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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4 전통과 실험소설의 전망

     이쪽과 저쪽에 대한 섬세한 눈길 - 신경숙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

  92년 각종 문학상 수상자 소식이 전해진 뒷자리에 새로운 한 사람의 이름이 남는다. 신경숙. 전북 정읍이 고향이고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는 김유정문학상과 동인 문학상의 우수후보작으로 올랐고 '풍금이 있던 자리'는 이상문학상 최우수작이 됐다.  지난 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데뷔, 창작집 '겨울우화'를 내긴 했지만 그녀의 이름이 주요문학상 수상 대상으로 오른 것은 올해 들어서다. 그것도 거의 모든 문학상에 나란히. 아마도 그것은 문학의 열정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문학의 고통을 깊이 앓는 한 작가의 등장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지.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는 건조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의 입자들을 신선한 감각으로 표출시킨 작품이다. 그녀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 직접적인 메시지보다는 무늬와 울림의 말들로 중층화된 욕망의 매듭들을 풀어낸다. 꽃집에서 일하는 여자의 단조로운 일상, 사진기자와의 만남, 수영장에서의 데이트, 공터에서 배드민턴 치는 여자들, 그 남자와 어떤 여자의 스쳐감, 꽃집 남자의 겁탈.  지극히 담담한 시선으로 몇 개의 영상을 전개하는 이 작품은 팔뚝 밑에 돋아 있는 좁쌀만한 소름들같이 삶을 비집고 올라오는 그리움들을 내장하고 있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첩인 '그 여자'와 어머니. 이같은 내용의 소설은 어머니의 가슴앓이와 그 여자의 요염함을 대비시켜 흥미를 북돋우지만 결국은 남성들 세계관의 허구를 비판하고 그 속에서 희생된 여인의 가련함을 형상화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소설책으로 쓰면 몇권이 되고도 남는다'는, 흘러간 시절 부인네들의 넋두리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신경숙의 소설은 다르다. '그 여자' 아버지 어머니,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소리가 풍금의 음색처럼 정겹게 들린다. 정겹다는 것은 인간과 삶을 그만큼 잘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예닐곱 살이던 어느 봄날의 기억은 화사한 분냄새를 풍기는 '그 여자'가 대문을 들어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궁이의 불을 뒤적이던 부지깽이로 말 안 듣는 아들을 패는 여자 된장 속에 들끓는 장벌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내는 여자 계절 없이 살갗이 튼 여자 ... 이렇듯 일에 찌들어 강팍한 모습만 보여줬던 여자들에 비해 그 여자는 '텃밭이 어디니?', 노랑나비같이 고운 모습으로 말을 걸었고 배추를 뽑아다 김치를 담갔다. 무생채를 써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는 '깍둑깍둑깍둑`하고 경쾌한 것이었지만 그 여자의 도마질 소리는 `깍...뚝 ... 깍...뚝', 손이 베일까 안타까운 것이다. 그 여자가 들어온 대문을 통해 어머니는 그날 자취를 감췄는데, 그 여자는 백일이 갓지난 막내동생을 돌보며 저녁밥을 들 수가 없었지만 그 여자에게 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집안을 깨끗하게 만들어 나갔고 열흘만에 큰 오빠를 빼고는 모든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지만 큰 오빠도 그 여자가 먹음직하게 만들어주는 도시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도시락을 팽개치고 도망을 치기까지 했다.  그 여자는 젖을 떼지도 못한 막내동생이 심하게 보채던 어느날 밤, 칫솔질을 하며 남몰래 울었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가 동생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잠시 다녀간 다음날 수리조합 둑길을 걸어 멀리 사라져갔다. 그 여자가 남겨놓은 칫솔을 찾아내 그 여자에게로 달려갔을 때 그 여자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나처럼은 되지 마',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드러내는 것은 사랑의 도덕률이 아니라 이쪽 여자와 저쪽 여자의 감성이다. 삶의 이쪽과 저쪽을 차분하게 응시하면서 그 깊이를 헤아리는 시선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저렇게 작아지시다니, 털모자 밑으로 보이는 뒷목덜미까지 흰머리가 수북했습니다. 귀 밑으로 탄력을 잃은 살이 처져 겹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까지 무수히 핀 검버섯이라니, 저 깊은 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어요. 당신을 향해 지르는 것도 같았고 어쩌면 삶을 향해 내질렀는지도 모르지요. 연민에 휩싸여 아버지 골덴바지 뒷주머니에 제 두 손을 포옥 집어넣었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앙상한 아버지의 엉치뼈

  작가는 '내 글쓰기는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삶의 주체할 수 없는 것들을 풀어낸 것이 소설이 됐다'고 했다. 정읍에서 자란 그녀는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문학 수업을 했다고 한다. 오빠들의 밥과 빨래를 위해 서울로 보내진 그녀는 야간여고에 정을 붙이지 못해 학교를 나가지 않았고 그 방황을 극복해주기 위해 담임선생이 사준 '실천문학' 창간호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의 첫 문학 텍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른 살. '문예중앙' 92년 가을호에 발표한 중편 '멀리, 끝없는 길 위에'는 대단히 독특한 방법으로 서른 살에 이른 이야기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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