔자로운 집안일이 손끝에 즐거운 그런 상호구나. 허나, 너와 같은 용색을 타고난 사람은 남편궁과 자식궁 모두  순탄하리라. 그러니 여자로서는 복인이지.) 하고 뇌었다. 이상하게도 청암부인의 가슴에는  선망이 괴는 것이었다.  남들은 곱다 하나  그네의 눈에는 그저 범속한 아낙으로  보이는 며느리는 무난함이 오히려  화려하여, 녹의홍상과 청옥잠두의 호사스러운 빛깔과 어우러졌다.  청암부인은 지그시 율촌댁을 쏘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놀랍게도 이듬해 율촌댁은  회임하였고, 달을 채워 딸을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강련이라 지었다. 강련이를 낳은 율촌댁은 몹시 민망하여 얼굴을 바로 들지 못한 채"헛것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었다.
"헛것이라니, 당치않다. 이 집안 지붕 아래 그 아무라도 아들이 태어나기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첫딸은 집안의 살림 밑천이라 하지 않드냐? 선영에 감사하고 감창할 일이다. 아이 낳고 눈물 짓지 마라. 어미 눈물이 자식의 폐장에 스미느니. 내,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니라. 자식을 둔 어미가 울어싸면 자식의 운수가 피이지를 못한다는 게야. 남모르게라도 행여 울지 마라."

청암부인은, 송구스러워 고개를  떨어뜨리고만 있는 율촌댁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성급한 일이로다. 설한풍에 얼어 들어온 손발은 웃목에서 녹이고 아랫목으로 드는 법. 들이닥치는 대로  더운 자리에 언 손을 넣게 되면 동상에  걸리지 않던가. 목마를 때 먹는 물도 마찬가지다. 급할수록, 버들잎을 띄워서  불어가며 마신다지 않던고, 그뿐이랴. 오래 굶은 창자에는 미음  먼저 먹여서 오장을 적신 뒤에라야 죽을 먹이고, 그 다음에 비로소 밥을 먹이느니, 성급한 마음에  급체할까 두렵다.) 딸이면 어떤가. 며느리가 회임할 수 있는 사람이고, 거기다 순산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세월을 기다리기만 하면 아들을 낳을 날도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마음을 걷집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은 이기채였다. 누구보다도 집안의 내력을 잘 알고 있는데다가, 그 자신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터이어서 더욱 초조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한숨 소리만 자욱하던  집안에 이렇게 어린 애기 울음 소리가 낭랑하니, 이 얼마나 화창한 일인고."

새 소리가 이에서 더 맑으며, 노래 소리가 이에서 더 즐거우랴. 청암부인은 얼굴빛을 밝게 하여 율촌댁의 심기를 도와 주었다. 그러는중에 며느리 율촌댁은 이태 만에 다시 아이를 가졌다. 그때야말로 온 집의 안팎이 부풀어, 열 달 내내 보약 탕제가 그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둘째 아이도 여식이었다. 누구보다 율촌댁의 낙심이 컸고, 이기채는 실망의 탄식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청암부인마저도 서운한 기색이 확연했다. 첫아이 강련이 때보다 훨씬 침통한 분위기가 깁안을 눌렀다. 율촌댁은 아기가 우는 소리만 내도 가슴이 죄어 얼른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 그런 경황 없는 가운데 누가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는 이도 없어돌이 가까워 오도록 따로 무어라 부를 말이 없었다. 천덕꾸러기처럼 눈치 보며 젖을 물려 허구한  날 잠만 재우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덜컥 제 형과 아우, 두 자매가 한 날에 서로 다투어 열병에 걸리었으니 차마 보기 어려운 정경이었다. 그 끝에 결국 작은 것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 남은 형 강련이도, 끝내 온전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반편이 되어 버렸다.  아가. 오직 한 마디, 율촌댁은 그렇게 속으로 잦아드는 소리로 어린 것을 부르며, 묻히러 가는 자식을 배웅했다. 이름도 못 얻고 죽어간 계집아이, 자라나도  쓸모 없는 헛것이라 잊어버리려  애쓰지만, 어미의 마음이 자식에 대하여 어찌 쓸모를 따지리오.  비가 와서 땅이 젖으면 율촌댁은 뼈가 시리었다. 죽은 자식 불효 자식. 삼생에  지은 원수 이생에서 갚으려고, 못 들고 망치 들고 어미의 생가슴에 피멍으로  박고 가는 천하에 못된 자식. 그러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율촌댁은 아기가  묻힌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발을 옮기곤  하였다. 격식을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닌, 흡사 조갑지만한 무덤 자리에, 그저  돋는 푸른 풀이나, 그저 피는 꽃모가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물끄러비 바라보면, 저것들이 모두 다 내 자식 살아 녹아 거름이 된 것이려니, 그 거름 먹고 무심한 잡초들이 저다지도 무성한 것이려니. 애통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주먹만한 몸뚱이가 캄캄한 땅 속에서 저 무거운 흙더미를 이고 누워 있을 것이  저미고 에이었다. 그렇게 낳자마자 숨이 질  것이라면 무엇 하러 열 달을 채웠던고.  이리 잠깐 있다 갈 것을 무엇하러 태어났던고. 율촌댁은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자식을 앞세워 묻은 것을 바로 자신의 죄로  돌린 탓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 청암부인을 바로 대하지 못했다. 새며느리를 맞이하고  삼년 안에 일어나는 재앙은 모두 며느리 앞으로 책임이 떨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죄만스러운 기색을 감출 길이 없었다. 열병에서 겨우 건져낸  강련이의 비틀린 모습 또한 암담하여 율촌댁은, 자신의 무간죄보에 사무쳐 울었다. 세상에 나서 지금까지 그다지 남 못할 일 시킨  기억 없건마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겹겹이 에워싼 시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율촌댁의 근심이 살을 마르게  하는 가운데 이 년이 지나, 세번째 아이를 회임하였다. 그네는 산월 가깝도록  그 일을 발설하지 않았으나,  두꺼운 얼음이 풀리고  봄빛 천지에 난만한  춘삼월의 꽃피는 스무날, 순산하였다. 그것도 아들을. 강모. 이기채가 떨리는 손으로 사당에 고하여 올린 이름은, 눈부시게 흰 백지 위에서 그 먹빛조차도 찬연하였다. 단아 방정한 두 글자가 나란히  어깨를 맞추고 서서, 이제 막 태어난  종손의 머리맡에 새로운 뜻으로 견실한 울타리를 둘러 주었으니, 누구라서 하늘 보고  무심하다 원망을 하였던고.

"하늘은 사람을 기다려도, 사람은 하늘을 기다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일.월.성.신은 무궁해도 인생은 풀끝에 이슬이라. 감히 이슬이 어찌  무궁함을 헤아리리오. 이런  날이 숨겨져 있는 것을  모르고 그만 하마터면 실심을 할 뻔했구나."

청암부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앉은 채, 참으로 감회 깊은 눈물을 흘리었다. 감루였다. 그러부터 강모는, 할머니 청암부인의 무릎 위에서 내려앉을 날이 없었다.

"무엇을 잡을라는가. 어디 자네 마음에 드는 대로 아무것이나 잡아보게나. 여기 놓은 이 많은 복록이 다 자네 것이네. 이 사람아."

청암부인은 첫돌맞이 돌상 앞에 복건을 쓰고 앉은 조그만 손자 강모에게 축수하며, 고사리 같은 아기의 손을  뻗쳐 주었다. 검은 윤이 반드럽게 오른 상 위에는 어린 손자의 앞날을 점쳐 보는 증표들이 정성스럽게 줄을 맞추어  놓여 있었다. 맨 뒷줄에는 먹과 벼루, 책, 그 옆에 청실 홍실이 나란하고, 가운데 줄에는 붓이며 돈, 그리고 활과 무명필이 소담하게 혹은 날렵하게 놓였는데, 아기의 손이 닿기 좋은 앞줄에는 과일,  국수, 쌀, 떡 등의 음식이 탐스러웠다. 그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앞날들은 하나같이 복스러운 것이었다. 쌀에는, 부유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고,  쌀로 만든 무지개떡과 편이며  송편.경단이 모두 곡식들로,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 없지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보배로운 곡류라면 역시 쌀이  아닌가. 쌀은 곧 재물이요, 쌀은 곧  목숨이었다. 그보다 좀더 직접적으로 부를 상징하는 것은 돈이어서, 쌀을 한 웅큼 집으나 돈을 집으나, 아기가 장차 부자가 되리라는 예언에는 별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 국수 그릇에 손을 대면 무병 장수할  것이요, 대추든지 사과든지 감이든지, 과일을 집어 올리면 자손이 번창할 것이다. 또한 청실 홍실은 길고도  긴 수명을 여한 없이 누리라고 타래를 틀고 있다.  청실 홍실을 구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쉽게  무명실을 놓기도 하지만, 강모의 앞에는 푸른  실 붉은 실이 요요하였다. 무엇보다 선비의 가깡이에서 한평생을 함께 할  벗으로서 문방사우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붓.먹.벼루.종이가 서로 다정하게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야 어찌 글을 잘하며, 글을 잘하지 않고서야  어찌 입신하고 양명하며 학문에 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성품과  기개가 저마다 달라서 어떤  이는 학문으로 이름을 세우고, 어떤 이는 용맹으로 공을 이룬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기는 이나 저나 다를 바 없는 고로, 활을 들어  무사가 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강련이 때에는 활 대신에 잣대를 놓아  부덕을 빌었다. 여자의 할 일로는 침선이  으뜸이었던 때문이다. 그때 돌상 앞의  강모는,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면서 들었다 놓았다 헤적거리기만 했었다. 어린 것이 자기 앞에 놓인  울긋불긋한 음식과 물건들이 담고 잇는 기원을 알 리도 없었거니와, 본디 애기  때부터도 눈에 보이는 것을 탐욕스럽게 거머쥐는 성품도  아닌 탓이었던가, 둥그런 눈을 더욱 둥그렇게  뜨고는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였었다. 그런데도 청암부인은 속으로, 저것이 실타래를 맨 먼저  집었으니 오래 살리라 생각하며 흐뭇하게 여기었다.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어린 손이 무엇을 알아서  똑바르게 한 가지만을 고르리요. 그런 중에도 쌀대접을 부둥켜  안으려고 시늉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재물은 좀 모으려는가 싶구마는.) 하고 욕심을 부려 본다. 그렇지만 율촌댁은 또 달라서, 대추를 입으로 가져 가던 강모의 이쁜 짓만을 몇  번이고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아랫것들은 또 저희들이 들은  대로 혹은 붓을 들었다고 하고, 혹은  떡을 먹었다고 하고, 누구는 책을 읽었다고도 하면서, 저 들은 것을 옳다고 고집하였다. 만일에 그 말들이 모두 맞는다면, 강모야말로 이 세상에 태어나 수명  장수하면서 온갖 복록과 부귀 공명을  한몸에 누리는, 더할 나위  없는 복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 강모가 꿈결 같은 세월을 보내고 이제 어른이 되고, 또 터무니  없게도 한 어린 것의 아비가 되어, 이렇게 허옇게 늙어 버린 할머니 청암부인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삼백 원의 '공금 횡령'  죄목으로 파직이 되어. 청암부인은 혼수에 빠진 듯 혼곤하게 눈을 감고만  있다가 다시 겨우 실눈을  힘들여 뜬다. 그리고 물끄러미 강모를 바라본다.  그 눈귀에 진득한 물기가 번진다. 강모는 그 눈빛을 피하여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만다.

"... 아가..."

청암부인은 강모를 바라보던 눈길을 옆으로 기울여  베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강모를 바라본다.

"왜요? 할머니, 베개가 불편하세요?"

강모는 얼른 베개를 고쳐 주며 물었다. 청암부인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눈짓으로 베개 밑을 가리켰다.

"베개 밑에 뭐가 있어요?"

그네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길을 따라 강모는 베개 밑에 손을 넣었다. 베개 밑은 눅눅하였다. 땀 기운이  서린 탓이리라. 강모는 할머니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은 기분이 들었다. 겨울날 찬  바람 속에서 방으로 들어오면 청암부인은

"이리 온, 할미가 따뜻하게 해 주지."

하면서 언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가 할머니의 켜드랑이에 넣어 주었다.

"따숩지?"

정말로 그곳은 아늑한 골짜기였다. 명주 저고리에 솜을 두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할머니의 몸이 따뜻했던 때문이었을까.

"찬 데서 방에 들어와 가지고 바로 아랫목에 손 넣지 마라. 동상 걸린다."

그러면 강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겨드랑이에 손을 묻은 채 얼굴을 그네의 뒷등에 비비곤 하였다. 그때, 눅눅한 듯 혼혼하던 체온.  강모는 베개 밑에서 손바닥만하게 접은 납작한 명주 수건을 찾아냈다. 그것은 넣어둔 지  오래된 모양이었다.

"이것 말씀이신가요?"

강모가 명주 수건을  꺼내 들고 청아무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네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할머니."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이 없다.

"할머니."

강모의 목소리는 다급하였다. 그러나 청암부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혼수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네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어찌 보면 마른 나무로 깎아  만든 도상 같기도 하였다. 탈진이 될  대로 되어 수분이 없는 그 얼굴은,  이미 애증이나 영욕의 끈끈하고 축축한 늪지에서  건져 올려져 햇빛에 건조되고 있었다. 장지문에  녹아 엉기고 있는 여름 한낮의 뙤약볕이, 청암부인의 무감한 누른  얼굴 위에 거미줄을 하얗게 슬어냈다. 그래서 그네의 얼굴에는 명주 올이 얽힌 것처럼도 보였다. 강모는 가슴 밑바닥이  어이없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은 허방이었다. (할머니. 제가 어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까. 반평생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으니, 이제라도 무엇을 어찌  해드렸으면 좋겠는지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어쩌다가  저는 이런 모양이 되어 버리고 말았을까요. 할머니. 할머니이.) 터지는 울음을  누르며 강모는 손에 들고 있던 명주 수건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금이 가게 접혀진 그 안에는 미농지로 한 겹 더 싸인 것이 들어 있었다. 뜻밖에도, 그것은 돈 삼백 원이었다. 귀퉁이를 나란히 맞추고 누워 있는 종이돈에서는 물큰 땀냄새가 났다. 할머니와 체취였다. 그리고,  아까 할머니의 희미한 눈빛  속에다 반절이나 덜어 넣었다고  생각하던 그 어둠보다 훨신 더 크고 깊은  어둠이, 명주 수건에 싸여져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 청암부인은 강모에게, 그네의 가슴 가장 어두운 곳에 멍들어 있던 어둠을 명주 수건에 싸서 건네준 것이었다. 강모는  손수건을 구겨 쥐었다. 손수건에서 후욱 할머니의눈물 냄새가 끼쳐 왔다. 그는 허리를 꺾으며 엎드려 울었다.

 

letter_bullet_1.gif

사진 / 그림

   

800px-Nofretete_Neues_Museum.jpg

[네페르티티 흉상. 1912년 12월 6일 아마르나에서 발견, 현제 베를린 신박물관(Neues Museum)이 소장.]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0. 12.

banner2.gi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1065 【독서편지】 제1065호 2022.05.11
1064 【독서편지】 제1064호 2022.05.10
1063 【독서편지】 제1063호 2022.05.09
» 【독서편지】 제1062호 2022.05.09
1061 【독서편지】 제1061호 2022.04.28
1060 【독서편지】 제1060호 2022.02.24
1059 【독서편지】 제1059호 2022.02.13
1058 【독서편지】 제1058호 2022.02.10
1057 【독서편지】 제1057호 2022.02.08
1056 【독서편지】 제1056호 2022.02.06
1055 【독서편지】 제1055호 2022.02.01
1054 【독서편지】 제1054호 2022.01.31
1053 【독서편지】 제1053호 2022.01.30
1052 【독서편지】 제1052호 2022.01.29
1051 【독서편지】 제1051호 2022.01.2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73 Next
/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