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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9장 도래종교

    1. 오르페우스

[짐승들에 둘러싸여 있는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Orpheus)는 그리스에서 독자적인 신앙 오르페우스교를 정립하고 교리교본을 낸 최초의 교주이다. 또한 그리스 신하에 등장하는 최고의 음악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오르페우스에 관한 신화는 매우 모호하고 윤색이 심하여 상징화되어 있으며, 먼 옛적부터 내려오던 전승이 큰 규모의 신화로 확대되고 문학적으로 대중화되었다. 오르페우스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그리스도교의 초상화에도 그 양식이 도입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그러나 모친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어 폴류흄니아 혹은 드물게는 타뮤리스의 딸 메니페라는 설도 있다. 오르페우스 자신도 아폴론의 아들 또는 제자라는 설이 있는데, 수금을 아폴론이 주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원래 트라키아인으로, 뮤즈와 마찬가지로 올림포스 접경에 살며 트라키아인 옷차림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림과 조상에 나타난다. 신화작가는 오르페우스를 비스토니아, 오아류세스, 마케도니아의 왕이라고 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노래와 음악의 거장이자 시인이다. 수금 류레와 옛 하프인 키타라를 잘 켰는데 특히 키타라는 오르페우스의 창작품이라고 전한다. 혹 창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기의 현을 7본에서 9본으로 확장하였으며 이는 9명의 뮤즈에 현 수를 맞추었다고도 전한다. 진부야 어떻든 간에 오르페우스의 노래 솜씨는 신묘하고 매우 부드러우면서 향기를 느끼게 하여 야생의 금수들이 모여들고 산천초목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격류는 흐름을 멈추었다. 포악한 인간조차도 온순해졌다.
  오르페우스는 아르고 호의 원정대원으로 가담하여 타 대원보다는 힘이 약해 노를 젓는 대신 키잡이 역할을 하며 폭풍을 만나면 노래로 선원을 안정시키고 파도를 잠재웠다. 신앙심이 두터워 독자적으로 사모트라케 섬에서 비의를 시작하고 대원들을 위하여 카바리(곡물의 여신으로 데메테르의 별칭)에게 제사를 올렸다. 후에는 먼 항해에 황망하고 거칠어진 동료들도 비의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 신앙이 발전하여 오르페우스교의 효시가 되었다. 콜키스로 항해하는 도중 죽음을 부르는 세이렌의 달콤한 노래를 능가하는 감동적인 노래로 위험한 유혹을 차단하고 선원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트라키아에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에우류디케와 결혼하여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나 얼마 후 아내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지하세계까지 내려가 다시 아내를 데려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오르페우스 신화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이다.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문학적으로 윤색되어 전재된 것 같다. 특히 베르길리우스가 지은 '농경가' 속에 가장 풍부히 수식되어 완전한 이야기로 시렸다.
  에우퓨디케는 물의 요정 나이아스 또는 숲의 요정 드류아스라 하고 때로는 아폴론의 딸이라고도 한다. 하루는 트라키아의 개울 근처를 거닐던 중 그녀에게 반한 아리스타이오스(아폴론과 요정 큐레네의 아들)의 추적을 받았다. 그를 피해 도망치던 에우류디케는 풀밭에 도사린 뱀을 밟아, 발 뒤꿈치를 물리고 결국 그 독으로 생명을 잃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어찌할 바 몰라하던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다시 찾을 일념으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수그모가 노래로 하데스 나라의 사공 카론과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괴물 개 케르베로스는 물론 명계의 모든 신들까지 매혹시켰다. 그뿐 아니라 이 황홀한 음악과 노랫소리에 모든 사물이 그만 시적 환상의 절정에 잠겨 버렸다. 익시온의 수레바퀴(헤라를 범하려다 영구히 회전하는 불의 수레바퀴에 묶임)가 회전을 멈추었으며 사슈포스의 바윗돌도 굴러 내리다 멈추었다. 탄탈로스는 갈증과 허기를 잊었으며, 다나이데스(신랑을 죽인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노역을 함)는 물긷기를 잊어버렸다. 복수의 여신조차 마음이 누그러지니 명계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아내 사랑에 감동되어 에우류디케를 남편에게 보내기로 승인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단 대신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지하세계를 다 지날 때까지 오르페우스는 뒤를 쫓아오는 처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여기에 순종하기로 약속하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거의 해가 있는 지상에 다가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 한 약속을 잊고, 또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혹 페르세포네가 속임수를 쓴 것이 아닐까? 정말로 에우류디케가 쫓아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만 돌아보고 말았고, 이에 뒤따라오던 에우류디케는 기절하여 쓰러지고 영혼은 안개같이 명계로 사라져 결국 다시 죽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다시 살리려고 애쓰나 사공 카론은 막무가내로 명계의 강을 건네주지 않았다. 비통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홀로 인간세계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르페우스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도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가장 보편적인 설은 트라키아의 여인들에게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유는 많고 복잡하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세상을 등진 채 오직 죽은 에우류디케의 추억에만 골몰하며 트라키아 여인들을 멀리하자 이에 여자들이 모욕당한 것으로 느끼고 분개하였다. 게다가 오르페우스는 여자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젊은 남자와 같이 다녔는데, 심지어 동성연애에 빠져 남색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하며 상대는 미소년인 칼라이스(보레아스의 아들)였다고 한다. 더 믿을 만한 설은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를 다녀와 그 곳의 경험을 토대로 비의를 올리는데 여자의 참여를 금하였다 한다. 젊은이들은 무기를 밖에 풀어놓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건 다음 의식에 참여하였는데, 어느 날 밤 여자들이 몰려와 그 무기를 집어들고 남자들이 나타나자 오르페우스와 함께 죽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디오뉴소스를 신봉하는 젊은 여자들과 마주쳐 박살당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설에는 아프로디테의 저주에 연유한다고 한다. 즉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 때문에 페르세포네와 다툴 때 제우스의 지시로 칼리오페(오르페우스의 모친)의 중재를 받아야 했다. 이 때 칼리오페는 두 여신에게 아도니스를 계절에 따라 교대로 데리고 있으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도니스를 독차지하고 싶어했던 아프로디테는 이 결정에 화가 났으나 칼리오페에게는 직접 복수할 수 없어 그 아들 오르페우스를 괴롭혔다. 즉 트라키아 여인들로 하여금 오르페우스와 사랑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연정을 갖지 않고 또 가까이 하지도 않자 자존심이 상한 여인들은 무시당한 원한으로 오르페우스를 박살내었는데 이 때 떨어진 머리에서는 계속 에우류디케를 부르고 있었다 한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오르페우스가 제우스의 벼락으로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즉 오르페우스가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되자 이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때로는 디오뉴소스와 같이 엘레우시스의 비교를 창설하였다고도 한다.  오르페우스 죽음에 대한 정설에 따르면, 트라키아 여인들에게 박살을 당한 후 그 시체는 개울에 던져져 바다로 떠내려 갔다고 한다. 머리와 수금이 레스보스에 와 닿자 주민들은 정중히 장례를 치르고 묘소를 만들어 주었다. 이로 인하여 레스보스 사람들은 그 보상으로 음악과 시적 재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 예를 들면 중동지방의 멜레스 강구에도 오르페우스의 묘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오르페우스의 신체 조각은 뮤즈가 모아 피에리아에 매장하였다. 오르페우스 살해 후 트라키아 전역에는 역병이 번져 나갔다. 신탁을 받아 보니 음악의 장인을 죽인 벌이니 역병에서 벗어나려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찾아 응분의 제사를 올려 영예롭게 추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먼 곳까지 널리 찾은 바 멜레스 강구의 모래 밑에 매장된 머리를 어부들이 발견하였다. 피가 묻어 있는 머리에서는 그 때까지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테살리아에는 그 무덤에 대해 또 다른 괴이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즉 레이베트라 지방에 있었던 일인데 트라키아의 디오뉴소스의 신탁에 의하면, 오르페우스의 재(유골)에 햇빛이 닿으면 그 도시는 한 마리의 돼지 때문에 패망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돼지 때문에 도시가 파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그 예언을 비웃었다. 그런데 여름철 어느 날 한 목동이 오르페우스 무덤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오르페우스의 혼이 깊이 스며들어 아름다운 음성으로 오르페우스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이 노래를 듣자 일을 멈추고 소리 나는 무덤 주위에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 때문에 묘소와 기념비가 무너지고 위인의 석관을 덮쳐 유골이 햇빛에 노출되었다. 다음 날 밤 격렬한 폭풍우가 일어 슈스(그리스어로 돼지라는 의미) 강물이 넘치고 다시 둑을 넘어 도시를 덮쳐 버렸다. 설명할 수 없던 기이한 신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죽은 다음 천상에서도 인정되어 수금은 별자리에 올랐다. 오르페우스의 영혼은 지하세계의 낙원에서 지내며 원삼을 두르고 축복받는 영혼들을 위하여 계속 노래를 불렀다. 오르페우스 신학의 형성과 정립의 배경에는,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에 다녀왔기 때문에 축복받은 영혼이 지내는 낙원에 갈 수 있는 방법과 죽은 다음에 영혼을 위협하는 어려운 과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믿는 데 있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과 같이 여러 시문 특히 송사, 신통기나 아르고 원정 서정시의 구절을 색인한 명지를 묻는 습관은 오르페우스의 그러한 속성 때문이다. 초기 오르페우스 시문은 유실되고 후기에 가서 오르페우스 종파의 재료를 토대로 아리스토텔레서는 '오르페우스 서사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또한 피시스트라토스 왕실에서 지낸 오노마크리토스는 '오르페우스 시'를 썼는데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많은 후기 작가들은 오르페우스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선조라는 설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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