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 - 도종환 (48)

by 바람의종 posted Jul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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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한 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 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 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 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매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가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주말까지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어제 낮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광활한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그런 새의 모습을 보며 이 시를 썼습니다. 젖으며 빗속에서도 먼 길을 가야하는 새. 그 새의 모습이 얼마나 안스럽던지요. 우리도 그 새처럼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습니다. 젖은 채로 먼 길을 가야하는 절박한 날들이 우리에겐 많았습니다.
  
  하늘은 언제든지 비가 되어 내릴 구름으로 가득한데, 젖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한 개인에 대해 세상은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란 믿음이 있어 우리는 삽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빗속에서 젖으며 먼 길을 가는 새도 멀지 않은 곳에 날개를 접고 쉴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말없이 하늘을 건너가는지도 모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새도 젖고 우리도 젖어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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