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2. 수용성

  <해답 구하기를 딱 멈춰 보라.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라. 풀고, 기다리고, 좋은 때를 가져보라>

  한 철학자가 선승을 찾아와서 붓다와 명상과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헐떡이면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선승이 말하기를,

  <객이 몹시 지쳐 보이는구려. 이 높은 산을 올라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차나 한 잔 하시게>

  철학자는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그의 마음은 온갖 의문들로 들끓었다. 이윽고 주전자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고 차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승은 말하기를,

  <기다리시게. 그리 서둘지 마시게. 혹시 아는가? 차 한 잔 마시노라면 객의 의문들이 싹 풀릴지>

  순간 철학자는 자신이 완전히 헛걸음한 게 아닌 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냐? 차 한잔 마신다고 붓다에 대한 내 의문이 어떻게 풀릴 수 있단 말야?' 그러나 그는 너무 지쳐 있으니 차나 한 잔 받아 마시고 산을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생각했다. 이윽고 선승이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기울였다. 찻잔이 가득차고 넘치는데도 선승은 계속 붓는 거였다. 잔 받침대까지 가득 찼다. 한 방울만 더 따르면 마룻바닥으로 넘쳐 흐를 지경이었다. 철학자가 외쳤다.

  <그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잔이 넘치고 받침대까지 넘치는게 안 보이십니까?>

  선승이 말하기를,

  <아항, 객의 모양이 꼭 이렇지. 객의 마음이 꼭 이렇게 의문들로 그득해서 내가 뭘 말해 줘도 들어갈 틈이 없지. 도리어 내가 한 마디라도 해주면 객의 의문들은 넘쳐 흘러 물바다를 이룰 게야. 이 오두막이 객의 의문들로 가득 찰 테지. 돌아가시게. 객의 잔을 싹 비워 가지고 다시 오시게. 우선 객의 속 안에 조금이라도 빈 틈을 내시게>

  이 선승은 그래도 봐줘 가며 하느니, 나한테 오면 어림도 없다. 난 빈 잔도 허락지 않는다. 잔 자체를 박살 내버릴 것이다. 아무리 비워도 잔은 다시 차기 마련이니까. 그대가 아예 있질 않아야 만이 차를 따를 수 있다. 그렇다. 그대가 아예 있질 않으면 차를 따를 필요조차 없다. 아예 있지를 말라. 그러면 모든 존재가 온갖 차원, 온 방향에서 그대의 없음으로 부어질 테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358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2613
2948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 싶은 것 두 가지 風文 2023.11.10 513
2947 올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3.11.10 391
2946 12. 헤르메스 風文 2023.11.09 353
2945 사람 만드는 목수 風文 2023.11.09 425
2944 감사 훈련 風文 2023.11.09 368
2943 11. 아프로디테 風文 2023.11.01 399
2942 흙이 있었소 風文 2023.11.01 553
2941 새벽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風文 2023.11.01 566
2940 아버지의 손, 아들의 영혼 風文 2023.10.19 482
2939 10. 헤파이스토스, 다이달로스 風文 2023.10.18 603
2938 9. 아테나 風文 2023.10.18 413
2937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風文 2023.10.18 534
2936 '건강한 피로' 風文 2023.10.17 543
2935 그대, 지금 힘든가? 風文 2023.10.16 362
2934 파도치는 삶이 아름답다 風文 2023.10.13 430
2933 여기는 어디인가? 風文 2023.10.12 378
2932 서두르지 않는다 風文 2023.10.11 346
2931 쾌감 호르몬 風文 2023.10.11 354
2930 꿀잠 수면법 風文 2023.10.10 399
2929 35살에야 깨달은 것 風文 2023.10.10 350
2928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風文 2023.10.09 382
2927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風文 2023.10.09 489
2926 손짓 風文 2023.10.09 540
2925 춤을 추는 순간 風文 2023.10.08 357
2924 교실의 날씨 風文 2023.10.08 37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