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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은어는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 안정효 소설 '미늘'

  안정효 씨의 '미늘'은 87년 끝낸 '갈쌈'(미국에서 '은마'로 출판됐으며 한국에서는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다시 펴냄)이후 한국어로 쓴 첫 소설이다.   그의 영어판 소설 '하얀 전쟁'과 '은마'가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선풍을 일으킨 데 비해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한국시장에서 냉대를 받는 것을 보고 그는 '팔리지 않는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결심, 한동안 한국어 소설을 쓰지 않았었다.  그 자신이 '내 작품은 거의 평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듯 퍽이나 특이한 한국문단에서의 그의 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갭일까, 아니면 그의 한국적 체험이 서구적 관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한 낯섦 때문일까.  '미늘'과 자전적 사소설 '도로의 끝'은 이런 의문을 다소간 풀어줄 수 있는 작품들로 보여진다.

  '미늘'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서구찬과 현실을 단순화시켜 행동하는 한전무라는 두 중년을 대비시켜 삶과 존재의 방식을 질문하고 있는 작품이다. 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작은 갈고리 미늘은 이 작품에서 삶을 옥죄는 풀기 어려운 내면갈등의 상징이다.  큰 물고기 한 마리 잡기 위해 목숨을 거는 한전무와 두 여자사이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서구찬을 통해 나타나는 수직적 행동과 수평적 갈등의 대비구조는 실존을 질문하는 훌륭한 소설장치로 보인다.안정감 있는 문체, 선명한 줄거리, 섬에서 벌어지는 낚시꾼들의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은 소설을 흥미롭게 이끈다.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이 91년도 각종 문학상 후보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그의 소설적 성취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작가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모든 작품은 독자가 읽어서 완전한 실화와 같은 느낌을 받도록 쓴다'고 밝히는 그의 소설의 관점은 다소 독자들을 이물스럽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내면의 표출에 있어 묘사보다는 설명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주인공 서구찬의 내면은 복선과 기법 속에서 나타나기보다는 서술에 의해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완벽한 논리체계를 중시하는 서구식 사고와 허구성의 진실을 추구하는 '이야기'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느낌에서 보다 자유롭게 읽혀지는 작품이 '도로의 끝'이다. 자전적 사소설임을 밝히고 있는 '도로의 끝'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소설에 바쳐온, 도로(헛수고)라고 할 수 없는 긴 역정을 담고 있다.  20년을 넘게 다듬어온 '은마는 오지 않는다' 탄생 뒤에 얽혀 있는 이야기 - 그의 서강대학 시절 소설이 무엇인지를 눈뜨게 했고 원고지 살 돈이 없는 그를 격려하며 세계진출의 꿈을 위해 타자기를 사줬던 외국인 교수 조지 시드니, 끝내 이 작품이 미국에 나가 성공하고 조지 교수를 22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는 비록 자전일지라도 소설적 진실의 힘이 느껴진다.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바쳐야 했던 20여 년의 노고, 작가의 정신적 고통을 함께했던 외국인 교수의 우애, 그런 것들은 설명의 세계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공명의 세계로 전달된다. 작가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왜 이 작품이 고향에서는 냉대를 받는가 하는 항의까지도 느껴지게 한다.  작가가 중시하는 실화성이 무엇인지에 앞서, 소설의 장치와 구성이 무엇인지에 앞서, 이 작품이 이물스럽지 않고 곧바로 감흥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야기의 방식이 논리의 부담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가 세계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음에도 국내문단에서 소홀히 취급됐던 그 어떤 요소를 극복한 신호로도 보여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최근 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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