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443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는 차별, 가난, 착취, 식민주의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불황, 전쟁, 파시즘을 겪으며 분노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리 곱게 봐도 문젯거리였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전체가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하려는 노력 없이 사회에 반대만 하는 것은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이에서 보았던 부정의와 불평등을 뿌리뽑을 수 있다고 믿으며 제도의 틀에서 일어났던 여러 변화에 반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분명히 이 문명은 결코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생산성을 높여 가난과 실업, 착취, 차별, 식민주의를 몰아내기는커녕 이 부도덕한 것들을 일부러 퍼뜨려 거기에서 이윤까지 냈다. 나는 반대하고 저항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사회는 내 밥벌이를 빼앗고 내 영향력과 신분까지 빼앗으며 나를 비웃었다.
  이제 투쟁을 포기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인가? 힘센 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런 사회 불의에 반대하기를 그만두고 눈앞에 버티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뒤, 앞으로는 내가 반대했던 사회 체제에 이바지하고 그를 찬양하겠노라고 약속할 것인가?
  
  선뜻 결정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넓게는 모든 사회 관계의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원칙의 문제였다. 그대로 갈 것인가. 비켜날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나만이 이런 갈림길에 맞닥뜨린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의식이 있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의문과 실망투성이인 난관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내 갈림길, 우리 세대의 갈림길, 서구인의 갈림길, 역사에 나타난 인류의 갈림길은 이상, 꿈, 희망, 목표, 계획으로 나아가는 길과 현실의 제약에 머무는 길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이면서 또 인류 공동체의 일부로서, 한 사람은 모순, 양자택일, 갈림길,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제때에 분명히 행동하면 하나는 고를 수 있다. 머뭇거리거나 옆걸음질치거나 미적거린다면 둘 다 놓치고 만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이런 명제를 앞에 놓고 스콧니어링이 던진 이 말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의 현실을 향해 던지는 질문처럼 가슴을 때리며 다가오는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10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030
2852 재능만 믿지 말고... 風文 2023.05.30 531
2851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風文 2023.05.29 426
2850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風文 2023.05.28 484
2849 얼굴의 주름, 지혜의 주름 風文 2023.05.28 321
2848 정신력을 단련하는 곳 風文 2023.05.27 539
2847 눈이 열린다 風文 2023.05.27 584
2846 두근두근 내 인생 中 風文 2023.05.26 398
2845 영웅의 탄생 風文 2023.05.26 395
2844 베토벤의 산책 風文 2023.05.26 497
2843 아버지는 아버지다 風文 2023.05.24 822
2842 마음의 위대한 힘 風文 2023.05.24 446
2841 네가 남기고 간 작은 것들 風文 2023.05.22 728
2840 마음을 담은 손편지 한 장 風文 2023.05.22 442
2839 꽃이 핀 자리 風文 2023.05.22 394
2838 '자기한테 나는 뭐야?' 風文 2023.05.19 387
2837 백수로 지낸 2년 風文 2023.05.19 408
2836 행간과 여백 風文 2023.05.17 502
2835 우리는 언제 성장하는가 風文 2023.05.17 589
2834 카오스, 에로스 風文 2023.05.12 561
2833 '살아남는 지식' 風文 2023.05.12 513
2832 역사의 흥망성쇠, 종이 한 장 차이 風文 2023.05.12 398
2831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제3장 그리스의 태초 신들 風文 2023.04.28 592
2830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風文 2023.04.28 457
2829 아무리 가져도 충분하지 않다 風文 2023.04.27 876
2828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9. 수메르 風文 2023.04.26 5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