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2. 수용성

  <해답 구하기를 딱 멈춰 보라.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라. 풀고, 기다리고, 좋은 때를 가져보라>

  한 철학자가 선승을 찾아와서 붓다와 명상과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헐떡이면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선승이 말하기를,

  <객이 몹시 지쳐 보이는구려. 이 높은 산을 올라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차나 한 잔 하시게>

  철학자는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그의 마음은 온갖 의문들로 들끓었다. 이윽고 주전자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고 차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승은 말하기를,

  <기다리시게. 그리 서둘지 마시게. 혹시 아는가? 차 한 잔 마시노라면 객의 의문들이 싹 풀릴지>

  순간 철학자는 자신이 완전히 헛걸음한 게 아닌 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냐? 차 한잔 마신다고 붓다에 대한 내 의문이 어떻게 풀릴 수 있단 말야?' 그러나 그는 너무 지쳐 있으니 차나 한 잔 받아 마시고 산을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생각했다. 이윽고 선승이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기울였다. 찻잔이 가득차고 넘치는데도 선승은 계속 붓는 거였다. 잔 받침대까지 가득 찼다. 한 방울만 더 따르면 마룻바닥으로 넘쳐 흐를 지경이었다. 철학자가 외쳤다.

  <그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잔이 넘치고 받침대까지 넘치는게 안 보이십니까?>

  선승이 말하기를,

  <아항, 객의 모양이 꼭 이렇지. 객의 마음이 꼭 이렇게 의문들로 그득해서 내가 뭘 말해 줘도 들어갈 틈이 없지. 도리어 내가 한 마디라도 해주면 객의 의문들은 넘쳐 흘러 물바다를 이룰 게야. 이 오두막이 객의 의문들로 가득 찰 테지. 돌아가시게. 객의 잔을 싹 비워 가지고 다시 오시게. 우선 객의 속 안에 조금이라도 빈 틈을 내시게>

  이 선승은 그래도 봐줘 가며 하느니, 나한테 오면 어림도 없다. 난 빈 잔도 허락지 않는다. 잔 자체를 박살 내버릴 것이다. 아무리 비워도 잔은 다시 차기 마련이니까. 그대가 아예 있질 않아야 만이 차를 따를 수 있다. 그렇다. 그대가 아예 있질 않으면 차를 따를 필요조차 없다. 아예 있지를 말라. 그러면 모든 존재가 온갖 차원, 온 방향에서 그대의 없음으로 부어질 테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67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621
2727 「광진이 형」(시인 김두안) 바람의종 2009.07.06 7836
2726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045
2725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0 8054
2724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040
2723 「긴장되고 웃음이 있고 재미있으며 좀 가려운」(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2 7708
2722 「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바람의종 2009.07.10 7819
2721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19
2720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12 5246
2719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486
2718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569
2717 「만두 이야기_1」(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9 6978
2716 「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10 6494
2715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23 6146
2714 「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5 9258
2713 「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시인 권현형) 바람의종 2009.06.25 8664
2712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10 6600
2711 「비명 소리」(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5 7483
2710 「사랑은 아무나 하나」(시인 이상섭) 바람의종 2009.08.11 7854
2709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바람의종 2009.07.17 9040
2708 「세상에 없는 범죄학 강의」(시인 최치언) 바람의종 2009.07.08 7607
2707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바람의종 2009.06.09 7886
2706 「신부(神父)님의 뒷담화」(시인 유종인) 바람의종 2009.08.01 6217
2705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4 8119
2704 「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바람의종 2009.07.06 7781
2703 「연변 처녀」(소설가 김도연) 바람의종 2009.06.26 74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