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682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꽃밭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분꽃은 분꽃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모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모여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분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분꽃은 채송화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맨드라미는 봉숭아를 시새움하지 않고 들국화는 달리아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제 모습대로 곱게 피어 있습니다.
  감은 주홍빛으로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 있고, 사과는 사과대로 반짝이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감은 사과를 부러워하지 않고 사과는 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과나무끼리 내 가지에는 열 개가 열렸는데, 옆의 나무는 스무 개가 열렸다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제 모습대로 탐스럽게 익어 있을 뿐입니다. 모과는 또 모과대로 향기에 싸여 익어 있습니다. 못생겼다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기러기는 기러기의 날갯짓으로 날아가고 까치는 까치 제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립니다. 기러기를 부러워하는 까치가 없고, 까치를 부러워하는 기러기는 없습니다. 참새는 참새로서 살아온 제 삶의 양식이 있고, 청둥오리는 저희끼리 날아다니며 만나는 하늘과 강물이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제 모습대로 아름답고 제 모습대로 편안한 것이 자연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리하여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며 제 모습 그대로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분꽃 같은 제 모습이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오직 장미꽃처럼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과처럼 고운 제 빛깔을 탐스럽다 하지 않고 오렌지 빛깔처럼 산뜻하지 못하다고 조마조마해 하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시새움하거나 닮은꼴이 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여유를 잃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삶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람처럼 자신 없어 하는 미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꽃밭의 꽃들을 보세요. 이 세상 어떤 꽃도 다 제 모습 그대로 피어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42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275
252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바람의종 2008.10.22 8744
251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 도종환 (84) 바람의종 2008.10.22 5123
250 행복의 양(量) 바람의종 2008.10.20 6426
249 그대 이제 꿈을 말할 때가 아닌가 바람의종 2008.10.20 5915
248 참 좋은 글 - 도종환 (83) 바람의종 2008.10.20 6536
247 단풍 - 도종환 (82) 바람의종 2008.10.17 9216
246 고적한 날 - 도종환 (81) 바람의종 2008.10.17 6968
245 전혀 다른 세계 바람의종 2008.10.17 8003
244 약속 시간 15분 전 바람의종 2008.10.17 7166
243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바람의종 2008.10.17 6182
242 내 인생의 걸림돌들 바람의종 2008.10.17 6965
241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사랑 - 도종환 (80) 바람의종 2008.10.13 7538
240 성인(聖人)의 길 바람의종 2008.10.13 5530
239 최고의 유산 바람의종 2008.10.11 6590
238 저녁 무렵 - 도종환 (79) 바람의종 2008.10.10 8150
237 내면의 싸움 바람의종 2008.10.10 5660
236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의종 2008.10.10 6457
235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바람의종 2008.10.10 7902
234 들국화 한 송이 - 도종환 (78) 바람의종 2008.10.09 9002
233 슬픔이 없는 곳 바람의종 2008.10.07 6328
232 각각의 음이 모여 바람의종 2008.10.07 7680
231 여백 - 도종환 (77) 바람의종 2008.10.07 11505
230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바람의종 2008.10.04 7251
229 바다로 가는 강물 - 도종환 (76) 바람의종 2008.10.04 5413
228 바로 지금 바람의종 2008.10.01 583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