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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찹쌀떡의 맛 - 김원우 장편'우국의 바다'

  내력있는 권문세도가의 내밀한 집안사정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암투와 야망이며, 규방과 가풍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인간성정의 속속들이를 엿보는 것만큼 속되게 재미있는 일은 달리 없을 것이다. 그것이 더구나 우리 근세사 최고의 파란을 기록했던 왕실의 속사정과 함께 무수한 재사들의 면면이 어우러지며 역사의 신비로운 흘러내림을 보여주고 역사해석력까지를 담아낸다면 속됨을 넘어서 의연한 재미까지도 안겨줄 것이다.  작가 김원우 씨가 낸 장편역사소설'우국의 바다'(세계사, 전 6권)가 바로 그런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건성건성 짚어가며 화끈한 읽을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꼼꼼하게 따지며 쫀독쫀독한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두루 따라와 줄 것을 유혹하며 긴 흐름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가 수필로 한땀한땀 퇴고와 퇴고를 거듭해 6년간에 걸쳐 탈고해 낸 원고지 1만 장 분량의 역작이다.  큰 줄거리는 조선왕조사상 최초의 친위정변이자 개혁운동이었던 갑신정변과 외세의 내정개입으로 최대의 치욕을 기록했던 을미사변을 두 축으로 조선왕조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망국사 이래 무수히 되풀이돼 온 화석화된 내용의 망국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보완해내고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생애를 예각적으로 형상화해 냄으로써 상이 뚜렷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작품에 생기를 부여하는 특징적인 인물은 중전 민비의 친정인 민문의 가신 고영근이다. 서출로 태어나 민씨가의 세간청지기가 된 고영근은 남다른 눈썰미로 민영익과 고종의 눈에 들어 무관 최고의 벼슬까지 나아가다 을미사변 이후 자객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중전민비시해의 하수인 우범선을 척살하고 돌아온다. 끝내 고종의 능참봉이기를 고집하며 70평생을 파란만장하게 마친 고영근의 일대기가 영웅적인 역사인물소설과는 달리 성격을 풍부하게 조감하는 리얼리티로 생생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야비하고 기회주의적이면서도 끝내 줄기를 잃지 않는 그의 근왕사상에서는 자체 내의 숱한 모순과 들끓는 외세의 발호 속에서 정보 부재로 폭삭 주저앉아가는 5백년 조선왕조에 대한 작가의 보수적이고 자주적인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문서와 정보가 날림으로 취급되는 조선왕조와 그것을 장악함으로써 국제전에서 승기를 잡는 열강들의 대비는 주목되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대원군을 위시한 남인들과 민시일족의 대결, 지모있는 유생들의 활약상, 고종 민영익 우범선의 성격, 도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자료들의 발굴과 재구성 등이 소설을 한결 볼륨있게 이끌어 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실팍하게 감싸주는 것은 무엇보다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김원우의 문체라고 해야겠다. 허술하게 슬쩍 지나침을 못 배기는 그의 문체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박종화 이후 보기 어렵던 궁중법도와 풍속에 대한 요량이 가미돼 있고 요것조것 따져나가는 세부에 대한 강점, 입심을 한껏 자랑하는 요설문체 등이 얽혀 그의 문장이 바야흐로 완숙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설 최고의 요체는 아무래도 작가의 총체적 역량을 저울질되는 문장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 한달음으로는 성취해낼 수 없는 것들을 흠씬 보여주는 이 작품은 가히 소설은 세월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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