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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시인 차주일)   2009년 7월 6일_마흔아홉번째





 





나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한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탑승구 앞에 자리 잡는 나는 어제 만났던 사람이 안녕한지, 그제 보았으나 어제 보이지 않은 사람이 와 있는지, 옷차림새가 어떻게 바뀌는지 등등을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있다. 덕분에 30대 말 아주머니로부터 힐끗힐끗 쳐다보지 말아 달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미모에 자꾸 끌리는 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살풋 웃어 줄 때, 내가 아침마다 두리번거리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 후 아주머니와 나는 통성명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밝은 미소로 웃어 준다. 밀리는 칸에 서서 마포역에서 동대문운동장역까지 가는 우리는 눈웃음으로 대화하곤 한다. 우리가 탄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에는 늘 젊은 숙녀가 이어폰을 꽂고 눈 감은 채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일흔 가까이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몸뻬 안에 안짱다리를 숨기고 서 계신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항상 눈웃음 대화를 하는 것이다. 내가 눈웃음을 보내면, ‘오늘 또 신경전이 벌어졌군요.’라고 이해한 아주머니가 내게 찡긋 눈웃음을 보낸다. 그러면 나는 ‘오늘도 재미나게 지켜볼까요.’라고 다시 눈웃음을 나눈다.


 


이런 광경을 처음 접했을 때, 젊은 숙녀의 몸이 불편한 거라 나는 생각했었다. 하루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할머니께, “할머니, 경로석 앞에 계시면 바로 자리가 생길 텐데요, 그리로 가셔서 서 계시지 왜 항상 젊은 숙녀 앞에만 서 계셔요.”라고 말을 붙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열변을 토하셨다. “내가요, 아이고 저 어린것이 어디 몸이 불편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나 보다 생각하고, 측은지심으로 염주알도 돌렸었는데요, 깜박 내릴 역을 지나쳐 청구역까지 가게 되었다가 봤는데, 그 젊은것이 씩씩하게 잘도 걸어갑디다. 한번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 눈까지 흘기더라고요. 그래서 고약한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원래 운동도 할 겸 잘 서서 다니는 할망구지만, 손녀 같은 아이에게 버릇도 가르칠 겸 언제까지 견뎌 볼 작정입니다.”


 


나는 그들의 신경전을 끝낼 요량을 궁리하다가 묘안 하나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방귀 냄새로 유명한 뿡도사님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뭘 먹으면 방귀 냄새가 지독한지 자문을 구했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했다. 그 날 점심으로 치즈를 듬뿍 먹고 늦은 저녁을 비지찌개와 살코기, 그리고 달걀을 우겨넣었다. 나는 그날 밤 딸과 아들을 상대로 만족스런 임상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부터 괄약근을 조이며 방귀를 모았다. 심지어 열차가 전역을 출발했다는 안내방송에 맞춰 한껏 숨을 들이켜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려도 나는 오직 작전에 전념했다.


 


여전히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나는 젊은 숙녀가 앉아 있는 기둥에 궁둥이를 대고 무가지를 읽는 척 섰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이 굽은둥이를 지나며 내는 끼이익 끼이익 소리에 맞춰 오토바이 시동 소리 같은 방귀를 분출했다. 잠시 후 비좁은 공간이 헐렁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앉아 있는 젊은 숙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잠든 척하던 볼과 콧날이 씰룩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친 김에 하루 더 작전을 펴기로 했다. 그 날은 기존 양에다 반은 더 과식한 상태였다. 내가 두 번째 기둥에 기대고 서자, 아주머니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이미 함빡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작전을 개시하자 전날보다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젊은 숙녀가 벌떡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면서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저 웃어 주었다. 미안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부터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다.


 


작전이 성공한 뒤 나와 아주머니의 아침 인사는 눈 대화 방법에 코를 만지는 방법 두 가지로 늘어났고, 할머니까지 합세하여 전장의 한 장면처럼 코를 만지는 작전을 교환하곤 한다.

















■ 필자 소개


 




차주일(시인)


2003년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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