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190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또 깨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 소리에 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톡 튀어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울어댑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었는데도 귀뚜라미는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우리도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인생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쓴 한 줄의 글을 남들은 아름답다 했지만 사실은 처절하였습니다. 나의 시가 나의 울음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밤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밤새 울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져 버릴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던 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도 한 마리 귀뚜라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밤을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내 소리를 알아듣는 이, 내 목소리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한 사람을 위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치열하던 마음도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정도 많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귀뚜라미가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잠든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머리맡에 와 울면서 밤을 지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92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7010
2827 '자발적인 노예' 風文 2019.08.15 596
2826 '작가의 고독'에 대해서 風文 2015.02.09 5875
2825 '잘 사는 것' 윤안젤로 2013.05.15 7204
2824 '저 너머에' 뭔가가 있다 바람의종 2012.01.13 5139
2823 '저 큰 나무를 봐' 바람의종 2010.08.18 3974
2822 '저는 매일 놀고 있어요' 윤안젤로 2013.04.11 7232
2821 '저쪽' 세계로 통하는 문 바람의종 2012.12.11 7361
2820 '정말 이게 꼭 필요한가?' 風文 2020.05.05 594
2819 '정말 힘드셨지요?' 風文 2022.02.13 509
2818 '정원 디자인'을 할 때 風文 2017.12.14 2493
2817 '제로'에 있을 때 風文 2014.10.20 12531
2816 '좋은 사람' 만나기 바람의종 2012.04.16 6611
2815 '좋은 점은 뭐지?' 바람의종 2011.10.25 6326
2814 '좋은 지도자'는... 風文 2020.05.07 492
2813 '지금, 여기' 바람의종 2010.04.17 4196
2812 '지금, 여기' 風文 2015.04.27 4940
2811 '지켜보는' 시간 風文 2017.12.14 3110
2810 '짓다가 만 집'과 '짓고 있는 집' 윤안젤로 2013.03.28 9038
2809 '찰지력'과 센스 바람의종 2012.06.11 8214
2808 '참 좋은 당신' 風文 2014.12.11 7709
2807 '천국 귀' 바람의종 2012.05.03 6059
2806 '철없는 꼬마' 바람의종 2009.05.06 6179
2805 '첫 눈에 반한다' 風文 2019.08.21 517
2804 '충공'과 '개콘' 바람의종 2013.01.11 7992
2803 '친구야, 너도 많이 힘들구나' 風文 2015.01.13 558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