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441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연변 처녀」(소설가 김도연)   2009년 6월 26일_마흔세번째





 





고모님이 오셨다, 양념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술잔을 권하며 애인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술잔만 비웠다. 고모님이 사는 마을에 조선족 아주머니 한 분이 있다고 한다. 친한 모양이다. 고모님은 용의주도하시다. 내 나이를 묻는다. 힐난의 감정을 조금 묻혀서. 고모님은 내가 하는 일이 붓글씨를 쓰는 건 줄 안다. 글과 붓글씨라. 어딘가에서 핀트가 어긋났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냥 술만 마신다. 마침내 고모님은 내 손을 잡고 말씀하신다. 함께 연변에 가자고. 450만 원만 있으면 가능하단다. 여자 집에서 일주일을 지내다가 마음에 들면 데려오는 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여자 집으로 가면 된단다. 스물세 살까지 가능하단다. 우리 조카가 어디가 못나서 장가를 못 가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덕분에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웠다. 아궁이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세밑의 눈보라. 잉걸불의 아궁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연기. 먹을것을 찾아 떼거지로 몰려온 귀신들. 잠이나 자자고 누운 자리… 이러다 저 아래 태국, 필리핀까지 내려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갈수록 인생이 장밋빛으로 변해 간다. 뱃속으로 들어간 들꿩과 산토끼가 밤새도록 퍼덕거리고 들뛰는 겨울밤, 변해 가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 가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연변 처녀여, 미안하다. 모든 것은, 최악을 고집하는 나의 우둔함이 원인이다! 결국 남한 땅에만 국한되었던 내 세계관만 넓어지고 말았다.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동안에.

















■ 필자 소개


 




김도연(소설가)


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십오야월』 등이 있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778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6870
2452 어린이는 신의 선물이다 風文 2020.05.08 644
2451 '고맙습니다. 역장 올림' 風文 2020.06.02 644
2450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27. 판단 風文 2020.07.03 644
2449 우주심(宇宙心)과 에고(Ego) 風文 2023.07.27 644
2448 차근차근 한 걸음 한 걸음 風文 2019.08.10 645
2447 기억하는 삶 風文 2019.08.29 645
2446 몸과 마음의 '중간 자리' 風文 2022.05.31 647
2445 살아 있음에 감사하렴 風文 2023.08.23 647
2444 너무 슬픈 일과 너무 기쁜 일 風文 2023.09.20 647
2443 눈부신 깨달음의 빛 風文 2019.08.13 648
2442 엎질러진 물 風文 2019.08.31 649
2441 피천득의 수필론 風文 2023.11.22 649
2440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7. 탐욕을 넘어서 風文 2020.06.02 650
2439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21. 주기 風文 2020.06.21 650
2438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風文 2021.09.14 650
2437 입씨름 風文 2022.02.24 650
2436 단 몇 초 만의 기적 風文 2023.08.10 650
2435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죠?' 風文 2019.08.22 651
2434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8. 제자다움 風文 2020.06.03 651
2433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 風文 2019.08.15 652
2432 안 하느니만 못한 말 風文 2020.05.06 652
2431 나이가 든다는 것 風文 2022.12.09 653
2430 저 강물의 깊이만큼 風文 2020.07.04 654
2429 첫 걸음 하나에 風文 2019.08.08 655
2428 거인의 어깨 風文 2019.08.31 65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22 Next
/ 122