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407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는 차별, 가난, 착취, 식민주의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불황, 전쟁, 파시즘을 겪으며 분노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리 곱게 봐도 문젯거리였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전체가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하려는 노력 없이 사회에 반대만 하는 것은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이에서 보았던 부정의와 불평등을 뿌리뽑을 수 있다고 믿으며 제도의 틀에서 일어났던 여러 변화에 반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분명히 이 문명은 결코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생산성을 높여 가난과 실업, 착취, 차별, 식민주의를 몰아내기는커녕 이 부도덕한 것들을 일부러 퍼뜨려 거기에서 이윤까지 냈다. 나는 반대하고 저항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사회는 내 밥벌이를 빼앗고 내 영향력과 신분까지 빼앗으며 나를 비웃었다.
  이제 투쟁을 포기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인가? 힘센 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런 사회 불의에 반대하기를 그만두고 눈앞에 버티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뒤, 앞으로는 내가 반대했던 사회 체제에 이바지하고 그를 찬양하겠노라고 약속할 것인가?
  
  선뜻 결정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넓게는 모든 사회 관계의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원칙의 문제였다. 그대로 갈 것인가. 비켜날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나만이 이런 갈림길에 맞닥뜨린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의식이 있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의문과 실망투성이인 난관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내 갈림길, 우리 세대의 갈림길, 서구인의 갈림길, 역사에 나타난 인류의 갈림길은 이상, 꿈, 희망, 목표, 계획으로 나아가는 길과 현실의 제약에 머무는 길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이면서 또 인류 공동체의 일부로서, 한 사람은 모순, 양자택일, 갈림길,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제때에 분명히 행동하면 하나는 고를 수 있다. 머뭇거리거나 옆걸음질치거나 미적거린다면 둘 다 놓치고 만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이런 명제를 앞에 놓고 스콧니어링이 던진 이 말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의 현실을 향해 던지는 질문처럼 가슴을 때리며 다가오는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538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4228
2852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風文 2022.06.04 390
2851 입을 다물라 風文 2023.12.18 390
2850 아내의 비밀 서랍 風文 2021.10.28 391
2849 수치심 風文 2022.12.23 391
2848 편안한 쉼이 필요한 이유 1 風文 2023.01.20 392
2847 무엇이 행복일까? 風文 2023.09.20 392
2846 13. 아레스 風文 2023.11.10 392
2845 생애 최초로 받은 원작료 風文 2022.01.12 393
2844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393
2843 실수의 순기능 風文 2022.12.24 393
2842 그저 꾸준히 노력해 가되 風文 2023.01.08 393
2841 밀가루 반죽 風文 2023.08.03 393
2840 실컷 울어라 風文 2022.12.15 394
2839 튼튼한 사람, 힘없는 사람 風文 2023.01.04 394
2838 내 인생은 내가 산다 風文 2023.04.17 394
2837 포트폴리오 커리어 시대 風文 2023.08.09 394
2836 왜 '지성'이 필요한가 風文 2022.05.16 395
2835 빈둥거림의 미학 風文 2022.06.01 395
2834 남 따라한 시도가 가져온 성공 - TV 프로듀서 카를라 모건스턴 風文 2022.08.27 398
2833 두근두근 내 인생 中 風文 2023.05.26 398
2832 실수에 대한 태도 風文 2023.03.08 399
2831 끈질긴 요청이 가져온 성공 - 패티 오브리 風文 2022.08.22 400
2830 첫눈에 반한 사랑 風文 2023.04.16 400
2829 '나'는 프리즘이다 風文 2023.03.02 401
2828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40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