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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217183913&Section=04
김훈의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엿보다!

[프레시안 books]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



소설가 김훈이 '문장'으로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이제 평단의 인정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김훈이라는 이름이 한국 문학 시장의 몇 안 되는 파워브랜드가 된 것 역시 특유의 김훈 식 문장 때문일 것이다.

이때 이 '문장'의 의미를 단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것이 최근에는 서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용어가 되다시피 한 '스토리텔링'과 같은 것은 아닐 터이다. 엄밀히 말해, 김훈 소설의 문장들이란 시간적 선조성이 결부된 일련의 사건적 배치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장들을 이루는 실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1인칭 주인공의 의식이며 관념이라고 말이다. 김훈의 소설은 개성이 다른 인물과 인물 간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사건을 빚어내고 전개해 나가기보다는, 1인칭 주인공의 의식과 관념을 통해 세계를 마주하는 주체의 시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그 시각을 통해 세계를 사유하고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건은 인물의 외부, 세계에 있다기보다는 주인공의 의식 안에서 명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2000년대 한국 문학 시장에 김훈의 소설이 기여한 가장 의미심장한 바는, 그의 소설이 잘 쓰인 '문장'은 그 자체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실상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문장을 생산해 내는 김훈 소설의 사유의 주인공들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관념을 끔찍하게 혐오한다. 즉, 김훈의 문장은 관념이자 사유 그 자체의 표상이지만, 이 관념과 사유는 관념적이지 않다. 그의 출세작 <칼의 노래> 처음 대목에서 이순신은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은" 자들에 의해 형틀에 묶여 있으며,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자들의 "언어가 가엾었다"고 생각한다.

김훈의 주인공들이 감정이 있되 감상적이지 않으며,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완강한 사실을 중시하고, 사태의 모순과 난처함을 견지하고 수락하며, 육신에서 배어나오는 냄새에 매우 민감하고, 삶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죽음의 물리적 형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등은 모두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훈의 문장이 품고 있는 관념은 복합적이되 복잡하지 않으며, 간명하고 지극히 유물론적이다(이 유물론적 시각이 남성의 언어를 입고, 여성의 육체를 감각화하는 방식에서 여성 독자들의 불편함이 생겨나기도 한다).







▲ <내 젊은 날의 숲>(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김훈의 신작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펴냄)은 그의 문장이 품고 있는 이러한 특이성과 더불어 그의 일련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던 면면들을 두루 포섭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연히 비무장지대 근처 민통선 내에 있는 수목원취직한 한 세밀화 화가의 1년의 생활을 다룬 이 작품은,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화평고원'을 둘러싼 한국전쟁 당시의 전사를 첨가함으로써 일련의 역사 소설 속에서 보여준 인간사를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허무 의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아버지의 죽음을 주요 에피소드로 다룸으로써 <강산무진>에 실린 몇몇 단편들에서 보여준 죽음에 대한 유물론적 탐구와 세속 세계의 관성이 지닌 완강함을 다시 한 번 탐구하고 있다. <공무도하가>에서 나타난 작가 특유의 취재 감각 역시 수목원의 직업인들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또 한 번 빛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내부적으로 횡단하는 여러 가지 통로가 있을 터이지만, 내가 보기에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왜 하필이면 작가가 비무장지대 민통선 내에 있는 수목원이라는 흔치 않은 공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하였는가 하는 지점이다. 이 배경 설정의 의도를 짐작해 보기 위해서는, 이 공간의 주요 인물인 수목원의 실질적 책임자인 '안요한'과 수목원 내의 다종다양한 식물을 그려내기 위해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세밀화 화가인 '나'(조연주)의 의식 세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의 문장이 '나'의 의식과 관념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김훈 소설을 지탱하고 있는 문장 일반의 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안요한은 식물학자로서 그의 연구 목적은 수억만 가지의 색깔과 형태로 피어나는 꽃의 모양과 빛깔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비밀로만 존재하는 만상의 근원에 대한 '과학적'이고 원리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안요한이 쓴 책의 한 문장을 읽으며, 말을 해야만 살 수 있고 말로 해야만 안심이 되는 안요한(궁극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을 가엾게 여긴다.

'나'가 보기에 꽃의 비밀은 애초부터 인간의 말과는 무관한 것이며, 그 비밀은 꽃의 내부의 비밀이 아니라 안요한 내부의 비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즉, 꽃에 대한 제 아무리 집요한 과학적 연구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꽃이 자신의 색깔과 구조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고 한들 그것이 꽃 자체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요한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는 '나'의 세밀화 작업은 안요한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세밀화 작업이 "원리나 개념으로는 파악이 안 되"는 식물들의 일반적 원리를 추상화하는 과학과는 달라 보이지만, 개별적 식물의 질감과 온도, 즉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은 안요한이 보기에는 궁극적으로는 종족의 일반성을 추출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요한의 욕망을 가엾어 하면서도, 역시 꽃의 실재를 세밀화 속으로 길어 올리기를 갈망한다(전쟁 전사자의 유해인 '뼈'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는 작업도 동일한 메타포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소설에서 세밀화 화가인 '나'의 시선에 의해 매혹적이지만 냉철하게 포착된 꽃들에 대한 소설적 묘사들은, 바로 세밀화 화가인 '나'와 문장의 묘사를 통해 대상의 실재에 가능한 근접해 보려는 작가 김훈의 욕망을 또한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인칭 주인공 '나'의 의식의 표상인 소설 속 문장들을 통해 드러나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작가적 욕망에는 모순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물의 실재를 길어 올리려는 작가의 언어적(예술적) 욕망과 대상과 인간의 언어는 무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사유가 길항하기 때문이다.

김훈 특유의 허무가 생겨나는 지점도 예술가적 욕망과 철학적 사유가 충돌하며 아이러니를 빚어내는 바로 이 지점이다. 수목원의 나무 해설가 '이나모'가 사람의 말로 나무의 시간을 설명하면서도, 언제나 그 해설의 마지막을 '인간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은 다르다'는 말로 끝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속에서 꽃과 나무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묘사는 주인공의 표현대로 "모든 개별적 나무와 개별적 존재가 겪는 시간이 제가끔"이라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모든 개별성의 표현과 만남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설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주인공(작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풀과 꽃은 겨우 그릴 수 있지만 숲과 산은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숲은 다가가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와서 숲속에는 숲만이 있었고 거기로 가는 길은 본래 없었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여야 보는 것일 터인데,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비 맞고 바람 쏘이고 냄새 맡고 숨 들이쉬며 여름을 보냈다."

김훈의 소설을 일반적 소설의 방식처럼 일정한 에피소드의 나열이나, 서사를 중심으로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것도 한 독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김훈 소설을 읽는 가장 맥 빠진 독법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김훈의 신작 소설 <내 젊은 날의 숲>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서 그동안 좀처럼 보지 못했던 로맨스, '사랑과 희망'의 가능성을 볼 수도 있을 터이고, 거세된 수컷의 말없는 처연함과 세속 세계의 완강한 생명력을 확인할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독법은 휴전선 이남의 산천을 떠돌며 길어 올린 이 집요하고도 매혹적인 문장과 문장 속 풍경과 그 풍경의 틈 사이에 배어 있는 작가의 사유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독법은 아니라고 보인다. 물론 이러한 독법이 이끄는 이 소설의 문장 속 풍경의 의식이란 작가의 후기대로 지극히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이 소설들의 문장이 품고 있는 풍경(의 의식)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 젊은 날의 숲>을 읽는 매혹적 독법 중 하나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과 실재 사이의 간격을 끊임없이 견지하고 수락하면서 쓰인 예술가 소설로 이 작품을 읽는 방법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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