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436 추천 수 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강진에 있는 김영랑 시인 생가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자주색 모란꽃도 다 다 졌겠지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말았겠지요.
  김영랑시인의 그 가없는 기다림은 또 시작되었을까요?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까요?
  삼백 예순 닷새 중에 꽃 피어 있는 날은 채 닷새 남짓한 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김영랑시인은 나머지 날들은 늘 섭섭해 하면서 살았을까요?
  
  김영랑시인에게 모란은 그냥 모란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도의 봄은 삼월이면 오기 시작하고 사월이면 온갖 꽃이 다투어 피는데 오월이 가까워져도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나의 봄"을 기다린다고 말한 데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다리는 나만의 봄, 모란꽃으로 빗대어 상징적으로 말한 그런 특별한 봄, 그것 자체가 "뻗쳐오르던 내 보람"인 봄, 그런 봄이 나의 봄입니다. 그런 봄이 잠깐 내게 왔다가 가고 나머지 날들은 슬픔 속에서 보내지만 그 슬픔이 언젠가는 "찬란한 슬픔"으로 완성될 것임을 믿으며 어두운 역사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찬란한 슬픔"이란 말은 모순된 말입니다. 슬픔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시적역설 속에 역설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슬픈 날들을 견디는 것도 언젠가는 이 슬픔의 날들 끝에 찬란한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의 슬픔도 찬란한 슬픔이 되는 것이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24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304
2927 외톨이가 아니다 風文 2023.06.01 390
2926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 風文 2022.01.28 393
2925 50. 자비 風文 2021.09.15 394
2924 소원의 시한을 정하라 風文 2022.09.09 394
2923 지금 아이들은... 風文 2019.08.27 395
2922 건강한 자기애愛 風文 2021.09.10 395
2921 58. 오라, 오라, 언제든 오라 風文 2021.10.31 395
2920 나쁜 것들과 함께 살 수는 없다 風文 2022.12.29 395
2919 놀라운 기하급수적 변화 風文 2021.10.09 397
2918 길가 돌멩이의 '기분' 風文 2021.10.30 398
2917 논쟁이냐, 침묵이냐 風文 2022.02.06 401
2916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風文 2022.10.15 402
2915 분을 다스리기 힘들 때 風文 2023.04.16 402
2914 순두부 風文 2023.07.03 402
2913 익숙한 것을 버리는 아픔 1 風文 2021.10.31 403
2912 산림욕 하기 좋은 시간 風文 2021.10.09 404
2911 거절을 열망하라 - 릭 겔리나스 風文 2022.10.06 404
2910 내면의 거울 風文 2023.01.11 405
2909 '자기한테 나는 뭐야?' 風文 2023.05.19 405
2908 글쓰기 근육 風文 2022.01.29 406
2907 괴테는 왜 이탈리아에 갔을까? 風文 2023.12.07 406
2906 꽉 쥐지 않기 때문이다 風文 2023.02.24 407
2905 내가 원하는 삶 風文 2021.09.02 409
2904 걸음마 風文 2022.12.22 411
2903 명상 등불 風文 2023.01.07 41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