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9 19:04
산 - 도종환 (58)
조회 수 7019 추천 수 19 댓글 0
산은 제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완전해지려고 헛되이 꿈꾸지도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살려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저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본 산의 모습을 산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른쪽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은 늘 오른쪽에서 본 모습만을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서쪽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서쪽에서 만나는 산의 모습을 산을 가장 잘 아는 모습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산에 올라 보면 산꼭대기에 서서 보아도 산의 안 보이는 구석이 많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산을 향해 오고가면서 만들어 내는 산에 대한 온갖 화려한 말 속에서 산은 정작 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모습보다 나아 보이려고 애를 쓰거나 제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산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고 산을 제 것으로 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정작 산처럼 높거나 산처럼 크게 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사람들의 허영 때문임을 산은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움도 부족함도 다 제 모습임을 산은 감추지 않습니다. 못난 구석도 있고 험한 모습도 갖추고 있음을 산은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더 대단해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도 않습니다.
산은 헛되이 꿈꾸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 속에 덮여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헛되이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론 부끄러운 구석도 가지고 있고 때론 때 묻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부끄러움도 때 묻음도 다 내 모습의 한 부분임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는지요.
벼랑도 있고 골짜기도 있지만 그래도 새들이 날아와 쉬게 하고 꽃들이 깃들어 피게 하는 산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허물없이 사람들이 가까이 올 수 있는 넉넉함은 바로 그 부족함, 그 부족함이 보여 주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 때문은 아닐는지요.
산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합니다.
산은 문자로 깨우치지 않지만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가게 합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5386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4228 |
2852 | 재능만 믿지 말고... | 風文 | 2023.05.30 | 526 |
2851 |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 風文 | 2023.05.29 | 416 |
2850 |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 風文 | 2023.05.28 | 468 |
2849 | 얼굴의 주름, 지혜의 주름 | 風文 | 2023.05.28 | 312 |
2848 | 정신력을 단련하는 곳 | 風文 | 2023.05.27 | 537 |
2847 | 눈이 열린다 | 風文 | 2023.05.27 | 584 |
2846 | 두근두근 내 인생 中 | 風文 | 2023.05.26 | 398 |
2845 | 영웅의 탄생 | 風文 | 2023.05.26 | 387 |
2844 | 베토벤의 산책 | 風文 | 2023.05.26 | 462 |
2843 | 아버지는 아버지다 | 風文 | 2023.05.24 | 781 |
2842 | 마음의 위대한 힘 | 風文 | 2023.05.24 | 417 |
2841 | 네가 남기고 간 작은 것들 | 風文 | 2023.05.22 | 704 |
2840 | 마음을 담은 손편지 한 장 | 風文 | 2023.05.22 | 430 |
2839 | 꽃이 핀 자리 | 風文 | 2023.05.22 | 370 |
2838 | '자기한테 나는 뭐야?' | 風文 | 2023.05.19 | 356 |
2837 | 백수로 지낸 2년 | 風文 | 2023.05.19 | 344 |
2836 | 행간과 여백 | 風文 | 2023.05.17 | 492 |
2835 | 우리는 언제 성장하는가 | 風文 | 2023.05.17 | 545 |
2834 | 카오스, 에로스 | 風文 | 2023.05.12 | 522 |
2833 | '살아남는 지식' | 風文 | 2023.05.12 | 491 |
2832 | 역사의 흥망성쇠, 종이 한 장 차이 | 風文 | 2023.05.12 | 381 |
2831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제3장 그리스의 태초 신들 | 風文 | 2023.04.28 | 566 |
2830 |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 風文 | 2023.04.28 | 440 |
2829 | 아무리 가져도 충분하지 않다 | 風文 | 2023.04.27 | 851 |
2828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9. 수메르 | 風文 | 2023.04.26 | 5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