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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 2장 동방신화

   4. 신성과 종교

 이집트의 산과 신앙은 물론 그 고대문명은 어떠한 세계 문명보다도 선행한다. 아득한 옛날 기원전 2500년에 건립한 쿠푸의 피라미드는 오늘날의 기술로도 능가할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하는 고도의 과학문명이다. 세월이 흐르자 신과 신성의 변천이 일어나고 신의 계보는 매우 혼란해지게 되었다. 초기 기록은 망실되어 남은 자료는 충분하지 않으나 후세에 발굴을 통해 옛 신전이 밝혀지고 피라미드(세계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오래 되고 또한 현존하는 유일한 구조물이다)에 보존된 왕조 기록, 묘비명, 파피루스 문서, 많은 석상과 조각에서 이끌어 낸 사료와 그리스인들(역사가 헤로도트스 등)이 남긴 기록이 주요 재료이다.
  유구한 문화를 가진 이집트인은 독특한 신앙과 종교를 창출해 냈으며 신의 수효 또한 엄청나 발굴 초에만도 기록상 800 이상이 산정되었다. 시초에는 여러 부족집단이 각각의 지역신을 갖고 있었으나 부족들의 정치적 통합으로 각 부족신 사이에 합동이 일어났으며, 기원전 3100년경에는 최종 통합이 달성되어 나일 계곡신들과 남부신들이 손을 맞잡고 만신전에 자리잡았다. 시대가 지나자 일부 지역신은 권위와 세력이 커지고 한 주 전체, 혹은 나이가 나라 전체의 주신으로 존경되기도 하였다. 우주신은 외부에서 이집트로 유입되어 공존하였는데 지역신과는 달리 동물이나 물신 형태는 없고 또한 인간 생활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경외되었다. 나라의 위대한 신이 된 천공신, 대지신, 태양신, 달신, 위대한 강신은 외경하지만 제의는 올리지 않았다. 후기에는 많은 신들을 숭배하고 신들의 이름과 신성도 적지 않게 융합되면서 혼란스러워졌지만, 개개의 숭배자는 습관상 지역신과 지역신에 동반하는 신들 및 물신에만 친근하게 되었다.
  신화상으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는 혼돈이 있을 뿐 물(바다)이 대지를 덮고 암흑이 우세하며, 신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물에서 만물의 생성요소와 정이 태동하고 최초의 모신이 출현하였다. 구왕구시대에 이미 세 도시(헤리오폴리스, 멤피스, 헤르모폴리스)에 종교 중심지가 조성 발전되고, 각 지역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사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신과 동반 신들이 우주 창조를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과시하려고 노력하였다. 창세 과정은 모두 비슷하게 전진적.진화적인 창조적을 제시하였지만 단 한 군데 '첫 시작'에 차이가 있으며 창조 역할을 연출한 시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의견을 달리하였다. 여신 마예트는 황금시대가 되자 모든 법전과 윤리 및 제도를 인류에게 만들어 주었다.
  천지창조설은 헬리오폴리스 사람들의 것이 가장 중요하며 또한 널리 받아들여진다. 창조신은 모두 아홉 주신 엔네아드로 아툼이 원초신이다. 그는 원초섬의 물 위에서 현현하여 공기신 슈를 내뿜고 증기의 여신 테프누트를 토해 냈다. 이 두 신은 결합하여 대지의 신 게브와 천공여신 누트를 낳았다. 다시 이 두 신이 결혼하여 낳은 신들이 바로 천지신이 아닌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와 및 네프티스 형제자매들이다.



- 창조의 신 Atum(아툼)


 멤피스에서는 도시의 최고신 프타가 현현하여 나우네트를 출현시키고 그녀에게서 아들 아툼을 낳았다고 한다. 아툼에게서는 헬리오폴리스의 아홉 주신이 출현하였다. 이와 같이 멤피스에서는 그들의 신이 처음으로 창조를 시작하였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프타는 솜씨 좋은 장인신이며 세상을 구축한 창조신으로 숭앙되었다. 프타의 한 아들 임호테프는 제3왕조 조세로 왕의 묘를 사카라에서 계단식 피라미드로 건립한 최초의 인물이며, 또한 의료의 신(그리스의 아스클레피오스)으로 존중되었다.
  헤르모폴리스에서는 여덟 주신 오그도아드가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원초의 바다신 눈, 내세의 신 후, 암흑의 신 쿠크와 대기신 아문과 그 각각이 낳은 나우네트, 하우헤트, 카우케트 및 아마우네트가 그들이다. 다른 설에서는 세상은 껍질 없는 우주알 혹은 연꽃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태양숭배는 일찍이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 같다. 고왕국시대(기원전 2686~2181)에는 온(헬리오폴리스)에서 태양신이 왕의 비호신으로서 공적으로 숭배를 받았다. 태양신 레는 지역 창조신 아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대한 신전에 모셔지고 특히 제5대왕조 때는 그 숭배가 절정에 달하였다. 레 신앙은 왕실과 접목되어 왕실종교로 발전하고 이집트 왕은 공식적으로 레의 아들로 불리게 되었다. 레를 모시는 신관 사제들의 세력도 커졌으며 종교신학도 정립되었다. 제4왕조 때부터는 모시는 으레 왕은 하늘나라의 태양에 오른다는 내세관이 발전하고 이에 연유한 구조물인 피라미드에 매장되었다. 고왕국 말기에는 왕실세력이 쇠퇴하면서 태양신앙은 주춤하게 되는데, 왕실이 약화되는 반면 레 사제의 세력은 계속 커져 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분란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 와중에 서민적으며 민주적인 오시리스 신앙이 두드러지면서 숭배대상의 교체가 일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장례의식과 부활은 태양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신왕국시대(기원전 1552~1069)가 되자 제18대 왕조 때 그 전까지는 지역신이던 아문을 '신중의 신'으로 올리고 레 숭배와 통합하여 나라의 위대한 신 아멘 레를 창출하였다. 여기에서 염두에 둘 것은 이집트 신들의 경우 합체는 하지만 원 모습과 특성을 포기하고 융합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제18대 왕조 말 아케나텐 왕은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삼아 태양신 아텐 숭배에 집중하였으나 유일신앙의 성립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케나텐의 아텐 숭배는 초기의 태양숭배와는 여러 모로 다르면서도 초기의 이집트 통치자처럼 왕실과 태양신 간의 일체성을 시도하여 공통점이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 태양숭배는 어는 때나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있었고 관련성이 적어 원칙적으로 왕실과 나라의 신앙으로 존속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테베의 사제들은 신왕국시대 후기에 와서 그들의 신 아문에 전지전능성을 부여하고 아문 신이 비밀리에 자기 자신과 모든 다른 신을 창출하였으며 또한 천지창조를 이룩하였다고 선언하였다. 또 다른 설에서는 나일 강의 작은 섬 엘레판티네의 염소머리 신 크눔이 아문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그 고장 흙을 재료로 녹로를 돌려 인간을 만들었다고도 주자하였다. 이집트 사람은 신들을 세상에 실존하는 성스러운 동물의 형태로 표출시켰다. 호루스는 매, 바스트(그리스의 아르테미스)는 고양이, 사랑의 신 하토르(그리스의 아프로디테)는 암소로 나타났다. 또한 몸은 사람이고 머리만 동물현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예컨대 아누비스는 개 또는 재칼, 토트(신의 대변인, 그리스의 헤르메스)는 따오기다. 원시시대 토템 신앙의 유풍일 것이며, 기이하고 신비성이 풍겨 이집트 신성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물 신들은 신성시되는 짐승이 아니다.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 다양한 형태의 동물적 생명력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로 전파된 이집트 신 중 중요한 신으로는 헤리오폴리스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멤피스의 세라피스를 꼽을 수 있다. 


[Serapis(세라피스 두상)]


- 세라피스에 관한 최초의 기술로서, 기원전 323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의문이 남는 임종의 한 장면이 있다. 바로 바빌론의 '세라피스 신전에 중태에 빠진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신사의 경내로 옮겨야할 것인가를 신탁을 통해 물었다'라는 기술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세라피스가 바빌론에서 모셔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기원으로 한다는 설과 모순되기 때문에, 아리아누스(Lucius Flavius Arrianus)의 시대 착오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바빌론에는 엔키(에아)라고 하는 신이 있는데, 그것을 세라프시(Serapsi, 심연의 왕)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따라서 아리아누스가 세라프시와 세라피스를 혼동했다는 설, 혹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과 관련된 세라프시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세라피스와의 습합에 관련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시스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Isis)는 파라오 만신전의 주신으로 이 여신에 대한 숭배와 신화는 그리스와 로마 세계로 널리 퍼졌다. 대지의 신 게브와 천상의 여신 누트는 두 아들 오시리스와 세트와 쌍둥이 딸 이시스와 네프티스를 두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내가 되고 네프티스는 세트(그리스 사람은 튜폰이라 한다)와 결혼하였다. 오시리스는 왕권으로 통치하고 이시스는 왕비가 되어 다들 호루스를 낳았다. 원래 이시스의 뜻은 '왕좌'로서, 오시리스의 왕권이 의인시으로 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시리스는 후에 동생 세트의 반란으로 죽음을 당하는데 그 내력을 보면 이렇다. 왕이 출타했다가 돌아와 세트의 환영 만찬회에 참석하였는데 세트는 왕에게 딱 맞는 우아한 장식상자를 내놓고 누구든 상자 안에 누워서 맞으면 선물로 주겠다고 여흥 삼아 말하였따. 여러 내빈들이 시험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세트는 오시리스에게 은근히 권하였다. 이에 오시리스가 장난 삼아 들어갔더니 세트를 추종하는 반역자들이 바로 상자의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한 후 상자에 무거운 돌을 달아 나일 강에 던져 버렸다. 이 소문을 듣고 상자를 찾아나선 이시스는 오랜 세월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마침내 상자를 찾아내 오시리스의 시신을 챙겨 부토 근방의 델타 풀밭에 숨겨 두었다. 그리고 세트의 눈길을 피해 살면서 유복자의 출산을 기다렸다. 그러나 달밤에 사냥 나온 세트에 발각되어 오시리스의 시신은 발기발기 14토막으로 해체되어 다시 나일 강 속에 던져지고 이집트 땅 널리 흩어져 떠내려갔다. 이시스는 또다시 오시리스를 찾아나섰고 그 슬픔에 찬 통곡 때문에 유복자 호루스는 어미의 원수를 갚게 된다.
  오시리스는 하이집트의 영주로 신격화한 왕이고, 세트는 원래 상이집트의 영주로 마찬가지로 신격화된 왕이니 이는 나일 강 상부지역과 하부지역 간의 세력갈등을 표현한 신화이다. 모든 실들의 어미로 세트의 세력을 꺾어 승리를 거둔 이시스에 대한 신앙은 급속도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리스 종교의 많은 여신들이 이시스와 동격신성을 나타내는데, 이오의 이야기나 지하계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된 자신의 딸을 찾아나선 곡물의 증식을 가져오는 지모신 데메테르의 유명한 설화가 모두 이시스 신화와 융합된 것들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집트 통치시대에는 그리스와 이집트 종교 간에 병합이 일어나면서 이시스 여신의 모습은 헬레니즘 요소를 지니게 되어, 머리에만 옛 파라오의 상징인 왕관을 썼을 뿐 그리스식 의상을 걸친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집트 성전의 첫장은 "오래 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랜 신에 이시스가 있고, 이시스는 생명과 변화하는 모든 것을 탄생시킨 여신이다"라고 적혀있다. 창조의 여신으로서 이시스는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양을 탄생시켰다. 로마시대에 이시스를 숭배하는 비교에서는 여신을 '만물의 여신'으로 호칭하였고, 철학자이자 시인인 파트라이의 루키우스는 이시스 여신을 '신성하고 영원한 인류의 구세주'로 극진히 찬양하는 시문을 남겼으며, 경건한 이시스 숭배자 아풀레이우스는 수많은 여신이름을 부르면서 이시스의 응답으로 찬양하였다. 이처럼 이시스는 가장 고귀하며 자비로운 만물의 모신으로서 높은 신성을 획득하고 특히 증식을 가져오는 여신으로서 자애와 환희를 주는 영험이 있어 화류계 여인들에게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는 애가로 남아 있다.


[isis(이시스)]

  이집트 사람은 이시스를 모든 신의 여왕이며 지상에서 명계에까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지고의 신으로 찬양하였다. 바다에 길을 냈다는 모세의 기적이나 태양을 정지시켰다는 그 후계자 여호수아의 기적도 그 원형은 이시스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원전 80년경 로마에 도래한 이시스 숭배는 서기 4세기 그리스 도교에 밀려날 때까지 대단히 성행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이시스 여신은 배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 내지 융합되어 성모 숭배를 촉진하였다. 호루스의 어미 이시스 및 사이스(기원전 7세기경 이집트의 수도)의 여신 네이트의 속성은 그리스도의 어미 마리아의 속성과 동일하다. 로마의 초기 그리스도교 교도 중에는 자신들을 '양치기'로서 '이시스의 시종'의 호칭인 파리토포리라고 자칭한 자도 있었으며 목사라는 뜻의 파스터(Pastor)라는 낱말은 여기에서 연유하여 생겨난 것이다.

  오시리스
  오시리스(Osiris)는 그를 시기하는 형제 세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그 신체는 조각내어 나일 강에 던져졌다. 정숙한 부인 이시스는 쌍둥이로 태어난 자매 네티프스(세트의 부인)와 아누비스의 협력을 받아 신체 조각들을 모았다. 이시스는 그의 생명을 다시 되찾아 부부로 결합하고 그 결합으로 태어난 호루스는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 그런데 이 오시리스는 헬레니즘에서는 이시스계의 신이 아니었다. 즉 이집트의 일부 지역에서 사자의 세계를 다스리며 장례신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나일 강 유역 밖으로는 그 숭배가 퍼지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세라피스가 이시스의 옆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는 명확히 이시스 종교과 그 '비의'가 성행하고 사후 세계의 삶을 약속받기 위해 오시리스에 대한 관심이 재현되었다. 이에 따라 오시리스는 나일 강의 성스러운 물과 풍요의 상징이자 생에 상응하는 존재로서 로마제국의 이시스 신전 의식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신전에는 성수를 담은 저수지와 수조가 있었고 제기로는 휴드리아와 시툴라이가 사용되었다. 오시리스 카노푸스신 의 조각상 중에는 그러한 그릇을 머리에 올려 놓은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있다.
  11월의 중요한 이시스 축제는 로마 수도에서도 올려졌고, 신의 수난 및 죽음과 부활을 되새겼다. 폼페이의 이시스 신전에는 여러 장식 외에 두 점의 오시리스 수난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증식의 신으로 계속 다시 태어나므로 때로는 디오뉴소스와도 결부되었다. 로마에 오시리스 '비의'가 존재했음은 익히 아는 바이나 오시리스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수많은 동으로 만든 조상이 로마제국 전역과 무덤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의 오시리스는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형으로 휜 홀과 도리깨를 지니고 측면에 깃털 장식이 달린 높은 관을 쓰고 있다. 그리스인은 오시리스의 어미를 세멜레와 동일시 하였다.

  세라피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시스 숭배가 퍼진 초기에 이시스 여신에 동반하는 신은 오시리스가 아니라 바로 이 세라피스(Serapis)이다. 오시리스와 아피스(성스러운 소)의 합일신으로(멤피스에 장엄한 세라피스 신전이 있다) 그리스.이집트의 신이지만 그 출현을 둘러싸고는 의견 차이가 있다. 즉 고전 작가는 세라피스 숭배를 기원전 3세기 초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연유한다 하고, 다른 설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스스로 세라피스 숭배를 창출시켰다 하는데 이 견해가 유력하다.
  세라피스 신전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 3세 때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것이 유명한데, 라코티스 언덕에서 나온 여러 유물들을 살펴보건데 프톨레마이오스 2세 치세 때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공식 신으로서 숭배되었음이 확실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 신전의 이름난 신상과 초상의 기원에 관해서는 확실치 않다. 세라피스는 오시리스에서 기원하여 죽음과 번식과 재산의 신으로서 지하의 신과 풍요의 신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만, 헬레니즘에서는 심각한 표정에 풍부한 머리 및 수염, 가운과 겉옷 매무새가 완전히 그리스 명계의 신 하데스를 상기시킨다. 이 지하의 신이 거느리는 괴물도 명계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로, 시간(영겁)의 신인 아이온의 상장인 개의 머리, 늑대머리 및 사자머리를 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세라피스는 시간과 영원의 주인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쓰고 있는 두관은 농사의 풍요를 표시하는 것으로 세라피스가 풍요를 나누어 주는 신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원래 이시스와는 달래 프톨레마이오스 치세에는 환영받지 못하였던 세라피스는 헬레니즘 시대에 전파되어 이시스 신전에 봉안되었으나 이시스 여신의 배우자 역에서 좌천되었다. 콤모두스, 카라칼라 및 셉티무스와 세베루스 황제시대에는 풍요의 신, 치료의 신으로 존숭되었고, 점차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되어 신의 머리에서 관선이 비치는 조상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기 전에 이미 그의 위신은 실추되었고,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 신전은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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