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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말과 시대의 스펙트럼 - 최일남 작품집 '히틀러나 진달래'

  한 땀 한 땀 아우러지며 굽이돌며 푹 찌르며... 시대, 민족의 간난을 옹골찬 칡뿌리 같은 언어로 적어내던 논객 최일남 씨가 이제 소설 쓰기로만 돌아와 보여주는 작품들에서는 세태를 요량하는 고수의 눈길이 감지된다.  평생을 역전에 앉아 구두를 꿰맨 신기료장수의, 얼핏 대수롭지 않을 듯하면서도 절묘한 솜씨를 보듯 그의 소설은 거대한 이야기 체계를 갖지 않으면서도  말의 짭짤한 쓰임이 장관을 이루며 이 시대의 문체들을 사통팔달로 전개한다.  작품집 '히틀러나 진달래'(한길사)에는 네 편의 중편과 두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처음에 실린 '따따로의 혀'는 제목이 말해주듯 저마다 따로따로 말(생각)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분열, 대립시키고 있는지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첫 장 '배운 혀'는 배운 계층과 배우지 못한 계층간의, 그리고 배운 사람들은 또 다시 학연으로 편을 갈라서는 세태를 꼬집는다.  평소에는 학연으로 담을 치다가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관리직과 생산직으로 대립되는 사회. 그 중간에 선 사람은 갈 곳이 없다.  두 번째 장 '생각의 혀'는 이데올록, 즉 '상대방은 어떤 경향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울타리를 두르는 우리 사회구조를 얘기한다.  세 번째 장 '감정의 혀'는 지역감정의 문제를 다룬다.  이 세 개의 장이 합쳐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면서 '따따로의 혀'는 보다 전체적인 형태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짚어낸다.  이 같은 집단 편가르기의 이면에는 서로를 갈라세움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잘못 인식된 누더기 자본주의의 형태가 도사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붙었다 저기로 붙어가는 염량세태의 대립을 언론일선에서 평생 고발해온 작가는 이같은 현실비판에서 나아가 따로따로의 독립정신이 균형발전의 힘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동선을 슬쩍 퉁겨준다.

  " 따따로의 상황이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상황이거니와 정작 따따로의 독립정신은 굳이 나무랄 것이 못됩니다. 청소년이나 아이들은 벌써 지구촌 주민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사는 세상에는 갖가지 갈등이 필요불가결의 현실이라면, 가능치도 않은 근절 어쩌고 하느니보다 합리적으로 도전하고 대처하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쌓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흐름에서 지역감정 해소의 가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쩨쩨합니까. "

  작품집의 표제가 된 '히틀러 진달래'는 우리시대 말의 쓰임과 그 합의를 살펴봄으로써 민족적 스펙트럼을 드러낸 문제적인 중편이다.  말의 채집사인 대기업 광고문안작성자 김근화가 관찰하는 이 시대의 말은 명령(사역)형 단계에서 짧아지는 단계를 거쳐 상징어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라'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한 자는 엄중 처벌한다' 권세가들의 명령형 말은 '한국적 민족주의'와 같이 짧아지고 이제 '보통사람들의 시대'처럼 상징화된다. '공권력'은 '원천봉쇄'를 의미하는 것이고 '걸레그림'은 '평축(평양축전)'이며 '믿어주세요'는 '노태우대통령'이 된다.  히틀러는 말의 들림에 취해 광신적인 언사로 '독일인이 만드는 독일'이라는 술사를 만들어냈고 이 강산에 가득히 피는 진달래는 남녘 학생들이 그 아름다움을 찬탄할 수 없는 꽃이다.  이 작품은 말의 순기능 역기능뿐 아니라 말이 거래되는 사회학, 말을 구사하는 심리학, 말의 선제공격의 유리함, 상징어를 요구하는 사회구조 등 말에 관한 치밀한 탐구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 평생 말의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말의 쓰임새와 사회구조 등 원천적으로 말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뭐가뭔지 모르는 미궁 속을 더듬는 기분이다. "

  이 작품은 끝부분에서 살아있는 말은 가슴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할머니와 손녀의 행복한 의사소통, '갓난애들'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파격적인 연설, 역사의 새빨간 거짓말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숱한 희생과 세월이 필요하지만 끝내 때묻지 않은 말의 진가를 확신하는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지.
  작가는 말한다.
  " 어려운 것을 쉽게 쓰면서도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슬쩍 던지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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