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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화해의 복원 - 윤흥길 장편'산에는 눈 들에는 비'

  두 노인은 이윽고 황혼이 배경으로 깔린 저수지에서 마주친다. 한 사람은 세상을 함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돈을 번 대재벌 회장이고 또 한 사람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국민학교 교장선생이다. 역사의 척박한 진행 속에서 원수가 됐던 두 노인은 양가의 화해를 위해 미친 짓거리를 자초하다 마침내 저수지에서 목숨을 버렸을 우회장의 젊은 아들의 시신을 건지는 자리에서 조우한다. 
  '여보게, 우회장,'
  흥분이 지나친 회장은 저수지로 달려나온 교장선생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또냄아!'
  비로소 우회장은 교장선생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소리나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자네, 내 어렸을 적 아명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구먼.'
  '또냄이 그 이름을 내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나 역시 자네 별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 자네를 여치라고 불렀었지.'
  두 노인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서로를 먼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쉽게는 타넘을 수 없는 세월의 벽이 중간에 가로놓여 있었다.  교장선생은 마을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험한 결심을 내린다.
  '물문은 나혼자서 열겄소. 차후에 벌어질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나혼자 책임지겄소.'

  진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우리의 고전소설들이 전하던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평이함을 장중하게 넘어서 간다.  작가 윤흥길 씨의 장편 '산에는 눈 들에는 비'(세계사)는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완장' '에미' 등의 작품으로 빛나는 윤흥길의 이름을 더욱 찬연하게 하는 작품이다. 앞부분 몇장을 읽어서는 전편에 흐르고 있는 강렬한 전류를 느낄 수 없도록 돼 있는 이소설은 경박한 글에 길들어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반성과 위안을 준다. 소설은 끝내 감동과 휴머니즘의 장르일 수 있다고.  피맺힌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졌던 소년은 오랜 세월이 흘러 일본인을 앞세우고 돌아와 무서운 복수를 시작한다. 대지주의 아들은 그 보복을 고스란히 견디며 한시절을 보낸다.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은 악덕 재벌이 됐고, 한 사람은 시골학교의 대쪽같은 선생이 된다. 그 마을에 재벌의 별장이 들어서면서 오래된 먹구름이 다시 감돈다. 별장은 정신병자가 된 재벌 아들의 요양을 위해 지어졌던 것. 고향에 다시 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원한과 회개를 위해 아들은 미친짓을 했고, 자기를 기꺼이 버림으로써 역사의 소용돌이를 위대한 화해로 이끌어낸다.  이 소설은 우리 전통정서를 통해 이념의 화해를 이끌어냈던 '장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대간의 통찰에 의해 역사적 상처를 화해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웃음과 울음을 함께 싸안는 해학으로, 든든하고 순한 문장으로, 나눔의 어우러짐이 있던 삶의 정서를 복원시키고 우리의 정체성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이 소설의 머리말에서 '권선징악의 풍조에 대한 미련을 담은 구태의연한 소설'이라고 딴전을 부리고 있다. 이같은 딴전부리기는 작품에서도 끝까지 유지되고 있거니와, 아무나 할 수 있는 테크닉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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