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4.28 14:24

참는다는 것 / 도종환

조회 수 8431 추천 수 2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참는다는 것 / 도종환




남도에 꽃구경 갔다가 오는 길에 어느 절에 들렀습니다. 신라시대에 인도로부터 불법이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이 절 마당에는 봄풀 사이에 자잘한 봄맞이꽃들이 피어 있었고 그 꽃이 주는 기운으로 절 마당은 따뜻하였습니다. 봄기운을 담뿍 받고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법어 몇 말씀 적힌 오래된 게시물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요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기꺼이 용서하고, 부귀와 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 속에서도 마음을 고요히 가질 것이며 남들이 모두 악행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아함경』에도 나오는 이 말씀을 한번 읽고 지나치기 아까워 몇 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참을 수 있는 것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기 어려운 것까지 참는 것이 진실하게 참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강한 자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꾹 참다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불 같이 화를 내는 우리들은 얼마나 비겁한 사람들입니까.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기로 하였습니다. 아니 그냥 참기보다 허물을 용서하고 절제할 줄 아는 것 또한 그를 위한 일이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내 마음을 불같은 원망과 분노로 태우지 않고 고요하고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상대방보다 나에게 더 득이 되는 일입니다.
  
  꽃 구경 절 구경 갔다가 귀한 말씀까지 얻어오니 참으로 복 받은 봄날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24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301
2927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風文 2023.10.09 610
2926 손짓 風文 2023.10.09 689
2925 춤을 추는 순간 風文 2023.10.08 522
2924 교실의 날씨 風文 2023.10.08 531
2923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風文 2023.09.25 615
2922 운명이 바뀌는 말 風文 2023.09.22 687
2921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風文 2023.09.22 567
2920 '건강한 감정' 표현 風文 2023.09.21 529
2919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도끼처럼 風文 2023.09.21 554
2918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風文 2023.09.20 661
2917 무엇이 행복일까? 風文 2023.09.20 419
2916 너무 슬픈 일과 너무 기쁜 일 風文 2023.09.20 636
2915 책을 '먹는' 독서 風文 2023.09.07 697
2914 아주 위험한 인생 風文 2023.09.05 478
2913 신묘막측한 인간의 몸 風文 2023.09.04 609
2912 디오뉴소스 風文 2023.08.30 473
2911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546
2910 나의 인생 이야기, 고쳐 쓸 수 있다 風文 2023.08.25 627
2909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風文 2023.08.24 512
2908 살아 있음에 감사하렴 風文 2023.08.23 636
2907 거울 속의 흰머리 여자 風文 2023.08.22 1736
2906 독일의 '시민 교육' 風文 2023.08.21 527
2905 내면의 에너지 장 風文 2023.08.18 644
2904 시간이라는 약 風文 2023.08.17 566
2903 이야기가 곁길로 샐 때 風文 2023.08.14 78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