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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 임순만



   4 전통과 실험소설의 전망

 그리운 환멸 - 이순원 장편 '우리들의 석기시대'

  단지 거부하기 위해 장발을 늘어뜨리고 70년대를 뛰어가던 한 녀석이 떠오른다. 기성세대의 어떤 우려의 한 상징과도 같은 표적이기도 했지만 단순한 유행 이상이었던 녀석의 장발. 세상을 알기에는 어림도 없는 하얀 얼굴의 스무 살 나이에 작은 독재자와 통일주체국 민회의와 캠퍼스의 프락치들을 증오하는 법을 배웠고, 절반은 낭만으로 절반은 울분으로 법학개론과 경영학원론을 팔아 막걸리를 마시던 녀석.  녀석의 젊은 솟아오르기는 얼마나 아득하였으며 봄은 얼마나 멀었던지. 그리하여 녀석들이 부르짖었던 '훌라송'은 또한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변한 것일까. 화염병은 화염병대로 외제차는 외제차대로, 공감과 낭만의 눈물이 사라진 시대. 소설가 이순원 씨가 발표한 장편 '우리들의 석기시대' (고려원)는 70년대 후반기 독재에 저항하면서 높이 날아오르기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풍경을 곡진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4.19세대의 조국과 역사에 대한 정열과 60년대 후반 젊은이들의 통기타와 청바지의 낭만을 결합시키며 시대젊음을 괴로워했던 70년대 중후반 젊은이들의 환멸이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나타난다.  남학생은 누구나 '갈매기의 꿈'을 읽었고 여학생은 누구나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었던 시절. 질식할 것 같은 시대환경에 저항하기 위해 머리를 길렀고 누군가 나선 자에 대해 공통적으로 죄의식을 느꼈으며 캠퍼스 앞에는 아직도 책을 저당잡아주기는 하지만 팔아넘기지 않고 되돌려주는 술집이 있었다.

  친일행적으로 '가네야마' 가로 불리는 아버지가 오카네(재산)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양조장 담벽에 페인트로 '첩방공반(왼쪽으로 쓴 반공방첩 글자)'를 쓰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출마하는 장면과 4.19때 다리가 절단난 당숙의 끝없는 절망. 군복인 채로 캠퍼스를 활보하는 ROTC단원들에 홀로 맞서 싸우는 대학신문 편집장과 당국의 눈치만 살피는 주간교수. 사랑하는 가난한 애인의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가정교사로 돈을 벌지만 이윽고 합격과 함께 버림받고 그 배신에 대한 어떤 오기와도 같은 반작용으로 졸업도 않고 노동현장으로 나가 노동운동가와 결혼한 여동생. 그리고 미군의 씨를 받은 혼혈여대생과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우리 처음 만나던 날처럼 눈이 내렸으며 아직 그 눈 그치기 전인 이른 아침, 내 입대를 나와서까지 지켜볼 자신이 없어 그대로 방에 앉아 눈물짓는 그녀를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와 나는 기계 자리가 선명하게 나도록 어깨 아래까지 흐르던 내 스물다섯 살의 자유를 깎았다. ... 그리고 봄이 되어 복학은 했지만 그녀도 끝내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이제 그녀가 찾아가는 한 아메리카 병사의 정액 흔적에 대신하여 그녀의 목에 우리 사랑의 한 징표처럼 이 땅 병사의 군번표를 걸고.

  작가는 그 시대의 20대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기억 저편의 빛바랜 사진첩을 열어 보여준다. 그 낭만과 좌절이 모이고 모여 급기야는 투석전으로 대항했던 그 시절을 '석기시대'라 이름붙인다. 이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시대의 정서가 얼마나 달라져 있으며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할 그것은 어떤 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그러나 더욱 값진 것은 청춘의 아름다운 시기에 미래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지만 더 높이 날고자, 더 많이 보고자 끊임없이 방황하며 성장하는 순수 그 자체를 가슴 저미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열정으로 가득찬 고통, 거기서 찾게 되는 삶의 이유,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찾아낸 글쓰기의 비상.

  작가는 말한다. '나를 포함한 70년대 젊은이들의 성장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고.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너무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얘기해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는 덧 붙인다.  "질식할 것 같은 어둠속에서일망정 다시 못 올 날들에 대한 그리움만큼 우리 가슴밭에 시들지 않는 꽃과도 같은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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