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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3. 고전적 글쓰기와 그 지평

     천진난만한 진리의 모습 - 고은 장편 '화엄경'

  고은 씨를 만나러 경기도 안성땅으로 가는 빗길에 이광수가 떠올랐다. 현대문학의 새벽밭을 일군 찬란한 문인인 동시에 친일의 '슬픈' 별절자로 남아 있는 춘원 이광수가 전하고자 했던 문학적 진리의 한 모습.  춘원의 그 꿈은 42년 전 그의 재종 이학수에 의해 '귀때기 새파랗고 방자했던' 일초(당시 승려였던 고은의 법명)에게 전해졌고 일초 고은은 그 이후 환속해 무수한 편력 뒤에 소설 '화엄경'을 매듭지었다.  '화석화돼가는 경전을 문학적 언어로 남겼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고은의 최근 장편소설 '화엄경'의 내용이 어린 소년 선재가 진리를 찾아 다니는 고행의 편력을 담은 것이라면 그 문학언어의 탄생 역시 그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 후에 이루어졌다는 것, 그 원환 구조를 생각케 한다.  그러나 경기도 안성, 비내리는 벌판이 바라보이는 그의 집에서 사각팬티 하나만을 걸친 고은 씨는 동자 선재의 천진난만한 편력일 수도 또는 자신의 편력세계일 수도 있는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내쳤다.  "선에서는 모든 경전을 '개소리'라고 한마디로 내치는 경우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나의 '화엄경'은 개가 한번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퍼런 부정의 세계. 경전으로서의 화엄경은 중앙아시아에서 4세기경 집대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화엄의 세계는 전우주를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통일적 입장에서 진리의 세계를 온갖 꽃으로 장식하는 화려한 상태이며 '전체와 개체' '주체와 객체' 같은 모든 나뉨의 세계가 하나로 상즉된다고 한다.  화엄경의 마지막 계품인 '입법계품'은 선재라는 어린 소년이 53명의 스승을 찾아 진리를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고은에 의하면 외경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소설 '화엄경'은 입법계품을 토대로 해 다른 품들을 작가의 의도대로 반영시켜 화엄경 전체를 문학적 서사구조로 형상화시킨 작품.  경전 속에서 화석화돼가는 이야기에 구체적 서사공간과 서정, 고행하는 인간의 땀방울과 눈물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미학세계를 선보인다.  새벽의 소나강에 버려진 소년 선재는 문수대사에 의해 구출됨으로써 진리를 찾는 먼 고행길에 나선다. 그가 만나는 스승은 보살, 선인뿐 아니라 뱃사공, 바라문, 창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소년은 이들에게서 거듭 어린아이로 깨어난다.  소설의 서사구조에서 획득되는 진리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에서 명료하게 발견된다. 가히 물리적 시간을 예측키 어려운 고행의 기나긴 세월 속에 선재는 여전히 소년으로 존재하며, 또한 진리는 그같은 천진난만한 경지가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는 상징으로 던져진다.  이 소설에서 진리는 어디에나 있다. 소년이 만난 스승은 다른 스승을 소개해주는 계속되는 원환구조를 통해 진리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속에 가득한 것임을 일깨우며 스승이 차별적인 계급으로만 설정되지 아니함으로써 진리는 인간 모두에게 있다는 보편타당성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천진난만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펼쳐지는 새롭고도 엄연한 삶의 과정으로서의 세계관이다.  소설 '화엄경'이 이 진리의 세계를 전하는 데는 하나의 화두로 세상의 모습을 바꿔보이는 듯한 놀라운 문체들이 사용된다. '젊은 나신의 악사가 낮은 소리로 저문땅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피리를 불면서' '지평선까지 끝없이 이어진 들판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노인은 끝없는 들판에 가득찬 자연의 허무를 무효화하고 있었다` '침묵과 어린이는 가장 먼 것으로부터 가까워지는 사이의 어느 저문 날의 사랑과 같다' ...  그러나 작가는 '화엄경'의 세계를 긍정과 통합의 상태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어버이도 아들도 벗도 베허라 만나는 것들 어둠 속의 칼날도 베허 버려라 - '살생' 중에서

  이처럼 모든 일체를 때려부수는 반야사상과 동양적 허무주의, 그런 것들이 흘러들어온 큰 바다의 세계로 그려낸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무수한 이미지들이 전편 가득히 던져져 있는데 그것들은 다른 하나를 만나기 위해 지금 만난 이미지를 지워야 하는 특색을 가지며, 그런 후에 그것들은 하나의 전체로서 형성되는 이미지로 남는다.  그는 말한다. " 삶은, 또 문학은 이미지를 크게 버리는 작업 "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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