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0886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2009년 5월 27일_스물두번째





 





동물도 웃을까? 만화 캐릭터 스누피는 웃고 울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누피의 웃음은 사람의 웃음을 개의 얼굴에 그린 것일 뿐이다. 눈초리를 구부리고, 입을 벌리고, 하하하 껄껄껄 키득키득 소리를 내며 웃는 얼굴을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다. 언어처럼 웃음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동물이 인간처럼 웃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웃음이 없는 것일까? 동물도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 테니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떻게 웃을까?


우리 집 딸아이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르는 강아지가 있다. 이놈이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이놈이 웃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강아지는 얼굴로 웃는 것이 아니라 꼬리로 웃는다. 아니, 온몸으로 웃는다. 우리 식구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이놈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댄다. 껑충껑충 뛰면서 어쩔 줄 모른다. 달려들며 컹컹컹 짖는다. 마치 웃음의 에너지가 온몸에서 강력한 전력을 발생시켜, 그 짜릿한 자극을 감당할 수 없는 몸이, 그 힘을 견디려고 필사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개는 사람과 웃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웃음에는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개가 더 활발하고 신나게 웃는 것 같다. 개의 웃음에는 표정이 없는 대신 껑충껑충 뛰는 다리와 세차게 흔드는 꼬리가 달린 것 같다. 그 웃음은 몸 밖으로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다. 사람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을 때는 개처럼 온몸으로 웃는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어떻게 웃는가 보라. 얼굴 웃음으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개도 기쁨의 크고 작음에 따라 꼬리만 흔들기도 하고 온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듯 강아지 꼬리의 움직임도 다양하다. 두려울 때는 뒷다리 안쪽으로 꼬리를 감추고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밥이나 물을 달라고 할 때는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꼬리를 흔든다. 꾸우웅 소리를 내거나 앞발로 바닥을 긁기도 한다. 오랫동안 개를 길러 본 사람이라면 개의 행동이나 짖는 소리를 보고 단박에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개는 짖는다고 하거나 운다고 하지 웃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새도 지저귄다고 하거나 운다고 하지 웃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을 보고 좋아서 짖거나 새가 아침에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으며 맑은 소리로 지저귈 때, 그들은 분명히 우는 것이 아니라 웃는 것이다. 그 소리의 가벼움과 경쾌함, 힘참, 맑음 등에서 그 웃음을 느낄 수 있다.


개의 표정은 얼굴에 없는 대신 온몸에 있다. 사람은 마음이 웃지 않으면서도 얼굴 거죽으로 웃을 수 있다. 감정과 표정을 분리시키는 기술은 지능이 높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개에게 그것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개는 마음이 웃을 때에만 몸도 따라서 웃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보다 열등한 능력이 아니라 우수한 능력 같기도 하다.














■ 필자 소개


 




김기택(시인)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영어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89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태아의 잠』과 『바늘 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등을 냈고, 『태아의 잠』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71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720
2923 모퉁이 風文 2013.07.09 11187
2922 風文 2014.10.20 11165
2921 치유의 문 風文 2014.10.18 11157
2920 아흔여섯살 어머니가... 윤안젤로 2013.06.05 11124
2919 라이브 무대 風文 2014.08.12 11089
2918 김인숙 <거울에 관한 이야기> 바람의종 2008.02.29 11063
2917 한숨의 크기 윤안젤로 2013.05.20 11003
2916 여섯 개의 버찌씨 바람의종 2009.05.04 10969
2915 불을 켜면 사라지는 꿈과 이상, 김수영 「구슬픈 肉體」 바람의종 2007.03.09 10954
2914 고통은 과감히 맞서서 해결하라 - 헤르만 헷세 風磬 2006.11.02 10944
2913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 사실은 의사 지망생이었다? 바람의종 2007.02.28 10935
2912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면 바람의종 2008.07.31 10933
2911 권력의 꽃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7.21 10891
2910 하루 10분 일광욕 風文 2014.10.10 10888
»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8 10886
2908 '할 수 있다' 윤안젤로 2013.06.15 10869
2907 밤새 부르는 사랑 노래 윤안젤로 2013.05.27 10843
2906 "'거룩한' 바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바람의종 2009.03.31 10843
2905 초점거리 윤안젤로 2013.03.27 10842
2904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들 때 風文 2014.11.12 10761
2903 친애란 무엇일까요? 바람의종 2007.10.24 10741
2902 내 마음 닿는 그곳에 윤안젤로 2013.06.03 10698
2901 깜빡 잊은 답신 전화 윤영환 2013.06.28 10696
2900 사치 風文 2013.07.07 10657
2899 기꺼이 '깨지는 알' 윤안젤로 2013.03.20 1058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