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글나눔

방문자수 (2014.04~)

전체 : 889,705
오늘 : 297
어제 : 444

페이지뷰

전체 : 37,718,404
오늘 : 11,872
어제 : 15,376
조회 수 12576 추천 수 3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공룡과 별의 대화 - 윤후명 연작'협궤열차'

  소설가 윤후명 씨가 보여주고 있는 협궤열차 이야기들은 인간의 삶 사랑 꿈, 그런 것들이 우주공간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하는 광범위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황량하고 쓸쓸한 이야기들, 한번 탐닉하면 적막감 때문에 오랫동안 가슴을 매캐하게 했던 그의 세계는 이제 협궤열차에 이르러 쓸쓸한 것들의 근원까지를 보여주고 있어 변화의 한 모습을 읽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방황의 늪을 헤매던 작가가 '찾아가야 할'풍경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케 하고 있다.  90년 문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단편 '협궤열차에 관한 보고서'는 버려진 서해안 백여 리를 달리는 수인선 협궤열차와 자멸하는 작가의 세계를 느슨하게 대비시킨 자전적 사소설이다.  트럭과 부딪쳐도 쓰러지고 마는 전세계 유일의 2량짜리 협궤열차. 겨울방학이 되면 헤어진 아내와 사는 국민학생 딸아이가 라면 끓이는 법을 익혀 눈보라 속의 협궤열차를 타고 아빠에게로 온다. 황량한 풍경을 찾아 경기도 안산땅에 내린 그는 뱃사람들의 주막집과 노동자들의 함바집을 헤매며 뿌리없는 땅에 홀로 남았다. 시와 소설이 인간을 구제할 수 있을까 하는 외로운 싸움에 자멸하면서 기억에 솟아오르는 옛 소녀들을 가슴 속에 묻었고 어느 날 새벽에는 정신분열증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났다.  넌더리나게 외롭고 찌든 삶에서 그는 '다시금 협궤열차에게 묻는다. 내 삶이여, 질풍노도와 자멸의 시절은 지났는가'하며 소설을 끝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자멸의 세계는 그러나 최근 '사랑의 먼 빛'('현대문학' 97년 9월호)에서 구원의 불빛을 찾아낸다.  정신분열증 여자, 개승냥이, 정육점, 공룡, 승냥이똥, 협궤열차, 역장의 죽음, 별 등의 오브제를 등장시키며 해체된 플롯 뒤에서 의식을 복원시키는 구성을 가진 이 소설은 인간의 삶과 꿈이 아득한 몇천만 년 전의 우주 속에 연결돼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을 보여준다.
  '협궤열차에 관한'과 같은 황량한 내면의 주인공 '나'는 어느 날 삼천포여행에서 8천만 년 전의 공룡발자국을 목도하고 화약이나 장작보다는 인이 섞여 불빛이 푸르고 멀리까지 보이는 승냥이의 똥이 봉황대의 횃불로 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나는 이웃집 정신분열증 여자와 협궤열차역에 나갔다가 사라져야 할 협궤열차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나무등걸같이 쓸쓸한 역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색소폰 소리보다 좀더 깊은 폐부에서 울려나오는 열차의 경적소리는 사라져가고 나는 어두워져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중년 나이가 되도록 뭐하나 신통하게 이루지 못하고 떠밀려온 삶. 만났다가 헤어진 여러 사람들 속에 사랑이라고 속삭이며 왔다간 여자들의 얼굴도 먼 빛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그녀들의 이름을 백지 위에 적어보리라. 패, 경, 옥, (주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름들), 그리고 아득한 별 같은 그 이름들.

  나는 철로의 침목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서해안 들판을 달려가는 열차의 불빛을 본다. 시간의 단위로는 존재를 헤아릴 수 없는 별빛은 승냥이똥의 빛처럼 밤하늘 멀리서 내게로 온다. 뒤뚱뒤뚱 달려가는 협궤열차의 공룡 발자국소리, 어두운 땅의 외로운 존재, 멀리서 오는 별빛.  그렇다, 아득한 몇천만 년 전부터 내가 꿈꿔온 하나의 사랑이 별빛으로 내게로 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밤은 정신분열증의 그녀도 나도 모두 잘 잠잘 수 있음을 느꼈다.  시공간이 해체된 순수의식의 세계에서 그가 찾아낸 하나의 사랑, 그것이 우주와 인류역사의 근원에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공룡의 발자국, 승냥이의 똥, 협궤열차, 별빛, 그런 것은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랑의 '어떤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등장하는 정신분열증의 여인들, 그것은 이야기를 더욱 편안케 하려는 의도이며 사회구조의 울타리를 벗어나 유목민처럼 자유롭고 싶은 존재들 욕망의 들춰냄일 것이다.

  작품에서 보여준 따스한 사랑에의 귀의, 이번 여름 들꽃묶음 하나로 올린 그의 결혼. 그는 이제 이땅에 뿌리내림을 보여주는 것일까.



  1. 이상, 저주받은 내면 - 표성흠 소설 '친구의 초상'

    Date2006.12.26 By風磬
    Read More
  2. 패배와 절망의 끝에서 본 아름다움 - 송기원 소설 '아름다운 얼굴'

    Date2006.12.26 By風磬
    Read More
  3. 찹쌀떡의 맛 - 김원우 장편'우국의 바다'

    Date2006.12.26 By風磬
    Read More
  4. 희뿌연 영상, 삶의 에너지 - 김채원 소설'겨울의 환'에서 '여름의 환'까지

    Date2006.12.26 By風磬
    Read More
  5. 9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 총평 : 하응백

    Date2006.12.26 By風磬
    Read More
  6. 공룡과 별의 대화 - 윤후명 연작'협궤열차'

    Date2006.12.22 By風磬
    Read More
  7. 은어는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 안정효 소설 '미늘'

    Date2006.12.22 By風磬
    Read More
  8. 젊은 날의 축복, 허무 - 한수산 장편'그리고, 봄날의 언덕은 푸르렀다'

    Date2006.12.22 By風磬
    Read More
  9. 화해의 복원 - 윤흥길 장편'산에는 눈 들에는 비'

    Date2006.12.22 By風磬
    Read More
  10. 어머니, 어디 계셔요 - 송하춘 소설'청량리역'

    Date2006.12.22 By風磬
    Read More
  11. 세계관의 저수지 - 김원일 장편 '늘푸른 소나무'

    Date2006.12.20 By風磬
    Read More
  12. 통념에 대한 반문 - 김주영 소설 '십오일의 타살'

    Date2006.12.20 By風磬
    Read More
  13. 첫 저항시인의 정신사 - 이문구 장편 '매월당 김시습'

    Date2006.12.20 By風磬
    Read More
  14. 요설의 마력 - 이문구의 문장

    Date2006.12.20 By風磬
    Read More
  15. 정결한 앨범 - 김용성 장편 '도둑일기'

    Date2006.11.29 By風磬
    Read More
  16. 리얼리즘의 유연함 - 신상웅 장편 '일어서는 빛'

    Date2006.11.29 By風磬
    Read More
  17. 한 껴안기, 넘어서기 - 이청준 연작 '서편제'

    Date2006.11.29 By風磬
    Read More
  18. 말과 시대의 스펙트럼 - 최일남 작품집 '히틀러나 진달래'

    Date2006.11.29 By風磬
    Read More
  19. 천진난만한 진리의 모습 - 고은 장편 '화엄경'

    Date2006.11.26 By風磬
    Read More
  20. 용수산 자부심 - 박완서 장편 '미망'

    Date2006.11.26 By風磬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