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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젊은 날의 축복, 허무 - 한수산 장편'그리고, 봄날의 언덕은 푸르렀다'

  아직 얼지 않은 강물 위로 바람을 타고 눈이 내렸다. 어머니와 나는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멀리 여울을 흘러내리는 강물소리.
  '서울로 간다는 건 무슨 얘기니?'
  '그냥 서울로 간다는 뜻이지요, 뭐.'
  '너도 알지 않니, 아무것도 없어, 우린.'
  '그래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까 서울로 가는 거예요. 가진 게 없으니까 살 수 있어요.'

  작가 한수산 씨가 낸 장편 '그리고, 봄날의 언덕은 푸르렀다'(중앙일보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작품은 스물 살의 주인공이 소도시의 사범대학을 휴학하고 서울로 가는 것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여로형의 성장소설이다. 60년대 대학을 다닌 젊은이들의 자학과 방황의 이야기가 소주 석 잔을 마신 듯 싸한 그의 독특한 문장에 실려 낭만적 그리움을 전해주고 있다. 노인들은 하나씩 죽어갔고 아버지들이 늙어가는 사이 아들들은 마을을 떠났으나, 의식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분해되지 않는 곳 고향을 얘기함으로써 오랜 일본생활을 마치고 온 작가의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듯한 소설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을 쉽게 이끄는 것은 요즘의 소설과는 달리 고전적인 그리움과 열정을 복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강과 산과 지붕이 전부인 소도시의 풍경, 교육대학의 은백양나무 숲, 석사동으로 오르는 길의 황량함, 영혼과 육신이 다 가난했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젊음들. 그 허기진 젊음들은 교정의 풀밭에서 소주를 마셨고 시를 읽었다.  견디지 못하는 열정으로 등사판 시집을 내면서 절망했고 가끔씩은 자살을 생각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아무 일이나 했던 아버지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처럼 그곳을 떠났다. 거기까지다. 소품처럼 보이지만 시대에 대한 아픔 대신에 존재들의 순수한 아픔을 담아낸 절제된 투명함이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삶의 순금부분이었던 시절을 통해 묻는다. 아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오늘의 영악한 삶에서 길섶 이슬을 맞으며 뼈아파했던 날들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작가는 말했다.

  '이 소설을 쓰는 도중에 아프리카를 다녀올 수 있었다. 사막의 저녁, 잠이 들 때 바라보았던 별은 새벽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와 보면 저만큼 자리를 옮겨 있었다. 별이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그렇게 선명할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이 소설을 생각했다. 내 젊은 날을 관류할 수 있는 단어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궁핍'과 '허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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