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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217190639&Section=01

돈만 쥐어주면 히틀러도 좋아? 난 자유롭게 죽는다!


[철학자의 서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대학 시절 소위 '의식화 교육'의 일환으로 읽었던 잉에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유미영 옮김, 푸른나무 펴냄)을 다시 펼쳤다. 존경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던 질문, '나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 있을까.'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히틀러는 전두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고 목숨을 걸고라도 투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잉에 숄은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1943년 2월 22일 처형당한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의 누나이자 언니이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남아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한스와 조피의 일생을 기록했다. 책의 원래 제목은 '백장미(Die Weiße Rose)'로서 뮌헨 학생의 저항 조직 이름이다.

독일에 대한 좋은 인상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잉에 숄 지음, 유미영 옮김, 푸른나무 펴냄). ⓒ푸른나무
어렸을 때 나는 독일(서독) 사람을 부지런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수년 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독일도 그러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부당하게 대우받는 이주 노동자와 1960~70년대에 간호사, 광부로 독일에 갔던 우리나라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독일은 자신들이 필요해서 부른 간호사와 광부들을 독일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맞다, 독일에 간호사로 갔던 친척 한 분도 당시에 '상당한' 월급을 받았고 송금해온 돈은 가정 경제 전체를 책임지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말했던 남자 아이들이 있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그리고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그리고 이에 더하여 새 시대를 창조하자고 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이리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 사람들은 한국의 독재 정권이 요구했던 국민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은가. 어쨌든 히틀러를 존경한다는 아이를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식의 놀란 눈으로 보지는 않았을 정도로 독일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감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었다.

히틀러와 독일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으면서 독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 데에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용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라인 강의 기적의 재현이라는 것. 초등학교 시절에는 독일 사람들이 전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전해주는 일화도 있었다. 세 명이 모여야 성냥 하나를 켰을 정도로 근검절약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국 근대화, 한강의 기적을 위해 독일 사람들을 닮아야 했다.

독일의 경제적 회생 뒤에는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한-미국을 비롯한-서방 세계지원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적 회생 뒤에는 한국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가끔씩 알려주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강력한 지원에 관해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경제 성장 뒤에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전쟁 특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더욱이 그 전쟁을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한 사람은 없었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 잘 먹고 잘살려면 우리도 독일 사람처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만 강조했지 독일이 나치 세력을 청산했다는 것을 강조한 선생님이나 어른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강조하면 친일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득권층의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과거 청산보다는 북한, 중국,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권과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우리 역사에서 친일 세력 청산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국민대단결'은 민족성이니 국민성이니 하는 용어를 유행시키면서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서는 외적 요인에 관해서는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개인은 국민 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다 보니 독일과 우리 간의 너무나 다른 역사, 즉 과거를 청산한 역사와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그 바람에 히틀러도 부지런한 독일 사람 중 하나가 돼버렸다. 독일 사람들은 대동단결하여 '한다 하면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것만 부각되었다.

깨어있는 자는 늘 있다

여느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한스와 조피 역시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였고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고 "히틀러를 믿지 마라!"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을 속이고 있어"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훗날 나치에 대항하는 투사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들 스스로의 자각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쟁 물자를 만들고 군대를 늘리는 것으로 경제를 회복시켰던 나치의 실체에 관해 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곧고 바르게 살 것, 평생 자유롭고 정직하게 살 것을 강조했다. 그들에게는 직장에서 히틀러를 '신이 내린 재앙'이라 욕하는 바람에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고 나중에는 감옥까지 가야 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또 그들은 1942년 봄, 뮌스터 주교들과 갈렌 주교가 설교문을 통해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낸 사람을 쓰지 않은 편지 형식의 설교문은 우편함에서 발견되었다.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후버 교수도 훌륭한 스승이었다. 한스 일행은 후버 교수에게 '백장미단'의 활동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후버 교수는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캄캄한 암흑 속에 놓여있는 독일을 향해 진실을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외치는 것!"을 가르쳤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정말로 저항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우리는 행동해야만 해!"라고 대답했다. 후버 교수는 한스와 조피가 처형된 지 약 5개월 후에 처형되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세계관은 어른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어른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부모든, 선생님이든, 기성세대든, 정치인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른답게 행동하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정보화 시대다. 젊은 세대는 어른들의 실수, 잘못, 무능, 부도덕함을 거의 모두 알고 있다.

농경 시대에는 어른들이 정보의 보고였다. 문자 기록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기 어려운 때에는 더더욱 어른들이 존경받는다. 언제 어떻게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야 하는지를 매년 얘기해 주어야 한다. 한 번 얘기해준다고 해서 그걸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 할머니보다 낮은 적중률을 보이는 일기예보 때문에 라디오를 고치러 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어른은 정보의 보고요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농경 시대를 넘어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 어른들은 존경받기가 어려워졌다.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이미 산업사회에서 소외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빼앗기는 것이다. 보부아르(1908~1986년)는 "늙는다는 것은 '문명의 좌절'"이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절규했다.

돈, 재산, 물질을 통해 존경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복종을 낳을 수는 있지만 존경을 낳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존경을 받으려면 현자, 지혜로운 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한스와 조피의 아버지처럼, 후버 교수처럼, 정의 편에 선 성직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확실히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며 어쩌면 기득권까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경제 살리기 신화

어른들은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것과 그 시대에는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빵과 직업을 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면서도 독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이렇듯 먹고사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측면이 있다. 케인스 경제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뉴딜 정책이나 루스벨트만을 떠올리는데, 히틀러는 케인스 경제학을 몰랐지만 사실상 케인스 정책의 효과를 본 셈이다.

히틀러를 독일 국민들이 영웅시한 이유는 역시 경제 회생 때문이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논리가 먹혀들어갔다. 그는 집권 후에는 폭력을 휘둘렀지만 폭력을 통해 집권하지는 않았다. 아감벤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고 나아가 다른 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게 만든다.

'히틀러 유겐트' 활동은 전체 속에 포함된 개인을 만족시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활동이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외침은 단원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전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안락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마구 잡아간다는 소문을 슬쩍 외면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어떠한 파렴치한 전과라도 무마되는 시대, 거짓말이 나중에 가서야 탄로 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지혜로운 자가 많이 필요했다. 깨어있었던 자들이 한스와 조피 같은 '백장미단'을 만들지 않는가. 사형을 앞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들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거란다. 거기에는 분명 정의가 살아있을 거야."

뮌헨 대학에 뿌려진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면 그들의 만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노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모든 게 지나가리. 모든 게 지나가리. 아돌프 히틀러도. 그리고 나치스도.

사형장으로 가기 전 조피는 감옥 벽에 "자유"를 새겨 넣었고, 한스는 "모든 폭력을 이겨내고 살아남아라!"라고 썼다.




/윤지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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