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4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최근에 재미있는 시 두 편을 보았습니다. 현대시학 6월호에 발표된 이문재 시인의 시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이 시의 내용을 보여드리면 이게 어떤 시를 이렇게 바꾸었는지 단박 알아채실 겁니다.
  
  "불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불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불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
  
  "우리가 불이 되어 만난다면 / 젖은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화르르 화르르 불타오르는 소리로 흐른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물로 만나려 한다. / 벌써 물줄기가 된 물방울 하나가 / 물바다가 된 세상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 저 물 지난 뒤에 / 타오르는 불로 만나자....."
  
  앞의 시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뒤의 시는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패러디한 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풀을 불로 바꾸거나 물의 자리에 불을 가져다 놓아 보면 요즘 우리 현실을 생생하게 노래하는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비와 바람에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서는 풀에서 민중적 생명력을 보았다면, 이문재 시인은 바람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촛불에서 풀의 생명력처럼 질긴 그 어떤 힘을 본 것이지요.
  
  강은교 시인은 불로 만나지 말고 물로 만나자고 했습니다. 물이 가진 통합의 힘 소생의 힘이 대결하고 태우고 죽게 만드는 불의 속성보다 크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권력을 향해 이문재 시인은 유쾌한 패러디를 던짐으로써 우리를 다시 즐겁고 신명나게 합니다.
  
  이 시가 발표된 걸 본 문인들은 밥 먹는 자리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저런 시라면 나도 지을 수 있겠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던집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이 있다 / 그 불에 가고 싶다" "촛불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희는 / 언제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촛불이 곁에 있어도 / 나는 촛불이 그립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촛불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촛불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이 이야기가 네티즌들의 귀에 들어가면 수백 편의 재미있는 시가 인터넷 공간으로 쏟아져 나올 겁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652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5635
2877 '성실'과 '실성' 風文 2015.06.24 5863
2876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윤영환 2013.06.15 9846
2875 '소식'을 하되... 바람의종 2012.04.27 5864
2874 '손을 씻다' 風文 2020.05.25 653
2873 '순수의식' 風文 2014.12.18 6857
2872 '스님은 고민 없지요?' 바람의종 2012.10.05 6852
2871 '시루논' 바람의종 2009.10.28 4072
2870 '실속 없는 과식' 윤영환 2013.06.28 9514
2869 '쓴 것을 가져오라' 風文 2022.01.13 684
2868 '아침'을 경배하라 風文 2019.08.17 638
2867 '안심하세요, 제가 있으니까요' 바람의종 2009.06.09 3818
2866 '애무 호르몬' 바람의종 2011.09.29 8759
2865 '액티브 시니어' 김형석 교수의 충고 風文 2022.05.09 457
2864 '야하고 뻔뻔하게' 風文 2013.08.20 18641
2863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의종 2013.01.31 7039
2862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風文 2020.05.07 593
2861 '어른 아이' 모차르트 風文 2023.11.21 581
2860 '어른'이 없는 세상 風文 2019.08.24 695
2859 '어쩌면 좋아' 바람의종 2010.04.17 3341
2858 '억울하다'라는 말 風文 2023.01.17 422
2857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風文 2022.02.06 478
2856 '언제나 준비한다' 바람의종 2011.02.28 3093
2855 '얼굴', '얼골', '얼꼴' 風文 2019.08.19 617
2854 '열심히 뛴 당신, 잠깐 멈춰도 괜찮아요' 바람의종 2013.01.15 7713
2853 '영혼의 우물' 風文 2017.12.14 305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