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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희뿌연 영상, 삶의 에너지 - 김채원 소설'겨울의 환'에서 '여름의 환'까지

  그녀가 서 있던 방안의 한 정경이 떠오른다. 문은 앞뒤로 열려 있어 맞바람이 세게 쳤다. 집안은 바람의 통로 같았다. 그러나 창문과 현관문을 닫으면 바람은 갑자기 길을 잃고 망설이다가 다시 바람의 방향대로 집벽을 부딪치며 불어갔다. 그 소리는 공중에 수천수백 필의 광목을 펼치는 소리 같았다.(중략)바람은 시간을 초월하여 옛날에서 지금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디론가 불어가던 바람, 그 바람이 이제 예까지 온 것이었다.

  소설가 김채원 씨의 '미친 사랑의 노래 - 여름의 환'('세계의 문학'91년 가을호)첫부분이다.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환상으로 보여주는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소설의 주요 매개가 대부분 영상으로 잡혀 있듯 이 작품을 관통하는 바람은 공중에 펄럭이는 수천수백 필의 광목과 같은 아득한 영상으로 제시돼 있다. 그 아득한 영상은 어린 시절 어디로 불어가던 것, 무어라 객관화시키거나 측정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인간의 삶 또는 삶의 꿈과 연결돼 있다.  그의 소설은 필연적인 이야기들로 전개되는 공간이 아니라 문득문득 잡아내는 희부윰한 영상과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 교직되는 이야기 구조를 이룬다. 그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일상은 찬밥을 먹거나 시장을 보거나 머리를 감는 따위의 작은 것들이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영상들과 함께 자리잡혀 사소한 것들의 원형질을 구성하는 삶은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를 얘기한다.  그의 서사구조는 작은 행위들의 이면에 있는, 객관화시킬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서 강하게 남는 삶의 진정성을 탐구하는 공간으로 열려 있다.  8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된 '겨울의 환'에 이은 '봄의 환'(90), 그리고 최근 '여름의 환'등 '환'시리즈는 혼미한 세상에서의 투명한 삶의 의미 찾기로 읽혀진다.  '겨울의 환'은 이혼한 40대의 여자가 풀어놓는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 등 여인 3대의 고즈넉한 이야기이다.
  고향의 상실, 남성의 부재, 전쟁의 고통, 그런 작은 기억들을 빛바랜 활동사진처럼 보여주면서 누군가 내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삶이 얼마나 순수한 떨림인지를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막막하기만 하게 전개되는 삶은 그러나 긴 봄날 한족 무릎을 세우고 마루에 앉아 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 피난가던 때 본 눈속에 서 있는 나무와 같이 순간이 영원으로 변하는 가능성, 아침의 들창을 열고 바라보는 눈이 온 세계, 그같은 영상들과 환치되면서 명료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봄의 환'에서 보여주는 챌린저호 추락사건이나 차를 호수에 빠뜨리는 아이의 호기심 역시 삶의 의미망을 포착하는 매개물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챌린저호 폭발장면이 아니라 발사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던 한 아이의 웃던 얼굴을 어른이 가슴에 묻어버리는 그 장면이다. 주차해 있는 차의 시동을 걸어 호수에 빠뜨리는 아이의 우매한 호기심. 삶을 이끌어가는 힘은 그런 데서 감지된다.  '여름의 환'에 묻혀 있는 인생의 비밀, 일생에 걸려 금괴를 찾으나 그 순간 결투로 죽든가 금괴가 해변 골짜기로 떨어져내려 물거품이 돼버리고 마는 불가해한 인생의 수수께끼는 삶을 간절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신비한 요소이다.  이혼한 친구가 쓰고 있던 가발을 낚아채자 드러나는 터진 럭비공을 꿰맨 것 같은 머리, 미국의 입국절차가 두려워 친구가 가발을 벗으려 화장실에 간 사이 우연히 보게 된 여권의 '50세, 여, 신장 1백60센티미터, 국적 미국'이란 기록. 삶의 모습은 그렇게 뚜렷하게 거기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삶은 홀로 공항을 나오며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어디로 데려다 다오'하고 스스로를 향해 부탁해보는 간절한 것이 아닐까.

  그 같은 글쓰기는 작가에게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나의 글쓰기는 세상의 혼미한 것에 대해 풀어보고 싶은 의욕의 나타냄이다. 소설쓰기는 혼미한 것들이 얼마나 명료해지는가, 얼마나 후련해지는가 하는 것들의 찾기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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